계속 고민하다가 써봤어
익명성을 위해서 이것저것 바꿨는데 핵심은 같다



근세 판타지 기반 3인 중편플이었음. 플레이어들은 왕국 궁중백의 호위병이랑 전속 광대, 시종이었고

궁중백 암살 누명을 쓴 플레이어들이 탈출해서 암살의 진짜 배후를 찾고, 마침내 왕국을 위협하는 음모를 분쇄한다는 전형적인 정치스릴러 액션물을 하기로 했음. 개요에도 그렇게 써놨었다


일주일 정도 캐매를 했는데 그동안은 분위기 좋았다. 플레이어들도 들떠서 빌드고민 컨셉고민하느라 화기애애했고

근데 호위무사를 맡은 플레이어(이하 A)가 이런 제안을 함


참신하게 궁중백을 소녀로 해보면 어떻겠냐고


내가 처음 생각한 궁중백은 얼불노의 존 아린이었음. 발단만 제공해주고 재빨리 죽거나 이미 뒤져서 나오는 그런 캐릭터

세션 분위기도 그렇고 소녀로 하기에는 좀 그런 캐릭터라고 했음


근데 A가 막 설득하더라고, 오히려 분위기 더 비장해지지 않냐 D&D에도 소녀 교황 같은거 나온다

님 궁중백 어차피 첫세션에서 죽는 캐릭터인거 아시져? 하니까 자기도 안대

다른 플레이어들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닌 거 같길래(한명이 궁중백이 소녀면 저 설정좀 바꿀게욯 하는거보고 아 싫어하는게 아니구나 싶었음) 어물어물 그럴까요? 해버림

그렇게 해서 15세 소녀 궁중백이 탄생했다


플레이어들 다 좋아하는 거 같아서 난 씨발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었지



그러고 대망의 첫세션 날이 밝았다


몰입감을 위해서 궁중백이 죽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첫 세션에서 죽는 걸로 계획해놨음

왕실 주최 무도회에서 플레이어들이 궁중백이랑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검은 안개가 몰아닥치고 샹들리에가 추락하고 아수라장이 펼쳐짐

시나리오 개요에도 궁중백이 죽은 다음 누명을 쓴다고 분명히 써놨으니까

난 별 판정 없이 RP랑 묘사만으로 궁중백이 죽으려는 시점까지 진행시켰음


근데 호위병이었던 A가 정색하고 왜 판정 안시켜주냐고 따지더라고

난 시나리오상으로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막 필사적으로 궁중백을 지킨다는 느낌도 안들고 몰입이 안된다는거야 그냥 죽게 내버려두는 거 같다고


강행하면 진짜 삐질 거 같아서 난이도만 높게 하고 판정 가능하게 해줬음

그랬더니 A가 진짜 존나 필사적으로 개똥꼬쇼를 하더라고


아무것도 안 보이고 불 붙일 것도 판정실패해서 안 보이니까 자기 망토에다가 불을 붙이겠다 선언하고

되도 않는 육감인지 뭔지로 암살자를 찾은 다음 /궁중백을 와락 끌어안아서/(여기서 뭔가 이상했음) 막아내려 그러고

궁중백이 칼 맞고 누우니까 아예 옷 찢고 응급처치한 다음 인공호흡이랑 CPR까지 함 그냥 묘사가 아니라 이거 성공하면 사는 거죠? 하면서


아무래도 진짜 살릴 때까지 판정하려는 거 같길래 뒤늦게 컷하고 궁중백 죽었다고 했음


근데 A가 아;; 하는거야


일단 피드백은 나중에 하고 진행하려는데 그 다음부터 A가 삐진게 분명한 RP를 막 하기 시작함

감옥에서 탈출하려 하는데 계속 구석에 넋놓고 앉아있다는 선언만 하고

마법사랑 바드가 간수 녹아웃시켜서 숨기는 동안 홀린 듯이 노래를 부르고 있겠대

보다못한 다른 PC들이 복수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까 '복수한다고 사랑하던 사람이 돌아오냐' 문자 그대로 이런 대사를 침


이게 그냥 슬픈 거 표현하려는 RP가 아니라 어깃장 놓으려고 하는 RP인 냄새가 너무 나더라고


결국 A가 탈출하다 마주친 사형집행인한테 제 발로 걸어가려는 부분에서 세션 끊었음



피드백하면서 들어봤는데 A 입장은 그거인 거 같음. RPG면 당연히 판정이랑 플레이어 선택에 따라서 시나리오가 달라질 수 있는건데

무조건 죽는 레일로드인 게 불편하고 실패해야만 되는 판정을 왜 시키냐

그리고 그냥 슬픈 RP하는데 왜 어깃장놓는다고 하냐 지금 나를 트롤러처럼 몰아세우고 있지 않느냐인데 이건 진짜 심증밖에 없는거라서 나도 미안하다 했고


결국 피드백이 감정싸움 될 거 같아서 일단 해산했는데 활발하던 채팅방이 일주일째 냉랭함


내일 다음 세션 하기로 했었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되는 문제냐

저 상황에서면 어떻게 했어야됐냐

사실 쟤는 플레이 그냥저냥 한건데 내가 너무 병신같이 생각하고 있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