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reador는 제가 무척 관심이 많은 Clan입니다. 제 첫 WoD PC도 Toreador와 깊은 연관이 있었고, 인간들의 문화와 사회관계를 자신들의 힘으로 삼는다는 것도 흥미로우며, 물론 Disciplines도 제 기준에서 조합이 매우 이상적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Clan Toreador에 내린 저주입니다. 다들 눈치를 챘겠지만, 그래서 이번에 얘기할 주제는 Clan Toreador의 저주에 대한 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약점은 최신 규칙서인 V20에 쓰여진 것에 따르면 어디까지나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Self-Control나 Instinct 판정(난이도 6)를 실시하며, 실패할 경우 해당 아름다움을 유발한 대상에 홀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단지 Stun 효과로만 취급해서는 곤란합니다. WoD는 연기를 권장합니다. 그리고 Toreador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내린 저주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한 번 정도는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나르키소스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해볼까요?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서 아마 대부분은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르키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초절한 미소년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였던 님프 리리오페는 유명한 예언가 테이레시아스에게 아들의 운명에 대해 물었는데, 예언가는 "자기 자신을 모르면 오래 살 것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하지요. 과연 그는 성장하여 용모가 무척이나 아름다운 젊은이가 됐고 많은 남자들과 여자들의 구혼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차갑고 이기적인 성격이었던 그는 자신에게 구혼한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고, 이 매몰찬 냉대와 거절에 상처를 받고 요절한 이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르키소스의 이러한 행보는 결국 복수의 여신인 친족관계가 아닌 이들 사이의 복수를 관장하는 여신인 네메시스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네메시스는 저주를 걸어 나르키소스가 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나르키소스는 네메시스의 저주로 미친 탓에 자기에게 반해서 샘만 들여다보다가 탈진해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왜 했느냐고요? Toreador들도 바로 이런 종류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설에 따르면 Clan Toreador의 시조인 Arikel은 제2세대들에게 반기를 든 죄로 저주를 받은 게 아니라고 합니다. Arikel은 카인과 제2세대들이 번영시킨 '최초의 도시'에서 살던 뛰어난 조각가였는데, Arikel의 심미적 안목과 뛰어난 통찰에 인상을 받은 제2세대 중 하나가 그를 포옹하여 Clan Toreador의 시조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어느 시점에서 Arikel은 뱀파이어의 초인적인 힘들로 자신의 역작으로 남을 한 벽화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벽화는 뱀파이어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는, 피로 물든 음울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벽화 속에서 모든 뱀파이어들은 결국 자신들의 이기적이고 짐승과 같은 본성 때문에 서로를 죽이고 인간들을 착취하며 분열되다, 이내 피가 묽어진 끝에 몰락하고 말 운명으로 묘사됐습니다. 최초의 뱀파이어인 Caine은 이 벽화에서 자기 종족의 미래를 보고 깊은 절망에 빠진 나머지 분노에 몸을 떨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독적인 예술품을 만든 죄로 Arikel과 그 후손들은 모두 아름다움에 홀리고 다른 것에는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몇몇 Noddist들이 주장하는 Clan Toreador가 지닌 저주의 기원입니다(Cb-T, DSotBH).
네, 저주말입니다.
혹자는 Clan Toreador의 약점이 단지 시스템적으로 부여된 것일 뿐이고, 자기 PC가 아름다운 것을 보면 정신줄을 놓는 것은 단지 취향일 뿐인 것처럼 묘사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정체성의 상실'은 고전적인 고딕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선한 신사인 지킬 박사가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악랄한 불한당 지킬로 변해가면서 스스로를 잃어가는 공포 말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잃어버리는 건 V:tM의 모든 뱀파이어들이 직면한 위기입니다. 뱀파이어 치고 내면에 Beast 한 마리 안 키우는 놈은 없지요. 하지만 각 Clan이 지닌 고유한 저주는 Beast와 더불어 해당 Clan에 속한 뱀파이어들이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방식을 다르게 만듭니다. Brujah들은 분노와 충동을 이기기 힘들어집니다. Gangrel들은 육신부터 점차로 짐승으로 변해갑니다. Malkavian은 광기에 이성이 집어삼켜집니다. 그럼 Toreador들은? 계속해서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무언가에 홀리고 매료됩니다.
당연히 Toreador의 저주도 Gangrel이나 Malkavian, Nosferatu의 저주처럼 Vitae에 흐르는 초자연적인 저주입니다. 신들이 나르키소스에게 내린 저주만큼이나 극악한 것입니다. 모 유명 스토리텔러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에는 예쁜 게 너무 많이 있다. 떠오르는 태양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강가에 비친 달빛은? 고층빌딩 사이로 달리는 빛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나?" 그리고 Toreador인 "당신은 깨어있는 시간의 많은 부분을 어리벙벙한 상태로 보내게 될 수도 있다."
이들에게 내린 저주는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내 이성과 의식을 빼앗고 나를 구속시키는 거부할 수 없는 힘입니다. 아동 강간마가 눈 앞에서 10살짜리 애를 강간하며 찔러죽이고 있다 해도, 당신이 이 광경에서 어떠한 아름다움이라도 "발견해버리고 말았다면," 당신은 그 흉악한 범죄에 매료된 채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나의 의지나 도덕성과는 무관하게, 내 의식과 육신이 그러한 감각적 자극에 홀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럼 Toreador들은 이 저주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할까요? 어쩌면 이런 저주가 있기 때문에 Clan Toreador는 어쩔 수 없이 문화와 예술에 민감한 걸지도 모릅니다. 물론 우리가 인간인 이상은 공통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속성들이 있지만, 어쨌든 흔히들 아름다움은 상대적으로 느끼는 거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게 많을수록 내 정신과 정체성은 더 자주 무너집니다. 그렇다면 내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영역을 확실하게 경계를 그어놓으면 어떨까요? 내가 특정한 취향에 지독할 정도로 확고히 매료됐다면, 어쩌면 다른 것들로부터는 아름다움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많은 Toreador들이 자신만의 명확한 미적 취향을 갖고 있습니다. 운율이든, 향기든, 어떠한 동작에 따른 시각적 자극이든. 심지어는 사회의 조직성이나 체계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Toreador도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꽤 많은 Toreador들은 이런 감각적 충격이 주는 자극을 즐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Toreador들은 Clan에 내린 저주에로 느끼는 감각적인 충격을, 영원한 밤 동안 자신들이 메마르지 않고 영혼의 불씨를 간직한 채 살아가게 해주는 닻 비슷한 거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Clan 뱀파이어들 중에도 감각적인 자극에서 Unlife의 의미를 찾는 이들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특히 Clan Toreador는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마치 자기들이 인간의 미와 문화와 예술에 대한 애호가들인 것처럼 굴고 다닙니다. 하지만 정말 Toreador들은 아름다움이 그렇게 좋아 죽겠을까요? 어쩌면 이들은 자신들을 홀리고 매료시키는 감각적 자극에 중독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 의지와는 무관한 강제적 자극이지만, 어쨌든 좋은가 봅니다.
적어도 다른 뱀파이어들은 Beast와 자기 Clan의 저주를 끔찍하게 여기고 무서워합니다. 하지만 Toreador들은 자기 저주에 취해버립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스스로를 저주에 내던지면서 "인간성을 보존하기 위한 미의 추구"라고 주장합니다. 내가 아름다움에 홀리는 것은 더러운 중독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여기서 대단한 심미적 의미와 감동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Clan Toreador는 자기들도 다른 클랜 못지않게 피에 미친 괴물이고, 인간성이 조각나고 있으며, 창조적인 일이라고는 거의 할 수 없는 주제에, 마치 다른 뱀파이어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미의 옹호자들이자 애호가들인 척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lan Toreador가 Camarilla의 영혼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들이 기만의 전문가이기 때문일 겁니다. 자기 자신도 속이는 기만의 전문가들. 그리고 그 능란한 거짓말이 바로 이들의 무기가 됩니다. 스스로 얄팍한 존재들이기 때문일까요? 어쨌든 이들은 누구보다도 자신을 위장하는 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들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말을 잘합니다. Harpies 중에 유독 Toreador Poseur가 많은 건 이상한 게 아닙니다. 사실 얘들 Clan Discipline 자체가 그런 거 잘하게 조합되어 있거든요. Toreador들은 남을 흉보고, 따돌리고, 고립시는 데 극도로 능한 Clan입니다. Auspex와 Celerity와 Presence는 굳이 자신의 퇴폐적 취향을 충족시키는 것 외에도 남들을 관찰하고 무리를 짓는 데도 유용합니다. 그러나 Toreador들은 대부분 비생산적인 자들이므로 혼자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습니다. 예술을 한다고요? 포옹되기 전에는 예술가였을지 몰라도 뱀파이어의 조각난 인간성으로 누구의 영혼에 불씨를 지피고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요? 묘사가 훌륭한 작품과 감동을 주는 작품은 다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점점 인간성이 떨어지고, 다른 인간의 감성과 도덕심에 공감할 수 없게 되어가는 뱀파이어가, 특히나 감각적인 자극에 대해서는 극도로 쉽게 미치고 홀리는 Clan Toreador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요? 아마 오래 살수록 그런 작품을 만들기는 힘들 겁니다. 뭐... 어쩌면 부등변다면체 같은 기괴한 건 잘 만들지도요. 그들이 잘 하는 건 미의 향유이지 창조가 아닙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향유조차도 점차 하기 힘들어집니다.
어쨌든 다시 얘기하면, 이들이 아름다움에 "홀리는" 것은 저주입니다. 외부적 자극에 의해, 마치 마약에 취한 것처럼 막강한 감각의 쇄도 속에서 순간적으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게 과연 안 무서운 일일까요? 물론 겪다보면 어떻게든 이 현상을 합리화해서 많은 Toreador들이 그러는 것처럼 "Clan Toreador가 누리는 축복"이라고 자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약점이 "Clan Weakness"라고 꼭 집어 써 있는 것은 한 번 정도 생각할 문제입니다. 본질적으로 이들이 겪는 홀림은 "존나 좋군?"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PC가 지닌 극복할 수 없는 결함이며, 비극의 한 요소라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가끔 이런 캐릭터를 생각합니다. 좀 더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남고 싶은, 그래서 아름다움을 무서워하는 Toreador 말입니다.
P.S. 아래는 설덕충들을 위한 이야기.
*CbR-T와 DA:PGtHC의 작중 서술자인 Katherine of Montpellier는 Clan Toreador의 시조는 '조각가' Arikel이 아니라 '투우사' Ishtar라고 주장한다. 또한 Katherine은 Ishtar가 제3세대 중 유일하게 제2세대 살해에 가담하지 않았기에 Caine도 Clan Toreador에게만은 저주를 내리지 않았으며, Clan Toreador의 '특징'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을 잊지 않을 수 있도록 축복을 받은 거라고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같은 작품 내에서도 다른 등장인물인 Etienne of Poitou와 Rodrigo에게 대차게 까이고 있다. 게다가 나중(CbR:T)에 Katherine은 Caine은 세대 계산에 안 들어가고 다른 두 명의 제1세대가 따로 있다고도 주장하는 등 꽤 이단에 가까운 얘기를 많이 하는데, Katherine 본인이 12세기 태생인 걸 감안하면 아무래도 신빙성이 떨어진다.
*어떤 The Book of Nod(WW02251)에서는 Arikel도 제2세대 살해에 어떤 방식으로든 가담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는 자기 최초의 자식들인 제2세대를 하나씩 사냥해서 살해한 죄로 우리 모두를 저주했다(He cursed us all, for killing the first part of his Children, the Second Generation, as we had hunted them down one by one)." 여기서는 Arikel은 물론이고 Saulot도 저주를 받은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에게 내린 저주는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내 이성과 의식을 빼앗고 나를 구속시키는 거부할 수 없는 힘입니다. 아동 강간마가 눈 앞에서 10살짜리 애를 강간하며 찔러죽이고 있다 해도, 당신이 이 광경에서 어떠한 아름다움이라도 "발견해버리고 말았다면," 당신은 그 흉악한 범죄에 매료된 채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의지나 도덕성과는 무관하게, 내 의식과 육신이 그러한 홀리고 마는 것입니다.
무시무시한 저주군요. 아직 인간성이 많이 남아있는 토레아도르가 그런 일을 겪는다면 엄청난 충격이 아닐까..
ps>예술을 하기 힘들어지는게 토레아도르의 비극이라고 했는데, 이전에 익혔던 예술을 시연하는거라면 어떨까요? 물론 여기에도 영혼이 깃들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건 기예의 측면이 강하니만큼 이런 면에서는 여전히 예술가적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위에서는 제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조금 극단적으로 쓴 감이 있습니다. 크극...
그래도 말씀하신 것에 대해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달아보면... 분명히 Elder Toreador들은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감동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특정 화음이나 운율에 대한 지식이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공감할(즉, 인간들처럼 감동을 느낄) 수는 없어도, 인간에게 감동을 아예 못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창조성은 굉장히 특정한 틀에 제한될 듯합니다.
쏘울이 없는 연기를 하게 된다는거군요.
눼. 그래도 이건 제 사견이라는 것은 감안해주셔야 할 듯합니다. 뭐, 혹시나 아나요? 레스타 같은 뱀파이어 롹스타를 나름 합리적으로 짜올 사람이 있을지...
기술적으로는 완벽에 점점 다가가지만 자신의 노래에서 결여된 영혼을 느끼고 고뇌하는 토레아도르도 재밌겠네요.
뭐야 여기 무서워...
그런 뱀파이어에게 Toreador 특유의 저주가 조합된다면 어떨까요? 뭐 이건 어떤 식으로 해석해서 조합하느냐 나름이겠지만, 여러 모로 흥미로운 캐릭터가 나오지 않을까 하네요.
만인을 감동시키지만 정작 자신은 자신의 노래에 어떤 감동도 느끼지 못한다던가. 지독한 저주겠죠.
제가 의미한 것은, 특정한 종류의 아름다움(혹은 감각적 자극)에 홀린다는 Clan Toreador의 저주 얘기였습니다. ㅎ.ㅎ;
락스타+특정 종류의 아름다움에 홀림인가요? 나르시스트라던가...
나르시시즘 컨셉은 꽤 많이들 PC로 들고 오는 듯합니다.
토레도 클랜 노벨에서도 거기 나오는 조각가 토레도가 혈족이 되면서 작업에 필요한 피지컬은 월등히 상승했지만 반대로 예술적 영감이 점점 감소하는 것 같다면서 존나 고민하는 장면이 나왔던 걸로 기억.
사조를 가져다 쓰거나 하는 일은 이제 그만둬야지. 토레어도 약점은 비단 아트뿐 아니라 삶의 여러 유형에도 적용될수 있다는 게 메리트야. 그런 의미에서, 절망하는 모습에 환희한다와 같은 보다 실천적인 약점 발현은 토레어도가 시나리오에 잘 결속되어 갈 수 있는 분명한 동기가 될 거야. 그리고 디시버 선생은 잘 지내고 계신 거 같아 반갑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