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입문자에게서 합의니 대화니 방향성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두루뭉술하기만 해서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래서 입문자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시를 들어서 설명해보려고 해
여기에 RPG를 처음 시도하는 A라는 입문자 PL이 있다고 하자. 이 A는 월야환담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고, GURPS 헌터들의 밤이 흡혈귀와 늑대인간같은 괴물들을 찢어죽이는 어번판타지라는 말을 듣고 헌터들의 밤 세션에 입문해보기로 했어.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 내 경험으로는 입문자들이 원하는 롤 모델은 대개 한세건이다. 어반판타지 주인공의 클리셰 같은 캐릭터라 롤 하기도 쉽지. "저 거지같은 흡혈귀들이 내 일상을 파괴했어! 복수하겠다!" 이해 못 하는 사람을 이해하기가 힘들 정도로 단순하고 강력한 동기라 감정이입하기도 쉽고.
그래서 A가 한세건을 모델로 '미스터 한' 이라는 PC를 만들었다고 치자. 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 많은 입문자들이 이 단계에서 상상하는 것은 화려하게 흡혈귀들을 썰어죽이고, 흡혈귀들과 일말의 타협도 용납하지 않는 쿨가이 미스터 한이겠지. 시트도 그럴테고.
자, 여기서 PL 중 B라는 사람이 헌터들의 밤을 쭉 읽어보더니 이렇게 말하는거야 "전 괴물들에게서 인간을 보호하는 흡혈귀 '미스터 서'를 하겠어요"
그런데 A가 만든 미스터 한은 흡혈귀와 타협을 할 인물이 아니거든? 그럼 아마 GM은 A에게 이렇게 물어볼거야. "미스터 한은 미스터 서를 만나면 어떻게 하나요?"
A가 눈치가 느린 사람이면 당연히 공격한다고 할 것이고,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우선순위가 낮은 적입니다" 정도로 대답하겠지.
(컨셉을 유지하면서 미스터 서와 협력할 만한 흥미롭고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내 제시하는 사람은?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훌륭한 RPGer이 될 재목이니 여기서는 넘어가자)
물론 어반판타지인 만큼 개별 시점에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이합집산해도 괜찮아. 그런데 GURPS는 GM부담이 너무 커져서 보통은 그렇게 못하거든. 대개 PL들을 한 팀에 몰아넣지. 자, 한세건이 헌터들의 밤에서 제시하는 팀 플레이를 할 만큼 사회성이 뛰어난 롤 모델이 아닌 건 일단 치워두고... 여기서 A와 B에게는 협력의 이유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생긴거야.
어떻게 미스터 한과 미스터 서를 한 팀에 넣을 것인가?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지만 예를 들어 볼게
B : 원작(광월야)에서 서현과는 투닥거리면서도 함께 행동했잖아요? 미스터 서가 흡혈귀가 아니라 늑대인간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A : 아! 그렇다면, 거꾸로 미스터 한의 가족을 몰살시킨 것이 흡혈귀가 아니라 늑대인간이면 미스터 서가 흡혈귀라도 문제 없겠어요
GM : 원작에서 서현과 협력한 것도 김성희의 중재 덕분이잖아요? 둘 사이를 중재해 주는 누군가가 있어도 괜찮겠네요
A :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미스터 한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존재여야겠군요? 경륜 있고 능력도 있고 인간인 선배여야겠어요
C(또다른 PL) : 그렇다면 제가 그 선배 역할을 하는 PC를 만들어볼게요. 마침 남자만 둘이니 홍일점이 좋겠어요.
GM : 둘 다 사회부적응자니 사회적인 트러블을 처리할 능력과 경륜이 있는 PC가 어떨까요?
B : 그거 왠지 IQ가 받쳐주는 PC일 것 같네요. IQ에 투자하는 김에 마법사는 어때요? 전투 파트에서 맹탕이면 미스터 한이 인정할 것 같지 않거든요
C : 마법사라... 능력적으로도 수사 파트와 전투 파트를 전부 커버할 수 있겠네요? 좋아요. 전 경륜있는 여마법사 미스 김으로 할게요
자. 이런 과정을 거쳐서 '늑대인간에게 가족을 잃고 괴물들에게 복수를 맹세한 사냥꾼 미스터 한' 과 '괴물에게서 인간을 보호하는 흡혈귀 미스터 서' 그리고 '미스터 한과 미스터 서 사이를 중재하는, 경륜있는 마법사 미스 김' 이 만들어졌어. 팀으로써 뭉칠 동기도 충분해졌고, 헌터들의 밤의 수사 파트와 전투 파트를 전부 즐길 수 있는 PC들이야. 거기에 PC조합만으로도 이것저것 이야깃거리가 나올 수 있지. 성공적인 PC메이킹이야.
자기 전에 졸면서 두드렸더니 내가 개소리를 짖어대고 있는지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네;
컨셉과 팀원과의 조화 사이에서 고민하는 입문자들에게 새끼손가락만큼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
이 경우는 양쪽 다 타협을 했고 플레이어 3이 중재를 맡으면서 깔끔하게 해결된 경우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있지요.
특히 헌터는 대체로 정상인이 아니기 때문ㅇ...(읍읍)
ㄴ그렇죠. 그런 팀은 보통 쨍그랑...
아주 좋은 예시라고 생각함, 이런건 개추야.
근데 이건 겁스에서만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아닌 듯, 팀에서 캐릭터성과 이야기에 비중을 두고 싶다면 어떤 규칙을 사용하더라도 충분히 고민해봐야 될 일인거 같음...아포칼립스 엔진이나 페이트 코어 같은 경우는 지금 예시로 둔 부분을 아예 규칙화 해놔서 캐릭터간의 연관성과 이야기 구성에 힘을 싣는 구조라고 볼수 있고 말여.
이래서 케메는 모두가 모여서, 세계설정은 첫 플레이에서...혹은 플레이를 하면서...가 나오는 것.
실제로 각자 만들어 오는 거보다 그게 더 재밌고 효율적
문제는 자기 구상을 아예 던지고 전적으로 다른 팀원에 맞춰 짜줄 c같은 플레이어가 몇 없다는 점이지
여튼 예시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