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실의 생존자
배경
종로3가역에는 세 개의 노선이 오가는 곳답게 그물처럼 얽힌 지하 통로들을 갖추고 있다. 이 통로들은 종로3가역이 가장 강력한 지하철역 중 하나가 된 원동력이기도 하다. 종로3가역의 자원들과 인원들은 사방으로 뻗은 지하통로를 통해 인간에게 알려진 그 어떤 곳에든 쉽고 빠르게 옮겨 다닐 수 있다.
한 때 그 통로들은 행인과 장사치들로 붐비는 번화가였으나, 제 1차 꽈배기굴 분쟁의 여파로 인해 완벽하게 초토화되었다. 쌓이고 쌓인 시체들은 유독가스를 뿜어냈고, 뒤틀린 것들의 식량으로 사용되었다. 곳곳의 수도관과 전기배선들이 오염되면서 한 때 번화가였던 통로들은 생지옥으로 변하게 되었다. 더 이상 인간들은 그러한 통로들을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통로들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지만, 방치할 경우 옛 한양의 자객들이나 튀김우동 먹는 체크무늬 아저씨 같은 존재들에게 악용당할 것이 자명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역장은 최신 AI인 ''도라지꽃''과 대량의 검색용 단말기를 구입하였다. 도라지꽃은 가진 자원을 활용하여 ''메트로봇''을 생산하여 지하 통로들에 투입하였고, 지하 통로 곳곳에 메트로봇을 충전하고 관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기계실이다.
기계실의 생존자
공익근무요원들과 역무원들은 20년 묵은 시체냄새가 지배하는 저주받은 지하통로들을 혐오하고 무서워한다. 하지만 메트로봇들은 스스로를 정비하고, 청소하고, 충전할 수 있지만 영구적으로 활동할 수는 없다. 메트로봇은 가끔씩 인간의 정비를 필요로 한다. 기계실 점검조는 일반적으로 4주마다 한 번씩 지하 통로를 통해 기계실을 점검한다.
지하 통로의 모습은 매번 똑같다고 전해진다. 썩은 시체들이 뿜어낸 유독가스로 인해 앞은 잘 보이지 않고, 반쯤 무너진 벽돌 사이로는 온천수가 새어나와 20년에 걸쳐 시체들을 스튜처럼 끓여대고 있다. 끊어진 채 튀어나온 전선들은 지직거리며 언제 가스가 폭발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지나는 자에게 심어준다. 요컨대 지하 통로는 쥐새끼는커녕 곰팡이도 자랄 수 없는 극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최첨단 보호장구는 지하 통로 환경에서 1시간을 견디는 것이 한계이며, 메트로봇들도 4시간 이상 연속으로 노출되어 있을 경우 완전히 망가지고 만다.
분명히 그러할 터이지만, 기계실 점검조원들은 기계실에 갈 때마다 반쯤 먹다 버려진 식료품이나, 전선이나 사람 뼈 등으로 만든 조잡한 구조물들과 함정을 발견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20년 전의 흔적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메트로봇들에게 명령하여 기계실들을 깔끔히 청소한 뒤에도 계속 비슷한 것이 나타났다.
비슷한 보고가 각 기계실에서 계속되자, 종로3가역 역무실에서는 이것이 자작극이라고 판단하고, 점검조원들에게 작업영상을 촬영하도록 명령하였다. 하지만 동영상으로 점검조원들의 행보를 모두 촬영하고 기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괴현상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며 그러한 흔적들은 점점 많아졌으며, 최근에는 무언가 고대 한자처럼 보이는 글자를 기계실에 빼곡하게 적어두기도 하였다. 분석 결과 그 글자들은 고대 한자의 양식을 따랐지만,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 글자라는 것이 밝혀졌다.
저렇게 글자가 나타난 이후부터는 괴현상이 좀 더 심화되었다. 함정들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지능적으로 변화하였으며, 점검조원들이 계속 함정에 당해 크게 다치거나 심지어는 죽는 상황들이 잦아졌다. 메트로봇들이 알 수 없는 존재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결론
종로3가역에 위 보고서의 확인을 요청하자, 종로3가역 역장은 이 모든 범행의 배후가 빨갱이와 노숙자들의 소행이라고 단정하였다. 저렇게 역장이 단정한 이후에는 기계실 점검조원과 관계자들이 협조를 중지하였고, 더 이상의 조사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종로3가역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기계실에는 생존자가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생존자는 위험한 함정을 설치하여 타인들의 접근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메트로봇들을 파괴하는 잔악무도한 행위를 벌이는 것을 보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을 유추할 수 있다.
그들이 설치하였다는 구조물의 형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뼈로 지은 새장일 가능성이 높다. 뼈로 지은 새장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 가둬두는 용도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한 새장이 종로3가역 곳곳의 기계실들에 설치되었다면, 이는 종로3가역의 가장 핵심이 되는 수맥들에 망자들의 영혼을 가두려고 시도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아주 사악하고 거대한 주술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거대하고 사악한 주술을 행할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 뿐이다.
최악을 대비하라. - '부리 해방자', 철구 (鐵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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