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각 (늙은 오이)
▲ 탈주한 노각을 잡는데 성공한 미국계 공익근무요원.
배경지식
대한민국은 생각보다 최근까지 소위 바나나공화국이었다. 하지만 약산 김원봉 선생이 말했듯, '바나나는 길고, 길면 기차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수립 직후부터 철도 시설 건설을 국가의 숙원사업으로 삼았다. 재미있게도, 바나나 생산에 사용되는 장비들 중엔 ''레이저 복합기'' 같은 중장비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바나나 공장에서 사용되던 장비들이 그대로 도시철도 공사에 동원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철도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자, 중장비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제3세계 국가에 매각될 예정이었지만, 제 1차 꽈배기굴 분쟁의 여파로 지하통로가 마비되면서 중장비를 지상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중장비 처분 문제로 골머리를 썩히던 서울메트로의 젊은 과학자들은 천재적인 생각을 하고 만다. '길면 기차이면, 긴 것은 바나나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은 중장비를 이용해 지하농장을 지하에 건설하는데 성공하였다.
종로3가역의 지하농장은 아주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평가된다. 지하농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하고 있으며, 개중에는 옛 한양 출신의 노동자들도 많다. 이 농장에서는 바나나는 물론이고 오이, 당근, 애호박, 가지, 고추, 아스파라거스 등등 길쭉한 야채와 과일들은 물론 도라지나 고사리 같은 길쭉한 나물들도 간간히 생산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지하농장에서 생산된 식료품은 1호선의 역들과 군인들에게 제공되지만, 이 식료품을 훔쳐 몰래 판매하는 ''밀수꾼''들도 지하철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 밀수꾼.
피를 먹은 오이
모두가 알고 있듯이, 피를 먹은 물건은 혼을 얻어 도깨비가 된다. 1997년에 종로3가에 빨갱이들이 침투했을 때, 지하. 그 때 빨갱이의 피를 먹은 오이는 혼을 얻었다. 오이는 보통 파랗게 되었을 때 먹지만, 계속 익히면 주홍빛이 돌며, 애호박처럼 두꺼워진다. 이것을 노각이라고 부른다. 보통 이렇게 늙게 하여 먹는 오이는 따로 종자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일꾼들은 그 오이를 '늙게 해서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갑작스레 하게 되었고, 미리 따지 않았다. 오이 수확을 끝내고, 자라있는 줄기들을 죄다 걷어낼 때에도 사람들은 그 오이가 자라있는 줄기만은 끝까지 남겨두었다.
이렇게 3년이 지나자, 노각은 거대해졌다. 크기는 대충 9살 아이의 몸통만 했고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날 날아다니는 노각이 발새한 레이저빔에 총 9명이 살해당했다. 그 중 두 명은 옛 한양 출신이었고, 옛 한양에서는 격분하여 서울메트로에 해명을 요구했다. 서울메트로에서는 오이 경작 구역을 파괴하기로 결정하였다. 강력한 독가스와 화염 공격으로 오이 경작구역은 완전히 초토화되었고, 그 잔해에는 거대한 방호벽이 설치되었다. 수많은 ''공익근무요원''들이 폐허에 접촉하는 사람이 없도록 막고 있다.
진상
조사 결과, 서울메트로는 오이 경작 구역을 폐쇄한 것이 아니다. 사실 그 안에서는 노각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키우고 있다. 노각이 날아다닐 수 있는 이유는 강력한 사이오닉 에너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며, 노각의 꽁무니에서 발사되는 레이저는 그 에너지가 폭주하여 발사되는 것이다. 내부 문서에 따르면 이러한 결과가 날 수 있었던 이유는 노각 자체의 형태가 근처의 에너지를 모으는데 특화되어 있는데, 인간의 영혼의 일부가 그 중심핵 역할을 하면서 응축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문서에 별첨된 자료에 따르면, 서울메트로에서는 주기적으로 승객들을 납치해 실험을 하는데 필요한 영혼을 조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실험 결과에 따르면 노각을 먹는 자는 강력한 초능력자로 각성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로는 완벽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연구자들의 추측에 따르면 누적된 영혼이 몸을 빼앗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그 성격은 매우 난폭하고 잔혹해진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노각을 먹이거나, 노각을 새로이 키우는데 집착한다고 한다.
결론
노각 자체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평범한 무기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필자를 우려하게 만드는 것은 아주 강한 재생산에 대한 본능이다. 비둘기 조사원들에게 시켜 조사를 해본 결과, 몇몇 노각들은 밀수꾼들의 손에 의해 세상에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의 <헨더슨 보고서>에 의하면, 각 지역의 주말농장들과 베란다 텃밭에서 오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10여년에 걸쳐 9배로 증가하였다고 한다.
어쩌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노각에게 몸을 차지당한 뒤일지도 모른다.
최악을 대비하라. - '부리 해방자', 철구 (鐵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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