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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여기있었구나."

아스리엘은 벽난로 위에 놓여있는 사진을 보고있는 프리스크에게 말했다.
프리스크는 이 액자 속 여자가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예쁘지? 내 아내야. 이름은 차라."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사진 속 여인은 꼭 인간처럼 생겼다고 했다.

"인간처럼 생겼다고? 하하. 그럴 수 밖에 없지. 차라는 인간이거든."

프리스크는 약간 놀랐다.
프리스크는 아스리엘에게 자기 말고도 다른 인간들이 왔었냐고 물어보았다.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종종 인간들이 이곳에 오곤 했지."

프리스크는 그들에 대해 좀 더 알고싶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이었냐고? 보자... 어... 먼저 온 게 여자아이였었나...? 햇갈리네... 잠깐만 기다려줄래?"

아스리엘은 지하로 내려갔다.
프리스크는 벽난로 위에 있는 액자를 들어 더욱 자세히 살펴봤다.
검은 턱시도를 입고 어색하게 웃는 아스리엘 앞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깨까지 오는 갈색 머리카락은 반투명한 하얀색 면사포로 덮여있었고, 팔이 없는 드레스는 그녀의 눈처럼 하얀 피부를 드러내고있었다.
그 얇고 하얀 팔을 덮은 하얀 장갑은 팔의 윗부분 중간까지 덮고있었고, 그 장갑을 따라간 끝에는 노란색 꽃으로 장식한 부케가 들려있었다.
가슴부분에는 레이스로 장식한 천사처럼 보이는 기호들이 수놓아져있었고, 드레스의 끝은 살짝 좁혀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건 잘 익은 포도로 만든 레드와인과 같은 눈이었다.
비록 사진이지만, 그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맑은 영혼과 고결한 의지가 느껴졌다.
프리스크는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에 보던 액자를 원래자리에 돌려놓고 계단을 바라봤다.
무언가 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낑낑대며 들고 온 아스리엘은 그 상자를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게 그동안 내가 모아놓은 것들이란다. 별건 아니고 그냥 사진이나 여기왔던 인간들이 놓고간 물건이야."

아스리엘은 상자안에 있는 앨범과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프리스크는 그런 아스리엘의 옆에 앉았다.
아스리엘은 이것저것 꺼내다가 리본묶인 장난감 칼을 찾고는 말했다.

"아, 이거다. 이게 제일 먼저 온 여자아이 거란다."

프리스크는 차라의 물건이냐고 물었다.

"아니, 차라랑 내가 여기서 살기 시작하고 처음 만난 아이야."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이 물건 주인에 대한 얘기를 부탁했다.

"음... 하늘색 드래스를 입은 아이었지. 조신하면서도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었어."

아스리엘은 추억에 잠긴 눈으로 말했다.

"우리랑 가장 오래 있었던 아이이기도 하단다. 그땐 인간과 괴물 한 명이면 여길 나갈 수 있다는 걸 몰랐거든."

프리스크는 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얘기를 좀 더 자세히 해달라고 했다.

"음... 과학자는 인간의 영혼에 담긴 의지의 힘 어쩌고 하던데, 내가 거기까진 잘 모르겠구나. 그저 괴물 한 명이랑 인간 한 명이 손잡고 결계를 걸어나가면 된다는 것만 알아."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프리스크는 자기도 되돌아 갈 수 있냐고 물어봤다.

"물론이지,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대려다 줄게. 하지만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 여기서 자고가렴."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인간들 얘기를 더 해달라고 했다.
뭔가를 더 말하려던 아스리엘은 갑자기 '앗!'하고 반가운 소리를 내며 상자에서 주황색 머리띠를 꺼냈다.

"마침 잘됐네. 이게 두 번째로 떨어진 아이거야."

아스리엘은 주황색 머리띠를 자기 손에 감으며 말했다.

"이 아이 덕분에 우리가 인간과 같이 있으면 결계를 나갈 수 있다는 걸 알았어. 어느날 자기 누나-아, 먼저 온 아이를 누나라 불렀거든-랑 같이 결계까지 가서 손잡고 그걸 넘었었어. 그 다음은 차라가 같이 나가서 아이들을 위로 보내줬지."

프리스크는 그럼 그때 이 물건들을 두고 간거냐고 물어봤다.

"아니, 그렇진 않아. 이 머리띠는 그 아이들이 다 커서 다시 이곳으로 와 선물해 준거거든.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이고 상자에 있는 파란 발래복을 가리켰다.

"아, 저거... 많이 더럽지? 그걸 들고온 아이가 떨어졌을 때 저렇게 됐어. 차라가 어떻게든 깨끗하게 해보려했지만, 안되더라구. 그래서 뭐... 버리려는 거 그냥 추억이라고 치고 내가 이 상자에 담았어."

프리스크는 그 사람은 얼마나 오래 있었냐고 물어봤다.

"여기엔 별로 오래있진 않았어. 얼마 뒤 오빠가 왔거든. 삼 일 정도였나? 어쨌든, 꽤 나이가 있었지. 아이라기보다는 청년이었어. 아마도 처음으로 스스로 이곳을 찾아온 인간일거야. 아직도 우리 집 문을 두들긴 모습이 생각나네."

아스리엘은 조그마한 앨범을 하나 펼쳐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소녀와 청년, 그리고 차라가 찍힌 사진을 발견하고는 손으로 짚었다.

"여기 어딘가에 있을텐데... 아, 이거다. 유일하게 남은 사진. 내가 찍어준거야. 그땐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내가 사진에 엄청 빠져있었거든. 이게 그 발래복을 들고온 여자아이고, 여기 안경 쓴 사람이 오빠. 이 초록 스웨터가 우리 차라. 예쁘지? 하하."

아스리엘은 차라를 보고 기분좋은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둘 다 엄청 예의바르고 기품이 있었어. 아마도 꽤 높은 집안의 자제들이었겠지."

아스리엘은 이어서 장난감 총을 꺼냈다.

"이게 네가 오기 전에 왔던 아이거야. 카우보이 모자를 쓴 아이었는데, 여기로 꽤 자주 놀러왔단다. 그러다가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마지막으로 이 총을 주고 갔어."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이고 앨범을 봐도 되냐고 물어봤다.
아스리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프리스크에게 들고있던 앨범을 건내줬다.
프리스크는 몇 장 없는 앨범을 보다가 제일 마지막장에서 요리하는 여자의 뒷 모습을 발견했다.
하지만 머리가 검은색이었기에, 프리스크는 이 사람은 누구냐며 물어봤다.
아스리엘은 그 사진을 보고 잠시 말을 아꼈다.
프리스크가 의아한 눈으로 아스리엘을 바라보자 그제야 아스리엘이 말을 했다.

"음... 그 아이는... 나랑 차라의 딸이야. 친딸은 아니고, 갓난아기 때 버려진 걸 대려왔지."

아스리엘은 다른 앨범을 꺼냈다.
그 앨범에는 차라와 여자아이의 사진들이 가득했다.
차라와 아스리엘 사이에 있는 여자아이가 점점 자람에 따라 지금과 별 차이가 없는 아스리엘과는 달리 차라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갔다.
프리스크는 딸의 이름을 물어봤다.

"아스라. 딸 이름은 아스라야."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사진첩이 중간에 갑자기 끊겨 그 앨범을 다시 아스리엘에게 건내줬다.
아스리엘은 말없이 그걸 받아 다시 상자에 넣었다.
프리스크는 왜 사진이 이후로 없냐고 물어봤다.

"필름이 다 떨어졌거든. 그런데 그 이후로 필름이 안 들어와서, 취미를 포기했더니 다음부턴 별로 찍고싶은 마음이 안들더라."

프리스크는 아스리엘에게 그 둘은 어딨냐고 물어봤다.
아스리엘은 약간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그 둘은 먼지로 돌아갔어. 마지막 아이가 오기 전에."

프리스크는 아스리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아스리엘은 그런 프리스크에게 미소지어줬다.

"괜찮아. 오래전 일인걸."

그 뒤로도 아스리엘은 앨범과 물건을 꺼내며 여섯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다 프리스크가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는 걸 보고는 프리스크를 방으로 대려다줬다.
프리스크를 침대에 누이고 이불을 덮어준 아스리엘은 프리스크가 잠들때 까지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스리엘은 이야기가 막 도입부를 벗어날 때 쯤, 잠들어버린 프리스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방에서 나왔다.
상자에서 꺼낸 물건을 하나하나 상자에 담은 아스리엘은 그걸 다시 지하로 가져가려다가 그냥 거실구석에 놓아두었다.
그 뒤 주방에서 차를 한 잔 타온 아스리엘은 벽난로 앞에 앉아 벽난로 위의 액자를 바라봤다.

"차라."

아스리엘은 액자를 보며 차라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오늘 아이는 꼭 당신같아. 생긴거나 목소리나. 아니면 내가 이제 기억이 희미해진걸까?"

아스리엘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액자를 들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아스리엘은 액자를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자기는 이 사진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지. 내가 너무 이상하게 나왔다고. 그래도 난 이게 제일 좋았어. 왜냐면, 차라 네가 이렇게 예쁘게 나왔는 걸."

아스리엘은 사진 속 차라의 모습을 바라봤다.
사진 속 그녀는 가장 아름답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스리엘은 그런 그녀를 껴안은 체 소파에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