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즈는 황금빛 복도에 서있었다. 언제부턴지 모르게, 그러나 알고 있었다. 그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행위.

저 멀리 그림자와 함께 작게 뚜벅이는 소리가 가까워져왔다. 차라였다. 언제나처럼, 옷에는 피를 잔뜩 묻힌 채. 한 손에는 식칼을 든 채. 또 목에는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안녕.\"

그가 먼저 샌즈에게 말을 걸어왔다. 샌즈도 평범하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안녕.

\"그래, 이제 남은 건 너와 나뿐인 것같네.\"

\"확실히 그런 모양이야.\"

차라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옷에 묻은 핏자국만큼이나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 다음은 언제나 똑같았다.


눈을 뜨자 그곳은 기차 안이었다. 샌즈는 어디론가 가려고 했었다.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나면 으레 그렇듯 처음에는 한순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몇 초 후, 그는 자신이 언다인에게 가는 중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 전 샌즈는 의뢰를 하나 받았었다. 그는 살인죄 누명을 쓰고 도망자 신세가 된 이후로는 한번도 \'그 일\'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이번 의뢰도 당연히 거절할 셈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부탁하네.\"

아스고어가 말했다.

\"내 아들을… 아니, 내 아들에게… 간단한 \'생각\' 하나를 심어주게나.\"

그저 그것뿐이었다. 예전에 하던 일처럼 상대방의 꿈을 통해 무의식을 읽어 중요한 정보를 빼온다거나 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을 심는다는 것은 오히려 훔치는 것보다 배는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미안하지만 난 그 일에 손뗐어요.\"

\"그래도 자넨 할 수 있다는 걸 아네.\"

아스고어는 완고했다. (아마, 아니 분명히 자신의 전부인을 통해 샌즈에게 연락해온 것일 테다. 젠장, 토리엘.) 그는 자신의 아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원했지만 그러기엔 이미 너무 늦어있었다. 이제 방법은 이것밖에 남지 않은 것이었다. 인셉션.

보통 샌즈는 잘 웃고 농담하며 실없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쉽사리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기질 역시 갖고 있었다. 평소대로 가자면 그때도 아스고어의 부탁을 거절했어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엔 아무래도 샌즈의 심신이 많이 약해져있었던 모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중요한 얘기 와중 뜬금없이 파피루스가 떠오르고 만 것이다. 그를 못본지도 3년 가량은 되었다. 어렴풋이 샌즈는 아스고어에게 공감했다.

결국 그는 의뢰를 받아들였고 일을 함께 할 사람으로 제일 먼저 꼽은 것은 언다인이었다. 그 이유를 말해보자면 첫째, 아는 사이니까. 둘째, 실력이 좋으니까. 호탕한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곤 하지만 실은 의외로 섬세한 면도 있는지라, 함께 일할 땐 이만한 적합자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오래전엔 함께 일을 자주 했었다. 그러나 샌즈의 상황이 이 모양이 된 후론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사실, 그 둘 사이의 매개체는 파피루스였던 셈이다. 그가 없다면 샌즈와 언다인은 다소 서먹한 사이였다. 어색하다기보단 별로 친근한 사이가 아닌 정도. 그뿐이었다. 어쨌든 지금 샌즈는 언다인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예상대로 언다인은 처음엔 격하게 거부했다. 그녀는 우선 샌즈에게 못다한 비난을 퍼부었다. 대부분 그의 형 자격을 의심하는 내용이었다. 샌즈는 그냥 웃었다. 언다인은 곧 지쳐버렸다.

\"그래, 너 요즘은 파피루스랑 연락도 잘 안하는 모양이던데? 그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조금 진정한 언다인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여전히 약간은 비난하는 어조였다.

\"헤, 너무 자주 연락하는 것도 신상에 좋지 않다는 걸 알잖아.\"

\"아니, 넌 가끔도 안하잖아! 예전보다 훨씬 소홀해졌어! 파피루스는 여전히 널 그리워하고 있는데, 넌 어떻게 된 게.\"

샌즈 역시 파피루스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사실, 생각보다 많이. 아주 많이. 그러나 만나지 못하게 되는 날이 길어질 수록 마음속 응어리진 죄책감 역시 더욱 커져가 더는 말을 걸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언제나 희망없는 언약을 내걸곤 하는 그 의미없는 전화통화를.

그래, 파피루스. 곧 돌아갈게. 특제 스파게티? 그거 좋지. 어, 사실 언제가 될진 잘 모르겠어… 너도 알잖아, 상황이 그래. 하지만… 그래, 잘 지내 동생.

끊고 나서야 그는 말장난을 섞지 않았단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파피루스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후우….\"

대답없이 생각에 잠긴 샌즈를 내버려두고 언다인이 길게 한숨쉬었다. 그러더니 의뢰 내용에 대해 물었다. 결국 그녀는 도와줄 모양이었다.

\"아스고어, 알지? 토리엘의 전남편. 그 자가 자기 아들을 인셉션 해달라고 부탁했어.\"

\"뭐? 자기 아들을? 아니 그보다, 인셉션?\"

언다인이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 그녀는 인셉션의 가능성에 대해 거의 믿지 않았다.

\"그건 가능해, 언다인.\"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샌즈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