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각 AM 10:02-]
먼지 하나조차 잘 보일만큼 밝고 따스한 햇살이 창 밖을 통해 들어온다.
햇살은 창문을 통과해 투사이즈 침대의 하얀 이불보를 환하게 비추었다.
그래서일까, 이불보에선 무언가 꼬물거리는 움직임이 보이고있다. 마치 햇살에 반응하듯, 움직임은 느릿하면서도 작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
[-탁-]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시계를 이불속에서 뻗어나온 손이 제지해버렸다. 작고 하얀 그 손은 알람시계 주변을 몇 번 더듬거리더니 이내 거북이 목처럼 이불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모든게 다시 알람시계가 울리기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버렸다. 여전히 쌕쌕 거리며 숨소리가 작게 들리고, 이불을 뒤척이는 작은 움직임이 몇 번 일어날 뿐, 방의 풍경은 변함없었다.
[-똑똑-]
방이 그렇게 조용해졌다 싶어질 무렵, 노크소리가 들린다.
[-똑똑똑-]
아까보다 더 강도가 강한 노크가 울렸지만, 반응이 없다.
[-딸칵-]
그리고 그 직후, 문이 열렸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어린 염소괴물이었다. 귀엽게 생겼지만, 어딘가 움츠러든 소심한 인상의 그것은 학교의 교장인 토리엘의 아들인 아스리엘이었다. 아스리엘은 방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차라... 일어나..."
하지만 알람보다도 작은 그 소리가 잠든 이에게 들릴 일은 없었다. 당연하다는듯 쌕쌕거리는 숨소리는 여전히 변화없었다.
"엄마가 일어나래... 벌써 10시야..."
천천히, 하지만 조심스럽게 이불을 향해 다가가며 아스리엘은 다시금 말해보지만 여전히 그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으으... 건드리기는 싫은데..."
꺼림직한 행동을 하기 직전의 그런 불길함을 품으면서, 아스리엘은 하얀 이불보 위에 손을 올리고선, 그대로 흔들어댔다.
"일어나라니까... 엄마가 내려오래..."
"으응..."
흔들어 댄 효과가 있는지 이불 안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아스리엘은 좀 더 세게 흔들기 시작했다.
"이제 일어... 흐엑?!"
순간, 이불 안에서 뻗어나온 손이 아스리엘을 움켜잡더니, 이내 아스리엘을 이불 안으로 끌어들어버렸다.
"이게 무슨 짓이야!"
아스리엘은 빠져나가려고 버둥댔지만 소용없었다. 깊게 잠든 여자아이가 잠결에 아스리엘을 꽉 껴안아버린 모양인지, 놓을 생각조차 안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차라... 제발 눈 좀 떠..."
여전히 차라를 깨우려고 필사적으로 말해보는 아스리엘이었지만, 오히려 소리에 반응하듯 껴안는 강도가 더 강해져버렸다.
"좋다아..."
차라의 잠꼬대소리를 들으면서 아스리엘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분명, 이대로라면 껴안는 베개 신세가 되서 차라가 일어날때까진 이 상태로 있어야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것도 괜찮을려나...'
은근슬쩍 이런 생각을 품던 아스리엘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바둥대기 시작했다.
"일어나래도! 엄마가 파이 구워놨대!"
"귀차나..."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멍한 잠꼬대 뿐이었다.
"으으... 나도 이젠 몰라!"
아스리엘은 포기해버린 모양인지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스리엘도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저 잠에 취한 두 명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릴 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숨소리만이 울리는 방 안에서는 그런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듯 침대 위의 두 명은 서로 끌어안으며 더 깊은 수면의 영역에 도달하려 하고 있었다.
[-휙-]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누군가가 이불을 들어내버리면서 수면시간은 끝나버리고 말았다.
"으으..."
눈부신 햇살이 두 명의 얼굴에 직접 비춰지자 거의 동시에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잘 거니? 아스리엘, 너는 깨우러 온 애가 왜 여기서 자고 있어?"
"우으..."
서로 마음이 하나가 된 것 마냥, 아스리엘과 차라의 입에서는 찌뿌둥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자, 자. 이제 일어날 시간이란다. 모두 정신차리고 세수라도 하고 오렴."
차라와 아스리엘은 눈을 비비면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야에 들어오는건 아스리엘과 마찬가지로 하얀 털을 가진 염소괴물이었다.
다만, 아스리엘과는 달리 훨씬 나이가 많아보이는 푸근한 인상의 괴물이었다. 현재 이 집의 주인이자 아스리엘의 어머니인 토리엘이었다.
"졸려..."
차라는 눈을 비비면서 어기적어기적 화장실로 걸어나갔고, 아스리엘도 눈을 비비면서 침대에서 내려왔다.
"다 씻고 차라 좀 부엌으로 데리고 와주렴."
"네..."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아스리엘도 화장실로 발을 질질끌며 가버렸다.
※ ※ ※ ※ ※ ※ ※ ※ ※ ※ ※ ※ ※ ※ ※
[-현재 시각 AM 10:21-]
늦은 아침을 먹으며 드리무어 가의 일요일은 시작된다. 테이블에 놓인 앞접시는 총 4개.
"아빠는 어제 안 들어왔어요?"
"어쩔 수 없잖니. 아빠는 요새들어 바쁘단다."
드리무어가의 가장, 아스고르 드리무어는 최근들어 더 바빠진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지하에서의 느긋한 일상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지만, 어쨌건 일을 끝내면 칼같이 돌아오기 때문에 토리엘은 아스고르의 외박에 관해선 아무 말 않았다. 단지, 조금은 불만스러워할 뿐.
"없는 사람은 알아서 먹으라고 하고, 우리는 우리끼리 아침을 먹자꾸나."
토리엘은 갓 구워진 파이를 테이블 중앙에 놓았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파이에는 무언가 수상쩍은 토핑이 되어있었다.
"엄마, 이번에는 무슨 파이에요?"
"달팽이 파이겠지."
툭 내뱉는 차라의 말에 토리엘은 웃으면서 말했다.
"땡~ 틀렸단다. 이번에는 다른 재료를 사용했어."
"별로 좋은 예감은 들지 않는데요."
차라는 찌뿌둥한 표정을 지은 채 포크로 파이를 쿡쿡 찔러댔다.
"얘도 참... 일단 먹어보렴. 프리스크, 너도 얼른 오렴!"
토리엘이 부르는 소리에 멀리서 누군가가 부엌으로 와서는 테이블에 합석했다.
"잘 잤어?"
차분한 목소리로 프리스크는 차라와 아스리엘에게 인사를 건냈다.
"응. 잘 잤어. 그치, 차라?"
"아니, 별로."
영 좋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차라는 여전히 파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특히 기관지에 털뭉치가 들어간거같아서 더 기분나빠. 누구 덕분에 말야."
"너, 너무해..."
가차없는 독설에 아스리엘은 울상을 지었다.
"차라, 너무 심한 말은 하지 말렴."
"네에~"
차라는 건성으로 답하면서 파이틀 귀퉁이를 뜯어서는 포크로 잘게 부숴버렸다.
"프리스크는 일찍 일어났나보네?"
화제를 돌리듯 아스리엘은 프리스크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그 질문에 답하듯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일어났어?"
"7시 쯤?"
확실히, 이 두 명 보다는 일찍 일어난 프리스크였다.
"너희도 프리스크처럼 일찍 일어나서 운동이라도 갔다오렴."
"솔직히 일요일인데 어떻게 일찍 일어나요. 안 그래, 차라?"
"응. 일요일엔 더 자야지."
"얘들이 정말..."
이래저래 떠들썩한 가운데, 프리스크는 수상쩍은 파이를 한 조각 떼어서는 앞접시에 가져다놓았다.
"에엑? 너 그 파이 먹으려고?"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파이를 잘라 한 입 먹으며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어때?"
차라는 굉장히 궁금한 듯 프리스크를 쳐다봤다. 원래 음식이라는건 맛이 없다면 바로 티가 나기 때문에, 어쨌건 표정을 봐서 파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
하지만 프리스크의 표정은 별로 변한 것 없이, 그저 파이를 우물거릴 따름이었다.
"맞다... 잠시 잊고 있었어."
"프리스크는 표정이 잘 안변하니까."
아스리엘은 하하, 하고 멋쩍게 웃었지만, 차라는 계산대로 되지 않은것이 영 맘에 들지 않은듯 파이를 더 잘게 부수고 있었다.
"맛은 어떠니, 프리스크?"
"맛있어요."
살짝 미소지으며 프리스크는 토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토리엘은 감격한 듯 미소지었다.
"그러니? 정말 다행이구나!"
그러더니 토리엘은 파이를 한 조각씩 퍼서 아스리엘과 차라의 앞접시에 하나씩 옮겨놓았다.
"너희도 얼른 식사하렴."
"네~"
가볍게 대답하는 아스리엘과는 달리 차라는 입을 다문 채 파이조각을 내려다보았다.
"으음..."
고심 끝에 차라는 아스리엘에게 말했다.
"아스리엘, 아- 해봐."
"응? 왜?"
"얼른."
차라의 말에 아스리엘은 순순히 입을 벌렸다.
"입 똑바로 벌려 파이 들어간다."
"에? 에에?"
뭔가 말하려던 아스리엘이었지만 그보다 차라가 파이를 입에 넣는게 더 빨랐다.
"웁! 우웁!"
안그래도 텁텁할 파이가 한꺼번에 입에 들어가는 바람에 아스리엘은 급히 물을 마시며 가슴을 쳐댔고, 이내 진정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
아스리엘과 토리엘이 동시에 차라를 노려보며 소리쳤지만 차라는 모르는 척 가볍게 미소지을 뿐이었다.
"차라는 정말 너무해!"
아스리엘은 차라에게 투덜거렸지만, 차라는 아랑곳않고 말했다.
"그래서 무슨 파이야?"
"음... 급하게 먹어서 잘 모르겠어."
"그래?"
싱긋 미소지으며 차라는 아스리엘에게 말했다.
"있잖아, 아스리엘... 다시 아- 해볼래?"
"시, 싫어! 엄마!"
"차라! 아스리엘! 식사중엔 조용히!"
"......."
그렇게, 일요일의 떠들썩한 늦은 아침식사는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퍄 문학개튜
오홍홍 조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