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고개를 숙이자 머리카락이 소스에 담궈질 뻔했다. 그새 머리가 길어진 모양이었다. 당신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지만, 금방 스르르 흘러내려왔다. 당신을 보고는 샌즈가 말을 건넸다.

\"어, 많이 길면, 내가 잘라줄까?\"

* 당신의 머리는 토리엘이 정리해 주고는 했었다. 당신은 이번엔 특별히 샌즈에게 부탁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얼굴을 붉혔다.
식사를 마친 뒤, 당신은 안 쓰는 낡은 식탁보를 몸에 둘렀다. 고장난 전등갓을 쓰고 마술사 놀이를 하려 했더니, 파피루스가 가져가버렸다. 샌즈는 당신을 보며 웃었다. 여전히 그의 얼굴은 빨갰다.
당신은 샌즈의 첫 고객이 되어 의자에 앉았다.

\"최대한 조심해서...... 잘 할게.\"

* 당신은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르게 앉았다. 당신은 긴장과 설렘을 안고 첫 가위질을 기다렸다. 파피루스는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이쪽을 힐끔 보았다.

\".......\"

* 사각거리는 가위질 소리도,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느낌도 없었다. 그저 텔레비전 소리만이 거실을 맴돌았다. 샌즈는 많이 긴장했는지 아무 말도 없었다. 그 상태로 5분 정도가 지난 것 같다. 당신은 샌즈에게 부담스러우면 하지 않아도 됀다고 말하려 했다.

\"아, 진짜 답답해 죽겠네.\"

* 파피루스가 소파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파피루스는 샌즈가 들고 있던 가위를 빼앗았다.

\"가만히 있어.\"

* 파피루스는 현란한 가위질을 뽐냈다! 당신은 고개를 움직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닥에 잘린 머리카락이 쌓여갔다.
당신은 한결 깔끔해진 거울 속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당신은 \'위대한 파피루스 님\'에게 고맙다고 했다. 헛기침을 하는 것을 보니 싫지는 않은 듯했다. 당신은 샌즈에게도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나, 난, 한 게 없는데.......\"

* 당신은 쉽게 얼굴을 붉히는 샌즈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파피루스는 형의 행동이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프리스크를 앉혀 놓고는 넋이 나가서 바라보는 꼴이라니.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는지 손을 올렸다가 다시 내리기를 반복하는 모습에 치가 떨렸다. 프리스크가 눈치를 못 챘기 망정이지, 누가 봐도 좋아서 어쩌지를 못 하는 게 뻔히 보였다. 프리스크를 향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샌즈의 시선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게다가 어딘지 불안하게 흔들리기까지 해서 천하의 파피루스조차 가만히 있지 못 하게 했다. 그래서 가위를 빼앗아 샌즈 대신 나선 것이었다.
파피루스는 꽃다발을 사는 샌즈를 보며 나지막히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프리스크가 이곳에 남아 형과 산다든지 하는, 형에게 긍정적인 전망 따위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인간은 괴물의 적이며, 상종할 족속이 아니라는 그의 인식보다도 더 큰 이유가 있었다.
프리스크는 샌즈와 파피루스의 집에 이미 적응해버렸다. 적응된 공간은 놀랍도록 좁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프리스크는 책과 꽃 같은 집 밖에서 온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파피루스는 직감했다.
프리스크는 지루해져버리고 말았다고. 그 지루함과 갑갑함에 몸부림치고 있다고 말이다. 거기다 지상까지 누볐던 자유의 몸이었으니 그런 감정은 더욱 심할 터였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 세계에 질려버린 프리스크가 어떻게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것을 알 수 있었다.
훤히 보이는 끝. 지금 같은 찰나의 행복은 샌즈를 송두리째 뒤흔들 것이었다.

\'한심하기는.\'

파피루스는 꽃다발을 들고 웃는 샌즈를 보며 혀를 찼다.


\"다, 다녀왔어.\"

* 샌즈와 파피루스가 돌아왔다. 샌즈는 당신에게 예쁜 꽃다발을 내밀었다. 당신은 고맙다고 했다.

\"그, 그런데...... 마음에 안 들어?\"

* 당신의 표정을 살피던 샌즈가 물었다. 당신이 그다지 기뻐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당신은 마음에 든다며 방에 꽂아 두겠다고 했다.
당신은 꽃을 한참 동안 들여다 보았다. 좋은 향기가 났지만, 당신은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꼬맹아.\"

* 샌즈가 어느새 따라 올라와 당신을 불렀다.

\"마음에 안 들면...... 얘기해도 돼.\"

* 당신은 그러면 샌즈가 속상할 거 같아서 괜찮다고 했다.

\"아, 아냐. 내가 얼마든지, 다른 걸로 갖다 줄게.\"

* 샌즈는 당신의 대답을 기다렸다. 고민 끝에 당신은 땅에 뿌리를 내린 꽃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은 \'밖에 나가고 싶다\'의 다른 표현이었다.

\"알았어. 뿌리 붙어 있고, 살아있는 꽃으로 갖고 올게.\"

* 당신은 샌즈의 정성이 고마웠지만....... 그냥 고맙다고 했다.


\"어디 가?\"
\"꽃 가지러.\"

샌즈는 파피루스가 말릴 새도 없이 집을 나와버렸다. 이미 날이 어두워진 뒤였지만 상관 없었다. 그는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들을 채집하고 흙까지 손수 퍼서 옮겼다. 프리스크가 곤히 잠든 사이, 샌즈는 방 한 켠의 작은 공간을 화단처럼 꾸미기 시작했다. 흙을 나르고 꽃을 옮겨 심는 샌즈를 보며, 파피루스는 고개를 저었다.
샌즈는 밤새 화단을 만드는 것에 몰두했다. 이렇게 프리스크를 위하는 것이, 자신의 불순한 상상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파피루스는 끝을 모르고 빠져들기만 하는 형의 모습에 고개를 돌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