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리스크는 최근 불면증 비슷한 것을 겪고 있었다.



 성장기의 에너지가 지나치게 넘쳐흐른다거나 침대가 딱딱하다는 둥의 이유로 잠을 못 이루는 건 아니었다. 괴물학교의 일과는 프리스크를 언제나 녹초로 만들었고, 침대는 누운 자세 그대로 녹아내려 이불에 달라붙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안락했다.

 문제는 잠들고 난 뒤였다. 잠에 들고 나서, 밤중에 눈을 한 번 뜨고 나면 다시는 잠들 수가 없었다. 잠을 청하며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다가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버리는 것이었다.

 이런 날이 며칠이나 계속됐을까. 진작 낌새를 알아챈 토리엘이 어느 날 아침엔가 드디어 운을 떼었다.


“아가, 요즘 괜찮니?”

“네?”

“눈이 빨갛게 충혈 됐어. 잠은 잘 자고 있는 거지?”

“네, 그럼요.”

“정말이니? 아가. 거짓말 하면 안 돼요.”

“...”


 토리엘이 꿰뚫어보는 듯한 맑은 눈으로 프리스크를 바라봤다. 그래도 프리스크는 사실대로 말할 생각 따윈 없었다. 만에 하나, 사실은 잠을 못 자는 이유라는 게, 자려고 누운 사람 머리맡에 갓 구운 파이를 가져다놓아 코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달큰한 시나몬 향을 방 안 가득 퍼지게 만드는 누군가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프리스크로서는 절대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떤 도의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언제나 프리스크를 필요 이상으로 배려하려는 토리엘에게 밤중에 방에 들락거려서 잠자리가 불편하다느니 하는 말을 했다간 역효과만 날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자기보다도 자신을 잘 아는 이 괴물의 통찰력을 어떤 변명으로 넘길 것이란 말인가. 프리스크는 떠오르는 대로 아무 말이나 주워 삼켰다.


“...샌즈.”

“응?”

“샌즈요. 샌즈 때문에.”

“샌즈가 왜?”


 토리엘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여기서 대체 샌즈 이야기가 왜 나오지? 그야말로 강아지가 자기 이불에 와서 오줌을 쌌다는 수준의 변명이다. 아이들이 하는 생각이란 원래 다 거기서 거기인 법이다.


“샌즈가 하는 농담 때문에요.”

“아하!”


토리엘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그래...그렇구나. 우리 아가도 이제 샌즈가 하는 농담의 깊은 맛을 알게 될 정도로 성장했구나...”

“...”

“이해한단다. 원래 그런 농담은 들었을 때보다는 나중에 떠올렸을 때가 더 웃긴 법이니까. 나도 그 농담들 때문에 잠을 설친 적이 몇 번 있었지.”


 토리엘은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인을 만났을 때의, 순수한 기쁨에 젖어들었다. 토리엘이 웃으며 윙크했다.


“...그러셨나요.”

“그래, 하지만 벌써부터 잠을 아껴가면서까지 심취하면 안 된단다. 나중에 샌즈를 보게 되거든 따로 부탁 좀 해야겠구나. 네겐 약간 덜 재미있는 농담을 해달라고 말이야.”

“아, 하하...네.”


 무언가 찜찜하긴 했지만 프리스크는 이걸로 됐다, 싶은 얼굴이었다. 하기야는, 감수성이 예민하여 자신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토리엘보다는 무슨 말을 들어도 껄렁껄렁 넘겨버리는 건달 같은 녀석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이 프리스크로서도 맘 편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프리스크의 불면증 비슷한 것에는 또 하나 증상이 추가되고 말았다. 한밤중에 갑자기 눈을 뜨는 것뿐만 아니라, 지하에 있던 내내 샌즈에게 들어야 했던 썰렁한 농담들이 생각나, 자기도 모르게 깔깔 웃어버리는 심각한 증상이. 


 물론 밤중에 크게 소리 내어 웃을 수는 없으므로 최대한 목소리를 낮게 깔고 소리죽여 작은 목소리로 웃었다. 이럴 때 프리스크의 웃음소리는 평소 그녀가 내는 웃음소리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2.


 세계 일주를 떠난 파피루스와 샌즈는 한 달이 채 안 되어 돌아왔다.

 돌아가자고 제안한 쪽은 의외로 파피루스 쪽이었다고 한다. 파피루스가 말하길, 소스의 종류와 토핑, 속재료, 조리법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창조해내는 스파게티의 세계와는 다르게...지상세계는 가도 가도 똑같은 아스팔트 도로 뿐이라 질렸다는 모양이다. 무엇보다 스포츠카엔 스파게티 재료들을 저장할 공간이 없어서 곤란하다나.

 건조 파스타 면을 보관할 곳이 필요했으면 이 넓은 지상세계 아무데에나 자리 잡으면 됐을 텐데, 샌즈와 파피루스는 굳이 괴물학교와 드리무어 가(家)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온 뒤에 샌즈는...돌아온 뒤에, 샌즈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프리스크가 보기에는 그랬다. 프리스크는 샌즈가 슬리퍼를 끌며 동네 근처를 어슬렁거리거나, 토리엘과 농담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하러 집을 방문하거나, 괴물학교 통학로에서 불량식품을 파는 모습밖에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프리스크 또한 생활권은 집과 학교, 근처 마을 정도로 한정되어 있었다. 때문에 샌즈와 프리스크는 거의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쳤다.


“어라, 꼬맹이. 큰일 났어. 옷이 너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


 그렇게 매일 보는 사이인데도, 통학로 횡단보도에서 잠깐 마주칠 때조차 샌즈는 썰렁한 농담을 잊지 않았다. 프리스크는 헐렁한 세일러복 옷깃을 잡아당기며 한숨을 쉬었다.

 언제인가 지하세계의 뜨거운 땅에서도 보았던, 괴물학교의 교복이었다. 토리엘은 프리스크가 금세 쑥쑥 클 나이라며 일부러 한 치수 큰 교복을 맞춰주었다.

 

“처음에 봤을 땐 꽤나 놀랐다고. 나는 꼬맹이가 제복과 질서에 대해 교육받기 시작하는 나이인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보행자 신호가 들어오자 샌즈가 어슬렁어슬렁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프리스크는 제 자리에 서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왜 여기로 돌아왔는지 물어봐도 돼?”

“응?”

“이제 괴물들에겐 왕이 없잖아. 꼭 여기로 오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래! 형! 나는 스파게티의 본고장으로 가고 싶었다고!”


 파피루스가 뒤따라 횡단보도를 건너오며 소리 질렀다. 양 손에 스파게티 재료와 인스턴트 식품으로 가득 찬 봉지를 들고 있었다.


“잠깐, 파피. 그 얘기는 예전에 끝났잖아.”

“끝나지 않았어! 나의! 스파게티를 향한! 열정은!!”


 샌즈는 고개를 몇 번 절레절레 저어주고는 프리스크의 어깨로 손을 뻗어 세일러복 스카프를 만지작거렸다. 


“글쎄, 이걸 보고 싶어서 돌아온 걸지도.”

“...또 농담한다.”

“그래! 농담이 아니라고! 형!”


 샌즈가 낄낄 웃으면서 프리스크의 짧은 갈색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이래서 약속이 싫다니까.”


 속삭이듯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 말을, 프리스크는 놓치지 않고 똑똑히 들었다.





3.


“잠깐. 잠깐만요.”

 

 알피스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응?”

“잠깐만...이 순간을 음미하고요.”


 재차 질문하려는 샌즈를 손으로 막고, 알피스는 눈을 감고서 심호흡했다.


“후...좋아요. 됐어요.”


 얼마간을 그러고 있었을까. 수 회의 심호흡을 마친 알피스가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그래? 이제 됐어? 하여튼 대답을 듣고 싶은데.”

“네. 결론부터 말하자면...가능해요.”

“가능하단 말이지. 그렇다면 나랑 프리스크랑...”

“크흐으~~!!”


 샌즈가 말하는 도중, 알피스가 갑자기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괴상한 함성을 내질렀다. 샌즈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알피스에게 최대한 부드럽게 다시 말을 걸었다.


“...알피스?”

“아, 아아아...미안해요. 실례했어요. 예전부터 이런 말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애니메이션에서는 말이에요. 기술자 캐릭터에게 꼭 불가능한 임무를 맡길 때가 있단 말이죠. 모두의 운명이 걸린 급박한 상황에, 중요한 기계나 핵심적인 무언가를 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원래는 1시간 걸리는 일을 30분 안에 끝내라는 둥의 일을 맡긴단 말이에요. 그럴 때마다 기술자들은 꼭 이렇게 말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합니다.」 라고요. 제가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기술자가 된 건 아니지만요, 기술자가 되고 나서부터 얼마나 이 말을 하고 싶었다고요!”

“...다행이네. 소원 성취해서.”


 샌즈가 빈정거리는 태도로 축하해줬다.


“아...음...어...”


 그 냉담함 때문인지, 알피스는 원래의 소심한 태도로 되돌아왔다. 


“근데 내가 알기론 그런 말을 하고 나면...반드시 뒤에 어떤 조건이 붙던데. 가동 시간이 5분이라든가 조종사 목숨이 위험해진다든가.”

“맞아요. 잘 알고 계시네요.”

“뻔한 전개지 뭐. 정말 아무 조건 없이 가능한 일이면 알았다고만 해도 되잖아.”

“말이 길어질 땐 이유가 있는 법이죠.”

“그래서? 그쪽의 이유는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