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거의 훑으면서 했던 놈인지라 설정오류가 있을게 분명하지만, 일단 씁니다.

*게임 설정을 안건드리기 위해 노력은 했지만, 자체 설정이 있고, 굉장히 기분나쁠 수도 있습니다.


0.

"싫어! 저리가!"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잔뜩 겁먹은 소녀는 황급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어두운 골목길, 그녀를 도와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보이는 것은 기분나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두명의 남자뿐이었다.

"닥쳐라, 죽여버리기 전에."

남자는 소녀의 입을 막으며 으르렁 그렸다. 소녀는 버둥거렸다. 하지만, 힘의 차이는 분명했다.

"야, 잡아."

"으읍! 읍!"

"가만 있으라고!"

남자는 허우적거리는 소녀의 배를 후려쳤다. 소녀는 고통속에서 꿈틀거렸다.

소녀가 축 늘어지자마자 남자들은 소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씨발, 괜찮을까?"

"걱정마, 고아 새끼 따먹는다고 뭐라할 사람 없다."

남자들은 순식간에 소녀의 옷을 벗기곤, 자신의 바지도 벗기 시작했다.

그날, 피가 땅에 떨어졌고, 소녀의 마음이 부셔졌다.


"......이름은?"

"프리스크요. 프리스크."


1년간의 요양 끝에 나온 소녀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싸구려 동정 너머로 사람들은 소녀를 멸시했고, 소녀를 무시했다. 죄악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죄악이 사라지기라도 하는 듯, 사람들은 터무니없이 굴었다.

"저 창년이 유혹했다니까!"

"동네 집값 떨어지니까 이만 하자."

"애미애비 없는 년이 들쑤시고 다니네."


소녀는 울었다.

그 날 소녀는 산을 올랐고, 

그렇게 떨어졌다.


a

-차라, 그만해, 차라!-

-아스리엘! 말리지마! 말리지마! 말ㄹ-

수없이 반복되어온, 마지막 기억의 끝에서 나는 긴 잠을 깼다. 잠에서 깬 내가 발견한 것은 한 아이였다. 내 마지막처럼 작고 지친 아이였다.


b

나는 내가 어느순간 아이의 내면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니, 내 육신은 죽었었다. 

"어이."

나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하지만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아스리엘은 내가 안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었는데. 아이는 내 말에 대답하는 대신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나는 혹시나 하고 팔을 휘둘러보았지만, 역시 아이는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이는 잠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일어났다. 나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는 그대로 주저 앉았다. 재미도 없었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고민을 해보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그때였다. 저기 밖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워!"


c

...

"멍청하긴! 이 세상에선, 죽이지 않으면 죽는거야."

친절하게 다가왔던 소리가 바뀌었다. 나는 당황했다. 아이가 비틀거리는게 느껴졌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일단 상황을 판단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황급히 아이의 눈을 빌려보았다.

"누가 이런 기회를 내가 버리겠어? 죽어."

아이의 눈은 내 눈이었고, 아이가 보는 것은 나도 볼 수 있었다. 나는 아이의 뭄을 둘러쌓은 탄막들을 발견했다.

-젠장-

나는 인상을 썼다. 아이를 구할 방법이 없을까. 아이가 이렇게 죽는다면, 다시 긴긴 잠을 자게 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아이를 황급히 살펴보았다. 아이는 쓰러진채 미동도 하고 있지 않았다. 기분나쁠 정도로 차분해 보였다. 나는 이 상황에 당황했다. 이대로라면 결말은 뻔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는 일단 아이의 몸을 뺏어보기로 했다. 남아 있는 의지는 별로 없지만, 이렇게 무력하게 쓰러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펑!

"나쁜 생물이구나."


d

"토리엘?"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내 마지막을 같이해 주었던 아스리엘과 닮은, 토리엘이었다. 나는 썩 반가웠다. 

 하지만 나는 이내 기운이 빠졌다. 내가 반가우든 말든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방금 전 아이의 몸을 뺏어보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은 참이었다. 영혼만으로는 살아있는 이에게 메세지를 보내는 것조차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e

...

-야 이 미친놈아!-

나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역시 내 목소리는 아이의 속에서 울릴 뿐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아이의 눈을 빌려보았다. 토리엘이 쓰러지고 있었다. 따뜻한 상냥함이 앉아 있던 토리엘의 얼굴에는 경악이 서려있었다. 

-무슨 짓을 하는거야! 미친놈아!-

나는 발을 쾅쾅 구르며 아이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아이는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f

...

나는 귀를 막았다. 저 너머로 비명과 비명이 이어졌다. 입술이 덜덜 떨렸다. 역시 인간이라는 족속들은 잔인하고 잔인했다. 내가 인간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증오스러웠다. 아이조차 이토록 잔인한 족속들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ㅋㅋㅋ]

그 순간이었다. 전혀 다른 목소리, 전혀 다른 형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흠칫 놀랐다.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 나는 아이의 눈을 들여보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놈은 뭐지. 하지만 아이의 눈 너머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와 쩐다.]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목소리의 방향을 알아차렸다. 목소리는 전혀 이상한 방향에서 들려왔다. 그 방향으로 시선을 옮겨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에 닿는 것은 아이 내면에 있는 어둠 뿐이었다.

 이 목소리는 아이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나는 섬뜩했다. 이 목소리가 아이의 것이라면 아이는 괴물들을 죽이면서 웃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아이는 여자 아이였다. 하지만 목소리는 분명히 남자의 것이었다.

이 안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일까. 나는 천천히 아이의 내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g

아이의 내면을 살피고 나는 놀랐다. 두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던 탓이었다. 첫번째로 발견한 것은 아이의 상태였다. 나는 아이에게서 너무나도 친숙한 것을 느꼈다. 아이의 내면이 흉터 투성이였던 탓 같았다. 나만큼이나 괴로웠고, 나만큼이나 상처입었던 흔적들이었다. 알 수 없는 반가움에 나는 왈칵 울뻔했다.

두번째로 발견한 것은 아이의 내면 그 자체였다. 내면에서는 수많은 감정들이 적재되어 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내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따뜻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차가운 온기의 흔적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원한이나 광기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발견한 두가지 사실과 들었던 목소리로 가설을 세워보았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


h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아이의 몸을 빼앗기에는 의지가 부족했고, 내 목소리는 아이에게 닿지 않았다. 나는 이 괴로운 상황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나는 악착같이 아이의 눈을 빌렸다. 그렇게 눈 너머로 상황을 살피고, 정보를 모았다. 때때로 간신히 아이의 몸을 간섭할 수는 있었지만, 내 한계는 한걸음이 다였다. 곧바로 나는 아이의 의지에 쫓겨 다시 내면으로 도망쳐야만 했다.

그 사이 파피루스가 죽었고, 언다인이 죽어갔다.


i

괴물들이 죽어가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익숙해 질 수 없었다. 나는 한명이 쓰러질때마다 없는 심장이 덜컥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미친놈아, 너는 아무런 감정이 없냐-

나는 아이에게 말해보았지만, 역시 대답이 없었다. 

[뭐 볼거 없나]

다시금 저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목소리는 믿기 힘들지만 웃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이 목소리가 아이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 사이 확인된 사실이었다. 나는 저 목소리가 아이에게 씌여진 또다른 유령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저 목소리는 다른 유령들과는 달리 나를 알아차리진 못했다.


j

알피스의 연구소에서 나는 다른 사실을 발견했다.

이 아이 이전에 6명의 또 다른 아이들이 떨어졌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하필 이 아이에게서야 깨워진 것일까. 6번의 추락 속에서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일까.


k

아이의 눈 너머로 샌즈가 보였다. 그리고 수많은 뼈들이 아이에게로 날아왔다. 아이는 능숙한 솜씨로 그 뼈들을 피해냈다. 나는 아이의 눈 근처에 멍하니 앉아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 순간만큼은 샌즈는 괴물들의 복수였고, 분노였다. 눈 앞의 작은 학살마를 제지하겠다고 모든 것을 빌어 말하고 있었다. 공(空)을 좌우로 두고 언제나 느긋하게 있던 샌즈를 무엇이 저렇게 분노하게 했을까. 물론 답은 알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의미 파피루스가 죽은 탓이겠지. 나는 조용히 샌즈와 아이의 전투를 보았다. 가족을 잃은 분노가 저렇게 큰 것일까.


l

샌즈와의 대화는 나도 다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의문들이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면, 너머 저편을 보았다.

-살인마는 따로 있었네.-


m

나는 의지를 채웠다. 의지가 안에서 올라왔다. 나는 한번 더 가설을 세웠고, 가설을 확인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뼈오후 새끼 드디어 죽이네.]

때마침 그 목소리가 저편에서 들려왔다. 나는 씨익 웃었다. 진짜 살인마를 확인하기 위한 준비가 마침 끝났다.

-미안, 샌즈.-

나는 조용히 들리지 않을 사과를 하고 아이의 눈 너머를 보았다. 샌즈는 자는척을 하고 있었다.


n

"......파피루스......뭐 먹고 싶은거 없어?"

그렇게 샌즈가 쓰러졌다. 간신히 모은 의지로 아이의 몸을 뺐는 것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모든 인과가 무시되며 샌즈가 베어진 것도 순간이었다.

-미안, 샌즈......-

[씨벌 뭐여?]

그리고 그 순간 저편에서 목소리가 당황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제 가설은 사실이 되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살육극은 아이가 행한 것이 아니었다. 저 너머 아이를 조종하는 무언가가 행하는 것이었다. 유령인지, 전지전능한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아이는 죄가 없었다. 나는 왠지 모를 안도감에 풀썩 주저 앉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친근감이 가던 아이가 학살마가 아니라는 사실이 정말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뭐, 샌즈 죽이긴 했으니까. 가볼까. 가자 프리스크 가자가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피식 웃.

프리스크?


0

"얘를 낳겠다고?"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워도 된다. 네게는 여러가지 의미로 무리야."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허, 참. 어쩔 수 없지. 근데 키울 수도 없잖니. 잊었나 본데, 너는 아직 얘야. 아니, 이 나이에 임신을 하는거 자체가 이상한 일이란다."

소녀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하이고......고집은 있어서......"

소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지."

간호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너도 생각은 있겠지. 강요는 안할게. 애 이름은 지었니?"

소녀는 기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네."


"......이름은?"

"프리스크요. 프리스크."


p

내 아이.

내가 버린 아이.

나를 깨운 아이.

6명의 아이들과 다른 내 아이.

나는 저 너머 알 수 없는 목소리에게 말했다.

-네게 넘겨줄 수는 없어-

나는 일어났다.

나는 의지를 모았다. 그리고 내 딸의 몸을 뺏었다. 학살마가 되어버린 내 딸.

-내가 지킨다.-

이미 괴물들을 죽였지만, 괜찮단다. 너는 잘 못 한게 없다. 네 손으로 한 게 되더라도 괜찮단다. 내가 뒤집어 쓰면 되니.

나는 차오르는 의지를 모아 닿을 소리로 말했다.


[안녕]

[나는 차라]


나는 되는대로 말했다. 저 너머 알수 없는 목소리에게서 내 딸을 돌려받으며 있는대로 말했다. 내 딸을 건드리지마. 


[...언제부터 네게 주도권이 있었다는 거지?]


죄악에서부터 쉬렴. 내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