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딘의 주변에는 크레이터나 낭떠러지가 많다.
스노우딘의 괴물들은 주의 팻말을 붙이고 순찰을 도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럼에도 종종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곤 했다.
그 중 하나가 지금 샌즈의 눈 앞에서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음..."
프리스크는 팔다리를 버둥거리면서 절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잠시 샌즈는 드디어 이 아이가 미쳐버린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의 머리 속으로 떠오르는 것은 충동이었다.
지금 여기서 그녀의 목숨을 끊으면,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파피루스가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아주머니와의 약속이 샌즈의 마지막 양심을 붙잡고 있었지만 그런 것까지 생각하기엔 샌즈는 너무 지쳤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저 인간 아이 한 명이 수많은 실족사고자 명단의 한귀퉁이에 오를 뿐이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그릴비가 내주는 핫도그를 먹으며 얼어붙은 손을 비빌 수 있겠지.
샌즈의 손이 천천히 차라의 등에 닿았다.
그리고 프리스크의 옷을 붙잡아, 낭떠러지에서 끌어내었다.
"인간들의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방법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건가?"
샌즈는 농담을 던졌다. 샌즈의 손에 매달린 프리스크는 배시시 웃어보였다.
"너, 인간 맞지?"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과묵한 성격이구만. 내이름은 샌즈.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악수나 하지."
샌즈는 프리스크를 내려놓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프리스크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손을 휘적이면서 걸어갔다.
다시 절벽으로 떨어지려는 프리스크를 붙잡고, 샌즈는 프리스크에게 물어보았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너 앞이 안보이냐?"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 아주머니. 이게 제가 약속을 안하는 이유예요."
샌즈가 중얼거리면서 난처해하자, 프리스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다가왔다.
"난 샌즈야. 뼈다귀 샌즈."
샌즈는 프리스크의 손을 붙잡다시피 해서 악수를 했다. 방귀쿠션소리가 막막한 설원을 가득 채웠다.
"이러면 장난을 하는 의미가 없는데."
샌즈가 허탈해하거나 말거나, 프리스크는 깔깔거리면서 즐거워했다.
"이 장난에 재밌어하는 녀석은 오랜만인데. 좋아. 스노우딘까지는 같이 가주마, 꼬맹아."
샌즈는 프리스크의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넜다.
"내 동생이 갑자기 튀어나온다거나 하지만 않으면 문제 없을거야. 내 동생은 인간을 싫어하니까."
샌즈가 프리스크를 보면서 말을 건네고 있는 사이, 귀를 찢을듯한 고함소리가 울렸다.
"세에에에상에! 인간이잖아!!"
"파피루스..."
샌즈는 진땀을 흘렸다.
"형, 날 위해서 인간을 데려왔구나! 나도 인간을 대왕님께 데려가면 이제 왕실근위대에 들어갈 수 있겠지! 녜헤헤헤!"
프리스크는 손을 휘저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다는데?"
"뭐?...그럼...퍼즐로 승부를 내는거다, 인간! 내가 낸 퍼즐을 맞추면 나랑 같이 왕궁으로 가는거야!"
파피루스는 품 속에서 종이 쪼까리를 꺼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단어맞추기'라고 쓰여있었다.
"이 위대한 파피루스님께서 직접 만든 퍼즐이니라! 과연 인간이 풀 수 있을까!"
프리스크는 종이를 받아들고 만지작거렸다. 그런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글자가 보일 리 없었다.
"저기, 팝. 얘는 앞을 못보는것 같은데."
"뭐시라!"
파피루스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당황해서는, 샌즈를 데리고 나무 뒤로 끌고 갔다.
"샌즈, 인간은 원래 앞을 못보는 거야?"
"아니, 이 인간이 어딘가 다쳐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
"그런..."
파피루스의 눈이 살짝 촉촉해졌다.
그것도 잠시, 나무 뒤에서 튀어나온 파피루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파피루스님께서 이번에는 자비를 베풀어주지! 녜헤헤헤!"
파피루스는 팔에 있는 뼈들 중 하나를 똑 떼서 주황색 불길로 깎아냈다.
잠깐 손을 보았을 뿐인데, 그 뼈는 훌륭한 지팡이가 되어 있었다.
파피루스는 지팡이를 프리스크에게 떠넘겨주고 스노우딘으로 뛰어갔다.
"다음에는 소리로 퍼즐을 만들어올테니 각오하고 있으라고!"
파피루스는 말 그대로 쌩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등장만큼이나 갑작스러운 퇴장이었다.
"제멋대로인 동생이지? 불쾌했다면 미안. 그래도 착한 녀석이니까. 잘 부탁해."
프리스크는 고개를 저으면서 활짝 웃었다. 그리고 양 팔로 파피루스가 만들어준 지팡이를 꼭 껴안았다.
파피루스가 기뻐하겠네.
샌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프리스크의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겹쳤다.
"그럼 약속했던 대로, 스노우딘까지는 내가 안내해주지."
한 손으로는 파피루스의 지팡이를 붙잡고 프리스크는 샌즈의 손을 잡았다.
뼈덩어리일뿐이었지만 샌즈의 손은 따스했다. 샌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프리스크는 그에 맞춰 종종걸음으로 샌즈를 뒤따르면서 둘은 스노우딘으로 걸어갔다.
*
"프리스크으으으!!!"
언다인과 알피스가 프리스크를 껴안았다.
"아가야, 네가 해냈구나."
"녜헤헤! 역시 이 위대한 파피루스님의 친구야!"
"자, 자. 다들 진정하시게. 프리스크도 아마 많이 힘들거야."
파피루스와 토리엘, 아스고어, 샌즈, 그리고 아스리엘까지 구해낸 프리스크는 지쳤다는 듯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괴물들이 헹가래를 하는걸 피할 수 있었다는건 아니고.
"아가야, 어떻게 할 거니? 우린 언제라도 지상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있단다. 지금 당장 나갈거니?"
프리스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토리엘은 알았다면서 대답했다.
"그러면 짐이라도 싸면서 기다리고 있으마. 끝마치지 못한 일이 있다면 끝내고 오려무나."
토리엘이 먼저 방을 나가고, 다른 괴물들 모두가 차례차례 방을 나갔다.
샌즈도 그 뒤를 따르려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 당기는 느낌에 걸음을 멈췄다.
"샌즈."
"응?"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에 샌즈가 고개를 돌렸다. 프리스크가 샌즈의 점퍼 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너, 말할 수 있었냐?"
"......응."
프리스크는 우물쭈물하면서 주머니를 뒤졌다.
스노우딘에서 받은 쌍고드름, 눈사람 조각, 샌즈의 핫도그, 머펫의 거미도넛. 그런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프리스크는 그것을 찾았다.
"샌즈, 이거 기억나?"
샌즈는 프리스크가 내민 것을 흘끗 바라보았다.
자신의 몸을 찢어발겼던 바로 그 칼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차라..."
샌즈의 눈이 파랗게 물들었다.
등뒤에서 나타난 가스터 블레이드가, 어느새 차라를 겨누고 잡아먹을 듯이 입을 벌렸다.
금방이라도 차라의 몸이 찢겨나갈 것 같은 상황에서, 그녀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
"어?"
"그냥 그 말을 하고 싶었어."
"어...음, 그래."
프리스크의 눈이 붉어지지도 않았고, 누구를 해치지도 않았다.
샌즈는 차라가 아닐거라고, 아니어야한다고 속으로 되뇌면서, 가스터 블레이드를 집어넣었다.
그 순간 샌즈의 코끝을 고약한 냄새가 스쳐갔다.
금방이라도 어제 먹은 것들을 게워내야할 듯한, 소름돋도록 끔찍한 악취.
샌즈는 그같은 냄새를 딱 한 번 맡은 적이 있었다.
썩은 시체 냄새였다.
"꼬맹아, 너..."
샌즈는 프리스크를 다시 돌아보았다.
프리스크는 눈을 다친 것 따위가 아니었다.
프리스크의 두 눈은 찰흙처럼 짓뭉개졌고, 입은 흉측하게 뒤틀려있었다.
샌즈가 말을 잇지 못하는 와중에도, 조그만 살점 덩어리들이 프리스크의 볼에서 뚝뚝 떨어져내렸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줘."
프리스크는 그런 얼굴을 하고서도, 입을 비틀어 웃어보였다. 프리스크의 웃음은 어느때보다도 처량해보였다.
"난 당장 지상으로 올라갈 거야."
"다른 괴물들은 어쩌게?"
"......그냥 먼저 갔다고 해줘."
샌즈는 잠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프리스크의 얼굴을 보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지, 뭐."
그러니 평소처럼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것처럼.
"고마워, 샌즈."
프리스크는 썩은 물에 가까운 눈물을 손으로 훔치면서, 샌즈에게 연신 감사를 표했다.
"날 막아줘서...그런 일을 했던 나를.... 친구라고 불러줘서."
샌즈는 어기적거리면서 홀을 나갔다. 그리고 프리스크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내일 그릴비에서 다시 보자. 꼬맹아. 핫캣이나 같이 먹자고. 내가 쏠테니."
프리스크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
"......메타톤은 "역경을 헤치고 지하세계를 탐험한 첫번째 장애인!"이라는 제목으로 괴물 기네스북에 올렸어. 시청률은 바닥을 쳤지만."
"......"
"아, 알피스는 내가 눈이 안보인다길래 이상하게 생긴 인공 안구를 달아주려고 하더라. 파피루스가 말려서 겨우 살았지만 말이야."
"...무슨 속셈이야?"
폐허는 고요하고 적적했다.
차라와 프리스크,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발을 붙이지 않았으니까.
차라는 나무줄기에 꽁꽁 싸매진 채, 그저 프리스크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차라가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에도 아랑곳 않고 프리스크는 말을 이었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어."
"괴물들이겠지."
"네 알량한 복수심때문에 죽기에는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하."
차라는 기가 막힌다는 투로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 네 호기심으로 죽기에는 딱 좋은 놈들이었냐?"
"네가 날 속여가면서 했던 짓들 말이야?"
"속이다니? 네가 원하는대로 '모두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잖아? 뭐, 다들 말이 좀 없는게 흠이었지만 말이야."
"......"
프리스크를 차라를 노려보았다. 차라의 입장에서는 그저 찡그린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도망치려고 하지 마. 우리 둘이 함께 저지른 일이잖아? 난 그저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을 뿐이야."
"도망치려고 한 적 없어."
"그래? 그럼 이건 무슨 짓이냐? 날 가두고 모두를 구하면 네가 했던 일이 없던게 될 것 같아?"
"아니."
"...위선자."
"......"
"내 힘이 없으면 넌 진작에 죽었어. 아니, 지금도 이미 죽어있지."
"알고 있어."
"그런데 날 가둬놓겠다고? 자살이라도 할 생각이야?"
"글쎄."
"에휴."
차라는 이제 체념했다는 듯이 입을 닫았다.
이런 쓸데없는 논쟁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프리스크가 이런 진저리나는 싸움에 미치고, 미쳐서, 결국 스스로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할 때까지.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또 지하에서 수백년동안 썩다가 나한테 빌면서 리셋을 할 생각이야?"
물론 차라는 프리스크의 의지를 꺾을 수만 있다면 몇번이고 리셋을 해줄 용의가 있었다.
"차라.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뭔데?"
"자신의 선택을 되돌리는 힘이 있는 자는 그에 걸맞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차라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샌즈가 했던 말 아냐? 그 약해빠진 해골 자식."
"맞아."
"무슨 대답을 하든 동생을 죽였네 뭐네 하면서 죽일듯이 노려보잖아. 그런 의미없는 소리는 왜 하는지 모르겠어."
"네 말이 맞아."
차라는 뭘 잘못 먹었나 싶어 프리스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 말에 두 번씩 맞장구를 쳐주는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맞는 말인걸. 누가 잘못했다느니, 책임을 져야한다느니, 그런 질문은 무의미해."
프리스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해야만 해. 그게 비록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일일지라도."
"갑자기 되도 않는 분위기나 잡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프리스크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스노우딘에서 받은 쌍고드름, 눈사람 조각, 샌즈의 핫도그, 머펫의 거미도넛. 그런 소중한 것들 사이에서, 프리스크는 그것을 찾았다.
"차라. 네가 알아둬야 할 게 있는데."
"응?"
"난 저번 리셋을 한 다음부터 한번도 세이브나 로드를 하지 않았어."
"당연하지. 내가 힘을 빌려주지 않았으니까"
"더 이상 세이브도, 로드도, 리셋도 없을거야."
"?"
차라는 의아해하면서 평소처럼 의지의 힘으로 로드를 하려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 잠깐...이게 왜?..."
"이야기가 끝났으니까. 네 힘을 한번도 쓰지 않은 채로. 네 의지가 끼어들 자리가 없었던 거야."
당황하는 차라를 앞에 두고 프리스크는 다른 사람을 골탕먹이는데 성공한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어보였다.
부쩍 힘에 부쳐보이긴 했지만.
"그리고 리셋은 내 의지까지 빌려야만 할 수 있지."
"이런다고 해서 결과가 바뀔 것 같아? 넌 날 받아들인 이상 여기서 못 나가! 나와 같이 평생 여기서 썩다가, 결국 리셋을 택하겠지."
"아니, 그럴 일은 없을거야."
프리스크는 품속에서 날붙이를 꺼냈다. 샌즈를 찔렀던 바로 그것. 녹슬고 무뎌진, 진짜 칼이었다.
"난 차라가 아닌 프리스크로서 죽겠어."
"좋은 선택은 아닐 것 같은데."
짐짓 여유롭게 말하고 있었지만, 차라의 눈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세웠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그 끔찍한 공포를 마주하고 있었다.
"내 손으로 친구들을 죽이는 것보다는 낫겠지."
프리스크는 칼을 꺼내 역수로 잡았다.
날카로운 칼날이, 당장이라도 무엇인가를 찢어버리고 싶다는 듯이 반짝였다.
차라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떤 괴물도, 인간도 죽여서는 안될텐데."
"너도 그런 농담을 하는 줄은 몰랐는데."
프리스크는 칼날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천천히 날을 배로 향했다.
"우리가 괴물이라도 될 수 있을것 같아?"
날카로운 칼날이 프리스크의 배를 꿰뚫었다. 그와 함께, 귀를 찢을 듯한 차라의 비명이 폐허에 울렸다.
"잘 자. 파트너."
ㅡ
프리스크가 에봇산에 떨어졌을때 죽었어야 되는거 아닌가 싶어서 씀.
몰살ㅡ불살 엔딩이 찝찝하기도 해서.
차라씹새기.
잘썼네 [머-펫은 항상 옳다]
역시 거미박이중에 작가가많은듯 [머-펫은 항상 옳다]
파피루스 ㅋㅋㅋㅋ - DCW
퍄
* 아...
* 개운하면서 찝찝한 결말이군.
성녀니뮤ㅠㅠ
와
ㅠㅠ 감동.. 글 개잘쓴다
존잘이다 - DCW
개추개추
새드엔딩이라 슬프다...
슬프다... 성녀님 시발... 그리고 동감. 프리스크는 초반에 죽은거 맞는거 갖더라 계ㅔㅔㅔ속 조용하다가 조건 하나하나 맞춰서 불살엔딩 봐야만 '프리스크'가 깨어나는게 차라랑 비슷함 차라처럼 플레이어가 가이드해주지 않으면 계속 죽어있는거 같음...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