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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노우딘 마을에서 있던 일을 뒤로하고, 남자는 다시금 길을 떠났다. 주변에서 남자를 붙잡으며, 어디서 왔느냐, 이름이 무엇이냐. 처음 보는 얼굴이다.. 등등의 질문을 했지만, 남자는 그들을 뿌리치고 사라졌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물어보려 했지만, 내심 자신의 정체가 들킬까 봐 두려워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눈 덮인 마을, 얼어붙은 길을 떠나. 발걸음을 옮기던 그의 앞에 펼쳐진 것은,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워터폴. 절벽에선 물이 떨어지고, 길 곳곳에 웅덩이가 고여있다. 푸른색 꽃들이 길을 장식하고, 떠다니는 빛 알갱이들이 현실감을 지운다. 스노우딘보다 따뜻한 기온에,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물려다가, 이내 몇 개비 남지 않은 것을 깨닫고 입맛만 다신다. 찰박거리는 물웅덩이를 지나 발걸음을 옮기며, 권총의 약실을 열어 남은 총알을 세어본다.


 남은 총알은 5발. 스노우딘에서 총알을 아낄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여유롭게 구경하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걷던 중, 푸른 꽃에 옷이 스치자, 푸른 꽃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남자는 화들짝 놀라 꽃을 쳐다보지만, 목소리만 나올 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자신의 모습이 퍽 웃긴지 헛웃음을 내뱉는다.


 "허 참, 지하로 떨어진 후로 완전 새가슴 다 됬구만."


 남자는 푸른 꽃을 몇 번 더 건들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거기, 인간인가?"


 남자는 자신이 또 푸른 꽃을 건들었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지만, 주변에 그 꽃은 없다. 그렇다면, 방금 들린 목소리는.


 남자는 식은땀을 조금 흘리며 뒤를 돌아본다.


 "와하하하! 인간이 맞구만!"


 웬 늙은 거북이가, 돋보기를 들이밀며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겁먹지 말라네! 나는 이 지하에서 나가는 것에 별 관심이 없으니!"


 "아, 예."


 거북이는 남자의 등을 팡팡 두들긴다.


 "윽!"


 "내 이름은 거슨이라고 하네. 음, 뭐. 인간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나름 대단하구만!"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다, 입을 연다.


 "그나저나, 거슨.. 씨? 지하에서 나가는 거라뇨?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에엥? 몰랐던 건가. 흠.. 내가 설명하기엔 너무 긴 이야기라네. 그래도 뭐, 듣고 싶다면야 들려줄 순 있지!"


 거슨은 바닥에 털썩, 하고 주저앉는다.


 "뭐, 대충 짧게 이야기하지. 인간이 우리를 이 산에 봉인시켰고, 그 결계를 뚫으려면 괴물의 영혼으로는 부족하다네. 그래서 인간의 영혼이 필요한 거지. 인간의 영혼의 힘은 훨씬 강하니 그 결계를 뚫을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인간의 영혼이 필요한 거네."


 남자는 눈을 끔뻑이다 소스라치게 놀란다.


 "으..예?! 그럼, 괴물들이 절 노리던 이유가."


 "와하하! 자네 영혼 때문이지 뭐 때문이겠는가!"


 "으, 젠장. 듣지 말걸 그랬나."


 거슨은 자리에 앉은 채로 말을 잇는다.


 "뭐, 자네라면 어지간한한 괴물들은 죽이지 않고도 지나갈 수 있겠지. 주의할만한 괴물이라면야..."


 거슨은 말끝을 흐린다.


 "엄, 언다인, 아스고어? 그 정도라네. 아스고어는 왕궁에만 있으니 주의할 건 언다인 뿐이겠구만. 특히 언다인은 이 워터폴 주변에서 살고 있으니.."


 행운을 비네! 인간!


 거슨의 마지막 인사를 뒤로하고, 남자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왠지 충격적인 진실을 들은 기분이 든다. 괜시래 권총에 손이 간다. 괴물들이 자신을 노리던 이유가 영혼 때문이었다니. 맘만 같아서야 영혼 같은 것 떼어줘 버리고 나가고 싶지만,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으니. 남자는 마음이 심란해져 발걸음을 멈추고 한숨을 내쉰다.


 "인-간!!"


 남자의 발 앞에 푸른 창이 박힌다. 남자는 기절할 듯이 놀라 뒤쪽으로 엉덩방아를 찧는다.


 "뭐, 뭐야!"


 그의 앞에 갑옷을 입은, 머리에 아가미가 달린 푸른빛 피부를 가진 괴물이 떨어진다.


 "네가 거슨과 대화하는 걸 들었다! 비록 그때는 거슨 때문에 널 죽이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라!"


 괴물은 푸른 창을 남자에게 겨눈다.


 "네놈의 영혼으로, 우리 괴물들은 자유를 되찾는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덤벼라! 나, 언다인이 널 상대해주마!"


 남자는 언다인을 당황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거슨이 경고한 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그 괴물을 만나게 되다니. 남자는 자신의 운을 탓하며 한숨을 내쉰다. 언다인의 창이 위협적으로 흔들리자, 남자는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난다.


 "무기를 꺼내라!"


 남자는 권총을 뽑아 들려고 했으나, 이내 어느 쪽이 라이터였는지 잊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으, 젠장! 하필 이럴 때!'


 "어서 무기를 꺼내!"


 "젠장, 될 대로 되라지!"


 둘 중 하나는 라이터. 남자는 도박하는 심정으로 오른쪽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든다. 그가 무기를 꺼내 들기 무섭게, 언다인이 창을 던진다. 남자는 기겁하며 오른쪽으로 구르고, 권총을 언다인에게 겨눈다.


 탁-


 권총의 끝에서 불꽃이 피어오른다.


 "아 미친 또 라이터야!"


 "불을 다룰 줄 알다니! 굉장한 녀석이군!"


 "닥쳐!"


 언다인은 창을 거칠게 휘두른다.


 "느아아아아! 죽어라!"


 남자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가며 라이터를 꽂아넣고 권총을 뽑으려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언다인이 창을 던져대는 통에 몸을 구를 수밖에 없었다.


 "흐억, 헉.."


 갑자기 격렬하게 움직였던 탓일까, 남자는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며 고민에 빠진다.


 '이대로 가면 저 창에 맞아 죽는다. 어떻게든 총을 뽑아야 해.'


 그의 눈앞에선, 언다인이 창을 던지고, 휘두르고..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남자는 결심한 듯 입술을 꽉 깨물고 움직이던 걸 멈추고 권총을 뽑아 든다. 그의 왼팔에 푸른 창이 꽂힌다.


 "끄으..!"


 왼팔에서 피가 새어 나온다. 고통을 참아가며 권총을 겨눈다. 두터운 갑옷을 지나, 머리를 조준한다. 이대로 방아쇠를 당기면..


 '죽겠지.'


 순간 망설임이 생긴다. 손가락이 덜덜 떨린다. 자신이, 살인을?


 "인간! 맞서지 않으면, 죽을 뿐이다!"


 그의 왼쪽 팔이 창에 찢겨나간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다. 허전한 왼쪽 팔에서 피가 쏟아져 나온다. 언다인이 남자의 목젖에 창을 들이민다.


 "흐, 그래. 맞서지 않으면.. 죽을 뿐이겠지."


 남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권총을 언다인의 이마에 겨눈다.


 "생선 친구, 충고 하나 해주지."


 언다인은 눈썹을 꿈틀댄다.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다음부턴, 투구를 쓰고 다니라고!"


 탕-!


 언다인의 왼쪽 시야가 사라진다. 엄청난 고통에 언다인은 비명을 지를뻔한다. 간신히 비명을 삼켰지만, 충격은 그대로 남아 언다인을 뒤로 밀쳐낸다.


 "크..악..!"


 팔다리가 덜덜 떨린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남자는 왼쪽 팔을 감싸며 간신히 다리를 놀린다. 언다인은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


 이를 부득부득 갈며 인간을 간신히 노려본다. 왼쪽 눈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온다.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언다인을 내려다본다.


 "내, 가.. 마음이, 약해서, 말, 이야. 차마 널 죽일 수가 없, 겠단 말이지."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쉰다. 잠시 현기증이 나서 비틀거린다.


 "나는, 살해를, 하지, 않아."


 그게 내 정의야. 친구.


 남자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힘겹게 발걸음을 옮긴다. 등 뒤에서 언다인이 남자를 부르는 듯 했지만, 남자는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빈혈이 오기 시작해, 그의 발걸음이 불안해진다.


 "으, 젠장.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되는데 말이야."


 식은땀이 멈추지 않는다. 얼굴이 창백해진다. 남자의 시야가 어두워진다.


 "으음.."


 감각이 멀어진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 귀를 울리던 폭포소리가 점점 흐릿해진다.


 "갑자기, 초콜릿이, 땡기네.."


 남자는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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