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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펫님. 왔습니다."
"그래? 아우우... 칠리녀석, 늦기는."

머펫은 여섯 팔을 사방으로 뻗으며 기지개를 폈다.
그리곤 옆에 있는 부하에게 내리겠다는 뜻을 표했고, 부하는 재빨리 문을 열고 머펫이 내릴 때 까지 허리를 숙였다.
퍼펫이 내리고나자 문을 붙잡고 있던 부하는 조심히 문을 닫고는 머펫의 뒤에 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차선 반대편에 차 한 대가 멈춰섰다.
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껍게 썬팅된 차 운전석에서, 보랏빛 불길이 일렁거렸다.
잠시 후, 차 문을 열고 내린 그릴비는 반대쪽에 서있는 머펫을 바라봤고, 머펫은 가볍게 웃으며 팔짱을 끼었다.
둘은 한 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서있었고, 그릴비가 먼저 말했다.

"비가 오는군."
"뭐?"

툭. 투툭.
그릴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머펫의 부하는 재빨리 차 트렁크를 열어 보랏빛 장우산을 펴곤 머펫에게 씌어주었다.
비가 오기 시작하자 부하는 등과 왼쪽 어깨가 다 젖었지만, 그런건 상관 없다는 듯 머펫에게 우산을 씌우는 데에만 집중했다.

"네 부하가 비를 다 맞고있군. 그 많은 팔 중 하나로 우산을 들고 들여보내는 게 어때?"
"네가 내 부하까지 신경 써주다니. 영광인데?"
"하, 너도 어느세 TV에 나오는 어릿광대처럼 말하게 되었네. 그러고보니 둘 다 눈알도 팔도 많군."

그릴비는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를 본 머펫의 부하의 눈가가 씰룩였다.
머펫은 세 개의 팔짱 중 하나를 풀어 부하의 우산을 받아들었다.

"...들어가."
"아닙니다. 머펫님."
"둘이서 할 얘기야. 들어가."
"예."

부하는 비를 맞으며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하고는 차 안으로 들어갔다.
머펫은 그릴비의 몸에서 끊임없이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며 입을 열었다.

"넌 우산 안써?"
"아쉽게도, 이정도 물에 꺼질 열정이 아니라서 말이지. 그리고 좋잖아? 이런 미스테리한 분위기. 안개 속의 매력남과 뒷세계 여인."

머펫은 그릴비의 말에 대꾸할 필요도 없다는 듯 남는 팔로 차의 반대편을 가리켰다.

"쌀쌀맞기는. 좋아. 좀 걷자고."

그릴비가 차도를 따라 걷기 시작하자 머펫도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거미아가씨? 혹시 우리 둘 사이가 좀 더 가까워 질 수는 없을까?"
"필요 없어."
"그러지 말고. 안 그래도 빗소리에 말이 묻히는데, 좀 다가오는 건 어때?"

머펫은 제자리에 멈춰 서고 팔을 그릴비를 향해 살짝 뻗고는 검지를 까딱거렸다.
그릴비는 그 손짓을 보고 차도를 건너 머펫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릴비가 어느정도 다가가자, 머펫은 손바닥을 펼쳐 더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했다.

"암흑가의 여인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니, 이것 참 엄청난 영광이군. 이왕 나에게 자비를 배푸는 거, 내가 그 우산을 들어도 되나?"
"그랬다간 내 우산이 타 버리겠지."
"아, 내가 그걸 생각 못했군."
"농담은 이쯤 하지. 시간 없어."

머펫은 품 안에서 담배를 꺼냈다.

"이런, 잠깐만. 암흑가의 대모가 고작 그런 담배를 필 줄은 몰랐는데."

머펫은 그릴비를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주머니에 담배를 집어넣었다.
그릴비는 자신의 가슴주머니에서 담배를 두 개 꺼내어 하나를 머펫에게 건내줬다.
담배를 받은 머펫은 그대로 그릴비의 손바닥에 담배를 지져 불을 붙였다.

"음... 라이터 대용은 그렇다 쳐도, 설마 재떨이로까진 쓰지 않을 거지?"
"봐서."

머펫은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그릴비는 머펫이 담배를 피는 걸 보며 오늘 손님은 까다로워라고 중얼거리곤 자기도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렇게 담배를 태우던 둘의 침묵을 먼저 깬 쪽은 머펫이었다.

"일 얘기나 하지."
"아하, 그 과묵하신 머펫님이 먼저 말씀을 꺼내시다니, 어지간히도 급하신 모양이군? 하긴, 나같은 일개 정보상을 직접 만나러..."
"입 다물어, 칠리."

머펫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그릴비는 담배를 빨아들이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내 곧 담배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이봐요, 아가씨. 그 표현, 다시는 쓰지마."
"..."

머펫은 조용히 담배를 빨아들였고, 담배 연기를 그릴비를 향해 뻗었다.
그릴비는 자기 눈 앞까지 오는 담배연기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보상을 하다보면, 별의 별 사람을 만나고 별의 별 취급을 다 받게되지. 그래서 어지간 한 말은 웃으며 넘길 수 있어야 하고."

그릴비는 남은 담배를 한꺼번에 빨아들이고 담배를 땅에 던졌다.

"그리고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부끄럽지만, 난 에봇산 최고의 정보상이야. 그런 나에게도 딱 세 가지, 싫은 게 있어."

머펫은 담배를 입에 물고 여섯 팔로 팔짱을 낀 체 그릴비를 바라봤다.

"그 중 하나가, 날 칠리라고 부르는거야."

그릴비의 눈에서 불길이 번뜩였다.

"...나머지 두 개는 뭐지?"
"그건 비밀. 알고 싶으면 돈을 내."

머펫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뱉어내고 자신의 담배를 두 개피 꺼내어 하나를 그릴비에게 건내주었다.

"좋아. 긍정으로 받아들이겠어."

그릴비는 자신의 손으로 두 담배에 모두 불을 붙이고 하나를 받아들였다.

"담배 값으로 하나 더 알려주지. 내가 싫어하는 것 두 번째는 돈 안되는 말이야."
"공짜 정보 고맙네."
"뭐, 방금 전은 내가 좀 무례했으니까. 이걸로 이해해주시길. 그리고 난 거래할 때 만큼은 화기애애한 걸 좋아한다고. 내가 좀 따뜻한 남자잖아?"

머펫은 그릴비의 농담이 싫지 않은 듯 작게 미소지었다.
그 모습을 본 그릴비는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

"좋아. 이제 거래하지. 이 나에게 사고 싶은 정보가 뭡니까?"
"정보를 사고 싶은 게 아니야."
"호오. 그럼?"
"널 사러 왔어."

그릴비는 머펫의 말에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이곤 담배를 빨았다.

"나 역시 당신같은 매력적인 여인을 보면 불타오르긴 하지만, 날 안았다간 문자 그대로 불타버릴지도 모르는데?"
"나와 동업 할 생각은 없나보네."

머펫은 그릴비의 농담을 무시했다.

"정보상이란게, 모두의 편이지만 모두의 적이기도 해야하는 직업이라. 누군가와 손을 잡기는 애매해서 말이지."
"아스고어에게서 독립할거야."

그릴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릴비는 입에 문 담배를 손으로 쥐고는 팔짱을 꼈다.

"여기서 그의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반란이라도 일으키시게?"
"그런건 아니야. 그저 경제적으로 독립하겠다는 거지."
"그 누구보다 잘 아실텐데. 공권력을 벗어난 뒷세계는 죽는다는 걸."

머펫은 우산을 두 손으로 들고 팔장을 하나 더 풀어 손에 담배를 쥐었다.

"알아. 그래서 오히려 더욱 공권력에 다가갈거야."
"매수를 하시겠다?"
"그런 셈이지."

그릴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고. 당장에 그 불사의 언다인만 봐도, 전혀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잖아?"
"돈은 통하지."
"글쎄? 그녀가 돈이 필요하긴 할까?"
"지금은 아니더라도, 넌 그녀가 돈을 필요로 하게 만들 방법을 알잖아."

그릴비는 침묵했다.

"이것도 정보라는 거군."
"내 밑천을 지금 드러낼 수는 없어서."
"그럼 다른 제안을 하지. 앞으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나에게 팔아."
"필요하면 수하들을 시켜서 네가 사가면 되지 않나?"
"그걸로는 부족해. 내가 원하는 건 내 정보까지 내가 사는 거야."
"호오?"

그릴비는 머펫의 말이 흥미롭다는 듯 반응을 보였다.

"매 주 월요일, 너에게 대금을 지급하도록 하지. 물론 선금이야."
"매일 아침. 내가 부르는 금액으로. 선금."
"그렇다면 네가 부른 금액의 40%를 선금으로 주고 정보를 듣고 나머지를 줄게."
"...이미 내가 할 말까지 다 예측하고 오셨군?"

머펫은 대답하지 않았다.
둘의 손에 쥔 담배가 조금씩 조금씩 타들어가며 연기를 피어올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살짝 약해졌다고 생각될 때 쯤, 그릴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딜 받아들이도록 하지."
"후회할 일은 없을거야."
"당연히 그래야지. 암흑계의 여제가 날 실망시키면 누가 날 만족시키겠어?"

머펫은 뒤돌아서 가버렸다.
비를 맞으며 머펫을 바라보던 그릴비는 머펫이 타고온 차에서 부하가 뛰쳐나와 우산을 받는 걸 지켜봤다.
그리곤 머펫이 탄 차가 시야에서 벗어나는 걸 보자 거의 다 타버린 담배를 마지막으로 피웠다.
생을 마감한 담배를 땅에 던진 그릴비는 자기 차로 돌아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후후후, 거미아가씨, 다 좋은데, 내가 세 번째로 싫어하는 게 돈 안되는 평화라서 말이지. 아스고어의 제안을 받아들이길 잘했군."

그릴비는 차를 몰고 자신의 가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