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리나케 로브를 제껴 몸의 상태를 확인했다.
없었다.
있어야할 것이 없었다.
꼬추말고 시발.
샌즈에게 꿰뚫려서 생겼을 무수한 자상이,
토리엘에게 입은 화상이,
없었다.
만약 내가 의식을 잃고 있었다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회복한 것이라면 최소한 흉터는 남아있어야 했다.
하지만 흉터조차도 남지 않다니?
아니 애초에, 내 기억이 맞는 것이라면 내가 살아있을 수가 없다.
모든게 내 망상이었을까?
방금 전까지 생생했던 그 모든 일들이 사실은 일어난 적 없는 허구였단 말인가?
명백히 기억과 모순되는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있게 해주는 적절한 가설 같은건 없었다.
아 그래, 뭐 인간세상과 괴물세상의 환경이 다르다보니 이 지하의 병균도 괴물버전으로 변이해서,
응? 괴물들한테는 감기 바이러스인게 인간에게는 향정신성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개싸이코같은 효과가 있다던지 하는 개소리는 이렇게 빡이 돌게 되면 누구라도 할 수 있지.
근데 그게 말이 되겠냐고!
사실일 수가 있냐고!
입 밖으로 내기 전부터 스스로 개소리라고 깔고들어가는게 무슨 가설이야.
진장맞을거, 내가 진짜 미쳐가긴 하나보네.
..그렇게 어물쩍 현실에서 도망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득 뇌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샌즈의 전화번호.
내가 경험했던 일들이 모두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라면,
그러니까 플라위에게 조종당하던 토리엘의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샌즈의 전화번호를 찾아내 전화를 걸었던게 단순한 내 망상이라면.
망상에 불과할 샌즈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연결이 될 리가 없다.
애초에 샌즈에게 휴대폰이 있는지 없는 지도 난 모르지 않는가.
반대로 말하면, 만약 연결이 되면..
그건 로또 맞을 행운이 비껴가서 망상 속 번호가 실제와 일치함으로써 날 더더욱 엿먹이는 방향으로 우주의 섭리가 비뚤어진게 아닌 이상..
모든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그 경우엔 대체 내가 어떻게 살아있는건지, 흔적조차 없는 흉터의 행방에 대한 의문이 남지만,
최소한 미친게 내가 아니라 이 세상이라는 건 증명할 수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이 전화 때문에 샌즈가 날 죽이러 찾아온다 하더라도, 시발 그 편이 차라리 더 기분이 덜 더러울 것 같다.
[움칫 둠칫 움칫 둠칫 움칫 둠칫 움칫 둠칫 / 땃땃땃 따~다 다다다~ 땃땃따다 땃다다~ 땃닷다다 땃땃다~다~]
한 번 들어봤던 골때리는 벨소리.
나는 좀 더 기다렸다.
"네, 샌즈입니다.
어, 처음보는 번호인데.
파피루스 너야?"
"..."
아.
막상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니까 이건 이것대로 또 골치아프네.
그러니까, 그게 모두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라 이거지?
"흠. 누군지는 몰라도 장난전화는 좋지 않아.
네 가족이 피땀흘려 번 돈이 이런 데에 쓰인다는 걸 안다면,
넌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게 될거야.
파피루스는 예외지만."
아 씨발 그만하면 됐다.
난 전화를 끊었다.
지옥? 죡같은 소리하고 있네.
죡도 없는 난쟁이 똥자루가.
토리엘이고 이 놈이고 일장연설 패시브설이 점점 굳어져만간다.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샌즈에게 멋대로 지껄여댔던 나 스스로도 뭔 소린지 모를 그 헛소리들 역시 망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부끄러워서 미치겠다.
이런 주제에 초면인 아줌마한테 말 많다고 일갈하는 꼬라지라니..
하..
어어어쨌든.
상황을 정리해보자.
원래대로라면 난 플라위에게 공격당했고, 토리엘의 전화를 받고 집에 갔더니 플라위가 토리엘을 조종해서 날 엿먹였고,
난 토리엘 휴대폰으로 샌즈를 불렀고, 샌즈가 나에게 치명상을 입히고나서 갑자기 모든게 없었던 일인 것 마냥 현실이 뒤틀렸지만 나는 그걸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게 망상이었다면 불가능할 샌즈와의 연락이 실제론 가능했으므로 '원래대로라면' 꼬리표를 단 일련의 상황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다.
잘려나가버린 '있었던 일들'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것이다.
사실 애초에 있었다는 표현 자체가 과거 현재 미래 이런거 울궈먹을 때나 쓰는 표현이다보니, 이 상황이 공상과학에서 나오던 시간여행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던 참이다.
TV에서 보던 희귀병걸린 박사는 일방통행적인 시간여행이 어쩌구 블랙홀 궤도를 도는 우주선이 어쩌구 했던 것 같지만..
어쨌든간에.
이게 시간여행이라면 저 위의 문제 내지 질문은 '내가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왔는가'라는 문장으로 바꿔야겠지.
하지만 이 미쳐돌아가는 세상이라면, 평행우주 같은 것도 말이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샌즈가 날 죽이던 순간 내 의식이 설명못할 뭐시기로 인해서 내가 죽지않고 살아있는 평행우주의 나에게 덧씌워졌다던지..
하지만 거기까지 상상하기 시작하면 내가 살고 죽는게 대수냐 무한한 다른 평행우주의 나는 금수저물고 태어나서 먹고 자고 싸고 박고 다 할텐데
왜 나는 시발 이따위 평행우주에서 구르고 있냐는둥 하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때문에 두둥실 떠올라 대기권 이탈할 거 같으니까 관두련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시간여행이라 이거지.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아냐. 질문이 잘못되었다.
원리를 내가 무슨 수로 알겠냐.
중요한건 어떻게 하냐는거지.
우주급 에러가 터져서 딱 한번 내가 과거로 돌아온거라면 그렇구만 하고 손놔버릴 수도 있지만, 생각을 해봐라.
내가 원하는 대로 과거로 돌아올 수 있다면?
어쩌면 지하세계로 떨어지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기억을 잃기 전으로, 다리가 병신이 되어 시한부 인생이 되기 전으로.
내 인생을 되찾고, 에봇산은 거들떠도 안보고..더 나아가면..
어쩌면 현실을 내 마음대로 뜯어고칠 수 있을 지도 모르지.
흠.
이제 이게 진짜로 미친 놈이지.
영화에서 미친 놈들이 떠들어대는거 보면 까고있네 싶었는데, 이제 그 지랄을 내가 하고있네.
오히려 생각하는 꼬라지가 너무 전형적이라서 제정신이 들었다.
그래도 짐작가는 건 있다.
왜, 있잖아.
내가 시간여행을 하기 직전의 상황말이다.
샌즈가 000에 들어갔고, 샌즈가 나를 공격했고, 그 공격으로 내가 치명상을 입었다. 그리고 곧 죽었을 테고..
그게 단서다.
하지만 그걸 전부 다 실험해볼 수는 없다.
만약 시간여행의 키를 쥔게 내가 아니라면,
치명상을 입는다, 죽는다는 조건을 시험해보는 날이 바로 내 제삿날이니까.
결국 모든게 돌고돌아 그 해골바가지한테로 모이는구나.
후....
인생 참 재밌어지네.
그 삭은 뼈다귀가 뭐라고..
하,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ㅏ하하하하핳하!!!
"에이 씨발!"
빡돌아서 지팡이를 던져버렸다.
벌써 손태가 타기 시작한 작대기가 경박한 울림을 내며 벽을..
잠깐만.
이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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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하근 개추야
굳욷
너 덕분에 검색을 해야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문학은 개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