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왔어."

아스리엘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차라가 어서 오라며 마중을 나왔겠지만, 오늘은 왠일인지 차라가 보이지 않았다.

"차라?"

아스리엘은 서류가방을 대충 신발장 옆에 올려놓고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을 둘러본 아스리엘은 주방에서 작게 들리는 끓는 소리에 차라가 주방에 있나 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주방에는 아무도 없었고, 아스리엘은 왼손으로 렌지불을 끄고 위에 있는 따뜻하게 대워진 냄비를 열고 스튜냄새를 맡았다.
맛있는 냄새에 침을 삼킨 아스리엘은 다시 뚜껑을 닫고 주방에서 나왔다.
거실로 들어서는 아스리엘의 눈에, 소파에 누워 잠든 차라가 보였다.
방금 전에는 쇼파 등받이에 가려서 안 보였다는 걸 깨달은 아스리엘은 조용히 차라에게 다가갔다.
잠든 차라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은 아스리엘은 차라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췄다.

"으음?"
"아, 깼어?"

아스리엘의 입술이 차라의 볼에 닿자 차라가 작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주변을 보던 차라는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샹! 냄비 올려놨는데!"
"내가 껐어. 안 탔더라."

아스리엘의 말에 차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아스리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차라의 옆에 앉았다.

"많이 피곤했나보네."
"응... 깜빡 잠들어버렸네."

차라는 입을 가리며 하품했고, 아스리엘은 그런 차라의 갈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차라는 기지개를 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 안 먹고 온거지? 지금 차려 줄게."
"아니야. 피곤해 보이는 데. 내가 할게."
"오른팔에 깁스 풀면 그때 하세요, 덜렁이 전하."

차라가 아스리엘의 오른팔을 가리켰다.

"이건 그때 차라가 넘어져서 그런 거잖아."
"그랬나? 난 왜 기억에 없지?"

차라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부엌으로 들어갔고, 아스리엘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내가 차린다니까."
"옷 부터 갈아입고 오던가."
"어차피 혼자선 못 갈아입어."

아스리엘의 말에 국자를 들었던 차라가 아스리엘을 바라봤다.
그리곤 국자를 내려놓고 아스리엘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왜... 왜?"

아스리엘은 미소지은 차라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을 더듬었다.
아스리엘의 바로 앞까지 온 차라는 아스리엘의 목을 양 팔로 껴안았다.

"후후... 그 말은 나보고 벗겨달라는 거야?"

아스리엘은 등 뒤를 타고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저녁도, 샤워도 필요없고 내가 우선이라는 거지? 하여간 변태새끼."
"아...아니 그게..."

아스리엘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흔들리는 아스리엘의 동공을 바라보던 차라는 미소짓고는 아스리엘을 끌어당기며 까치발을 들었다.
가볍게 입을 맞춘 차라는 한 걸음 물러서서 아스리엘에게 말했다.

"농담이야. 그럼 우리 애기 옷 벗는 것 부터 도와줄게."
"아니, 아니, 혼자서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스리엘은 재빨리 방으로 도망쳤고, 차라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차고 저녁 준비를 서둘렀다.
식탁에 저녁 식사가 다 차려질 때 쯤, 옷을 갈아입은 아스리엘이 다시 돌아왔다.
자리에 앉은 아스리엘은 차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다가 차라가 뒤돌아서자 급하게 정색하는 척 했다.

"잘 먹겠습니다."

아스리엘과 차라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왼손이 익숙하지 않은 아스리엘이 계속 음식을 흘리자 차라가 작게 웃었다.
그리곤 자신의 젓가락으로 아스리엘이 계속 휘젓던 샐러드를 집었다.

"아~"

아스리엘이 입을 벌리자, 차라는 샐러드로 입술을 한 번 닦고는 입 안에 넣어줬다.
샐러드를 먹은 아스리엘은 차라에게 물어봤다.

"입술은 왜 문지른거야?"
"키스할 때 '자기' 입술이 거칠었는 걸."

차라는 그렇게 말하며 고기를 집어 아스리엘의 입으로 가져갔다.
아스리엘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차라가 내민 고기를 받아먹었다.
그리곤 재빨리 왼손으로 스푼을 들어 스튜를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앗 뜨거!"

아스리엘은 스튜를 삼킨 뒤 비명을 내지르며 물을 마셨다.
차라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으으..."

아스리엘은 혀를 내밀고 입으로 숨을 내쉬며 혀를 식혔다.

"하여간, 미련하긴. 크게 아 해봐."

아스리엘은 차라의 말대로 했다.
차라는 젓가락으로 아스리엘의 혀를 누르며 말했다.

"입천장 다 까진거 아냐?"
"그허깅아잉거가햐"
"뭐래? 병신이."

차라가 젓가락을 때자 아스리엘은 입을 다물었다.
아스리엘은 다문 입술 사이로 혀를 몇 번 낼름거리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스리엘이 반찬으로 식기를 가져갈 때 마다, 차라가 먼저 그걸 집어 아스리엘의 입 안에 넣어줬다.

"차라, 너도 좀 먹어."
"싫어. 너 먹이는 게 재밌어."

아스리엘은 차라가 내민 음식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고, 차라는 미소지었다.
아스리엘이 따라 미소짓자 차라는 자신이 웃고있었다는 것에 화들짝 놀라 얼른 무표정한 척을 했다.
아스리엘은 그런 차라를 웃으며 바라보다가 왼손으로 미트볼을 젓가락으로 찍어서 차라에게 내밀었다.

"...뭐야?"

아스리엘은 말없이 젓가락을 살짝 흔들었고, 차라는 아스리엘을 살짝 노려보다 그걸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스리엘은 차라가 미트볼을 삼키자 말했다.

"자기야."
"왜?"
"사랑해."

차라는 갑작스러운 아스리엘의 말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내 피식 웃고는 젓가락으로 아스리엘의 코를 살짝 때렸다.

"아코."
"지랄한다. 징그럽게 왜 이래?"
"힝... 난 차라가 좋은데... 차란 아니야?"

아스리엘이 우는 척을 하자 차라는 웃기지도 않는다며 빵을 집어 아스리엘의 입에 우겨넣었다.

"읍!"
"닥치고 이거나 드세요."

아스리엘은 왼손으로 차라가 입에 물려준 빵을 잡고 열심히 씹어 삼키곤 미소지었고, 그 모습을 보는 차라도 미소로 답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