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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growth
번역본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undertale&no=178918
원저자 SociopathicArchangel / 번역자 hizru
영문학과 나와서 번역대학원 다니는 뼈박이다. 일단 번역자 인사부터. 번역해줘서 진짜 고맙다. 언갤럼들 세 번씩 절해야 한다. 난 하고 왔다. 토나왔을 거다. 분량 많고, 제목이랑 결말 심각하게 어렵고, 내용 때문에 번역하는 내내 감정이입돼서 우울했을 거다. 원래도 어려운데 언어 장벽을 넘어서 어감을 온전히 전달할 수가 없으니 많이 아쉬웠을 거 같다. 전보다 직역투가 줄어서 읽기 편해졌다. 고생했다.
이거 제목하고 결말은 원문과 같은 분량의 한국어론 오롯이 전달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내 해석으로 썰 풀어본다. 개인적인 생각이지 정답은 아니고, 한 번 읽고 멘붕한 다음 밤새서 쓴 거라 나중에 좀 고칠지도 모른다.
"Overgrowth"는 한국어에 정확히 대응되는 말이 없다.
영한사전에 '웃자람'이라고 나오기도 하는데 그건 식물이 가늘고 길게 약하게 자라는 거니까 안 어울려서 구글링해봄.
실제로는 위 사진처럼 식물이 지표면을 빽빽하게 뒤덮는 현상이나,
사람 몸에 원래 있는 박테리아가 병적으로 과도하게 증식하는 걸 가리키는 것 같다.
작중에서는 노란 꽃이 저 짤의 식물처럼 프리스크를 '뒤덮는다'는 의미일 테고,
점진적으로 프리스크를 마비시키고 고통을 준단 점에서 병적인 세균 증식이 연상되기도 한다.
'over-' + 'growth'로 끊어서 해석하면 번역본 제목 '과성장' 그대로 '너무 많이 자랐다'는 건데,
난 그게 작은 몸에 '버거울 정도로' 꽃이 너무 많이 달린 느낌하고도 이어지는 것 같고,
프리스크가 어린아이인데도 어른스럽다 못해 성녀처럼 자비만 베푸는 게 정신적으로 '지나치게 성숙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웃자람'이나 '덧자람'으로 옮겨봄직도 하지만 '웃자람'은 빽빽함을 담을 수 없고 '덧자람'은 성숙을 담을 수 없다.
"똑똑." 누구야? 프리스크의 목소리가 머리에 덧그려진다. "꽃……." 제발. 어떤 꽃? "내가 오늘 피워내려는……." 돌아와. "……sweetheart?" 제발.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
그리고 결말부. 영어권에 원래 이런 유치한 농담이 있다고 한다. ("Knock-knock joke")
A: 똑똑
B: 누구야?
A: □□.
B: 어떤 □□?
A: (□□를 이용한 드립이나 뻘소리)
샌즈는 언더테일에서 토리엘이랑 그걸 한 거고. 저 세계의 문똑똑 농담은 토리엘을 웃기고 프리스크를 구했는데 이 세계에선 샌즈 농담에 웃어주던 유일한 사람이자 샌즈에게 제일 소중해진 사람인 프리스크가 죽은 뒤에 걔한테 하는 말이라서 존나 슬픈 거다.
"똑똑." - 문똑똑 농담 시작.
누구야? - 프리스크의 목소리가 묻는다. 머릿속으로 들린 것이므로 영혼은 아니고 환청 또는 상상일 것이다.
"꽃……." - 샌즈의 대답. 단 한 글잔데 읽는 사람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본다. 괴물들이 자유를 얻은 뒤 폐허 입구엔 꽃이 없다. 작품 전체로 보면 꽃은 프리스크의 상징이다. 프리스크가 겪은 모든 고통의 증거이자, 몸을 잠식해 감에 따라서 고통의 직접적 원인이 되기도 한다. 프리스크를 완전히 죽인 원인인데, 세계를 규정하는 프리스크만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작중의 특수한 연관성과 별개로 꽃 자체는 아름다움의 대표적인 기호여서, 프리스크가 샌즈에게 꽃과 같이 아름답고 연약한 존재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샌즈가 자기를 꽃이라고 하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프리스크가 꽃이 되어가며 샌즈를 바꿔놓았기에, 이제는 샌즈도 평생 그를 기리고 닮아가겠다는 약속이려나.
제발. - 샌즈의 독백. 가상의 대화에서조차 말로 꺼내지 못하는 속마음이 따로 있다.
어떤 꽃? - 문똑똑 농담 패턴 그대로.
"내가 오늘 피워내려는……" - 패턴대로면 '꽃'을 이용한 드립이 들어가야 할 부분이다. 드립처럼 던지는 진심일 거다. 원문에선 '네가 오늘…'이고 번역본에선 '내가 오늘 피워내려는…'인데, '꽃'의 의미부터가 독자가 해석하기 나름이고 역자는 자신의 해석을 전제로 뉘앙스에 맞게 고친 것 같다. 위의 '꽃'이 프리스크에 대한 기억의 결정체라면 프리스크가 다시 로드하길 절절히 바라는 것 같다. 샌즈 자신이 프리스크를 기리고 닮아가겠단 의미라면 샌즈 자신이 '내가 오늘 피워내려는 꽃'이 되니 앞뒤가 맞을 수 있다.
돌아와. - 독백
"……sweetheart?" - 이제 농담이 아니다.
제발. - 독백. 원문에선 'Come back. / Soon.'인데 의미 차이가 별로 없을 뿐더러 샌즈가 들을 수 있었던 프리스크의 마지막 말이 '제발' 2번인 것과 맞아떨어지는 초월번역.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제 언더테일 불살루트와 비교하는 개인적인 소감. 내가 일반/불살루트에서 자비를 베푼 건 착해서가 아니라 자비 시스템이 있고 불살 엔딩이 있기 때문이었다. 레벨업은 불살루트에선 어차피 필요가 없고, 피통이 낮아서 죽어도 로드하면 그만이고, 게임의 시스템 자체가 사냥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자비의 여지를 충분히 남겨 두고 있다. 게다가 괴물들이 (대체로) 존나 착하다. 착하니까 살려주고, 착하니까 친구 되고, 착한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세계를 구하고 모두 다 행복해지고. 순수하고 이상적이야. 그렇기에 엔딩 본 여운이 덜 가셨을 때 다른 게임을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자비를 베풀면서 몰입할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이런 상냥한 세계가 아니라면 어려울 것 같다.
플라워펠 세계는 언더테일 세계와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설원, 습지, 마그마 지대의 자연마저 원작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극한의 환경으로 묘사된다. 괴물들은 '죽거나 죽이거나'라며 공격해 오고, 실제로 죽이니까, 착하든 나쁘든 누구라도 정당방위를 하려 할 거야. 먼저 악수를 청하고 동생이랑 개그하는 샌즈와 친구가 되기는 쉽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죽이고 수십 번 죽는 걸 방치하는 샌즈에게 계속해서 친절을 베푸는 Overgrowth의 프리스크는 진짜 성녀다. 아니 반인반신이다. 제 몸의 고통이 극한까지 치닫는 와중에도 자비로 일관하는 건 예수나 하던 짓이다. 결국 희생해서 모두 다 해방시키는 거에서도 그 양반 생각 나더라. 답답하다고 느낀 갤럼들도 많을 거다. 그건 정상적인 인간의 방식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아름답긴 하잖아. 가장 나쁜 사람도 바뀔 수 있나, 노력만 한다면 모두가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나? 원작의 몰살루트가 플레이어를 저격하여 NO라고 말하게 한다면, 이 갓프리스크는 원수를 사랑하여 답을 YES로 고친다.
언더테일은 세이브-로드를 컨텐츠로 승격시켰다. 오메가 플라위전에서처럼 세계의 법칙을 뛰어넘는 '의지'로 써먹기도 하고, 플레이어의 선택에 대해 생각할 거릴 늘려주는 건 기발했지만, '프리스크가 계속 죽는 점'을 변호할 수는 없다. 플라워펠은 그걸 끔찍하고 아름답게 비틀어 버렸다. 언더테일의 노란 꽃조차 시작 직후 플라위의 '죽거나 죽이거나'를 통해, 차라의 죽음을 통해, 아스리엘의 사념이자 무덤을 통해 수시로 죽음과 연관된다. Overgrowth에서는 그 모든 것에 더해 프리스크의 죽음과 직결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작중의 프리스크가 처음으로 믿을 수 있었던 친구이자 샌즈와 더불어 계속 의지하는 플라위 역시 노란 꽃이다. 결말해석에서 언급했듯 모순적 다각적인 꽃의 상징은 매력적이다.
스노우딘 도서관에 '괴물의 영혼은 사랑, 자비, 연민으로 이뤄지지만, 인간 영혼엔 그런 것들이 없어도 되는 것 같다.'는 책이 있다. 언더테일식 자비는 언더테일 세계이기에 가능하다. Overgrowth의 자비는 작중의 프리스크가 괴물같이(수사적 표현이다) 착했기에 가능하며, 무자비한 언더펠 세계관이기에 더욱 기적적이다. 플레이어이자 독자인 우리가 속하는 인간 세계는 불살루트처럼 곱지도 언더펠처럼 참혹하지도 않고 온갖 것들이 뒤섞여 있으나, 가끔 쓰레기장에 핀 노란 꽃 같은 작품을 보면 잠시나마 세상이 좀 달라 보인다. 쓰레기장 앞에 사는 냅스터블룩이 쓰레기처럼 누워 있는다고 하지만 골방에서 온 우주의 별을 보곤 하는 것처럼. 신도 괴물도 아니며 그저 하찮은 인간인 나는, 오늘도 노란 꽃을 돋보이게 하는 쓰레기처럼 뼈형제 근친물 따위나 번역할 거다.
분석글 개추
개추
저 농담부분은 다시생각해도 너무 슬프다
개추
마지막줄이마음이드네 일해라 핫산
갤에서 번역하던 사람이랑 완결판 올린 사람이랑 다를걸?
그런가 정확히 모르니까 닉 지운다
념글저격성공
저거 마지막 독백 진짜 잘 넣었다고 생각함 - DCW
마지막보고 진짜 여운심하게남더라
개추
개추 드림
개추!
플라워펠 세계관은 프리스크가 어른으로 나오긴하지만...개추
헉 해석 너무 마음에 들어...사실 마지막 부분 머리 싸매고 싸매다 겨우 넣은건데 나쁜 반응은 아니라 다행인 것 같아ㅠㅠㅠ 고마워!!
이런거 좋다..ㅠ
개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