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박이는 아니지만 2차창작 볼때마다 샌즈가 고통받는걸 보고 왜 저렇게 멘탈을 박살 못내서 안달일까...했는데

직접 언더테일 소재로 소설을 쓰다보니까 샌즈가 정말 어디로 도망치든 구원받을 수 없는 사면초가 상태의 인물이란걸 몸소 깨달음.

머더샌즈가 설득력 있다고 느낀 게 샌즈와 플라위는 굉장히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종이 한장 차이뿐인 인물이다.
우선 둘 다 세이브와 로드, 리셋이라는 상위 개념과 자신들의 세계가 게임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

플라위는 어린아이답게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다 호기심을 이유로 사람을 죽이기 시작하고, 종국엔 자기 가족이었던 인물조차 벌레 잡듯 간단하게 죽이는 살인마가 된다.
이건 뼈대인 아스리엘이 악해서도 아니고 단순히 철없어서도 아니야. 플라위는 플레이어인 우리들의 거울 같은 존재다.


"늘 시간이 불규칙한 건 '이례'들이 스스로 불행하다 믿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늘 생각했지.
그리고 원하는 걸 얻고 나면, 그 짓을 멈춰줄 거라 생각했어.

아마도 걔들이 원하던 건... 글쎄.
좋은 음식, 따뜻한 농담, 좋은 친구들이었으려나.

근데 그럴 리가 없지, 안 그래?
그래, 넌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이야"


플레이어는 실제로 언더테일이라는 게임의 상위에 있는 존재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게임 속 인물의 생사를 결정하고 모든 것을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들 수 있지만 플라위는 게임 속의 존재이면서 자신에게 너무 벅찬 상위의 힘을 가지게 되어버린 것뿐이다. 최소한 플라위는 누군가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고 그걸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된 거지만 우리는 그렇지조차 않잖아?

우리는 언더테일의 인물들은 스크립트에 맞춰 말하는 데이터 쪼가리란 사실을 알고 있고, 현실에서 이런 데이터 쪼가리를 실제 사람처럼 존중한다고 주장해 봤자 미친놈 취급 이외에는 돌아올 만한 반응이 없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들을 존중할 수 없고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괴물들에게 있어 우리는 괴물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린 시공간의 연속성에 막대한 변칙이 있다는 걸 발견했어.
시공간이 좌충우돌 움직이고, 멈추고 다시 시작하고.

그러다 갑자기, 모든 것이 끝나버려.

헤 헤 헤...
네가 한 짓이지, 응?"


연구원으로서 그는 자기가 있는 세상이 무언가의 하위에 놓여 있고 상위에 있는 누군가가 원한다면 사람들이 공들여 이루어낸 일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바닷가의 모래성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터무니없이 초우주적인 존재를 알아 버렸기에, 세상 만물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공허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이 게임에서 몇 없는, '상위의 존재(자신이 '이례(the anomaly)'라 칭하는)'를 깨달은 인물 중 하나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서 내가 매사에 최선을 다하질 못 해.

...아니면 그저 내 게으름에 대한 같잖은 변명인 건가?
알 게 뭐야."


결국 샌즈는 현실을 직시하는 걸 포기하고 냉소와 허무주의만으로 버텨내고 있지만 그 안엔 살아가고자 하는 목적도, 자신이 사는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도 이젠 아무것도 안 남아 있다. 바람이 불면 그에 맞춰 흔들릴 뿐인 갈대나 마찬가지인 것.


"자신의 선택을 되돌리는 힘이 있는 자는 그에 걸맞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넌 어떤 느낌인지 이해 못 할 거야.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경고 없이...
모든 게 다 되돌려진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 말야.

이봐, 난 이미 되돌아가는 걸 포기했어.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것도 더는 관심 없고.

나간다고 한들...
아무런 기억 없이, 다시 여기로 되돌아와 있을 테니까. 그렇지?"


그런 상황에서 시간을 마구잡이로 되감을 수 있는 주인공이 등장했다. 자신의 노력이 세이브로드로 덧칠되는걸 보면서 자기가 있는 세계가 상위의 누군가에 의해서 좌지우지될 수 있는 하찮은 물건이란 사실을 알고 무의미한 흐름이 반복된다는 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상위의 존재가 버젓이 돌아다니는 걸 곱게 봐주진 못하겠지.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불살 루트에서조차 샌즈는 주인공을 불신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다.
언제 이 게임에 질려서 때려치울지 모르는 존재를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자신들을 벌레만도 못한 하위의 존재로 보고 자신이 원한다면 '죽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같은 사소한 이유로 언제든지 옆에 있는 사람을 죽여버릴 수 있는 존재를 도와줄 이유가 있을까?

설령 우리가 조작을 잘 해서 불살 엔딩을 본다고 해도 이 게임은 우리는 결국엔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선을 그어 버린다. 우리가 감정을 이입하고 조종했던 것이 우리의 분신이 아닌 게임 내의 별개의 인물 프리스크임이 드러나고 그들과 함께 행복한 엔딩을 보내는 것도 프리스크. 처음부터 우리는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들'의 해피엔딩을 지켜보는 것뿐이다. 우리들 역시 샌즈나 플라위와 다를 바 없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언제든지 질린다고 느낀다면 때려치울 수 있는 존재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스크립트에 맞춰 말하는 데이터 쪼가리라는 것이 명백한 상대를 두고 진심으로 공감하며 소통하는 게 정말로 가능할까?

그리고 많은 사람이 최후에 선택하게 되는 몰살 루트는 우리와 그들 사이의 단절을 더욱 명백하게 한다. 그들이 꼴에 주제도 모르고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든, 괴물들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든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있든 그건 프로그래밍된 대본에 불과하고, 이것들은 플레이어의 손에 조각조각 해체되어 쓰레기처럼 버려진다.
플라위는 드디어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상위의 존재를 발견하고 자신을 구원해 주리라 믿으며 집착하지만 그 역시 결국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베어버릴 수 있는 존재다.

아직 자신이 사는 세계에 대한 최소한의 인도심을 가지고 있는 샌즈는 여태껏 주인공을 심판하고 자신의 위치에 책임을 가질 것을 부탁하지만 이 역시 절대적인 힘 앞에서 무의미해진 지금, 그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플레이어가 게임을 리셋하기만을 바라며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만일 여기서 플레이어가 싫증을 느끼고 게임을 리셋해 최소한 덜 폭력적인 길을 선택한다면 일단 샌즈의 승리라고 할 수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구원받았다고 하기는 힘들다. 자기 바로 앞에 있는 초우주적인 존재가 언제 또 변덕을 부려 세계를 갈아엎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걷듯 지내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다. 여기서 진심으로 플레이어가 샌즈의 자비에 감화되어 불살 루트를 선택한다 해도, 그가 어떤 미래를 보낼지는 지금까지 말했듯이 플레이어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당장이라도 샌즈가 자신이 사는 세계에 대한 모든 애착을 버리고 상위의 존재인 플레이어를 배제하겠다는 의지만으로 주위의 모든 것들을 쓰레기처럼 내던져 버린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가 아직도 세상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파피루스 같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인데, 이것조차 무의미한 것임을 깨닫는다면 샌즈에게는 더 이상 남은 것도 없고 거칠 것도 없게 된다.

결론은 역시...샌즈가 이성을 붙잡고 있을 만한 유일한 이유인 파피루스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