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반갑네. 이곳까지 어떻게 그리 빨리도 왔는가?\"
\"조용히 해, 염소대가리. 그걸 알면서 물어보나?\"
칼같이 날아오는 날카로운 대꾸에 아스고어는 쓴웃음을 지었다.
빛이 창을 통해 비스듬히 내려와 석양이 지는 것과도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을 잠시간 바라보던 아스고어는 간청하듯 말을 이었다.
\"우리가 굳이 싸울 필요는 없다네. 차라도 한잔 하며 이야기를 먼저 나눠보는건 어떤가?\"
\"거 참 잡설이 길기도 해라. 어짜피 내가 죽던 당신이 죽던 누구하나는 죽을텐데 뭐하러?\"
두두둑 소리가 나도록 손을 꺾으며 인간이 빈정대듯 말했다.
\"자네 실력은 들어서 잘 알고있네. 워터폴에서 로얄가드 셋을 한번에 쓰러트렸다고 하던데.\"
\"그 갑옷입은 허수아비들한테 무려 \'로얄가드\'라는 이름씩이나 붙여주시다니, 수준한번 알만해.\"
\"계속 그리 빈정댈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말은 그렇게 해도 자네가 여태껏 아무도 해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네. 뭐 조금... 혼쭐을 내주긴 한모양이다만.\"
\'혼쭐을 내다\'에서 잠시 피식 웃은 인간은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날 막는다고 죽여댄다면 내가 당신과 다를게 대체 뭐지?\"
\"너 이 망할 인간자식! 감히 대왕님께 뭐가 어째?\"
뒤로 물러나있던 젊은 로얄가드 한 명이 더 참지 못하고 질러댄 소리에 아스고어가 몸을 돌렸다.
\"화내지 말게. 내가 알아서 다 해결할테니 가만히만 있어주게나.\"
\"하지만 저자식이...\"
\"부탁하네.\"
아스고어의 간절한 눈빛에 나섰던 로얄가드가 움찔하고는 툴툴대며 조용해졌다.
\"이 업은 내가 짊어지는 것으로 족하네. 자네들의 손을 더럽힐 이유는 전혀 없어. 그리고... 별로 반박할 여지도 없고.\"
로얄가드들의 얼굴이 제각기 변했다. 얼굴으로 절대 그렇지 않다고 외쳐대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며 아스고어가 인간에게 말했다.
\"날씨 한번 좋지않은가?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나진 않겠군. 겨울이 다되어가니 말일세.\"
\"아까부터 대체 무슨말을 하려는거야?\"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는 인간에게 아스고어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의 목숨이 다할때 까지 이곳에서 편안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하려 했네만... 전혀 들을 생각은 없어보이는군?\"
\"그럴리가.\"
인간 사내가 코웃음치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싸움에 익숙한 자의 자세였다.
\"모두들 여기서 나가게.\"
\"하지만 폐하...\"
\"왕으로서 내리는 명령일세. 같은 말을 반복하도록 하지는 말아줬으면 하네.\"
거의 볼 수 없는 아스고어의 단호한 모습에 당황한 로얄가드들은 침묵을 지킨 채로 밖으로 나갔다.
\"꼴에 승부는 정정당당히 하시겠다, 뭐 그런거냐?\"
\"자네가 만일 나를 이긴다 하더라도 저들이 옆에 있다면 나갈수 없지 않겠는가. 자네에게도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에 불과하네.\"
\"자신감의 표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허허, 그런 의도는 아니었네만.\"
억지로 지은 것이 티나는 웃음을 짓던 아스고어의 얼굴에서 미소가 점점 사라졌다.
\"그저... 미안하네.\"
고개를 숙인 아스고어의 망토 속에서 거대하고 붉은 삼지창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인간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ㅡㅡㅡㅡㅡㅡㅡ
\"쿠...쿨럭..\"
인간의 복부를 관통한 창은 벽에까지 박혔다. 창자루를 놓은 아스고어는 그대로 허물어져 무릎꿇었다. 그의 몸 곳곳이 불안정하게 먼지로 화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거 참...빌어먹...게..아프..쿨럭!\"
인간이 피를 토해내며 고개를 숙이자 반쯤 벗겨졌던 반다나가 그대로 피웅덩이에 떨어졌다.
\"미안...미안하네...\"
고개를 숙인 아스고어가 웅얼거렸다.
\"내... 내 동생도... 이렇게 아팠..겠지... 응..? 쿨럭.. 젠..장할... 고작, 고작 열살 짜리... 애를..\"
\"..레베카... 그녀가 자네의 동생이었나?\"
\"자신이.. 죽인 사...람의... 이, 이름을... 쿨럭! 외우는.. 악취미까지 있었나...? 그르르르..\"
아스고어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려 인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죽음이 드리운 가무잡잡한 얼굴은 그때 그 꼬마가 업고 왔던 아이와 묘하게 닮아있었다.
\"그래... 그랬군. 동생을 찾으려 이곳으로 온 것이었나...\"
\"그래.. 니놈, 니놈이 죽인... 꼬마애를... 망할새끼야! 어떻게 그런 어린 애를 죽일 수가 있... 쿨럭! 커헉!\"
한차례 발작하던 인간이 피를 한움큼 토해내곤 다시 가는 숨을 토해냈다.
\"베..베키... 나도 이...렇게 아픈..데... 넌... 얼마나, 얼마나 아팠을...까...\"
청년의 얼굴을 타고 흐른 눈물방울이 조금씩 굳어가는 피웅덩이 위에 떨어졌다.
아스고어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기변호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인간의 마음이 편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해명은 필요했다. 그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날 믿기 힘들겠지만, 부디 믿어주게나. 그녀는 살해당하지 않았네. 워터폴의 다리에서 실족했다고 하더군. \"
\"쿨럭... 거짓..말....\"
\"맹세하네. 나는 사실만을 이야기했네. 레베카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했을 걸세. 또... 그녀의 죽음을 슬퍼해줄 멋진 친구도 만났고 말일세.\"
아스고어의 얼굴을 노려보던 인간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댁 말은...못믿겠어...직접 가서...물어볼거야...\"
\"......\"
아스고어가 입을 열었으나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다시 입을 닫았다. 그는 품속에서 붉은 리본을 하나 꺼내 인간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건...\"
커다래진 인간의 눈이 다시 젖어들었다.
잠시간 리본을 꼭 움켜쥐고 사그라드는 숨결을 붙든 그는 고개를 들고 아스고어에게 말했다.
\"나...나는... 토...머스....\" 인간의 가파라진 호흡이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었다. \"기억.... 꼭... 네가...죽인...이름...\"
\"...알겠네, 토머스.\"
껴안기엔 너무 작은 리본을 소중하게 끌어안은 인간은 그의 여동생의 이름을 들릴락 말락하게 속삭이는것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무릎을 꿇은 아스고어는 한동안 그 앞에서 죽음을 애도하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윽고, 아스고어는 품 속에서 용기를 꺼내어 인간의 가슴에 가져다대었다. 그의 머리칼 색과도 닮은 주황빛의 영혼이 용기 안에 자리잡았다. 비틀대며 일어나 창자루를 잡은 아스고어는 자신에게 그것을 뽑을만 한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사력을 다했다. 그가 다섯 번째로 창을 잡아당겼을 때 벽에서 돌가루가 부서져내리는 파스스 소리와 함께 창이 벽에서 뽑혀져 나왔다. 창을 내팽겨친 아스고어는 앞으로 고꾸라진 시신을 바로 눕히며 중얼댔다.
\"날 절대 용서하지 말게나, 인간...\"
아마도 그는 머지 않아 새로운 이름들을 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들은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그가 저지른 죄악을 잊지 못하게 해 줄 것이다.
아스고어는 하늘빛 영혼의 옆에 주황빛 영혼을 놓았다.
꺾이고 흐트러진 꽃무더기 속에서 용기에 담긴 두 영혼의 빛이 서로를 끌어안듯 은은하게 섞여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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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폰으로 써갈기는 2편. 왠지 주황은 하늘과 남매관계일거같았음
하늘ㅡ인내, 리본 장난감칼
10살 여자. 가무잡잡한 피부에 검고 짧은 곱슬머리 미소와 애교가 많고 붙임성이 좋다.
친구들과 장난치다 에봇산에 실수로 떨어짐. 스노딘에서 사귀게된 꼬마 괴물친구와 워터폴을 건너다 다리에서 실족사. 시신을 친구가 아스고어에게 가져감
주황ㅡ용기, 반다나 장갑
21살 남자, 가무잡잡한 피부에 주홍빛 머리, 무대포체질에 자신만만함, 동생을 매우아낌
하늘영혼의 오빠로 동생을 찾기위해 에봇산에 의도적으로 뛰어듬. 길을 가로막는 괴물들을 줘패가며 배트맨식 불살을 진행하다 아스고어에게 패배함.
줘팸
더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