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 버거팬츠는 오늘도 생계를 위해 이 한 몸 팔아가며 노동중이다. 도시에서 이 일 저 일 하며 온갖 고생 다해봤다. 최저시급도 제대로 못받아먹고 날 혹사시키던 사장새끼한테서 겨우 벗어나 마지막으로 일했던 곳이 웬 호텔의 매점이었는데 사장이 쥐도새도 모르게 종적을 감추는 탓에 나도 같이 쫓겨났다. 개인사정이 있었는지 미안하다며 퇴직금이라고 해야하나 직원들한테 꽤 두둑한 돈을 통장에 넣어줬길래 알바에 신물이 나기도 하고 꿈도 없고 재주도 없고 가방끈도 짧으니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자급자족으로 몸에 좋은 것이나 먹고 오래살잔 생각으로 그 돈들고 귀농을 결정했다.
#2
처음엔 힘들었다. 태생이 도시사람이라 아는 사람도 없고 토끼가 제발로 물 속에 뛰어들어가는 격이었으니까. 답답했는데 답답하고 정신없기까지한 도시보다는 답답하기만 한 농촌이 훨씬 나을거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었지 뭐. 지도에서 동전 던지기 해서 운명이 정해주는 곳으로 갔는데 웬걸 마음씨 좋은 털복숭이 이장님이 '자네를 보니 딱 어울리는 일이 하나 떠오르는 구만.' 이라며 다짜고짜 일거리를 주데? 들어보니 시급도 나쁘지 않아서 와 이건정말 이득이다 하고 출근했는데 첫날부터 가장 후줄근한 옷 입고 밭으로 오라그러길래 노동인가보다 했지. 그렇게 난 허수아비가 되었다.
#3
처음엔 좀 골때리다가 나중엔 누가 안시켜도 프로의식 생기더라. 집에가서 오즈의 마법사였나 허수아비 나오는거 찾아보고 옷이랑 지푸라기도 그럴싸하게 단 다음에 팔이랑 다리에 밧줄 안아프게 묶는 법도 알아냈다. 허수아비로 일하고 있는데 사람인거 티나면 창피하기도 하고 내가 얼마나 허수아비처럼 보이나 하는 묘한 오기가 생기기도 했어. 당연한 얘기지만 일은 쉬웠다. 근데 왜 진짜 허수아비를 안쓰고 살아있는 걸 매달아 놓나 했더니 여기 새들이 참 깡다구가 쎘다. 인형 세워놓으면 안움직이는거 다 알고 사람이 쫓아도 자기 안때리는거 알면 무시하는 일이 다반사래. 어떡하겠어. 좀 더 디테일하게 겁을 주기로 결정했지. 처음엔 정말 죽어있는 허수아비처럼 숨도 허파 반 씩만 써서 조심스럽게 쉬다가 짹짹이들이 날아와서 내 어깨에 궁딩이 내밀면 딱 두마디만 해. 야. 가. 충격받았겠지. 지금까지 참새 취급이라고 하면은 사람들이 다 빡대가리로 알고 훠이훠이 팔만휘두르거나 긴 막대기같은 걸로 쫓는 시늉만 했는데 허수아비가 자기한테 말을 걸어봐. 반은 무서워하고 반은 감동해서 날아가는데 어제 한 마리는 울면서 돌아가더라. 저녁에 또 왔길래 퇴근하는 길에 술 사줬어. 나중에 들어보니까 쌀알 그거 맛있지도 않은거 지들도 참새 취급 받고 싶어서 오기 좀 부려봤데.
#4
일한지 얼마 안돼서 좀 희한한 새를 봤어. 주변에 물도 없는데 오리 같은게 날아와서 (나는 것도 좀 힘들어 보였다.) 앉아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르겠는데 뭘 먹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어깨 위에서 계속 잠만 자고 있어. 깨워도 안가고 소리쳐도 안가고 그냥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아. 자꾸 보니까 귀엽고 참새랑 다른 매력이 있길래 내버려 두기로 했어. 해가 되는 것도 아닌데 때되면 알아서 가려니 했지. 근데 저번에 술사줬던 애가 또 와서 왜 오리는 안 내쫓냐고 이럴거면 그땐 왜그랬냐고 전여친처럼 까다롭게 굴길래 미안하다고 밭은 많으니까 나보다 좋은 허수아비 만나라 그랬어. 근데 너 말술이던데 암컷이었니, 간이 튼튼한가보다.
#5
이 동네에 엿장수가 있는데 어느 날은 엿팔고, 어느 날은 달고나 팔고, 어느날은 아이스케키 팔고 그래. 다른 날은 다 조용한데 아이스케키 파는 날만 '나이스- 께끼-!' 하면서 돌아다니더라. 근데 이새끼가 안산다니까 자꾸 나한테 팔러온다. 처음엔 진짜 하나라도 팔아 보려고 오는 것 같았는데 나중엔 얘가 내가 못움직이는 걸 아니까 재밌어서 오는 것 같았어. 초등학생같이 자꾸 나보고 '엿먹을래?' 하고 자기 혼자 좋다고 재밌다고 막 웃길래 당장 무력으로 밧줄 풀고 지푸라기로 맴매하고 싶었는데 오리한테 달고나 주길래 참았다. 나이스께끼는 비오는 날이랑 눈 오는 날에만 판다더라. 그게 그런 날 팔리나. 푸르뎅뎅 하게 생겨가지고 쫌 이상한 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6
내가 잘못 본건지 모르겠는데 우리 동네에서 내가 전에 일하던 호텔 사장님이나 아님 사장님 닮은 사람을 본 거 같다. 자주 보진 못했는데 흔하게 생기신 분은 아니었거든. 머리도 남자치고 긴 편이고 키도 크고 무엇보다 그 사람 특유의 자뻑이라고 해야하나. 옆에 있으면 묘하게 사람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내가 취향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연예인 하시던 분이었다. 호텔에서 일할 때 매장에 무조건 사장님 나오는 쇼 틀어놔야 해서 가끔 봤는데 열심히 본 건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나 쫓겨나기 전에 티비에서 방송을 쉰다는 둥 죄송하다는 둥 그랬던 기억이 난다. 나 일하는 밭 앞에 있는 큰 길로 가끔 지나다니던데 내가 박혀있는 장소가 밭 한복판이다 보니까 동네도 좁고 해서 누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웬만하면 대충 보인단 말이야? 그 사장님 닮은 남자가 이번에 주인 바뀌었다던 민박집 있는 방향으로 가더라고. 나중에 동네 주민들한테 물어보니까 그 사람이 하는거 맞데. 퇴근하고 보러갔더니 인테리어 꾸며 놓은게 어딘가 낯이 익더라. 그 사람도 도시에서 이사온지 얼마 안됐다던데. 사장님이든 아니든 비슷한 처지에 나중에 말이나 한 번 붙여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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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생각나서 써봤어...
#7~9
버거팬츠 열심히 사네 - DCW
귀농테일 조라 웃기면서 한편으론 참신하드라
ㅋㅋㅋㅋㅋㅋ 참새 놀라는 거 왤케 귀엽냐
ㅋㅋㅋㅋㅋㅋ존나 푸근함
더써줘
개추얌
1인칭 언갤문학 보고싶었는데ㅋㅋㅋㅋㅋ허수아비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