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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는, 자신이 붙어다니는 소년이 확실히 정신이 나갔다고 자신 할 수 있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 소년은 말하는 꽃에 공격받아 죽기 직전의 상태에 놓여있었다.
아마 그때 토리엘-차라는 순간적으로 엄마라 부를 뻔 했지만-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확실히 죽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이 소년은 많은 위험에 부딪혔다.
괴물들이 공격할 때도 있었고, 함정들이 막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차라가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괴물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였다.
괴물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를 해치려 들었다.
그 정도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인간...아니, 인간이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 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차라의 생각과는 반대로, 그는 자기 자신을 지킬 생각이 없어보였다.
괴물들의 마법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면서, 그들에게 농담을 날리고, 인사를 하고, 쓰다듬었다.
그 중 가장 압권은 온 몸을 부들거리는 강아지인지 고양이인지 모를 괴생명체 앞에서 몸자랑을 할 때였다.
그것도 발레복을 입은 채로.
그 순간 만큼은, 차라는 버터컵을 퍼먹어서라도 이 자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온갖 일을 겪은 그는 결국 결계를 부수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
결계가 부숴진 후에도, 프리스크는 지하에 머무르는 걸 택했다.
차라는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물어봤지만, 프리스크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 뒤로 프리스크는 토리엘과 같이 살면서, 그녀와 아스고어가 같이 운영하는 학교를 다녔다.
학교 기간 내내, 프리스크는 이전의 그 성격을 유지하며, 특이한 학교생활을 즐겼다.
그리고 차라는, 그 기간 내내 프리스크에게 잔소리를 퍼부어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꼬맹이라는 말이 어울렸던 남자아이는, 어느새 청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 붙어있어서인지, 차라의 외형도 그를 따라 변화가 있었다.
언덕에 앉아 석양이 지는 걸 바라보는 프리스크의 옆에 앉아있던 차라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프리스크는 이 자리를 정말로 좋아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별다른 일이 없으면 항상 해가 질때 쯤엔 이 자리에 올라와 해가 지는 걸 바라보다가, 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어느새, 차라도 이 풍경이 좋아져, 해가 지는 걸 바라보면서 다른 생각을 하는 취미가 생겼다.

"차라."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을 구경하던 차라를 프리스크가 조용히 불렀다.

"오랫동안 생각 한 게 있어."

차라는 고개를 돌려 석양을 보고있는 프리스크를 바라봤다.

"아마도, 난 널 좋아하는 것 같아."
"...뭐?"

차라는 마치 딴 사람 얘기하듯 말하는 프리스크의 말에, 순간 당황해 되물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돌리고 비아냥 거리는 투로 말했다.

"하긴, 우리가 붙어 있던게 얼만데, 가족같긴 하겠지."
"아니."

프리스크는 차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걸 부정했다.

"아마도 오해한 것 같아서 다시 말할게. 난 널 사랑해."

차라는 프리스크의 말에 다시 고개를 돌려 프리스크를 바라봤다.
프리스크는 여전히 석양을 보고 있었다.
차라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걸 느끼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작게 벌리고 멍하니 프리스크를 바라봤다.
프리스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런 차라를 바라봤다.

"응."
"뭐가 '응'이야!"

차라는 프리스크에게 소리질렀다.

"갑자기 뜬금 없이 뭔 개소리를 내뱉는거야?"
"너에겐 갑자기겠지만, 난 오랫동안 고민한거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차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프리스크의 주변을 서성거리며 떠다녔고, 프리스크는 계속 고개를 돌려가며 그런 차라를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을 떠다니던 차라는, 프리스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멈춰서고 프리스크를 노려봤다.

"차라."
"왜!"
"내려가자."

그제야 차라는 해가 완전히 들어갔다는 걸 깨달았다.
프리스크는 천천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고, 차라도 그런 프리스크의 뒤를 여전히 심란한 마음으로 따라 내려갔다.



프리스크가 잠든 뒤, 차라는 가만히 그의 얼굴을 내려다 봤다.
집으로 돌아온 뒤, 프리스크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대로 행동했다.
길가다 마주친 샌즈와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고, 머펫의 제과점에서 빵을 사고, 나이스크림을 하나 먹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토리엘과 저녁을 먹고, 씻은 다음 침대에 누워 차라에게 잘자라는 말을 하고 바로 잠들었다.
언덕에서 둘이 했던 얘기가 마치 차라의 꿈이었던 듯, 프리스크는 너무나도 평온하게 자고 있었다.
차라는 그런 프리스크를 바라보며, 처음 느끼는 감정에 혼란스러워했다.
프리스크가 좋은가?라고 물어보면, 싫지는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인간은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행동이 딱히 거부감이 들진 않는다.
특이한 남자이긴 하지만, 그 덕인지 친구도 많고, 능력도 있다.
그럼 그를 사랑하는가?
차라는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사랑한다? 애초에 자신이 그런 감정을 가질 자격은 되나?
독립적으로 살아가지도 못하고, 프리스크라는 인간에게 기생하여 살아가는 존재인데?
인간도, 괴물도 아닌, 그렇다고 어떤 재미없는 유령같은 존재도 아닌 자신이?
게다가 만약에, 그렇지 않더라도 난...
차라는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조용히 자신의 다리를 감싸고 고개를 파묻었다.



다음날, 프리스크는 언제나 그렇듯 언덕에 앉아 석양을 바라봤다.
프리스크는 오늘따라 말이 없는 차라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의 행동에 변화는 없었다.
그런 프리스크와 정 반대로, 차라는 하루 종일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지금도 차라는 프리스크와 등을 맞대고-물론 유령이라 맞닿은 느낌은 없었지만-손가락으로 땅을 꼼지락대고 있었다.
한동안 땅바닥에 손가락을 꽂았다가 뺐다가 하던 차라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상해."

프리스크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너, 진짜 이상한 새끼야."

프리스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차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서 프리스크를 내려다 봤다.
프리스크는 고개를 위로 꺾어 차라를 바라봤다.

"너, 나랑 사귀면 어떨 것 같은데?"
"좋겠지."

차라는 순간 표정을 확 구겼다가 프리스크의 옆으로 이동해 앉았다.

"대체 내 어디가 좋은 건데?"
"그냥 네가 좋아."
"너 내가 유령같은 존재라는 건 제대로 알고 있는거야?"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알아?"
"무슨 의미인데?"
"우리가 정상적인 연인이 못 된다는 거야."

차라는 자기를 바라보는 프리스크의 눈을 바라봤다.
프리스크는 그런 차라를 똑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상관 없어."
"상관 없어?"

차라는 프리스크의 말을 비웃었다.

"정말 상관 없을 것 같아? 정상적인 연인이 못 된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알기나 해?"

차라는 프리스크가 대답할 여유도 주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난 너하고 같이 뭘 먹을 수도 없어. 난 음식을 못 먹으니까. 놀이동산 같은 곳도 못 놀러가지. 내가 뭐 그런 걸 느낄 수가 있겠어? 어딘가로 같이 여행을 가지도 못 할거야. 가서 뭘 할 수 있는데? 다른 연인들이 하는 것 처럼 서로 문자라도 주고받을 수 있을까? 당연히 안 되지! 한 순간도 안 떨어지는 데 어떻게 그러겠어? 서로 싸우고 난 뒤엔? 난 너를 못 벗어나는데, 서로 불편하게 마주보고 있겠지. 커플링? 웃기지도 않아. 커플링은 커녕 손도 못 잡는걸!"

프리스크는 아무 말 없이 얼굴을 붉히고 소리치는 차라를 바라봤다.
차라는 말을 끝내고 나서 숨을 가쁘게 쉬면서 프리스크를 노려봤다.
하지만 이내,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자리에 주저 앉았다.

"...흑...으흑..."

자리에 주저 앉은 차라는 소리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프리스크는 여전히, 그런 차라를 바라봐주었다.
한동안, 차라는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고, 프리스크는 아무 말 없이 그런 차라를 바라봐주었다.
그러다 프리스크는 가만히 손을 뻗어 그런 차라의 손에 자신의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프리스크의 손은 마치 허공을 가르듯 차라의 손을 그대로 뚫고 들어갔다.
차라는 더욱 서럽게 울음을 터트렸고, 프리스크는 뻗은 손을 거두어들였다.
마침내 해가 지평선 너머로 들어가버리고, 주변이 어두워져서야 차라의 눈물이 멈췄다.
프리스크는 차라가 어느정도 진정 된 것 같자 입을 열었다.

"근데, 차라."

차라는 고개를 숙인 채 마지막 눈물을 닦아내었다.

"너랑 같이 해가 지는 건 볼 수 있잖아. 그거면 돼."

차라는 붉게 충혈된 눈을 들어 프리스크를 바라봤다.
프리스크는 아무렇지도 않게, 미소를 지으며 차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미소를 본 차라는 그 순간 자신이 프리스크를 오래 전 부터 사랑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걸 애써 부정해오고 있었다는 것도.
그걸 깨닫는 순간, 차라의 두 눈에 또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차라는 애써 눈물이 흘러내리려는 걸 참으며, 프리스크에게 말했다.

"너, 진짜 나만 사랑할 수 있어?"
"응."
"난 태생이 나쁜년이라서, 네가 조금만 내 마음에 안 들어도 화낼거야."
"응."
"너, 나랑 사귀면 죽을 때 까지 해어지지도 못 해. 알지?"
"응. 알아."
"...그럼 다시 말해줘. 사랑한다고."
"응. 난 널 사랑해. 차라."

차라는 그 순간 참았던 눈물이 흘러 내리는 걸 느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눈물과는 정 반대로, 그녀는 그 어떤 때 보다 환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나도 사랑해. 프리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