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샌즈는 숨을 한번 골랐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창문을 넘어서 내려쬐는 햇살. 정말 좋은 날이었다.

이런 날에는 농땡이 피워야 제 맛인데. 하지만 건너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아이에게 신경 써야 할 때였다. 아이가 어느 정도 다가오자 샌즈는 인사를 건넸다.


안녕, 오래간만이지?”


아이는 아무 말 없이 한 걸음 옮겼다. 샌즈는 주머니에 쑤셔 넣고 있던 손을 빼냈다. 그리고 검지를 바닥을 향해 가리켰다.


네가 그 선을 넘어 다가온다면…….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시간을 보내게 될 거야.”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 말에 멈췄을 거면, 애초에 먼지를 잔뜩 묻은 손에 시퍼런 예기를 뽐내는 칼을 쥐고 있지 않을 것이다.

우뚝.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아이는 걸음을 멈추었다. 아주 희미했던 바람이 통했나? 샌즈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래, 거기서 뒤로 물러서면 너는 아무 탈 없이 돌아갈 수 있어.”

…….”


그러나 아이는 그저 제자리에 멈춰 서있을 뿐이다. 샌즈는 방심하지 않고 언제라도 공격할 준비를 했다. 잠깐 대치가 이어지다 아이가 말했다.


역시 방심하지 않는구나.”


실눈이었던 눈이 서서히 떠졌다. 천천히 열리는 눈꺼풀에 가려졌던 진홍빛으로 물든 눈동자가 빛났다. 완전히 눈이 뜨자 아이는 바닥을 박차 약진했다. 그리고 쥐고 있던 칼을 힘껏 휘둘렀다.

샌즈는 황급히 뒤로 몸을 뺐다. 칼날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공격이 빗나가자 아이는 기민한 몸놀림으로 뒤로 빠졌다. 공격과 방어에 군더더기가 없다.


위험해.’


그가 예상했던 이상이다. 샌즈는 마른침을 삼켰다. 식은땀 한 방울이 뒤통수를 타고 흘러내렸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췄다면 먼지로 변했을 것이다. 샌즈는 눈을 살짝 감았다.


죄송해요. 아주머니.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서요.’


속으로 중얼거린 그는 손을 한번 휘저었다. 그러자 기둥에 숨어있던 가스터 블래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샌즈의 입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꼬마야. 네 선택이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지. , 지금부터 끔직한 시간을 보내보자고.”


번뜩 뜬 그의 왼쪽 눈에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 ■ ■


후욱. 후욱. ...”


샌즈는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얼굴에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고작 몇 수를 나눴을 뿐인데 몸은 벌써 피로에 찌들었다. 그러나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가장한 채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는 여전히 멀쩡한 얼굴로 그의 빈틈을 노리고 있다. 샌즈는 정말 그 약했던 아이가 맞는 건가? 생각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샌즈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자신은 절대로 이 아이를 이길 수 없다고. 지친 상태로는 더더욱. 그는 잠시라도 시간을 끌기 위해 입을 움직였다.


그렇게 위험한 물건을 휘두르는 것을 좋아하는 줄 몰랐어.”


갑자기 무슨 말을 하냐는 얼굴인 아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네 내면에 깊숙한 곳에 희미하지만 선함이 보여. 비록 지금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지만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해. 친구야, 기억나지 않아? 만약 기억난다면.”


샌즈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무기를 내려놔. 그렇게 한다면……. , 일이 훨씬 쉬워질 거야.”

헛소리를 하는 거야정말이지 어설픈 시간 끌기네적어도 피곤한 사실은 드러내지 않고 해야지.”


바로 아이의 입에서 어이없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젠장.”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너무 간단히 간파된 사실에 샌즈는 거칠게 땅을 걷어찼다. 잘 쳐줘봐야 1? 그 정도는 하지 않으나 다를 게 없었다.

지쳤다는 것을 안 이상 곧 공격 할 터. 샌즈는 남은 정신력을 쥐어짜 마지막 공격을 준비했다. 그러나 아이는 멀거니 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뭐지?’


샌즈가 의문을 표한 할 때.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베지 못한 칼에 시선을 옮겼다.


너 말이야. 지금까지 이 아이의 몸으로 괴물들이 죽은 것이 잘못 됐다고 생각해?”


샌즈의 몸이 흠칫 떨렸다.


……갑자기 무슨 소리 하는 거지?”


아이는 칼을 빙글 한번 돌리고 말했다.


모르는 척 하지 마. 스노우딘에서부터 쭉 관찰 했잖아? 지금 내가 네가 알고 있는 녀석이 아니라는 거 알고, 그래서 그 아이를 부른 거고.”

……왜 그 어린아이 몸으로 그런 일을 벌이는 거지?”


눈치 챈 이상 숨길 이유가 없었다. 샌즈의 왼쪽 눈이 거세게 불타올랐다.


그거야 당연히 너희 괴물들은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으니까.”


샌즈는 터무니없어 하는 얼굴이 됐다. 무슨 소리를 하는가.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으니까? 모두를 죽인 자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아이는 칼끝을 샌즈에게 겨누었다.


파트너, 프리스크는 언제나 처음부터 모두에게 자비를 베풀었어. 전혀 싸울 생각 없이 말이야. 하지만 괴물들은 항상 공격을 했어.”

그들이 악의로 가지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텐데.”


아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부는 아니지만 대다수 악의가 없었지. 그런데 말이야.”


아이는 옆에 있던 기둥에 칼을 꽂았다.

콰득!


어째서 고통에 울부짖는 파트너에게 공격을 멈추지 않은 거지?”

?”


샌즈는 상황을 잊고 멍청한 목소리를 내었다. 아이는 눈을 감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가슴에 손을 올렸다.


솔직히 인간을 증오하던 나에게는 괴물이란 관심 외에 존재였어. 이 세계에 오자말자 바로 나갈 방법을 생각만 했어.”


아이는 손을 뻗어 기둥에 박혔던 칼을 빼냈다. 칼이 빠져나오면서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런데 프리스크, 파트너의 여정을 지켜보고, 마침내 파트너의 몸을 대신하게 되면서 알게 됐어. 죽음의 고통을 생생히 기억한 채 다시 시작하는 느낌을 말이야. 하나 예를 들자면…….”


아이는 칼을 쥐고 있지 않은 손을 가슴 정중앙, 명치에 올렸다.


창끝이 정확히 명치를 뚫은 고통을 기억하는 느낌을 알아?”


아이는 명치에서 손을 떼 검지를 펴 머리를 가리켰다.


이 애의 몸을 차지하게 되면서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어. 그만큼 끔찍했어.”


칼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네 말대로 그저 어린 아이가 그런 끔찍한 고통을 기억하고.”


아이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잔잔하면서도 거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샌즈는 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느꼈다.


다시 시작해야했어. 그래도 파트너는 포기하지 않았어. 어떻게든 의지를 다잡고, 결국 한 괴물의 희생으로 괴물들이 그토록 원하던 결계가 무너졌어. 그리고 파트너는 어떻게 된 줄 알아?”


콰득.

아이는 이빨이 꽉 깨물었다.


정신이 망가져 버렸어. 그냥 괴물들을 보기만 해도 당했던 고통이 떠올라 미쳐버렸어. 그 강한 의지로도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고.”


살기가 잔뜩 흐르는 두 눈동자를 보자 등줄기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샌즈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 쳤다.


파트너가 잘못 해서 그렇게 됐을까? 아니, 너희들 때문이야!”

…….”


샌즈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그녀와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그런 생각을 한 거니까. 아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그저 방관하기만 한 거니까.


이제 더 이상 인간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은 상관없어.”


아이가 한 걸음 내딛었다. 그리고 무릎을 가볍게 굽히더니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나갔다. 둘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샌즈가 반응을 해 팔을 들어 올리자 가스트 블래스터가 입을 쩍 벌렸다.

그러나.


파트너를 망가트린 녀석들 전부 내가 죽일 거라고!”


증오에 물든 외침과 분노로 물든 진홍빛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본 그는.

콰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우연히 영상을 봤는데 불살엔딩 때 이스라엘이 차라언급 할때 차라가 인간을 증오한다 했는데 딱히 괴물을 증오 한다는 말이 없어서 한번 써봤어.

인간만 증오하고 있었지만 프리스크 여정을 보면서 괴물도 다를 것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차라가 분노하고 몰살 루트를 하는 느낌?

는 그냥 LOVE가 필요할 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