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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 출처 : http://www.deviantart.com/art/one-tea-to-two-92108384


아스고어는 김이 올라오는 찻주전자를 들어 찻잔에 물을 조금 따랐다.

찻잔을 손목으로 가볍게 돌려 잔을 씻어낸 그는 물을 바닥에 버리고 다시 안에 물을 따랐다.

물을 다 따르고 난 뒤, 말린 로즈마리 잎을 조금 집은 그는 눈을 감고 향을 맡았다.

로즈마리의 진한 향기에 만족한 듯 고개를 조금 끄덕인 그는 그걸 찻잔에 띄우고 물이 점점 녹색으로 물드는 걸 바라보았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는 연한 녹색을 띠는 물을 들어 향을 맡았다.

물을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며 그 향기도 나눠준 듯, 처음과는 달리 은은한 로즈마리 향에 만족한 그는 차를 조금 마셨다.

아스고어는 눈을 감고 기분좋은 짜릿함을 주는 쓴맛에 이어, 혀를 부드럽게 감싸는 은은한 단 맛을 입 안에서 차를 굴리며 음미했다.

잠시간 입에 차를 머금은 아스고어는 그것을 천천히 삼켰고, 따뜻한 차가 속을 타고 내려가며 가슴속부터 따뜻하게 데우는 느낌에 만족했다.

다시 눈을 뜬 그는 차를 조금 더 마시고 찻잔을 받침에 내려놨다.

그는 그대로 손을 뻗어, 탁자 위에 놓인 꽃병에 꽃혀있는 노란 꽃을 쓰다듬었다.


버터컵. 노란 꽃의 이름. 아스고어는 이 꽃의 색을 정말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는, 토리엘이 그에게 이 꽃을 선물해 주었을 때 부터 좋아했다.

어렸을 적, 아직 자신에게 왕의 책무가 주어지지 않았고, 모든 것이 평화로웠던 시절, 아스고어와 토리엘은 꽃밭에서 첫 데이트를 했었다.

아스고어는 꽃잎을 만지작거리며 그 날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높은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푸른 하늘, 부드러운 뭉게구름들과 따뜻한 햇살.

봄의 공주들은 제각기 자신의 색을 뽐내며, 부드러운 봄바람이 불 때 마다 바람과 함께 부드러운 왈츠를 추었다.

너무나도 평온한 풍경에, 눈을 감고 햇볕을 즐기던 그가 깜빡 잠이 들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사랑스러운 연인은 그에게 노란 화관을 씌어주었다.

그녀는 아스고어에게 정말 잘 어울린다고 말하며, 아스고어가 아직도 사랑하는 그 자상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는 누구보다 자애롭고 사랑스러우며 고귀한 여인에게, 자신의 어디가 좋냐고 물어봤고, 그녀는 이 화관의 꽃말과 같은 그의 인격이 좋았다고 했다.

아스고어가 꽃말이 뭐냐고 되묻자, 그녀는 쉽게 알려주면 재미없으니, 나중에 직접 찾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아스고어는 그날 밤, 버터컵의 꽃말이 아름다운 인격과 천진난만함이란 걸 알고, 부끄러움에 혼자 볼을 긁적였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자신의 정원에 버터컵을 심었다.


아스고어는 꽃잎을 만지던 손으로 찻잔을 들어 다시 차를 마셨다.

찻잔을 다시 내려놓은 그는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프리스크가 늦는다고 생각한 그는, 인간을 처음 만난 날을 다시 떠올렸다.

그날도 그는 이 정원에서 꽃을 돌보며 인간을 기다렸다.

인간을 기다리며 그는 속으로 자신이 죽인 여섯 인간의 이름을 되내었다.

그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속죄임과 동시에, 의지를 다잡는 행동이었다.

아스고어는 싸움이 싫었다.

하지만 그는 싸워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는 괴물들의 왕이니까.

그는 괴물들 중 가장 강한 자였고, 그들을 지킬 힘이 있는 자였으니까.

왜 하필이면 자기가 괴물들 중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나 그 의문은, 인간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더욱 심해졌다.

항상 자신의 옆에서 싸우던 거북괴물과 마주칠 때면, 그는 그의 신념에 가득 찬 눈빛을 보며, 그 괴물이 영웅이 아니라 왕이었어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의 희망사항이 어떻든지간에, 왕은 아스고어였고, 그는 자신의 자리에 최선을 다했다.

그건 괴물들이 패배하여 지하에 갇혔을 때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아이들을 잃기 전까지는.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아스고어는 인간들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당연히, 인간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괴물들은 이미 과거의 존재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괴물들은 달랐다. 그들은 처음으로 '갈망하는' 목표가 생겼다.

괴물들은 인간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고, 마침내 떨어진 인간을 붙잡아왔다.

왕비는 괴물들의 왕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지금이라도 두려움에 떠는 이 인간을 무사히 돌려보내주자고 했다.

왕은 그런 왕비를 다른 괴물들을 시켜 방으로 들어가게 시켰다.

그리고, 아스고어가 첫 '승리'이후 되돌아 왔을 때, 토리엘은 사라졌다.

아스고어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 깨달았다.

그는 후회하며 토리엘을 찾아갔다.

하지만 토리엘은 더이상 아스고어를 받아주지 않았고, 아스고어는 낙심 한 체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아스고어는 모두가 떠나버린 식탁에서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나 고뇌했다.

그리고 그는 더이상 인간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랬다.

그날 밤, 그는 인간의 영혼을 하나 더 얻었다.


혼자가 되면 아스고어는 끝없는 고뇌에 빠져들었다.

아스고어는 항상 어설픈 왕이었다.

괴물들을 지배하기에는 충분하면서, 인간들로부터 보호하기에는 약한 어설픈 힘.

인간에게 학살당하던 과거와, 괴물들이 나간 이후에 맞닥드릴 미래를 알면서도 분노를 제어하지 못한 어설픈 이성. 

자신의 가족들은 책임지지 못하면서, 괴물들의 왕이라는 자리는 지키려고 하는 어설픈 책임감.

꽃을 좋아하고, 자신의 가족들에게 헌신적이면서도, 인간에게는 그러지 못한 어설픈 자비심.

떨어진 인간은 죽이면서, 밖으로 나가 인간들을 죽일 생각은 못하는 어설픈 용기.

그리고, 막상 필요할 때는 말하지 못하면서, 되돌릴 수 없을 지경이 가서야 말하는 어설픈 솔직함.

이 모든 것들은, 아주 조금, 지금보다 정말로 아주 조금만 나아지길 희망하는 괴물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차라리 왕이 아니었더라면 훌륭한 가장이 되었을지도 모를 괴물은, 여섯 영혼이 모일 때 까지, 자신을 갉아먹어갔다.


하지만 그날, 여덟 번째 인간을 만났을 때, 그의 생이 바뀌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구원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여전히 토리엘은 자신을 미워하고, 다시는 그녀와 가까워 질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그녀를 볼 수 있음에 그는 만족했다.

결계가 깨지고 나서도, 괴물들이 생각했던 대로 무작정 행복해지진 않았지만, 그는 만족했다.

더이상 괴물들의 왕이라는 자리가 불필요해져, 그가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했지만, 그래도 그는 만족했다.

그가 책임을 지어야 했던 일들이 모두 끝나고 나자, 그는 자신의 자식들을 묻었을 때 이후로 처음으로 웃을 수 있었다.


프리스크가 얼마나 고마운 인간인지 생각하던 그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있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헀다.

그러다 인기척을 느낀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만이 보였다.

당황한 아스고어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만족해?"


형태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말했다.


"모든게 잘 끝난 것 같지? 특히 마지막엔 네 손도 더럽히지 않았고."


아스고어는 말없이 그 무언가를 바라봤다.


"좋겠어. 그동안 죽인 인간들에 대한 죗값도 안 치르고 이런 해피엔딩을 맞아서."


무언가는 몸을 떨더니 일곱개로 나뉘었다.

그리고 나뉜 것들은 서서히 형태를 잡아가며 말했다.


"결국 우린 뭐였어? 우리들의 죽음은 어디로 간거지? 괴물들만 행복하면 끝난건가? 우리가 뭘 잘못 한 거지? 왜 하필 우리였어야 했어? 죽이기 쉬웠으니까? 죽일 수 있었으니까? 고작 그런 이유였던거야?"


아스고어는 말없이 서서 그들이 형태를 잡아가는 걸 바라봤다.


"비겁한 아스고어. 겁쟁이. 위선자. 너의 죄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야. 모든 괴물들이 널 칭송해도, 우린 결코 널 용서하지 않을거야."


마침내 그것들의 형태가 잡히자, 아스고어는 그들이 지하에서 죽어간 인간들임을 깨달았다.


"무슨 말을 하든 변명이겠지. 미안하네."

"미안해? 말로는 뭘 못하겠..."

"...차라."


아스고어는 그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며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모두의 이름을 부른 아스고어는 조용히 말했다.


"말마따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내.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내가 죽는 그날까지, 내가 그대들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일은 없을걸세."

"..."

"미안하네."


아스고어는 그들에게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아스고어를 일곱 인간은 말없이 바라보다가, 서서히 사라져갔다.


"...미안하네."


아스고어는 그들이 모두 사라진 후에도, 사과를 멈추지 않았다.




프리스크는 의자에 기대 잠든 아스고어를 흔들었다.

아스고어는 잠에서 깨어 자신의 팔을 잡고있는 프리스크를 바라봤다.

프리스크는 손을 뻗어 아스고어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나서 아스고어에게 안 좋은 꿈이라도 꾸었냐고 물어봤다.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그냥 깜빡 잠이 든 모양이야."


아스고어는 반대쪽 눈도 닦아내며 대답하고, 미소지으며 프리스크를 바라봤다.


"생각보다 늦었군."


프리스크는 사과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네. 시간이 된다면 차라도 한 잔 어떤가?"


아스고어는 웃으며, 빈 잔에 차를 따라 프리스크에게 건내주었고, 프리스크는 그 차를 받았다.

아스고어 역시 차갑게 식은 자신의 차를 마시며 자신의 자녀들과 여섯 인간의 이름을 다시 곱씹었다.

그들의 이름을 떠올릴 때 마다, 아스고어는 가슴이 저려왔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향해 미소짓는 프리스크에게 똑같이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아스고어는, 충분히 강한 왕이었기에.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