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쓰기 시작한거라 완성할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일단은 오늘 쓴 데까지
수백, 수천, 아니, 어쩌면 수만 번. 세는 건 이미 그만뒀다.
잡념을 떨치며 언제나처럼 노란 빛의 통로로 나아가려던 붉은 눈의 소녀, 차라는 잠시 멈칫했다. 잡념이 소녀를 불러세운 건 아니다. 몇 번을 죽었든지 소녀의 능력은 바닥나지 않기에, 몇 번을 죽었는지 따위는 상관이 없다. 돌파구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기에, 무한정 반복해 나가면 반드시 결판은 난다. 그런 류의 잡념은 고개를 흔들어 떨궈버리면 그만.
소녀가 멈춘 것은 다만 누군가의 손이 뒤에서부터 자신의 옷깃을 붙잡았기 흔들었기 때문이다.
" 응? "
돌아본 소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파란색과 보라색이 교차된 스웨터를 입은 자신과 꼭 닮은 단발의 소녀. 바깥 세상에서는 프리스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차라는 굳이 그 이름을 담지 않았다.
" 무슨 일이야, 파트너? "
고개를 푹 숙이고 있기에 표정은 잘 알 수 없다. 사실 원래도 감정의 기복이 얼굴에 잘 드러나지 않는 아이라 알 수 없기야 하지만. 하지만 차라는 왜 프리스크가 자신을 붙잡아 세웠는지 알 것 같았다. 머리에 스쳐가는 생각을 말한다.
" 네가 해보고 싶다는 거야? "
프리스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차라가 움직이고 있는 몸은 프리스크의 것. 하지만 몸의 주도권은 차라에게 넘어간 지 오래였다. 그것은 따지자면 순전히 프리스크의 잘못. 처음에는 아무도 죽이지 않고 이 세계의 결말을 봤지만, 결국은 한 끝자락에 남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모두를 죽이고 그 결말을 본 것이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줘, 나 이제 다시는... 아무도 없는 검은 공간에서 애원하는 프리스크를 불쌍히 여긴 차라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줬다. 물론 이런 일에는 대가가 있게 마련이고, 식상하지만 많은 악마가 그리 해왔듯 대가는 그녀의 영혼이었다.
일단 프리스크가 원하는 대로 되기는 했지만, 그녀가 진정 원하는 것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젠 아무도 죽이지 않는 것만으론 행복한 결말로 나아갈 수 없다. 설사 성공하더라도 몸의 주도권을 받아간 차라가 모든 것을 불행한 결말로 바꿔버린다. 그런 걸 수십번 반복한 끝에, 프리스크는 주도권을 포기하고는 의식의 구석에 주저앉아버렸다.
당연한 것.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라는 힘은 본디 차라의 것이다. 프리스크는 그것을 잠시 빌렸을 뿐, 그저 평범한 여자아이. 이 정도의 일을 겪으면 망가져버리는 것이 정상이라고 차라는 생각했다. 그렇게 주저앉아 있다가, 자기가 품고 있는 실낱같은 희망 같은것마저 조각나버리면, 그 모습마저도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런데 그랬던 프리스크가 지금 일어나 굳이 자신을 불러세운 것이다. 의외라면 의외.
" 내가 그걸 허락해 줄 거라고 생각해? "
차라는 짐짓 프리스크를 위협하며 말했다. 눈에서 뭔가 기분 나쁜 것이 흘러 내리는 느낌이 들어서, 아마 지금의 자기 얼굴은 좀 무서운 상태가 되어 있을 거라고 차라는 생각한다.
물론 허투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이기에, 그녀에게 어떤 선택지를 고르거나 자신의 정신에 간섭할 권리 같은 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비교하자면 프리스크가 처음 에봇 산에 떨어져내린 시점, 원령 같은 것으로 남아 있었던 자신보다도 미약한 상태. 뭔가 해보겠다고 그녀에게 호소하는 것조차도 너무 미약해서, 지금 이 광경을 무시하고 지나치면 아마 다음 로드 때에는 이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겠지.
그래서 차라는 이렇게 조금 위협을 해 주면 프리스크가 겁을 먹고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몇 번은 그랬었다. 영혼을 빼앗긴 프리스크가 뭐라도 해보려다가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된 건 그런 이유였다.
그러나 이번의 프리스크는 달랐다. 윽박지르는 듯한 이야기를 듣고도 잡은 옷자락을 놓지 않고 숙였던 고개를 들어서 가만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눈동자는 언제나 그렇듯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자신을 보고 있을 거라고 차라는 생각했다. 어쩐지 기분이 나빠져서 그냥 돌아서서 나가려던 차라는, 불현듯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프리스크에게 다시 눈을 맞췄다.
" 그래, 간만이기도 하고. 가끔은 네게도 바깥에 나가 놀 시간을 줘야지. "
날 되살려준 소중한 파트너니까, 말을 마치고 차라는 살짝 웃고는, 프리스크의 몸을 통로쪽으로 살짝 끌어당겨서는 그 등을 살짝 밀었다. 어차피 주도권을 꽉 쥐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한 번 정도 기회를 준다고 주도권을 빼앗기거나 하는 일은 없다. 여차하면 언제나 그랬듯이 주도권을 다시 빼앗아버리면 그만이다.
물론 그냥 여흥으로만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차라는 사실 조금 궁지에 몰려 있었다. 실제 조건은 어쨌든, 이제껏 겪은 일로 인해서 차라는 조금 지친 상태. 웬만한 싸움이나 살육으로는 지치지 않는 그녀의 정신으로도 조금 힘에 부치는 상황이었다. 그 정도로 이번 싸움 상대는 좀 특별했다.
자신이 아닌 프리스크라면 무언가 다른 돌파구를 찾아내지 않을까. 통로를 빠져나가는 그녀의 등을 보면서 차라는 생각했다.
물론,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 * *
프리스크의 눈에 비친 광경은 가장 처음에 자신이 봤던 그 광경이었다. 위에서 햇살인지 배리어인지 모를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밑에는 노란 꽃들이 피어 있다. 들려 있는 것은 무심하게 어디서 꺾은 듯한 막대기. 어쩐지 그리운 것을 다시 봤다는 생각을 해서, 그녀는...
" 서둘러, 파트너.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구. "
살짝 짜증이 섞인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차라의 목소리였다.
" 뭐? 뭘 그렇게 놀라? 처음 겪는 일도 아니면서. "
맞는 말이었다. 따지자면 프리스크와 차라는 에봇 산에 처음 떨어질 때부터 함께였으니까. 프리스크가 눈으로 무언가를 보면, 차라가 그녀의 귀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속삭여줬다. 물론, 이렇게 대놓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간섭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움직여. 녀석은 점점 빨라지고 있어. 이젠 병신 개구리 하나 잡아죽일 시간도 빠듯하다고. 녀석이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Exp를 쌓아 둬야 승산이 있어. "
당연한 것을 해야 한다는 것처럼 차라는 말한다. 사실 정말 당연한 일이 된 건지도 몰랐다. 몸의 주도권을 완전히 가져간 뒤로, 차라는 단 한번도 그 불쌍한 개구리를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프리스크에게 그럴 생각은 없었다. 누군가를 죽이는 최악의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니까.
" ...네게 기회를 준 내가 잘못이지. 이래서야 시간 낭비야. 너, 다시 들어가. 내가 다시- "
" ...헤, 여기 있었군. 아가씨. "
차라가 다급하게 프리스크의 주도권을 다시 회수하려던 찰나, 익숙한 목소리가 어둠 저편에서 들려왔다. 언젠가 들은 적이 있던 저음이지만 상쾌한 느낌의 남자 목소리. 한 때는 최고의 친구로, 한 때는 최악의 적으로 서로 만났던 해골 남자의 목소리.
" 로드한 지 몇 초, 그 코미디언, 이렇게나 빨리... 하, 이번 시도는 됐어. 빨리 죽기나 해. 파트너. "
차라의 목소리는 한 순간은 경악, 한 순간은 경멸을 담고 있었다. 점점 숨통을 깊게 죄어오는 상대의 능력에 대한 경악, 그리고 이제 얼마 주어지지 않는 시간을 고작 쓸데없는 상념에 빠져서 허비한 자기 파트너에 대한 경멸. 차라는 이제 아마 다시는 프리스크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 EXP를 하나도 쌓지 못한 모양이지? 실망이군, 실망이야... 정말 '골' 때리는 일이 아닐 수 없구만. "
재미없는 농담을 하며,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땅딸막한 키에, 목소리만큼 익숙한 후드티, 그 손에는 불쌍한 개구리 한마리가 거꾸로 잡혀서 공포에 질려서 버둥거리고 있다.
" 아가씨가 그렇게 느려 터지면... "
붙들린 프로깃이 땅바닥에 널부러진다. 그것만으로 이미 다리가 부러진 듯, 프로깃은 절뚝거리며 도망가려고 한다. 물론 오래가지는 않았다. 얼굴과 심장을 정확히 노려서 솟아오르는 날카로운 뼈기둥 두 개. 한때 개구리였던 것이 축 늘어져서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 내가 Lv이 20이 되어 버리잖아? "
푸르고 붉은 눈에서 보랏빛의 안광을 흘리며
최악의 상대, 샌즈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 좋다
크 개ㅐ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