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화, 딱 마지막 문단부터 시작하는 형식입니다. 아, 예. 글자 수 제한이 너무하더라고요. 맥이 탁! 끊기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면에서 쬐어오는 햇빛에 눈을 깜박이다 이내 정신을 차렸다.
분명히 꽤 높은 곳에서 떨어졌을텐데.
하지만 소녀는 몸의 그 어떤 구석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둘러보니 방금 전까지 누워있던 곳은 자신이 집으려 했던 노란 꽃들로 가득했다. 오직 햇빛이 내리쬐는 그 공간에만, 꽃들은 가득 피어있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어두운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 전, 지하에 봉인된 몬스터들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는 것을 소녀는 직감했다. 두려웠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소녀는 그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구조물들은 누군가가 이미 지나간 듯, 모든 문이 열려 있었고 이따금씩 들리는 석면의 바스러지는 소리를 제하고는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었던 복도를 겨우 나서자, 왠 개구리 한 마리가 소녀의 앞에 폴짝 뛰어왔다.
"...?"
"개굴..."
시퍼렇게 질린 개구리의 얼굴이 소녀를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였다. 이에 소녀는 밝게 웃어 보이며 활짝 핀 손을 내밀었다. 이에 개구리는 여전히 덜덜 떨며 소녀의 얼굴과 내민 손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도망치려는 듯 한 쪽 다리는 슬그머니 뒤로 뺀 채였다.
하지만 소녀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웃어 보였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그저 웃을 뿐이었다.
계속되는 환한 미소에 개구리는 당황한 듯 싶었다. 주눅 들어있던 울음소리는 어느덧 호기심이 가득한 울음소리로 바뀌었고, 빼놓았던 뒷발은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가있었다.
"개굴."
짤막한 울음소리였다. 그리고 이내 개구리는 빠르게 등을 돌려 저 멀리로 달아났다. 소녀는 조금은 아쉽다는 듯, 잠시 개구리가 도망친 곳을 바라보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멀리서 봤을 때 소녀의 눈에 들어왔던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서니 정말 이리저리 떠 다니는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유령이었다.
"..."
소녀가 가까이 다가선 것을 그제서야 눈치챘는지 유령이 놀라며 등을 돌렸다. 소녀를 내려다보며 그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 분명... 폐허에는 아무도..."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들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사라지고 있었다. 이에 소녀가 신기해하고 있을 때 즈음, 유령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미안... 난... 그저..."
'너는 유령에게 인사를 건넸다.'
발 밑에 나타난 검은 박스에 흰 글자가 적히자 유령이 그것을 보고는 놀라워했다.
"마음씨가... 곱구나... 헤헤..."
기분이 조금 좋아졌는지 유령이 웃음을 흘렸다.
"내... 내 이름은... 냅스타블룩이야..."
유령이 이름을 밝히자 소녀의 행동이 다시금 생겨난 검은 박스 안에 묘사글로 채워졌다.
'너는 냅스타블룩에게 만나서 반갑다고 전했다.'
"헤..."
꽤 기분이 좋은 듯 했다.
"폐허에 이런... 친절한 사람은... 아아..."
유령이 흘리던 눈물을 멈추고는 뒤돌아 섰다.
"마치... 예전의 그 때와도..."
추억에 잠겨가던 그가 다시 소녀가 자신의 앞에 있음을 깨닫고는 말을 삼켰다. 그리고는 소녀에게 싱긋 웃어 보이며 말을 건넸다.
"만나서... 즐거웠어... 착한..."
점점 모습이 희미해지던 유령은 결국 자취를 감추었다.
'너는 냅스타블룩과의 만남이 나쁘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녀가 느낀 점이 이어 나타난 박스에 채워지기 시작했다.
팔랑-
바람이 불 리는 없었을 텐데 눈 앞의 거목에서 낙엽 하나가 날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올려다본 거목의 가지에는 그 어떤 잎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무를 지나쳐가자 저 앞으로 집 한 채가 보였다. 거대한 벽 속으로 내부가 통하는 지 집은 벽 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집으로 향할 때였다. 갑자기 발 앞으로 뛰어든 개구리 한 마리에 소녀가 놀라 뒷걸음질 쳤다. 자칫 개구리를 자신의 발로 차버렸을 것이란 생각에 소녀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개굴!"
개구리는 소녀를 올려다보며 당당히 울었다. 잠시 당황한 소녀가 이내 웃어 보이자 개구리가 폴짝 뛰어 소녀에게로 다가섰다. 자연스럽게 내민 손을 받아들이듯, 개구리가 소녀의 손에 맞춰 머리를 가져다 대었다. 기분 좋은 미소로 쓰다듬는 소녀의 손길을 받아들인 개구리가 이내 손바닥에서 벗어나 다시 저 멀리로 내달렸다.
"개굴!"
넓게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에 소녀는 아까와는 다른 아쉬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끼익-
음산한 문 소리와 함께 들어선 내부는 어두웠다.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았는지 공기는 퀘퀘했고, 문을 통해 스며든 빛으로는 수많은 먼지들이 떠다녔다. 순간적으로 두려움을 느꼈지만, 이어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빛을 볼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니 그 빛은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통해 비치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이전의 풍경과 같은 보라색의 긴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걸었을까.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이 굳게 닫힌 거대한 문 앞에 다다랐다. 하지만 의외로 그 문은, 쉽게 열렸다. 또 다시 마주한 어둠에도 소녀는 앞으로 향해 나아갔다.
"정말 뼈 빠지게 고생하는군."
왕궁에서 스노우딘 마을까지는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 꽤 오래 걸었기에 저절로 불평이 나올 터였다. 샌즈는 애꿏은 눈을 발로 차대며 마을의 외곽으로 향했다.
"하하... 맙소사..."
샌즈가 헛웃음을 흘리며 바라본 곳엔, 그 거대한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어떻게 해도 열리지 않던 문이, 그냥 열려져 있는 것이었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샌즈가 다시 마을 쪽을 향해 내달려갔다.
그의 생각대로였다. 저 멀리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누군가를 볼 수 있었다. 분명. 인간이었다.
그의 동생 파피루스가 그토록 원하고 찾아 헤맸던.
소리 없이 천천히 걸어 인간의 뒤에 바짝 붙어 섰다. 곧, 그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인간이 걸음을 멈추었다. 샌즈는 안 그래도 낮은 음성을 더욱 내리깔며 천천히 말했다.
"인. 간."
그런데 돌연 인간이 먼저 뒤를 돌아보는 게 아닌가. 그녀는 살포시 웃으며 한 쪽 손을 내밀었다. 너무 당황스러웠던 탓에 샌즈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뻥긋거리고 있자, 결국 소녀가 먼저 샌즈의 손을 잡았다. 순간적으로 들었던 친밀감에 샌즈가 몸서리치며 거칠게 손을 내쳤다.
"무슨 짓이야, 무례하군 그래."
이에 소녀는 약간 무안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당황했던 기색을 감추려는 것이었는지 샌즈가 그녀를 지나쳐가며 괜히 큰 소리로 말했다.
"일단 이렇게 빠져 나오긴 했어도, 난 인간을 잡아야 하거든. 뭐, 딱히 그러고 싶진 않지만..."
의례 하던 말이라서가 아닌, 그의 진심이었다. 인간을 목전에 둔 파피루스의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든 숨기려 했다.
"그래도 최소한 막는 척은 해야 하잖아? 네가 어마어마한 괴물일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손가락으로 소녀를 가리키자 그녀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샌즈를 보며 지은 미소에 그가 다시 고갤 돌렸다.
"숨 막히는 퍼즐들을 준비해놓지. 기다리라고."
그리고 그는 여유로운 체 하며 저 멀리 사라졌다.
"...따위가 된 거야!"
"죄...죄송해요옷!"
조금 걸으니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두 팔이 없는 공룡 같은 외형의 꼬마를 윽박지르는 중이었다. 잠시 둘은 나타난 소녀를 보더니, 다시 서로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소녀를 보고, 서로를 보는 것을 반복, 반복하다 끝내 소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꼬마의 외침이 숲 속에 울려 퍼졌다.
"인간!!! 인간이야!!!"
"조용히 해, 꼬마 녀석."
샌즈가 주먹으로 꼬마의 머리를 살짝 때리자, 의외로 아팠는지 꼬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항변했다.
"흥, 제가 언다인처럼 되는 첫 걸음이라고요. 지켜보시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말다툼에 소녀가 슬쩍 하품을 하자, 이를 눈치 챈 괴물 꼬마가 소리를 빽 질렀다.
"하품을 하셨겠다? 곧 공포에 떨게 될 텐데 말이지!"
"...그건 너무 오바스러운데..."
샌즈의 중얼거림에도 개의치 않고 꼬마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소녀를 향해 외쳤다.
"마을까지는 한 발짝도 다가설 수 없을 거다! 하하하!"
그리고는 등을 돌려 뛰어가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몇 걸음 뛰다 넘어지고 만 꼬마는, 작은 신음과 함께 겨우 일어서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밀려오는 황당함에 소녀가 길을 따라 걷자 샌즈가 입을 열었다.
"빨리 죽어버리던가, 내 눈에서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갈등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거든."
알 수 없는 말에 소녀가 그를 바라보자 샌즈는 표정을 굳히며 시야에서 스륵하며 사라져버렸다.
"..."
왜 일부러 심한 말을 했는지 그도 알 수 없었다. 샌즈의 눈에 들어왔던 소녀의 모습은 그저 선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흘깃 훔쳐보았던 그녀의 '처형 지수' 또한 조금도 올라가있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죽이지 않았지."
내뱉은 거짓말에 곧장 후회했다. 아니었다. 사실 소녀의 뒷모습을 본 그 순간부터 그의 살의는 녹아내려 버렸다. 이전의 소녀와 같은 느낌을 풍기며, 자신을 향해 미소 지어준 그녀를 도저히 죽일 수 없었다.
사실, 그에게는 그녀가 언다인을 죽였든, 왕을 죽였든 그런 것들 따위는 별로 문제되지 않았다. 그들과는 그다지 접촉도 없던 타인에 가까운 사이였으니 말이다.
단지 유일한 문제라면 그의 동생을 슬프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 고민이 해결되지 않는군. 뒷'골' 땡기게 말이야."
적어도 동생의 손으로 그녀를 죽이게 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 또한 그녀를 죽일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을 죽였건만, 그래도 형제에게는 한 없이 상냥했던 이전의 아이의 모습이 계속해서 겹쳐 보였다.
계속되는 갈등에 탄식 섞인 한숨으로 샌즈는 꼬마의 퍼즐이 준비된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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