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은 모두 지상으로 나왔다.


지상 위의 삶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만끽했다.

하루, 또 하루. 모두들.


하지만 샌즈만큼은 달랐다.

무의미해. 샌즈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가 빛나는 일로 가득 차 있다하더라도, 결국 무의미해.


얼마나 값진 행복을 쟁취해내더라도, 결국 없던 일이 된다.


그렇기에 샌즈는 포기했다.

아무것도 겪지 않으면, 하루가 무의미하다면, 내일을 기대하지 않으면, 고통은 줄어들 테니깐.


그리고 그건 성공적이었다. 처음엔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결국 모든 게 무너지리라는 걸 받아들이고 나선 어렴풋이 보이는 환영들은 그에게 의미를 느끼게 하지 못했다.


그것이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쳐, 파피루스를 제외한 모든 것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는 만족했다

그것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한 자신의 완성형이라고 생각했다.


지상에 올라와서도 최대한 무의미한 생활을 보내기 위해 애를 썼다.

하루, 또 하루. 그는.


그러나 이번엔 뭔가 이상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던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샌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모두들 많이 변했다.


토리엘은 달팽이 요리 연구가 겸 어린이집 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언젠가 멋진 모습으로 돌아올 그들을 기대하고 있었다.


아스고어가 만든 학교는 이래저래 꽤나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괴물들이 실수를 할 때마다 자신의 진정한 속내를 내비치며 고개를 숙이는 그의 얼굴이 TV에 비춰졌다.


언다인과 알피스는 결혼을 했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인간 아이를 입양했다.


메타톤은 연예인이 되었다

가끔씩 구설수에 휘말릴 때도 있지만, 나름대로 인지도는 얻은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이 조금 더 자제할 줄 알아야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들은 변했다. 하지만, 샌즈만큼은 그대로였다.


파피루스는 정말 무던히 노력했다

인간들은 그들의 생각보다 더욱 차가웠다. 인간들은 자신과는 거의 모든 게 다른 그들을 참아낼 수 없는 것처럼 그를 대했다

마냥 바보처럼 순하게 구는 그의 태도가 그것들을 더욱 가열시켰다.


그리고 그토록 바보처럼 긍정적이던 그가 어느 날 자신의 농담에 반응하지 않는 걸 보았을 때, 샌즈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그럼에도 파피루스는 노력했다. 그를 멈추고, 다시 노력했다.


파피루스는 변하지 않았다. 샌즈는 그걸로 만족했다.


그러다 어느 날, 파피루스가 친구를 만들었다며 그에게 난리를 피웠다

자폐증에 걸린 아이라고 했다. 파피루스는 자신의 노력을 보상받았다고 했다

샌즈는 조용히 그런 그를 바라보며 멋지네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자폐아와 같이 있는 파피루스를 보며, 점점 스파게티의 맛이 풍부해지는 걸 느끼며, 샌즈는 뭔가가 깨져나가는 걸 느꼈다.


모두가 변했다. 그만을 제외하고.


다시 시간이 흘렀다.


“...”


침묵 속에서 샌즈가 깨어난다. 그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다, 다시 눈을 감는다

그러다 자신의 방에 누군가 들어와 있다는 걸 알고는 벌떡 상체를 일으킨다.


누구야?”

, ..”


인간아이가 있었다. 파피루스와 친구가 되었다던 아이. 아이는 새파란 청사진을 바닥에 펼쳐놓고 있다가 화들짝 놀란 모습이었다.


이봐, 꼬맹이. 그거..”

전혀 본적이 없는 모양이에요, 회로가 전혀 다르게 생겼어요. 파피루스 같은 설계도에요.”

?”


샌즈가 반문했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는 주저리주저리 자신의 할 말만을 늘어놓고 있다.


설계도대로라면 무언가를 빨아들이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빨아들였다가 어딘가로 보내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하지만 이상해요. 이건 이상해요. 파피루스 같아요.”

“...”

그리, 그리고.. 그리고..”


샌즈는 말없이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그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불편한 것처럼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계속 말을 토해내고 있었다.


, -! 베라 못 봤어?!”

, .. , 파피!”


그러던 와중 방 바깥에서 파피루스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이는 벌떡 일어서서 방 바깥으로 나갔다.


“.., 이상한 꼬맹이네.”


방안에 홀로 남은 샌즈는 멍하니 바닥에 펼쳐진 청사진을 바라보다가 일어서서는 그것을 들어올렸다.


이건 그도 전혀 모르는 기계의 청사진이다. 그로서는 이해하지도 못하는 청사진

그러나 그는 그걸 끝내 버리지 못했다. 단순한 고철더미에 불과한 고장난 기계도, 사진도, 뱃지도. 모든 걸 말이다.


이사 오면서 딱히 둘 곳이 없어 그냥 바닥에 두고 있었는데, 저 베라라는 꼬맹이가 주변에 굴러다니는 걸 주워서 구경한 모양이었다.


“...”


샌즈는 손에 들고 있던 청사진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이후, 그의 방은 더욱 난장판이 되었다. 모든 물건들이 섞여서는 무엇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나 왔어. .”

녜헤헤?! , ?!”


노점상 일을 마치고 샌즈가 집에 도착했을 때, 파피루스가 갑작스레 그의 앞을 막아섰다. 샌즈는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 ! !?”


샌즈가 슬쩍 고개를 움직이며 파피루스의 등뒤를 보려하자 파피루스는 연신 몸을 움직여 그의 시야를 막으려는 것 같았다. ‘인 만큼 죄다 보이지만.


꼬맹이.. 뭐하는 거야?”


파피루스의 뒤에선 베라라는 꼬맹이가 큰 종이를 펼치고는 망연자실한 눈빛을 샌즈에게 보내고 있었다. 샌즈는 베라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 ..”

“..그거


청사진을 똑같이 그려놓은 그림이었다.

샌즈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철렁거리는 걸 느꼈다

그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스멀스멀 그가 가장 싫어하는 감정이 피어오른다. 그는 싫었다


가장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꼬맹이, 지금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 할 수 있어요. 파피가 설명해줬어요. 이건 마법으로 돌아가는 기계라고. 그랬더니 이해가 갔어요.”

“...”


샌즈가 파피루스를 쳐다봤다. 그의 동생이 이런 걸 알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파피루스는 땀을 흘리면서 고개를 이리저리 젓고 있었다

그는 ‘우리 괴물들은 쿨하다는 걸 알려줬을 뿐이야라고 중얼거렸다.


파피가 말했어요. 이것과 똑같이 생긴 망가진 기계가 있다고.”

“...”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샌즈는 이걸 버리지 못한다고. 그래서 이걸 고칠 수 있으면..”

“..그만둬.”

?”


베라의 말을 끊고 샌즈가 중얼거렸다. 샌즈는 쿵쿵거리는 자신의 영혼을 느꼈다. 방금 한 말이 자신에게 한 건지, 아니면 베라에게 한 건지 모르겠다.


, ?!”


그대로 등을 돌려 집밖으로 빠져나간다. 뒤에서 파피루스가 따라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 사라졌다.


-


“...”


샌즈는 어느새 아무도 없는 공원에 도착했다. 그는 벤치 위에 아무렇게 앉았다. 쿵쿵거리는 느낌은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


오랜만이군. 자네.”

거슨씨.”

왜 그런 표정인가?”

, 좋은 농담이 생각나질 않아서요.”

자네는 변함이 없구만.”


거슨이 다가와 그의 옆자리에 앉는다. 잠시 그와 똑같이 시선을 멀리하던 거슨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나?”

꽤나 많은 걸 하고 있죠.”

뭘 무서워하나?”

뼈 빠지게 일해야 할 걸 무서워하고 있죠. 뼈인 만큼.”


샌즈의 대답에 거슨이 허허하고 웃는다.


나는 요즘 체스란 걸 배웠다네. 좋더군. 하다 보니 젊은 시절처럼 피가 끓어올랐네.”

멋지네요.”


대화의 맥이 끊긴다. 거슨은 잠시 슬쩍 샌즈를 쳐다봤다가,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린다.


여전히 꽁꽁 감싸매고 있구만. 그래도 이 늙은이가 잠깐 참견 좀 하겠네.”

“...”


샌즈는 대답하지 않는다.


일단 해보게. 뭐든. 하지 않는다면 후회할 걸세.”

변하셨군요.”

그렇지. 누구나 어떻게든 변하니깐. 그건 자네도 어쩔 수 없을 걸세.”

“...”


거슨이 자리를 떠난다. 샌즈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있다.


누군가가 그를 찾아왔다. 베라를 자신의 어깨 위에 태우고 있는 파피루스였다

그는 양손 가득히 베라가 그린 설계도를 들고 있었다.


녜헤헤! 이제 괜찮아! 이 위대한 파피루스님께서 완전한 해결책을 가지고 왔으니깐!”


샌즈는 멍하니 자신을 찾아온 파피루스를 쳐다보았다

그가 들고 있는 설계도엔 크게 X표시가 되어있었다. 샌즈는 그 설계도를 바라보면서 다시 영혼이 뛰는 걸 느꼈다.


..”


모두들 변했다. 샌즈는 이미 자신이 변해버렸음을 알았다.


===


슈발, 윾동이 문학 좀 쪄왔다. 이렇게 길게 쓸 건 아니었는데 젠장. 2편 완이다. 

이건 뭐냐 왜 칸마다 지랄이 나있지. 한글로 쓴 걸 옮겨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