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뻔한 인사말은 그만두고 싶다 말한다.
"고마워요!"
"다음에... 또 놀러 와..."
'너는 냅스타블룩에게 즐거웠다고 말했다.'
"헤헤... 나도 재밌었어..."
말을 마친 냅스타블룩이 사라지자 꼬마가 소녀를 재촉했다.
"자, 가자! 달팽이 경주는 다음에 꼭 또 하러 와야겠어!"
들뜬 꼬마의 태도에 소녀는 키득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여기는..."
내내 신이 나 보이던 꼬마가 걸음을 멈추고는 입을 열었다. 꼭대기가 간신히 보이는 뾰족한 산 아래에 뚫려있는 터널 앞에서 앞서가던 꼬마가 등을 돌려 소녀를 바라보았다.
"나의... 아니, 우리 국민들의 영웅이었던 언다인이 결투를 하던 곳이야..."
말을 마친 꼬마가 고개를 푹 숙였다. 왠지 모를 숙연함에 소녀는 말없이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터널을 걸어가면 핫랜드가 나올 거야. 미안한 얘기지만, 난 아직 그 곳에 적응을 못하겠더라고. 혼자 갈 수 있지?"
소녀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태도에 꼬마가 조금은 안심된다는 듯 말했다.
"그래, 넌 할 수 있을 거야. 넌 강하니까."
잠시 말이 없던 꼬마는 소녀를 지나쳐 걸어가다 말을 꺼냈다.
"...왜 이런 말을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소녀가 꼬마를 향해 돌아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언다인을 잊지 말아줘."
그 말을 끝으로 꼬마는 저 편으로 뛰어나갔다. 시야에서 꼬마가 사라지자 소녀는 그의 말을 속으로 되뇌였다.
그 순간 다시 가슴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식은땀이 흐르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잠시 숨을 고르던 소녀의 머릿속에 수 많은 영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대체 무슨 일들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처음 보는 갑옷의 여성이었지만, 그녀가 언다인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죽여버리는 자신의 모습. 이것은 대체...
"..."
견디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은 소녀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끔찍한 고통에 허우적대던 소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뜨거운 핫랜드에 진입했을 때는 몹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워터폴과는 정반대로 바닥에 용암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들어선 입구의 계단으로 올라서니 발견한 엘리베이터를 타자 어느 마을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미 밤이 되 있는 마을 한 가운데의 위치한 건물로 들어서니, 또 다시 정 중앙에 놓인 문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바깥으로 나 있었다. 긴 다리를 건너니 용도조차도 짐작할 수 없는 건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엘리베이터는 역시 이용 가능했다. 엘리베이터가 향한 곳에 도착하고는 내리자, 엘리베이터 바로 옆에 화려하게 장식된 문이 보였다. 소녀는 망설임 없이 걸어 들어갔다.
한 가운데에만 조명 하나가 비춰져 있어 내부는 어두웠다.
철컹-
더듬거리며 다리를 건너 중앙으로 향하자 돌연 조명이 꺼졌다. 갑자기 드는 오한에 소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끼...끼...끽..."
금속이 긁히는 괴기스런 소리에 소녀가 귀를 막았다. 하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커질 뿐이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끼긱... 끽..."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무엇인가 나타났다. 반대편으로 향하는 다리를 부숴버린 그것은 거대했다. 그 거대한 몸집을 올려다보며 소녀는 겁에 질렸지만, 겨우 떨지 않으려 애썼다. 이윽고, 조명이 다시 켜지고 괴물의 외형이 드러났다.
"끄히히히히힉!!!"
수 십개의 파이프를 일렁이며 자리한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기계였다. 하지만 단순히 기계로 치기에는 가슴 정 중앙에 박힌 눈알 두 개가 너무도 기괴했다.
"치이익-!"
증기가 끓는 소리와 함께 파이프 하나가 소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피할 겨를도 없었다. 그대로 파이프는 소녀의 옆구리를 스쳐갔다. 스쳤음에도 불구하고 소녀에겐 중상이었다. 깊이 찔리진 않았지만, 이내 적잖은 피를 흘리며 소녀가 숨을 헐떡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 채 그저 옆구리를 움켜쥘 뿐이었다. 다 해져버린 반창고는 그녀의 몸을 지키기엔 너무 약했다.
"치이익-!"
또 다시 파이프가 날아왔다. 이번엔 왼팔이었다. 이번엔 스치지 않았다. 팔목을 정확히 관통한 파이프 쪽으로부터 어마어마한 고통이 밀려왔다. 결국 소녀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소리 없는 비명에 기계는 마치 비웃는 듯 이전의 금속 소리를 다시 흘렸다.
"끼...끽... 끽..."
더 이상 버틸 힘도 없었는지 소녀가 쓰러졌다.
"치이익-!"
다시 들려오는 증기 소리에 소녀는 눈을 감았다. 죽음을 직감한 채, 모든 것을 놓아버린 그 때. 파이프가 날아오는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가 소녀의 귀에 들려왔다.
우우웅-
쾅-
"끄이익...? 끽!!!"
겨우 눈을 뜨니 소녀를 향해 날아오던 파이프는 반 이상이 부서져있었다. 놀란 소녀가 뒤를 돌아보니 누군가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꼬마야!!!"
푸른 후드를 펄럭이며 달려오는 그는, 샌즈였다. 소녀에게 다가선 샌즈는 빠르게 후드를 벗어 소녀에게 입혀주고는 앞으로 나서서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 알피스!"
"...샌즈...?"
샌즈의 외침에 기계의 일부분이 유리창으로 바뀌더니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흰 가운을 입은 노란 공룡의 외형을 한 여성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샌즈를 내려다보았다.
"...히힉... 무슨 짓이야... 비켜... 샌즈."
"아니, 너야말로 물러서. 그 끔찍한 괴물도 당장 치워버리고!"
샌즈의 격앙된 외침에 손톱을 물어뜯던 그녀는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맞서 외쳤다.
"메타톤이... 메타톤을 보고 끔찍하다니!!! 어찌 그럴 수가 있어!!!"
"아니, 그건 메타톤이 아니야. 그런 미친 기계를 만드려고 다른 괴물들을 희생시킨거야?"
샌즈의 충격적인 말에 알피스는 헉 소리를 내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그걸 어떻게...?"
"어찌 모를 수 있겠어... 저 눈동자들이... 쉴 새 없이 말하고 있다고! 괴롭다고, 어서 죽여달라고 말이야!"
"아니야!!!"
알피스가 비참하게 외치며 조종간을 당겼다. 그와 동시에 수 십 개의 파이프들이 일제히 샌즈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이잉-
샌즈가 손을 뻗자, 어디선가 나타난 해골들이 입에서 빛을 내질렀다. 빛에 닿은 파이프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어떻게... 끅... 네가... 이럴 수 있어..."
조종간을 꼭 잡은 채 고개를 숙인 알피스가 중얼거렸다. 샌즈가 식은땀을 흘리며 뻗었던 손을 거두자 그녀가 다시 소리쳤다.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네 동생의 뜻에 반하려는 거야!!!"
"...지금 모든 건 잘못되어있어... 너도 마찬가지야..."
샌즈가 다시 손을 뻗자 다시 나타난 해골들이 기계를 산산이 부숴버렸다.
"안돼!!!"
알피스의 비명이 무너지는 기계의 굉음에 묻혀갔다.
소동이 가라앉고 잠시 후, 무너진 기계의 잔해들 속에서 겨우 몸을 일으킨 알피스가 다시 바닥에 엎어져 눈물을 흘렸다.
"내가 잘못되었다고? 내가??? 내가!!!"
"...넌 뒤틀려있어..."
"...큭... 크히히히히!!! 히히히히히!!!"
정신 나간 사람처럼 수 차례 웃어대던 알피스는 겨우 웃음을 멈추고는 샌즈를 바라보았다.
"내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 메타톤도... 그리고... 그리고..."
다시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멈추지 않아 볼을 타고 흘렀다. 그 때,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소녀가 샌즈의 곁으로 다가서서 그의 손을 잡았다. 샌즈가 놀라며 소녀를 바라보자 알피스가 소녀를 향해 외쳤다.
"이젠 언다인도!!! 내 곁에 없어!!! 내 삶의 이유가 모두!!! 사라져버렸다고!!!"
온 힘을 쏟아낸 외침이었는지 그녀가 지쳤는지 고개를 떨궜다. 샌즈는 씁쓸해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괜찮니, 꼬마야.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미안하다."
'너는 샌즈에게 미안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착하구나..."
샌즈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알피스는 피식 웃으며 힘겹게 말했다.
"난 알고 있어... 넌 사실 어찌되든 상관 없었던 거야... 그 누가 죽든 간에... 네 동생만이 무사하면 그만이라고..."
"...그렇지 않아."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홀로 그리 담담할 수 있겠어? 넌... 방관자야."
겨우 말을 마친 알피스가 몸을 끙끙거리며 일으켰다. 눈물과 피로 얼룩진 얼굴에 소름 끼칠듯한 미소가 그려졌다.
"...끅끅... 이젠 지쳤어... 힉..."
일그러진 미소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알피스는 낭떠러지를 향해 몸을 던졌다.
"안돼!"
샌즈가 달려갔지만 이미 그녀는 몸을 던진 후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떨어져 어둠에 묻혀버린 알피스를 보며 샌즈는 손을 들어 얼굴에 감싸 쥐었다. 소녀는 말없이 샌즈의 등 뒤로 다가서서 그를 안아주었다.
"헉."
갑자기 느껴지는 온기에 샌즈가 놀라며 뒤돌았다. 몸 여기저기에 피가 쓸린 채 자신을 바라보며 웃어주는 소녀의 모습에 샌즈는 울컥하는 마음으로 소녀를 껴안았다.
"...일단 상처를 좀 치료해야겠네."
말을 꺼낸 샌즈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꺼낸 건 핫도그였다.
"먹어, 핫-캣이야."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소녀가 빵에 끼워진 소시지를 보고 나서야 이해한 듯 샌즈를 노려보았다. 고양이 얼굴이 귀엽게 그려진 소시지를 본 소녀의 눈빛에 샌즈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이봐, 이 정도 농담은 좀 받아달라고."
샌즈가 부숴진 기계의 잔해들을 밟으며 저 편으로 향하며 말했다.
"꼭꼭 씹어먹어. 다 먹으면 천천히 걸어와."
핫도그, 아니 핫-캣을 먹으며 몸이 점점 낫는 것을 느낀 소녀가 샌즈를 바라보았다.
'너는 샌즈를 불러 세웠다.'
"...꼬마야, 넌 이 곳에서 날 마주해선 안 되는 거였어. 정해진 자리에서, 곧 보게 될 거야."
의미를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샌즈는 사라졌다.
잘봤다
ㄷㄷ
감사합니다. 여러분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