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강의에 조별과제 있는 건 다들 알고 오셨죠?"


교수가 말을 꺼내자, 새내기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조별과제.

동의어로는 공산주의.

요즘 말론 현시창.

인간 5명이 모이면 그 중 1명은 병신이 있다는 명언에 기초한 과제해결방식.

만인의 만인에 대한 병신상태를 유지하며, 만병의 근원이자 집안의 우환이 들게하는 요소.

없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예토전생인지, 분신술인지 수없이 늘어나 돌아가시고 위독해지시며, 한겨울 알몸구보를 하던 군필자가 갑자기 위염이 생기게 하는 힘을 가진 조별과제.

공산주의가 왜 망했는가, 어째서 성선설을 신봉할 수 없는가를 몸으로 체험하게 해주는, 경험주의적 학습법의 최고봉을 차지한 바로 그 조별과제.

학점이 소중한 학생들은 이미 자기 혼자서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강의를 들으러 왔고, 다른 학생들은 알아서 되겠지란 심정을 가지고 있었다.

교수가 임의대로 조를 짜주는 것으로 첫 날 강의가 마무리 되었고, 같은 조가 된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서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학과와 학번, 나이 등을 소개하는 와중에, 저 멀리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ㅓㅏㅏ! 안뇽! 난 떼미얌!"


모두의 시선을 이끄는 독특한 목소리.

그곳에는 노란색과 하늘색이 번갈아 나타나는 줄무늬 옷을 입은 괴물이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 앞에서 몸을 흔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뭘 들은 건지 생각하느라 잠시 멍하니 있었고, 개인지 고양이인지 모를 이상한 생물은 계속해서 말했다.


"인간 쨩 기여어! 떼미는 인간 조아! 반가어! ㅓㅏㅏ!"


얼굴을 미친듯이 흔들며 말하는 괴생물체의 모습을 보며 같은 조원들은 이 강의는 드랍이다라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하지만 테미는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반가움을 표출하며 몸을 떨 뿐이었다.

테미와 같은 조가 된 학생들 중 둥근 안경을 낀 여학생이 그나마 정신을 수습하고 이어서 자기 소개를 했고, 그렇게 다들 소개를 마쳤다.

물론, 그 사이사이 테미가 "ㅓㅏㅏ! 인간! 반가어! 기여어!"를 연발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조장은 누가 하실래요?"


여학생이 말을 하자 테미를 제외한 나머지 두 남학생은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니면 알지만 신경쓰지 않는 테미만이 주체하지 못하고 "호에?"라고 말할 뿐이었다.

여학생도 막상 말은 꺼냈지만, 선뜻 자기가 조장을 맡겠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넷을 감싸고 돌자, 테미가 연신 "호에? 호에?"거리다 말했다.


"조장이 머야?"


시선을 돌리고 있던 남학생 중 뿔테안경을 낀 쪽이 헛웃음을 지었다.

테미는 그런 남자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약간 꺾었다.


"조장은...대표에요."


여학생이 어떻게든 쉬운 단어로 설명하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대뾰? 떼미 그런거 짱조아해! 떼미가 할래!"

"대표가 뭔진 알아요?"


안경을 안 낀 남학생이 비꼬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테미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떼미 저버네도 대뾰해써! 떼미 그런거 잘해!"

"저번에? 무슨 대표였는데요?"

"웅...이번 겨수가 다른 수업 할 때! 떼미가 대뾰해써!"


학생들은 의외라는 얼굴로 눈빛을 주고 받았고, 여학생이 테미에게 말했다.


"학점은 뭐 나왔는 데요?"

"에이쁠!!!!! 떼미 에이쁠 바다써!!!!! 자랑스러운 학생이야ㅑㅑㅑ!!!!!!!"


학생들은 전부 얼이 나가 입을 벌리고 테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렇게, 테미가 조장이 되었고, 같은 조원들은 탈주를 준비했다.





"허이구, 욘석아. 목을 그렇게 늘이면 이 늙은이가 어찌 쓰다듬으라고?"

"헥헥헥헥!"

"ㅓㅏㅏ! 거부카하라버지! 떼미와써!"


레서독을 쓰다듬고 있던 거슨은 자신을 부른 목소리에 뒤돌아 보았다.

 

"와하핫! 이거 참, 반가운 얼굴이구만!"


팔다리를 한껏 늘린 체 뛰어오던 테미는 거슨의 품에 달려들며 몸 크기를 줄였고, 거슨은 그런 테미를 몸으로 받아냈다.


"오랜만에 간 학교는 어떻디?"

"쨩 재미써써! 떼미 또 대뾰돼써! 떼미 자랑스러운 학생이 될거야!"

"학학학!"


테미가 얼굴을 흔들며 말하자 레서독이 옆에서 혀를 내밀고 헥헥대며 테미를 핥았다.


"ㅓㅏㅏ!"

"하하, 너라면 잘 할 수 있겠지. 다른 일은 없었고?"

"떼미, 인간들에게 돈바다써! 쨩 기여운 인간들이어써!"

"응? 인간들이 돈을 줬다고?"


테미는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골목에서 인간 셋이 다른 인간 하나에게 돈을 받고 있었는데, 테미가 달려가자 다들 돈을 던지고 도망갔다는 얘기였다.

거슨은 테미의 말을 들으며, 금품을 갈취하던 불량배들이 자신이 보기에도 괴상한 이 생물체가 온 몸을 늘렸다줄였다하며 "ㅓㅏㅏ! 인간! 쨩기여어!"라고 덤벼들자 도망가는 모습을 생각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와하하핫! 우리 테미가 또 한 건 했구나!"

"호엑?! 떼미 실수한 거야?"

"아니, 아주 잘했다! 와하핫!"

"ㅓㅏㅏ! 떼미 잘해써! 떼미 차캐!"

"헥헥헥!"


그렇게 웃음을 터뜨리는 거슨과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테미의 옆에서 뛰어다니던 레서독이 갑자기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냈다.


"으르르..."

"왜 그러냐?"

"컹컹컹!"

철컹철컹철컹!


거슨의 물음에 레서독이 반응하기도 전에, 개가 짖는 소리와 금속 갑옷이 철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시선을 돌리자 멀리서 그레이트독이 그 육중한 몸으로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고, 이내 레서독도 그레이트독을 향해 달려갔다.


"크허허헝!"

"크아아앙!"


둘은 곧 서로를 붙잡고 뒹굴기 시작했고, 거슨은 난감한 눈치로 테미에게 말했다.


"이런, 테미야. 오늘은 이만 가보는 게 좋겠구나."

"히잉... 떼미 가기 시른데..."

"그래도 이제 가야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할 것 아니냐?"

"ㅓㅏㅏ! 마자! 떼미 다른 틘구들한테도 말해야 해! 떼미 가볼께 뺘뺘이!"


테미가 사라지고 나자, 거슨은 인자한 웃음으로 테미를 배웅하고 난 뒤, 한숨을 쉬며 아직도 뒹굴고 있는 개들에게 다가갔다.

거슨이 둘에게 다가가자 둘은 싸움을 멈추고 자리에 앉아 꼬리를 흔들며 거슨을 기다렸다.


"둘 다 사이좋게 지내라니까."

"햑햑햑햑!"

"헥헥헥헥!"


거슨이 주름진 손을 들어 둘을 같이 쓰다듬어주자, 두 개는 기분좋게 헥헥거리며 거슨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그게...자료를 찾아보긴 했는데..."

"저...전공과목에 과제가 밀려서..."

"그...사실 지난 주에 경미한 교통사고가 나서..."


인간 세 명은 테미 앞에서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테미는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말했다.


"ㅓㅏㅏ! 괜차나! 떼미가 다 해써!"

"정말요? 와!"


여학생이 박수를 치자 나머지 둘도 따라 박수를 쳤다.

그들은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호구 조장 하나 물었다고 기뻐하고 있었다.


"구로면 다음엔 언제 만나는고얌?"


테미가 말하자 학생들은 순간 서로 눈치를 봤다.


"조장이 편할 때로 해요."

"구로면 워료일!"

"아, 그날은... 약속이 있어서."


안경 낀 남학생이 난처한 듯 말했다.


"웅...구로면 햐요일!"

"아, 그날 저 연강만 세 개에요."


이번엔 다른 남학생이 말했다.


"우웅...수요일은 떼미가 안되는뎅...모교일은?"

"죄송해요. 저 그날 집에 내려가야해서..."


여학생이 한껏 죄송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그묘일은 다들 슈업없찌? 그날하쟈!"


인간들은 다들 금요일이 공강이었기에, 별 상관은 없었지만 그래도 공강날 학교에 오는 건 별로였기에 눈치를 보며 반대를 하려 했다.



"그게요..."

"우웅...그묘일도 안돼는거얌?"

"아니, 그게... 공강날 학교오는 게 좀..."

"구로면 다른 이유는 없는 고얌?"

"그렇긴 한데...그냥 그 다음 주는 어떨까요?"

"그래요, 어차피 다음주는 다들 바빠보이는데."


학생들은 어느정도 협상의 기미가 보이자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어떻게든 빼려고 했다.


"우우웅...그럼 인간들 다음 주에 못 보는 거얌?"

"아쉽네요."

"어쩔 수 없죠."

"이런..."


테미가 양 귀를 축 늘어뜨리고 말하자, 나머지 학생들은 됐다라는 심정으로 안타까운 듯 말했다.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진.


"이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인간들."


부들부들 떨리던 테미의 얼굴이 딱 고정되고, 갑자기 엄격하고 근엄한 말투로 테미가 말하자, 인간들은 모두 굳어버렸다.

그리고 이내, 자신들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만약 다음주에 못보면 다들 좆된다는 걸 직감했다.


"우웅...그럼 다음에 봐, 뺘뺘이!"

"자, 잠깐! 토요일은 돼요!"

"맞아, 주말에 보면 되겠네!"

"아, 그래, 토요일 좋다!"


테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인간들이 재빨리 말했고, 테미는 기뻐하며 말했다.


"ㅓㅏㅏ! 그럼 다음주 또요일에 보는고얌?"

"네."

"그렇게 해요."

"그러죠, 뭐."

"ㅓㅏㅏ!!!!!!!"


테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들은 강려크한 조장에게 물렸다며 침울해졌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질문 있으십니까."


학생이 발표를 마치고 나자, 몇몇 질문을 하고 질문거리가 다 끝나자 발표를 마무리하고 내려갔다.

교수는 박수를 몇 번 치고 나서, 입을 열었다.


"정말 발표를 잘 해줬네요. 그럼 다음조 올라오세요."

"ㅓㅏㅏ! 떼미 차례얌!"


테미를 포함한 네 명의 조원들이 자리에 올라가자, 다른 학생들이 박수를 쳐줬다.


"ㅓㅏㅏ! 반가웡! 발뾰를 하는 떼미얌!"


다른 학생들은 왜 멀쩡한 학생들 놔두고 테미가 발표하나 의아했지만, 그들이 실수하면 자신의 학점이 오르기에 그러려니 했다.


"먼저 이거봐줭!"


테미가 신호하자, 안경낀 남학생이 동영상을 틀었다.

그리고, 동영상이 시작되자마자 학생들은 모두 혼란에 빠졌다.

수없이 많은 테미들이 일제히 얼굴을 흔들며 "ㅓㅏㅏ!!!!!!!!!!!!인간!!!!!!!!!!기여어어어어어어어!!!!!!!!!!!!"라고 외치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소개하며 "안뇽! 난 떼미야! 그리구 여긴... 내틘구 떼미!" "ㅓㅏㅏㅏㅏㅏㅏㅏㅏㅏ!!!!!!!!!!!!!!"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압권은 마지막에 소개된 밥이라는 테미였다. 밥은 그들과는 전혀 다르게 평범하게 말했지만, 오히려 그 괴리감에 학생들은 더욱 할 말을 잃어갔다.

인간의 언어와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혼돈의 카오스가 지나가고 난 뒤, 테미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떼미 발뾰 끝!"


이어서 테미는 질문을 기다렸지만, 강의실에 있는 그 누구도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했기에 아무런 질문도 없었다.

테미의 조는 질문이 없었기에 당연히 내려왔고, 테미조 이후에 발표한 조들은 전부 발표를 망치게 되었다.

그덕분에, 조별과제 만점은 테미조와 그 앞 조 뿐이었기에, 이번 학기에도 테미는 A+을 받을 수 있었다.




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지나 다시 가을이 찾아와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올 A+을 받은 아스리엘은, 새로운 수업을 들을 준비를 했다.


"안녕, 아스리엘."

"아, 안녕. 차라, 프리스크."


미리 강의실에 앉아있던 아스리엘에게 차라가 인사를 했고, 그녀의 손을 잡고 들어온 프리스크 역시 아스리엘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어라? 프리스크, 지팡이는?"


아스리엘의 질문에 프리스크는 미소지으며 옆으로 매고있는 가방에서 접힌 지팡이를 꺼내 보여줬다.


"오, 더 좋아졌내?"


셋이 잡담을 나누는 사이, 교수가 들어왔고 교수는 출석을 부른 후 학생들에게 강의계획서를 나누어주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제 강의에 조별과제 있는 건 다 알고 오셨죠?"


교수의 간단한 강의방식 설명 이후, 교수가 임의로 조를 지정 해주고 수업이 끝났다.

차라는 자신과 프리스크, 아스리엘이 모두 같은 조에 들어온 것에 신기해하며 말했다.


"어떻게 우리 셋이 같은 조지? 그리고 프리스크, 어차피 우리 셋 같은 조니까 또 조장 다 떠맡지 마."

"내가 교수님한테 미리 말씀드렸어. 프리스크가 도움이 좀 필요하다고."


아스리엘이 살짝 자랑스러워하며 말하자, 프리스크가 고맙다고 말했다.

차라는 아스리엘을 가볍게 때리며 아스리엘을 칭찬했다.


"웬일로 네가 그런 것 까지 생각했냐?"

"헤헤...그런데, 4인 1조잖아. 다른 한 명은 누구지?"


아스리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의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ㅓㅏㅏ!!!!!!!!!안뇽!!!!!!!난 떼미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