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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나자, 숙구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 휴식을 즐겼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즐기러 온, 혹은 커피를 마신다는 핑계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 미루는 사람들이 나간 카페는 무척 한산했다.

하지만 따뜻한 오후의 햇살이 비어있는 카페를 가득 채우기에, 숙구는 의지로 가득 찼다.

숙구는 의자에 앉아 예의 그 편안한 표정으로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딸랑-


창밖을 내다보던 숙구는 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곳을 바라봤다.


"녜헤헤! 숙구야! 잘 있었냐!"

"느아아아! 첫인사는 내가 하려 했는데!"

"필수 오빠! 다인 언니!"


숙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손님의 등장에 반가운 소리를 외치며 일어섰다.

그리곤 둘에게 달려가 격한 포옹을 나누었다.

둘을 꽉 껴안아 준 숙구는 약간 거리를 벌리며 멀어졌다.


"녜헤헤! 정말 반갑다!"

"세상에, 이건 대체 무슨 복장이야?"


숙구는 필수가 고향에서 입던 옷과는 전혀 다른, 깔끔한 양복을 입고 있는 것에 놀라며 말했다.


"촌사람이라고 티 내고 다닐 일 있나! 한 벌 샀지!"

"하이고, 펑퍼짐한 회색 양복 사려 한 게 누구더라?"


자랑스럽게 말하는 필수를 다인이 약간 비꼬았다.

숙구는 필수에게 정말 잘 어울린다고 말하며 방금 격한 포옹으로 비뚤어진 넥타이를 다시 매만져 주었다.

그러고 나선 햇살이 잘 드는 창가로 둘을 안내하고 아이스티를 두 잔 타서 건네준 다음, 자기는 카페모카를 타 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그때 내가 그랬지. '형! 양말 좀 치우라고!'"

"그랬더니?"

"좀 있다 치울게. 소들 '골'부터 먹이고!"

"아하하하!"

"푸후후후!"

"난 하나도 안 웃기다고!"


필수는 크게 웃는 숙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투덜거리며 얼음을 하나 입에 넣고 깨물어 먹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는 어떻게 됐어?"

"뭐, 학생은 없어도 캠핑이니 체험학습이니 그런 걸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가 봐."


다인의 말에 숙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도리애 아주머니도 만족하는 것 같더라고."

"어제도 자전거로 전국 일주하는 사람들이 왔다고 닭 하나 삶아주시더라. 내가 만든 막국수를 먹이고 싶었는데!"


숙구는 아쉬운 듯 말하는 필수를 향해 어색하게 웃었다.

필수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웠고, 숙구는 바로 다인에게 속삭였다.


"언니, 필수 오빠 막국수..."

"말도 마라, 먹으면 죽는다."

"역시..."

"내가 가르쳤는데 왜 그런 맛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니까?"


숙구는 속으로 자기는 알 것 같다고 말했지만, 다인의 무식한 악력을 알기에 그 말은 속으로만 삼켰다.


"수영장은 어떻게 됐어?"

"아직 잘 쓰고 있지. 그러고 보니 얼마 안 있으면 또 애들 놀라고 청소해야 되네."

"아직도 언니가 거기 관리하는 거야?"


다인은 고개를 끄덕이곤 아이스티를 빨아 마셨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고 웃으며 숙구에게 말했다.


"푸후후, 그러고 보니, 기억나냐? 승덕아저씨 처음 본 날."

"아... 그때."


숙구는 그리운 걸 추억하는 듯 아이스티를 만지작거렸다.




"우으... 그래도 걸리면 혼날 텐데..."

"사내자식이! 그냥 꼬추 때라!"

"으아아아! 갈게! 갈게!"


초롱이가 승리를 덮치고 괴롭히려 들자 승리는 여기저기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그 사이, 평소보다 늦게 학교에서 나온 숙구가 나오는 걸 본 기두가 숙구에게 다가갔다.


"숙구야! 너도... 아쿠!"


숙구에게 걸어가던 기두는 뭔가에 걸려 넘어졌고, 숙구는 기두에게 빠르게 다가와 일어나는 걸 도와줬다.


"괜찮아?"

"요! 이 정돈 끄떡없지!"


기두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너도 오늘 놀러 올래?"

"오늘? 안돼."


숙구는 오늘은 다른 일이 있다며 거절했다.


"요...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아파, 초롱아! 으아앙!"

"에잇! 에잇!"

"그럼 먼저 갈게."

"잘 가!"


숙구는 승리를 쫓아가며 때리는 초롱이와 그런 그들을 말리러 가는 기두를 뒤로 한 체 집으로 향했다.




"새준! 너 또 처맞고 싶냐! 왜케 늦게 와!"

"미안미안, 여기까지 오려니 '골'짜기가 깊어서."

"느아아아! 늦은 주제 농담이냐! 일로와! 그냥 내가 네 다리를 뽑아버릴 테니!"


다인은 대걸레를 휘두르며 새준에게 달려갔고, 새준은 그런 다인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도망 다녔다.

한동안 그렇게 숨 막히는 추격전을 벌이던 둘은 숙구와 리애가 모습을 드러내자 일시적 휴전을 맺음으로 일단락되었다.


"미안해요, 선생님들. 마을 이장한테 시키려 했는데..."

"아휴, 뭘요. 어차피 바쁜 건 모두가 아는데."

"바쁘긴... 어차피 그 인간 또 바둑이나 두고 있겠죠."


한동안 승고를 흉보던 리애는 잠시 후 호스를 찾으러 간다며 창고로 향했다.

새준은 텅 빈 수영장 바닥에서 여기저기 발로 툭툭 치는 숙구에게 다가갔다.


"헤, 꼬맹이. 엄마 도와주러 온 거야?"


숙구는 고개를 끄덕였고, 새준은 숙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착하네. 꼬맹이."

"야! 새준! 거기서 놀지 말고 올라와 봐!"


청소도구들을 정리하던 다인이 새준을 부르자, 새준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왜?"

"이거나 가져가."


다인은 새준에게 물 수위를 재는 막대기를 던져줬다.

새준은 가볍게 그걸 받았고, 이어 다인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밤에 너 혼자 남게?"

"그럼 뭐, 우르르 몰려가냐?"

"그래도 위험하지 않아?"

"하,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너야말로 오늘 청소하다가 뻗지나 마라."


다인이 코웃음 치며 말하는 사이, 호스를 찾아온 리애가 돌아왔다.

호스를 받은 다인은 숙구를 불러 수도꼭지를 맡기고 양동이에 물을 담아 세제물을 만들었다.

다인이 세제물을 만드는 사이 리애는 호스로 수영장 바닥과 벽에 물을 뿌렸고, 새준은 다인 옆에 쭈그리고 앉아 "헤, 잘하네."라고 말했다가 한 대 얻어맞고 빗자루로 주변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해가 머리 위에 있을 때 시작한 청소는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어 갈 때야 비로소 끝이 났다.


"음... 물은 이 정도면 되겠네요."


수영장에 막대를 꽂아 넣은 새준이 눈금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이제 다인 선생님하고 숙구만 오면 되겠네요."

"둘 다 양반은 못 되겠는데요?"


리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청소도구를 다 정리하고 돌아온 다인과 숙구를 보며 새준이 말했다.


"고생했어요, 다들."

"고생은 뭘요."

"그럼 다들 돌아가죠."

"아, 저는 남을게요. 확인할 게 있어서."


다인이 이마를 닦아내며 말했다.


"아... 다인 선생님이 남으시게요?"

"뭐, 어차피 마을에 남는 사람이 저뿐이니까요."

"안 다치게 조심해라."

"하, 별걱정을."

"아니, 너 말고. 상대방 또 뚜까 패오지 말라고."

"...너 부터 패줄까?"

"흠, 흠!"


리애가 숙구쪽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헛기침을 하자, 다인은 얼른 말을 삼켰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가자 숙구야."


리애가 숙구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숙구는 그 손을 바로 잡지 않고 머뭇거렸다.


"왜 그러니?"

"저 오늘 다인 선생님이랑 같이 있을래요."


숙구의 말에 거기 있는 모두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음... 꼬맹이. 오늘은 집에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 다음번에 우리 집으로 놀러 오면 되잖아."


숙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말을 잘 듣는 숙구지만, 한 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 걸 아는 셋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든 숙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던 셋은, 해가 산을 넘어가 버리자 결국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하아... 어쩔 수 없지. 교장 선생님. 숙구는 제가 잘 데리고 있을게요."

"이것 참, 꼬맹아. 넌 아직 '골'격도 작은 게 벌써 옹고집만 들면 어떡하냐."


새준이 프리스크의 머리를 마구 헝크리며 말했다.


"미안해요... 내가 같이 남아야 하는데."

"걱정 마시고 내일 도시나 잘 다녀오세요."

"미안하다. 집에 필수 혼자 둘 순 없잖아?"

"넌 빨리 가는 게 날 도와주는 거야."


리애는 숙구를 한 번 안아준 뒤, 조심하고 다인을 잘 따라다니라고 말한 뒤 새준과 같이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인과 숙구는 그런 둘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해주고 학교 당직실로 들어갔다.


"배고프지? 라면 먹을까?"


다인은 휴대용 버너를 꺼내고 냄비를 올린 뒤 생수 한 병을 까서 냄비에 부었다.

그리곤 옆에 쌓여있는 라면 상자에서 라면을 하나 꺼내려다가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봉지라면을 두 개 꺼내고 하나를 뜯어서 면을 약간 부순 다음 숙구에게 건넸다.


"먹을래?"


숙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걸 받아 씹었고, 다인도 좀 더 크게 면발을 부숴서 입안에 넣었다.

한동안 방안은 가스 불이 타오르는 소리와 오도독 오도독 라면을 씹어먹는 소리만 맴돌았다.

잠시 뒤, 물이 끓기도 전에 라면 한 봉지를 다 씹어먹은 둘은 말없이 라면 한 봉지를 더 꺼냈다.

다인은 라면 두 봉지를 옆에 놓은 체 깊은 생각에 잠겨 들었다.


"언니."

"응?"

"물 끓어요."

"앗!"


다인은 그제야 물이 펄펄 끓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재빨리 라면 봉지를 뜯어 면과 수프를 집어넣었다.

그 사이 숙구는 식탁을 피고 그릇과 수저를 놓은 뒤 작은 냉장고에서 김치통을 꺼내 놓았다.

다인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대충 집히는 교과서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냄비를 내려놨다.

잠시 뒤, 라면을 다 먹은 둘은 만족한 듯 배를 두드렸다.


"그럼 설거지해올게."


다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과 수저를 챙겼다.

그리고 문밖으로 나가려다가 문득 생각 난 듯 주머니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숙구의 손에 쥐여주었다.


"숙구야. 뭔 일 있으면, 이 호루라기를 힘껏 불어. 그리고 언니 열쇠 가지고 나가니까, 절대 문 열어주지 말고."


숙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인은 설거짓거리들을 들고 밖에서 문을 잠근 뒤, 잘 잠겼나 확인하고 수돗가를 향해 갔다.

다인의 발소리가 작아지다가 들리지 않게 되자 숙구는 작은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생각보다 다인이 늦는다고 생각하며 바닥을 뒹굴던 숙구의 귀에 작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숙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귀를 기울였고, 이내 그 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온다는 걸 깨달았다.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고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 숙구는 수영장 쪽에서 소리가 들린다는 걸 확인했다.

가볼까 말까 고민하던 숙구는 방을 두리번거리다 발견한 나무몽둥이를 챙기고 다인이 준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방을 나섰다.




"...분명 누군가 있는데..."


다인은 학교 안을 돌아다녔다.

숙직실에 놓아둔 라면 상자에서 컵라면 상자가 뜯겨있었다.

숙직실 문이야 항상 열려있기에 누가 하나 먹었다고 해도 이상한 건 아니지만, 다인은 직감적으로 침입자가 있다고 확신했다.

어쩌면 오늘, 며칠 전부터 종종 보였다는 이상한 남자를 잡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설거지를 다 마치고 나서 우선은 숙구에게 돌아갈까 생각한 다인이었지만, 어차피 숙구는 방 안에 있고, 호루라기도 줬으니 빠르게 순찰을 하기로 했다.

다인은 우선 체육 창고에서 쇠막대기를 챙기고 학교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빠르게 교실을 전부 확인하고 혼자 있는 숙구에게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다인은 교실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다인은 학교가 생각보다 넓다는 사실에 초조해졌다.

1층을 다 살피고 2층으로 올라간 다인이 마지막 교실을 살피려 할 때였다.


"꺄아아!"

삐이이익!

"숙구!"


밖에서 비명과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자, 다인은 곧바로 숙직실로 달려갔다.

계단을 거의 뛰어내리다시피 내려간 다인은 쇠막대도 집어 던지고 최대한 빨리 달렸다.


"숙구야!"


순식간에 숙직실에 도착한 다인이 문을 열었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황한 다인의 귀에 다시 한 번 짧은 비명이 들렸고, 다인은 소리가 수영장 쪽에서 난다는 걸 알아채자마자 다시 달렸다.


"아야! 그만! 으악!"


수영장에 도착한 다인의 눈에 숙구가 누군가를 막대기로 후려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인은 숙구가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그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다인이 숙구의 이름을 부르자, 숙구는 고개를 돌려 다인을 바라봤고, 이내 막대기를 집어 던지고 다인의 다리에 들러붙었다.

두려움에 몸을 떠는 숙구를 안심시킨 다인은 시선을 돌려 숙구에게 맞고 있던 사람을 확인했다.


"...초롱이?"

"으으..."


다인은 상대가 초롱이인 걸 확인하자마자 초롱이에게 다가갔다.

초롱이는 맞은대가 많이 아픈 듯, 신음하면서 맞은 부위를 감싸고 있었고, 숙구도 상대가 초롱이였다는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괜찮냐? 네가 여긴 왜 있어?"

"으으...수영장..."


다인이 초롱이를 살피면서 물어보자, 초롱이는 자기와 다른 아이 둘이 같이 밤에 수영장에 놀러 오기로 했었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제야 다인은 풀숲에 어설프게 숨은 승리와 기두를 발견하고 피식 웃었다.


"야."

바스락.

"일로와. 내가 가면 둘 다 처맞는다."


잠시 뒤, 풀숲에서 나온 승리와 기두는 무릎 꿇은 체 양손을 들고 벌을 섰다.

초롱이도 벌을 세우려 했으나, 숙구에게 맞을 만큼 맞아서 아직도 끙끙거리고 있었기에 초롱이는 그 옆에서 숙구에게 미안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앉아있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놀 수 있는데, 그 하루를 못 참아서 야밤에 이 사단을 만드냐?"

"죄송해요..."


다인은 숙구가 휘두르던 막대를 손에 쥐고 쭈그리고 앉아 바닥에 막대를 탁탁 쳐가면서 셋을 혼냈다.


"그러다 밤에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려고 그랬어?"

"죄송해요오..."

"부모님들은 너네 여기 온 거 알아?"


셋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뭐라 하고 나온 거야?"

"승리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승리 넌?"

"초롱이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얼씨구?"


다인은 막대기로 셋의 머리통을 한 대씩 때렸다.


딱-딱-딱-

"아야!"

"놀러 오려고 거짓말까지 했어?"

"잘못했어요..."

"으휴..."


다인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셋 모두 이제 일어나라고 했다.

이어서 아이들을 돌려보내려는 다인의 눈에 순간 무언가 들어왔다.

다인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누군가 있다는 걸 깨달은 다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얘들아."

"네?"


아이들은 갑자기 낮게 가라앉은 다인의 목소리에 몸을 움츠렸다.


"선생님 잘 따라와."


다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천천히 학교로 걸어갔다.

아이들은 무서운지 서로를 꼭 껴안고 다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학교 입구에서 자신이 던져놓았던 쇠막대를 발견한 다인은 나무몽둥이를 내려놓고 그 쇠막대를 집었다.

나무로 된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날카롭고 음산하게 학교에 울리자,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여기 있어."


조금 전 확인을 하지 못했던 교실 앞에 도착한 다인은, 그 너머에서 보이는 불빛을 보며 아이들에게 작게 속삭였다.

아이들은 잔뜩 겁먹고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다인은 발소리를 죽이고 조심스럽게 문으로 다가갔다.

문 손잡이를 잡은 다인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손에 쥔 무기를 고쳐 쥔 다음 문을 옆으로 확 밀어버렸다.


드르륵! 쾅!

"야 이 도둑 새끼야!!!!!!!!!!!!"

"읭뒤ㅇㄹ느!?"

"...!"


다인이 문을 열고 크게 소리치자, 교실 안에서 우당탕하는 소리와 괴상한 소리가 났다.


"윙ㄷㅏㅜㅏㅡㄴ르ㅏ!"

"어딜 털어먹을 게 없어서 학교를..."


도둑들의 머리통을 뽑아버릴 기세로 소리치던 다인은 안쪽에 있는 사람을 확인하면서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심마니 아저씨?"

"물!!! 물!!!"


얼굴을 붙잡고 물을 찾으며 괴로워하는 사람의 옆에서 어쩔 줄 모르는 일비를 본 다인은 밖에 있는 아이들에게 물을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소란이 지나간 후, 얼굴에 생수를 뿌리면서 연신 세수를 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모두 교실에 모여있었다.


"일비 아저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그게..."


마을의 심마니, 길일비는 옆의 사람을 소개해줬다.

강승덕이라고, 도시에서 잘 나가는 사업가 겸 발명가였는데, 이제 은퇴하고 나서 이곳에서 살기 위해 왔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일비의 집에서 같이 지내면서 종종 마을을 둘러보곤 했다고 말했다.

그제야 그간 마을에서 보인다던 이상한 남자의 정체를 알아낸 다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여기 있어요?"

"윙...컵라면이 먹고 싶었다..."

"예?"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낸 남자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 일비의 집에 도착한 승덕과 일비는 오늘 대낮부터 집에서 소주를 까며 떠들었다.

그러다 문득 승덕이 안주로 컵라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슈퍼를 찾아가려 했으나, 그 순간 일비가 학교 당직실에 컵라면이 있다는 걸 생각해냈다.

그래서 둘은 막걸리가 담긴 주전자와 물 끓일 냄비를 들고 학교로 왔다는 것이다.

그리곤 당직실에서 컵라면을 챙겨서 먹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컵라면을 하나씩 먹은 둘은 술을 마저 먹다가, 문득 승덕이 주머니에 넣고 온 캡사이신을 넣어서 라면을 끓이자는 소리를 했다.

일비는 캡사이신이 뭐냐며 물어봤고, 승덕이 주머니에서 캡사이신 병을 꺼내서 그걸 열고 내용물을 보여주려는 순간 다인이 들어오는 바람에 놀라서 병을 위로 던져버렸다.

뚜껑이 열린 병에서 쏟아진 캡사이신이 승덕의 얼굴에 뿌려졌고, 이후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다인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물어봤다.


"아니, 그럼 여기서 비명소리나고 제가 순찰 돌고 그런 건 못 들었어요?"

"들었는데, 술 취한 사람이 그런 걸 신경 쓰겠어?"

"..."


승덕이 말하자 일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하아... 어쨌든 잘됐네요. 두 분이 이 아이들 좀 데려다줘요."

"윙딩?!"


승덕과 일비가 뜬금없는 제안에 놀라 뭐라고 하기도 전에 다인이 덧붙였다.


"아니면 여기서 저한테 좀 맞으시던가."

"가자. 얘들아."


평소 과묵하던 일비가 이례적으로 입을 열고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숙구를 제외한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지는 어른들을 배웅한 다인과 숙구는, 난장판이 된 교실을 청소하고 숙직실로 돌아갔다.




"푸후후!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지."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화장실에 다녀온 필수가 자리에 앉으며 물어보자, 다인은 다시 그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숙구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