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테일 스포일러 있슴니다







상상해보자. 어느 여자아이가 내뱉는 숨소리는, 그것만으로 남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가?

남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여자아이가 실제로 미소녀 축에 들어가는 아름다운 소녀라면 더더욱 좋지 않은가?

물론 그것은, 이 여자아이가 '맨손으로' 암벽 등반을 하고 있지 않을 때의 얘기겠지만.



"하앗... 읏..."



소녀, 프리스크는 아무런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여러 산을 정복했었고 지금 도전 중인 에봇산에서도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사실, 이것은 프리스크에게 있어 위험이라고 할만한 레벨조차 아니었다. 확실히 이 근방은 어째선지 인기척이 전혀 없었지만 프리스크의 체력이라면 문제될 일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에봇산이 평범한 산이었을 때의 말이겠지만.



"엇...?"



단 한 번의 실수였다. 5초 정도 쉬려고 발을 아무렇게나 뻗었던 프리스크는, 발이 허공을 가르는 느낌을 받으며 그대로 균형을 잃었다.



"어엇~!?"



어딘가 얼빠진 비명을 지르며 프리스크는 그대로, 에봇산의 나락 속에 삼켜져갔다...




-먼치킨테일-




...

......

.............정신이 든 프리스크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깔고 있는 황금꽃이 아마 받쳐준 덕에 다치지 않은 모양이다. 일단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프리스크는, 이윽고 지금 자기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긴 어디야?"



프리스크는 일어서서 자신이 떨어졌을 구멍을 쳐다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기엔 사람 하나가 떨어질만한 크기의 구멍이 전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여긴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은 어두컴컴한 곳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프리스크에게 있어 이 장소가 도대체 어디의 어디인지 짚이는 곳이 있을 리 없었다.

즉, 완벽히 조난당했다.

처음으로 조난당했다는 사실에 살짝 패닉에 빠질 뻔했지만 이성을 되찾고 프리스크는 일단 큰 목소리로 사방에 소리쳤다.



"도와주세요! 여기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애초에 프리스크도 누군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에봇산으로 향하는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라고는 전혀 찾아보지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곤란하다. 조난 당했을 때 가장 위험한 행동은 괜히 사람들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는 것이다. 조난 당한 위치에서 버틸 수 없는 사정이 있는게 아니라면 그 위치에서 가만히 구조 신호를 보내며 기다리는 것이 서바이벌의 기본. 그러나 이 에봇산에는 사람이 올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적어도 프리스크가 아는 한, 그러했다.

게다가 더욱 난감한 것은 식량에 관한 것이었다. 프리스크는 에봇산을 주파하는데 느긋하게 올라도 반나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등산 장비는 커녕 컵라면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여기까지 오다가 변덕으로 주웠던 나무 막대기와 볼에 붙여둔 반창고 밖에 없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이런 어두컴컴한 동굴 같은 곳에서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괜히 돌아다니다가 산짐승을 만나면 위험하겠지만 여기서 굶어죽는 것보다 낫다고 프리스크는 생각했다.


"앞에 나있는 길로 일단 가볼까?"


방침을 정하면 행동은 빠르다. 이런 행동력은 프리스크가 가진 장점이었다.

다행히 이 의문의 장소는 쓸데없이 길이 여기저기 나있지 않았다. 만약 프리스크가 조금만 더 관찰력이 좋았다면 이 외길이 어째선가 먼지도 적고 정돈도 잘 되있다는 사실을 보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게 아니었을까 의심했을지도 몰랐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프리스크는 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런 프리스크도 결국 '문'을 본 순간, 머릿속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 어째서 이런 곳에 문이?"


길의 끝에는 당연한 말이지만 야생동물은 문을 만들고 다니지 않는다. 문이 필요한 것은 사람이다.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프리스크는 살짝 의심했지만 무슨 고대 유적지 같은게 아닐까?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문 위에는 뭔가 이상한 문장 같은게 있었지만 뭔지도 모르겠고 약간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문이었기 때문이다. 프리스크는 두려운 기색 없이 발을 내딛었다.


"실례합니다."


예의바르게(?) 인사하며 들어오는 프리스크. 그녀를 맞이한 이 생물체는 무엇인가...

어디서 본 듯한 황금꽃 한 송이였다.


"반가워! 내 이름은 플라위, 노란 꽃 플라위야!"

"!?!??!?"


세상에는 신비한 일이 많다고 하지만 사람의 말을 하는 꽃이라는 것은 처음 들어봤다. 프리스크는 큰 목소리로 비명을 지를뻔 한 것을 억누르고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하며 눈 앞에 있는 꽃을 쳐다봤다.

자신을 플라위라고 소개한 이 꽃은 어딘가 기분 나쁠 정도로 상큼한 미소를 지으면서 발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이런, 너 여기 지하세계는 처음인가보구나. 그렇지?"

"어... 네..."

"이런, 정말로 정신없겠는걸?"

"잠시만요. 저는 당신 때문에 더 정신이 없는데요..."


이래뵈도 프리스크는 15살이며 가끔씩 무모한 행동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꽤 어른스러운 편이다. 그 나이대 여자 아이들보다 사회성만 따지면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사회성이, 프리스크가 충동적으로 플라위의 줄기를 뿌리째 뽑아버리려는 행동을 막아주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플라위는 윙크를 하며 고개를 끄덕(적어도 프리스크에겐 그렇게 보였다)였다.


"이해해, 이해해. 이제 지상에서는 인간들이 괴물의 존재를 잊을 즈음이 아닌가, 싶었거든. 벌써 오랜 옛날의 일이기도 하고."
"괴물...?"

"그래. 혹시 들어본 적 없니? 오랜 옛날,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인간 만이 아니라는 것을."

"으음... 그러고보니."


어릴 적에 할머니가 들려준 옛날 얘기였다. 세상은 괴물과 인간이 있었으나 전쟁 끝에 괴물은 지하로 추방당했고 그걸 무슨 결계로 싸맸다던가 뭐라던가. 그게 사실이라면 눈 앞에 있는 플라위는...


"당신은 혹시 괴물...?"

"뭐, 그렇게 생각해도 돼. 혼란스럽겠지만 이 지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 알려줘야겠는걸?"


그렇게 말하면서 플라위는 그 작디 작은 몸 주위에 알갱이 몇 개를 띄웠다.


"지하 세계는 서로 친절 알갱이로 LV를 나눈단다. LV가 뭐냐고? 물론, LOVE지."

"예..."

"자, 움직여! 친절을 최대한 많이 받는거야!"


플라위의 몸 주위에 떠다니던 '친절 알갱이' 다섯 개?가 날아오자 프리스크는 순간 본능적인 위험을 느꼈다.


여기서 잠깐 다른 얘기지만, 프리스크의 삶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무술을 익혔다고 하는 프리스크의 아버지는 귀국한 뒤 멋대로 자기만의 유파를 만들고 도장을 세웠고 이 도장을 이어갈 사내 아이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내는 딸을 낳는 도중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는 아내 이외 다른 여성을 사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아내의 죽음에 깊은 슬픔에 빠졌지만 당장 도장을 이을 아들이 없다는 사실은 그의 어깨를 짓누르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는 딸, 프리스크를 기르면서 잘 되지도 않는 도장을 처분할 생각까지 하다가, 이윽고 하나의 답에 도달했다. 후계자가 꼭 아들일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갓난 아기 시절부터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프리스크 왈, 준학대)이 이어졌다. 15년이란 세월간, 아버지는 의지를 담아 아이를 강하게 키웠고, 프리스크는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왔다. 그 결과가 어찌되었냐고?

지금 여기에 공개한다.

15년간, 별에 별 훈련을 거치면서 탄생한, 전신흉기 프리스크의 위력을.


"총탄...!"


훈련이랍시고 등 뒤에서 뜬금없이 실탄을 발사하는 미친 아버지 덕에, 프리스크에게 이런 총탄 따위는 어린애 장난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프리스크는 매서운 눈빛으로 천천히 날아오는 '친절 알갱이'를 보고, 완벽한 궤도로 팔을 휘둘러 그 알갱이들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물론 그녀도, 그녀의 아버지도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프리스크의 아버지는 너무나 강한 의지를 가지고 딸 아이를 15년간 학대... 아니 훈련을 시켜왔고.

이미 돌아가신 프리스크의 어머니 역시 그녀에게 강한 의지를 물려주고 사망했었다.

프리스크는 거기에 멋지게 부응하여서 자라난 결과.

전신에 의지의 힘이 구석구석 깃들어버린, 초인이 되고만 것이었다...!!


"흐으읍!!"


프리스크가 '되날린' 친절 알갱이들은 실탄과 다를바 없는 속도로 플라위의 주위를 스쳐 지면을 꿰뚫었다.


"뭐, 뭐라고!?"


당황스럽게도, 플라위는 이런 사태를 전혀 상정해본 적이 없다. 아니 그 이전에 눈 앞에 있는 이것은 인간이 맞을까?

플라위가 날린 친절 알갱이는, 사실 정말로 총탄이었다. 인간의 살점을 꿰뚫고 영혼을 갈취해야 했을 총탄이었는데... 눈 앞에 있는 인간은 놀랍게도 그것에 손도 대지 않고 단지 '풍압'만으로 모조리 튕겨내고만 것이다!


"우, 우왓!? 죄, 죄,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무심코..."


반면, 정말로 그것이 플라위의 친절이라고 알고있던 프리스크는 당황한 나머지 머리 숙여 사죄했다. 갭이 있는 그 모습에 플라위는 억지로 미소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 아냐. 하, 하하... 이, 이봐, 친구... 다, 다, 다음엔 잘 받아보자, 응?"

"네!"


눈 앞에 있는 이 꽃은 정말로 친절하구나. 프리스크는 살짝 감명받으면서도 다음에 날아올 친절 알갱이를 받아내겠다는 의지로 가득찼다.


"간다!"

"와주세요, 플라위 씨!"


아까처럼 플라위가 친절 알갱이 다섯 개를 꺼내 프리스크를 향해 날렸다. 또다시 프리스크의 본능이 그것을 쳐내려고 했으나 프리스크는 온 몸에 힘을 꽉 줘서 친절 알갱이를 받아내려했다.

하지만 참으로 안타깝게도.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친절 알갱이는 프리스크의 강철 같은 몸을 전혀 뚫지 못하고 그대로 그 자리에 박힌 듯이 멈춰버릴 뿐이었다.

단 하나,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프리스크의 아담한 가슴을 향해 날아온 탄알 하나만이 부드럽게 튕겨나갔으나 역시 데미지는 전혀 없었다.


"어, 어라...?"


플라위는 당혹해서 한 번 더 친절 알갱이를 날려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프리스크의 몸을 전혀 뚫을 수가 없었다.


"저, 저기..."
"왜, 왜 그래!?"


이미 플라위가 느끼는 당혹감은 전례없을 정도로 최고조를 달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는 더 이상 '친절한 플라위'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 플라위의 태도에도 이상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프리스크는 순진한 얼굴로 플라위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저, 이거 약간 따끔한데 털어도 되나요?"

"아앙? 멋대로 해! 제길, 넌 도대체 뭐야... 왜 탄환이..."


플라위의 불만이 끝나기도 전에.

프리스크는 한 번 숨을 살짝 들이쉬고는, 전신에 힘을 크게 주었다. 그러자 프리스크의 몸에 박혀있던 아홉 개의 친절 알갱이가 근육의 의지를 이겨내지 못하고 몸에서 엄청난 힘으로 튕겨져나가고 말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그것은 공격으로 판정되서 플라위는 피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날렸던 친절 알갱이에 얻어맞는 꼴이 되고 말았다.


"프허얽!?" 플라위의 HP가 1만 남았다.

"앗, 괜찮으세요?"


죽는다...

이 이상 이 정신 나간 여자를 상대하고 있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어째선지 세이브&로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죽으면 뒤가 없다. 아니 그 이전에 이 여자는 너무 무섭다.


"우, 우와아! 다가오지마!"

"엥?"


플라위는 필사적인 마음으로 땅 속을 향해 숨었다. 이 여자의 눈 앞에 있다가는 언제 어떻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적어도 그것만은 확실하게 이해했다.

자기보다 강한 자가 있다는 것은 의외로 플라위에겐 그다지 문제되는 일이 아니었다. 정면에서 죽일 수 없다면 뒤에서 치면 되는 이야기니까.

그렇지만 눈 앞의 인간은 너무나 이상하다. 탄알을 맨손으로 튕겨내고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다는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저건 인간이고 괴물이고를 따지기 전에 상식적으로 어딘가 이상한 존재다.

그치만 아무리 눈 앞의 인간이 괴물같을지라도 이렇게 숨어버린 이상, 자신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여유롭게 도망쳐서 언젠가 방심하고 있을 때 없앤다. 그것이 플라위의 생각이었다.


그 생각 자체가, 플라위가 프리스크를 아직도 얕보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플라위 씨! 저, 저를 혼자 두고 가지 마세요!"

"흐엉얽!?"


프리스크는 플라위가 숨어들어간 땅 속으로 주먹을 뻗어서 강제로 플라위를 잡아 끌어올렸다.

이 간단해보이는 동작에 얼마나 말도 안되는 힘이 필요할지는 둘째치고 플라위는 두려운 표정으로 눈물 흘리며 프리스크를 향해 애원했다.


"제, 제발 살려줘! 나, 나, 나는 맛있지 않아!"

"? 아니, 해를 끼칠 생각은 없는데요..."

"아앗, 인간 님. 저, 저 따위에게 존댓말은 안하셔도 됩니다요. 하하."

"그럼 플라위라고 불러도 돼? 아참, 내 이름은 프리스크야."

"프리스크 님! 저, 저기, 한 번만 살려주시면..."

"저기, 나 여기에 대해선 잘 모르니까 플라위가 알려주지 않으면 곤란한걸."


이 때, 플라위는 머릿 속이 너무 어지러운 나머지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곳, 폐허에는 강력한 보스 몬스터 하나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여느 때처럼 자기가 관리하는 폐허를 돌아다니면서 이윽고 황금꽃을 향해 올 것임을.


"무슨 일이 있...!?"


폐허를 관리하는 괴물, 토리엘이 순간 숨을 들이삼켰다.


자, 여기서 잠깐.

다죽어가는 괴물(HP 잔량 : 1)을 꽉 쥐고 손에서 안 놓고 있는 인간 소녀(HP : ?????). 주위에는 전투의 흔적.

토리엘의 눈에는 도대체 누가 악역으로 보였을까?


"이, 인간이 결국 여기까지!?"

"네?"

"안 돼... 그이에게 알려야만!"


토리엘은 뒤돌아서 달렸다.

그녀는 인간을 모두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폐허에 떨어진 인간 아이가 있다면 오히려 최선을 다해 돌봐주고 보호해줄 존재다.

그러나, 괴물을 미워하고 죽이려하는 인간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토리엘은 전직 여왕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괴물들을 보호하려 할 것이다.

지금 토리엘의 심정이 그러했다. 눈 앞에 있는 인간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하나를 피떡으로 만들어놨다. 그 인간이 괴물에게 적대적인 이상, 그녀는 다른 괴물들을 지켜야했다.

그리고.. 만약 토리엘이 인간을 막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그 이상의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었다.


"저기저기, 플라위. 방금 저 염소처럼 생긴 분은 누구야?"

"그, 그게 말입니다요..."


물론, 이상의 일을 프리스크가 알고 있을리 없었다.





다음편에 계속될지도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