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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즈는 자신에게 첫 번째 꽃이 피어났던 때 그랬던 것처럼 프리스크를 품에 안고 이동한다. 샌즈는 뉴 홈을 지나쳐, 수도를 지나, 굽이치는 성의 회랑을 지나 아스고어 왕의 알현실로 곧장 이동한다. 흐리멍덩한 정신 너머로 프리스크는 아스고어가 아주 먼 한 때에는 좋은 이였을지도 모른다고 묵상했다. 만약 플라위의 구슬픈 몸떨림이 그냥 흘려 지나칠 수 있는 별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괴물 왕의 목소리가 높은 벽을 치고 울려 퍼진다. 낮고 강인한, 그리고 비탄과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아스고어는 몬스터들이 어째서 이런 일을 하는지, 자신들을 위해 인류에게 복수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프리스크는 어떤 이들이 살육이 정당하다고 믿게 되도록 몰아세우기 위해 필요한 아픔과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샌즈는 축축하고 묵직한 귀에 거슬리는 호흡과 입가에 핀 꽃무리의 떨림을 아끼며 침묵한다. 프리스크는 샌즈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정말이지 너무나도 그리웁다.


프리스크는 불안정하고 무감각한 손을 들어 올리고 수화를 한다. 해치지 마. 죽이지 말아줘. 자비를 베풀어줘.


샌즈의 숨이 떨리고 이내 프리스크는 샌즈가 자신에게 끄덕이는 것을 느꼈다. 프리스크의 손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손목까지 감각이 없다.


그러더니.


죽이지 마


작고 슬픈 미소다.


그리고 죽으면 안돼.


샌즈는 어깨를 숙여 프리스크를 내려놓아 벽에 기대이고 프리스크의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얹는다.


샌즈가 프리스크의 뺨을 손등으로 쓰다듬는다. 프리스크는 숨을 들이 쉴 때마다 혓바닥에 돋은 꽃으로부터 풍겨오는 향기를 맛본다. 차가운 샌즈의 두개골이 프리스크의 이마에 부드럽게 부딪치는게 느껴진다. 비록 이미 꽃이 온 세상을 새카맣게 뒤덮은지 오래인지라 별반 차이는 없는 것 같지만 프리스크는 눈을 감은 채 눈꺼풀을 달싹인다. 이 단 한 순간만큼은, 이 짧은 순간만큼은 프리스크와 샌즈만이 세상에 존재한다. 다른 그 무엇도 아닌 그들이 지금껏 쌓아온 유대감만이, 그들의 영혼의 공명만이 존재한다.


그리고는 샌즈가 가고 전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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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죽음이 이런 감각인 것이라면 샌즈는 죽지도 않았는데 그걸 경험한 것이다.


샌즈의 턱과 입으로부터 움튼 꽃은 시큼 떨떠름한 맛을 내고 목구멍은 오그라들고 이빨을 거세게 앙문 탓에 이빨이 아파온다. 숨쉬는 것이 괴롭고 지독하게 달콤한 향이 두개골을 꽉 채워 머리가 지끈거린다. 샌즈의 손뼈가 전율로 떨린다. 샌즈는 몸이 불타오르는 것인지 차갑게 얼어붙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샌즈는 목적이 있다.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샌즈는 희미하게 회상한다. 자신이 어째서 약속을 만드는 걸 애초부터 싫어하는 건지.


왕과 싸우는 샌즈를 플라위가 돕는다. 하지만 너무도 빈번하게 이인조의 전략은 실패로 돌아간다. 어찌되었든 아스고어가 아무 이유도 없이 모든 괴류(monsterkind)의 왕 일리는 없었고 아스고어의 힘은 둘의 앞에 돌풍처럼 불쑥 나타났으며 너무도 여러 번 마법 화염에 불타오르던지 진홍빛 삼지창에 꿰뚫리는 처지에 그쳤다. 샌즈는 또다시 죽고, 죽고, 죽어버렸다. — 그리고 매번 샌즈의 입 안에 새로운 꽃이 자라난다. 점차 숨 쉬는 것이 곤란해진다. 점차 안개 낀 정신을 뚫고 집중하는 것이 곤란해진다. 플라위가 샌즈를 향해 소리친다. 정신을 집중하라고, 응전하라고, 프리스크를 지켜내라고 소리친다.


의지를 가져.


(짧은 순간 샌즈는 붉은 눈동자에 줄무늬 스웨터를 입은 만나본적 없는 어떤 아이를 떠올린다. 아이는 주문을 외듯 설득한다. 의지를 가져.)


의지. 의지. 프리스크는 이젠 더 이상 서있을 수조차 없지만 여전히 애원한다. 샌즈는 눈구멍 너머로 곁눈질 하는 것만으로도 그걸 알 수 있었다. — 심지어 눈으로 볼 수 있는 피부의 마지막 부분마저 꽃이 움터 뒤덮여 마치 시간을 거스르고 거슬러 살이 덮인 부분이 줄어드는 것처럼 되어가는 동안에도 프리스크의 입술은 아스고어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며 간청하는 낱말을 그리고 왕은 이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샌즈의 가슴뼈 한가운데로부터 절망이 뜨겁게 터진다.


아니. 샌즈는 아스고어를 죽이지 않는다. 반격은 하겠지만 아스고어를 죽이지는 않는다.


친절한 마음씨와 의지로 가득 찬 어리석은 아이다. 샌즈가 제 자신마저 포기하려던 때에도 자신 속 어딘가에는 선량함의 어떤 형태를 한 어리석은 인간의 아이와 아이의 어리석을 정도로 그칠 줄 모르는 신념이 항상 존재했다.


꺼지라 그래. 내가 미쳤지. 개씨팔 진짜 다 좆같네.


만약 그게 샌즈가 할 수 있는 정녕 마지막 일이라면 샌즈는 프리스크를 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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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몇 분이 걸렸다. 아니 몇 시간인지, 아니면 며칠이던가. 샌즈는 무수한 죽음의 숫자와 같이 죽어만 가고 매번 기어가는 속도로 전장을 조금씩 나아간다. 샌즈의 시야가 흔들린다. 흉곽을 크게 들썩이며 숨을 쉬려고 노력한다. 샌즈의 턱이 꽃의 무게로 저려오고 샌즈는 플라위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인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은 자신에게 생각이 있다며 속삭이더니 뿌리로 석회 바닥을 뚫어 땅 속으로 사라져버리기 전까지만 해도 샌즈의 어깨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글쎄, 플라위가 도대체 어디에 있든 무엇을 꾸미고 있든 간에 젠장할 서둘러야 할 것이다. 샌즈는 스스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는지 확신이 없었다.


아스고어가 샌즈와 프리스크를 향해 진홍빛 불덩이를 날리고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샌즈의 뼈가 그슬릴 만큼 충분히 열기가 뜨거웠기에 샌즈는 블래스터를 소환하여 불에는 불로 반격을 해야만 했다. 공기가 열기를 뿜으며 폭발하고 샌즈는 잠깐 동안 어지러워 휘청인다. 혓바닥 위의 꽃으로부터 풍겨오는 달콤한 향에 머리가 핑 돌고 주위에 꽃이 불타올라 풍겨오는 쓴 내음이 눈을 맵게 한다.


샌즈의 시야 가장자리가 흔들리고 샌즈는 프리스크가 벽에 기대어 몸을 지탱하는 모습을 언뜻 보았다. 여전히 속삭이고 있다. 여전히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다. 샌즈의 내부에서 한차례 힘이 치솟는다. 아마도 아주 얼마 남지 않은 샌즈의 마지막 힘일 것이다. 샌즈가 앞으로 돌진한다. 망할 꼬맹이와 샌즈를 버티게 만드는 그 능력이란.


“자네 죽을 셈인가?"


샌즈는 그러지 않기 위해 정말 좆같이 노력 중이다.


꽃은 샌즈의 입 안에, 이빨 안에, 목구멍 안에, 머리 속에, 골수 안에도 있다. 샌즈는 꽃에 목이 메여 꽃 이파리를 토해내려 한다. 하지만 그 대신 꽃들은 샌즈의 턱을 찌부러뜨려 닫히게 만들 뿐이고 샌즈는 줄기와 꽃봉오리와 앙증맞은 작은 잎사귀를 보고 속이 메스꺼워진다. 안돼, 안돼, 안돼, 샌즈는 아직, 아직은 안된다. 꽉 막힌 숨을 들이 쉬며 샌즈는 아스고어를 향해 부서진 뼈 무리를 날린다. 하지만 괴물 왕은 삼지창을 휘둘러 샌즈의 공격은 뼈 조각이 되어 날아간다. 왕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샌즈를 지긋이 바라본다. 혼란스러움과 낙심한 듯한 당혹감이 표정에 섞여있다.


“어째서 그를 지켜주는 거지?” 아스고어가 질문한다. “네 목숨을 희생해서까지 그를 보호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샌즈는 말을 할 수 있다면 하고 생각했다. 마음이 좀 차분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개골이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는 것을 제쳐두고 대답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 망할, 샌즈에겐 수많은 서로 다른 이유들이 있는데다 아스고어가 이해할 만큼 그걸 전달하고 있을 시간은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선함이나 관용이라곤 더 이상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스고어의 신념은 정확히 샌즈가 한때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였고 바로 그 눈앞에 그게 잘못된 신념이라는 증거가 놓여있었다.


샌즈의 손이 맹렬히 덤빈다.


샌즈에겐 지켜야만 하는 약속이 있다.


마지막 공격 한방이 터지며 날카로운 뼈의 파동과 백열 에너지를 집어삼키는 해골들로 화한다. 샌즈는 가진 전부를 마지막 한 방에 불어 넣고 공격한다.


샌즈에겐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명중했다.


아스고어가 잦뜨려지고 휘청거리더니 무릎이 바닥에 꿇린다. 왕은 숨을 헐떡인다. 앞을 향해 구부린 모습을 보건대 다시 일어서지는 못하리라.


샌즈 또한 무너진다.


샌즈는 프리스크가 있던 방향에서 소리를 들었다. — 아기 새의 울음소리처럼 연약한 소리였다. — 하지만 일어설 만한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꽃향기가 승리처럼 달콤하게, 죽음처럼 넌더리나게 샌즈를 에워싼다. 하지만 샌즈는 여기서 죽을 수 없다. 아직 죽어서는 안된다. 샌즈는 고개를 들고 입을 벌리기 위해 분투하고 괴로울 정도로 거세게 힘에 저항하며 샌즈는 거의 들리지 않는 목 울림을 간신히 내었다. 프리스크가 날카롭게 그리고는 안도하여 숨을 들이쉰다. 비록 온몸 구석구석이 비명을 지르지만 샌즈는 무릎으로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쓴다. 샌즈의 정신이 소용돌이친다. 입가에서 새어나온 황금빛 액체가 길게 흔적을 만든다. 샌즈는 이제 뼈마디가 고통스럽게 비명 지르지 않고서는 숨을 쉴 수 없다.


프리스크의 곁으로 기어가 프리스크를 품속에 안기에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샌즈를 붙잡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할 수 없어 프리스크는 그 대신 샌즈의 어깨의 우묵한 곳으로 얼굴을 돌리고 샌즈의 목뼈에 대고 낱말을 읊조린다.


“너 지금 뭘 하는 거지?” 샌즈 뒤편에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왕이 질문한다. “날 끝내란 말이다”


샌즈의 눈꺼풀 뒤에 꽃이 있었던가? 분명 그런 것 같다. 게다가 꽤나 아프다. 샌즈는 벽에 의지하여 비틀거리며 일어서고 그러는 도중 프리스크를 거의 놓치다시피 했지만 다시 몸을 되돌렸다. 샌즈는 아스고어를 죽일 수 있다. 전신의 모든 가닥이 그리 하도록 힘쓴다면 비록 미약한 공격일지라도 아스고어를 죽이기에 충분한 마지막 한 방을 소환 할 수 있다. 프리스크는 구해질 것이다. 프리스크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프리스크는 지상으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아스고어 왕의 분개하는 듯한 눈동자를 마주치자 샌즈는 단호하게 한번 고개를 젓는다.


안돼.


"안된다고?" 왕이 응시한다.


샌즈가 앞으로 나아간다. 샌즈는 가슴께에서 프리스크가 안간힘을 써서 전하는 몸짓을 읽을 수 있었다. 턱에 있는 꽃이 시야를 흐리지만 샌즈는 프리스크가 고마워 라고 말하는 걸 분명히 알아 들었다.


샌즈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더 이상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아스고어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지치고 피곤한 고개를 들었을 때 어쩐지 샌즈 제 자신의 일부가 왕이 곧 이해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불안정하고 넘어질 듯한 발걸음으로 샌즈는 괴물의 왕을 지나쳐 프리스크를 장벽까지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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