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인간 


[1편(Now!)] [2편]


[전편] [후편]








파피루스는 차갑게 식은 인간의 시체를 바라보며,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다인은 자신의 공로를 인정해 왕실 근위대에 넣어주겠다고 했다. 

힘, 지위, 명예. 자신이 원하던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드디어 손에 들어왔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의 마음은 이렇게도 공허한 것일까. 


 "내가 원한 건 이런 끔찍한 일이 아니었는데..." 


 문득, 창고에 갇혀있던 인간이 했던 마지막 말이, 파피루스의 등뼈를 서늘하게 타고 올랐다. 


 "내가 잡히면... 아스고어는 신이 될 거야."


 "그리고 괴물들은 복수를 하려 하겠지. 난 절대로 그런 건..." 


대왕님이 신이 되어 복수를 한다? 누구에게 말인가? 

괴물을 여기에 가뒀다는 인간들에게? 어떻게...?  그러니까 그 말은...그들을 똑같이 지하에 가두는 건가?

하지만 인간이 다 지하에 들어가기엔 너무 많을 텐데. 그렇다면... 그렇다면...?


파피루스는 결코 멍청하지는 않았다. 단지 아이들처럼 아는 것이 적어 사고의 폭이 좁을 뿐이었다.

하지만, 충분한 지식이 있다면... 파피루스는 금세 결론을 도출해 낼만 한 능력이 있었다.


복수를 위해, 인간들을. 모두... 모두 죽인다는 건가? 그건... 그건... 


 인간 꼬마가 그렇게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될 거라고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앞으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알았더라면. 자신이 조금만, 조금만 더 알고 있었다면... 

자신은 미래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저런. 샌즈도 이 사실을 알까? 만약 샌즈가 이 사실을 안다면... 분명 크게 상심할 것이다. 



"나, 위대한 파피루스는...!"


평소처럼 기운을 내려던 파피루스의 눈앞에, 인간의 표정이 어른거렸다.


그 무시무시한 기계 앞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을 향한 그 눈... 

원망하는 것처럼도, 도움을 기대하는 것처럼도 보이던 그 눈빛. 

그리고 그 눈빛에 부응하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린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뭔가 바꿀 수 있을까...?"


"글쎄, 그건 네가 하기 나름이 아닐까?"



파피루스는 놀라 인간을 바라봤다. 

늘 감은 듯 보이던 붉은 눈을 크게 뜬 인간이, 웃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인간! 살아있었구나!"


파피루스는 놀라 펄쩍 뛰었다. 동시에 환희했다. 인간은 살아있었다.

산 채로 영혼을 뽑아낸다니, 역시 언다인과 아스고어가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었다.

이렇게 인간이 멀쩡한데! 아마도, 영혼에서 조금 힘을 빌린 것뿐이겠지.


"안녕!(Howdy!) 파피루스. 오랜만. 아니, 여기서는 처음 뵙겠습니다. 일까?"


"...녜헤?"


파피루스는 본능적으로,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상대하던 인간은 이렇지 않았다. 하우디라고 인사하지도 않았고, 이렇게 활짝 웃고 있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인간은... 무척 지쳐있었다. 

분명 퍼즐 자체는 쉽게 풀어나갔지만, 분명 피로하고, 힘겨워 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인간은 달랐다. 너무나 밝았다.


파피루스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자, 인간은 침대에서 내려와 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헤헤... 뭔가 조금 이상하지? 난 분명 영혼을 추출 당했는데, 이렇게 멀쩡하다니 말이야."


파피루스는 진땀을 흘렸다. 뭔가가 잘못되었다.

인간에게서,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기분 나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스멀스멀 자신의 뼈를 타고 오르고 있었다.


"대답할 필요는 없어 파피. 내 소개를 할게. 난 차라야. 그리고 내 몸의 이름은 프리스크지."


"몸? 그 말은..."


파피루스의 머리는 인간의 말에 반응해 금새 가설을 내놓았다.

그 참담함에, 파피루스는 눈을 감았다. 제발. 자신이 생각해낸 것이 진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네 생각이 맞아, 이 몸의 원래 주인은 따로 있어. 지금은 아마 통 속에 들어있겠지. 영혼만 남은채로..."


순간, 파피루스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끝이 안 보이는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그런 기분.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었다. 하지만. 알아야 하는 진실이었다.


"그건... 미안, 세상에는 모르는 게 더 좋은 것도 있어. 파피루스."


자신이 더 설명을 요구했을 때 인간이 했던 말이었다.

그때의 그 모든 걸 내려놓은 듯 보이는 눈빛. 그것이, 모든 걸 아는 자의 눈빛일까?

자신도 진실을 알게 되면,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하게 될까?


"...난, 그렇게 끔찍한 일은 원하지 않았어."


"괜찮아 파피. 네 잘못은... 음. 정말 없다고는 못하겠네. 아무튼. 널 원망하지는 않아. 파트너...

그러니까, 프리스크도 널 원망하지는 않을 거야. 일례로 파트너는 마지막에 너를 봤잖아? 파트너가 그 때 마지막으로 믿은 건... 너였으니까."


파피루스는 눈을 감았다. 칼로 자신을 푹푹 쑤시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스파게티 재료를 썰다가 손뼈에 흠집을 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뭐, 네가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알지만 말이야. 아무튼, 잡담이 길어졌네..."


인간, 차라는 잠시 컴퓨터 앞에서 스크롤을 슥슥 내리다가, 이내 방문을 나섰다.

파피루스도 그 뒤를 따랐다.


"녜헤,헤...인간. 어디로 가는 거야?"


"낚시터.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거든."





인간과 파피루스는 폐허를 향해 한참을 거슬러 올라갔다. 

풀려진 퍼즐과 얼어있는 스파게티가, 파피루스로 하여금 몇 시간 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다시 그 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폐허의 문 앞, 아무도 없이 홀로 낚싯대만이 세워진 낚시터.

낚싯대를 감아올려도 나오는 것은 웬 쪽지 뿐인 곳.


"플라위! 나와!" 


 인간이 외치자, 눈을 뚫고 노란 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사하고 아름다운, 작고 귀여운 노란 꽃이었다. 

꽃이 몸을 흔들어 꽃잎 위에 쌓인 눈을 털어내는 모습을 보며, 파피루스는 어쩐지 낯익은 느낌을 받았다.


"차라...?"


"그래. 지금은 '나'야. 말했던 건 어떻게 됐어?"


"여기, 몰래 가져왔어. 아스고어는 멍청해서 내가 영혼을 꺼낸 줄도 몰라. 그런데... 저 녀석은 왜 달고 온 거야?"


"다 생각이 있어. 일단 꺼내봐."


뒤에서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파피루스는, 순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노랑, 하늘, 파랑, 초록, 주황, 보라. 여섯 가지 색을 가진 영혼이, 플라위의 주변에 나타난 것이다.

인간을 한 번 밖에 본 적 없는 파피루스조차, 그것이 뭔지 한 눈에 알아보았다.


"세에상에...그거... 인간의 영혼이야?"


"맞아. 프리스크보다 먼저 떨어진 아이들의 영혼이지."


둘의 대화가 끝나자, 플라위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단 가져오긴 했는데... 정말로 괜찮아?"


"나를 믿어도 괜찮은 거야?"



플라위는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겁을 주려고 했지만, 차라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덤덤히, 오히려 플라위를 더욱 강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헛소리 하지 마 플라위. 네가 나를 배신할 리가 없잖아? 그렇지?"


"...무, 물론이지. 하. 하하하."


플라위는 그 시선에 겁을 먹은 듯, 몸을 떨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차라의 뒤에 서있던 파피루스는 플라위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저기, 그러니까... 영혼들을 가져온 거야? 그걸로 뭘 하려고?"


"딱히 뭘 하진 않아. 일단, 영혼을 이리 줘. 내 몸 속에."


"차라, 인간은 인간의 영혼을 흡수할 수 없어."


"하지만 빈 몸을 영혼을 담는 용기로 쓸 수는 있겠지. 파트너가 썩 좋아할 거 같지는 않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어. 나 혼자서는 이 몸을 유지할 수 없으니까. 자, 빨리해."


차라의 재촉에, 플라위는 잠시 주저하다가 "에라 모르겠다"라며 과격하게 인간의 몸에 영혼들을 집어넣었다.

차라는 충격에 중심을 잃었다가, 머리를 움켜쥐고 휘청거렸다.


"차라! 괜찮아?!"


"으...! 시끄러! 너네 다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 이 몸의 주도권은 내거라고!"


차라는 허공에서 누군가를 향해 소리치며 머리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머리카락이 빠지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이...인간? 괜찮은 거야?" 


파피루스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가온 순간, 차라는 손을 들어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인간?"



차라는 고개를 홱 돌려 파피루스를 바라봤다. 파피루스는 움찔하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인간의 붉은 눈이, 정말 반짝이는 섬뜩한 붉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파피, 이제 선택할 시간이야."


"선택?"


"난 이제, 파트너를 구하러 갈 거야. 아스고어를 쓰러트리고, 영혼을 되찾을 거야."


"와우.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


"하지만 말이지, 내 파트너랑 달리, 난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라서 말이야. 이대로 가다보면 마주치는 괴물을 모두 죽여 버릴지도 몰라."


"뭐...?"


"그러니까 선택할 기회를 줄게."






"선택은 네 몫이야."












http://gall.dcinside.com/undertale/201103

오... 이거 보고 배경 설정이 마음에 들어서 써봤어.

잡히기까지 과정은 좀 다른데, 좀 여러 회차 돌던 프리스크가 파피루스를 못 넘고 잡혀서 영혼을 뽑혔다는 건 같아.

그림 문학은 뭔가 이상한거 같은데 더 마땅한게 생각이 안나네. 오... 이렇게 길게 끌려던건 아닌데. 봐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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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투표가 계속 깨지네... 혹시 여유 있다면 http://www.strawpoll.me/7208506/로 가서 직접 해줘... 정말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