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복도를 검은 그림자가 걸어나갔다. 그림자의 주인, 검은색 가운을 입은 멀대같은 남자의 얼굴에는 더욱 짙은 그림자로 가득했다. 복도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난 창문에서 여름의 빛이 쏟아졌지만 그림자는 마치 그런 세상과는 전혀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처럼 어두웠다.
복도는 길었다. 남자의 보폭은 넓었지만, 남자가 나아가는 만큼 복도도 길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젠가는 그 끝에 닿을 것을 알기에,
검은 그림자의 남자, 가스터의 의지는 사그라들었다.
가스터는 계속해서 걸었다.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복도를 체념의 길이라고 하고는 했다. 처음에는 희망에 가득 차 있던 사람도 이 기나긴 복도를 걷는 동안 그 끝에서 기다리는 절망을 몇 번이나 곱씹고 끝내는 체념하게 되는 것이다. 가스터 또한 그랬다. 지금까지 몇 천, 몇 만 번을 그래왔다.
문득 가스터는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뜨거운 태양, 싱그러운 초목들, 그 위에서 노래하는 작은 새, 지평선 끝까지 뒤덮은 어여쁜 노란 꽃.
누구하나도 듣는 이가 없었지만 가스터는 천천히, 그리고 나자막히 말했다.
"정말 아름다운 날이야."
가스터는 계속해서 걸었다.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나고..."
얼마나 더 걸었을까. 마침내 복도의 끝이 보였다.
"이런 날에 너같은 아이가..."
복도의 끝에 있는 것은 복도와 마찬가지로 하얀 문이 있었다. 가스터는 그것이 차갑다고 느꼈다. 문고리를 잡을 때면 한기가, 자신이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죄악이 등을 타고 기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가스터는 문에 붙은 금속 플레이트를 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던 가스터는 이내 고개를 푹 수그리고 문고리를 잡았다.
"너같이 착한 아이가 어째서 지옥에서 불타고 있어야 하는 거냐..."
문이 열리고 플레이트에 새겨진 문구가 반짝였다.
Frisk. D. Gaster
그가 사랑해 마지 않는 단 하나 뿐인 딸의 이름이었다.
#1
프리스크의 병실에는 의료기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거대한 기계들이 가득했다. 생명 유지 장치와 링겔을 제외한 기계들은 거기서 나온 케이블들은 서로와 서로를 연결하고 있었고, 결국에는 누워있는 프리스크의 머리에 닿아 있었다.
가스터는 프리스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니, 눈길을 줄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는 두려워 하고 있었다. 가만히 감은 그 눈이 뜨였을 때, 그녀가 자신을 저주하게 되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리스크를 지나친 가스터는 콘솔 PC 앞에 앉았다.
콘솔 PC는 먼지하나 없이 깨끗했지만 닳아서 지워진 키보드 자판이, 액정 모니터에 남은 잔상이 이미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가스터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응용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실행되기만 하면 되었다. 전원을 키자 전용 OS인 EBOTT의 기동이 시작되고 곧 자동으로 응용 프로그램까지 실행되었다.
[UNDER TALE]
가스터가 실행한 프로그램의 이름이었다. 가스터가 이 프로그램을 처음 만들었을 때,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많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제는 그만 이 지긋지긋한 게임을 끝내고 싶을 뿐.
화면에 떠오른 창이 네트워크 상태를 체크하고 곧 ID와 패스워드를 요구하는 로그인 창을 띄웠다. 가스터는 아무런 감흥도 없이 습관처럼 항목을 입력했다.
ID: ADMIN
PASSWORD: GRAYROOM66
로그인 창이 사라지고 로딩을 알리는 화면이 나타났다. 여기서는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서버는 항상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것을 GUI로 표시하는 데에는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스터는 그 시간동안 가운을 벗어 의자에 걸치고 모니터에 걸려있던 싸구려 헤드셋을 썼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화면이 회색으로 변했다. 투박한 도트풍의 게임처럼 보이는 장면이었다. 장소 때문에 회색과 검은색을 구별하기 힘들었지만 화면에 비치는 것은 틀림없는 회색 방이었다.
"또 왔나."
헤드셋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의 목소린지, 가스터는 잘 알고 있었다.
곧 이어 회색 방의 위쪽이 열리면서 마찬가지로 도트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왔다.
해상도가 낮은 도트 이미지이기는 했지만 그 모습은 끔찍했다. 얼굴이 거의 셋으로 쪼개져있었고, 입과 눈도 기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게 내 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지."
"하!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어, 관리자! 하지만 정말이지, 이 곳에서 몇십년이나 보고만 있는 건 정말 넌덜머리가 나는군!"
헤드폰으로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화면에는 대화창이 표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대화창에 나타나는 것은 알아볼 수 없는 특수문자의 나열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이 프로그램 안의 세계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지만, 대신 현실의 사람과는 이렇게 대화할 수 있었다. 언어의 차이라고 할까, 가스터의 쓸데없는 걱정이 만들어낸 또 다른 골치거리이기도 했다.
"……어쨌건 일어난 일에 대한 보고를 부탁한다."
"크크…… 달라진 건 없다. 매일 같은 양상이지. 그리고 또 빨라졌어. 3일 전 네가 마지막으로 로그아웃한 이후로 1209번의 리셋이 일어났다. 지난 번보다 0.2배 이상 증가한 수치지."
"1209번이라……."
리셋의 주기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3개월 하고도 13일이 걸렸다. 그것이 3년이 지난 지금은 하루에 400번 가까이 리셋할 정도가 되었다. 리셋하는 구간도 가까운 10일 정도로 짧아졌다. 프로그램의 안에서 느끼는 시간이 현실의 30배라고는 해도 상당한 속도였다. 다양했던 행동 방식도 갈수록 단순해지고 정해진 길을 습관적으로 가는 것 같았다.
프리스크의 정신이 한계에 닿아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봐 관리자. 리셋을 하면 그녀의 기억도 리셋이 된다. 하지만 그녀는 인간이지 컴퓨터가 아니야."
"알고 있어. 프로그램처럼 간편하게 리셋되지는 않지. 분명 기억에 잔재가 남는다. 같은 기억이 몇 번이나 덮어 씌워지면 아무리 희미하더라도 확신으로 변하겠지."
"그래서 패치를 요구하는 거다. 그녀는 새로운 환경이 필요해. 하다 못해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라도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줘야 해."
"알고 있어…… 하지만 당장은 힘들다."
가스터는 고개를 돌려 기계장치를 보았다. EBOTT. 단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정밀한 가상 현실 시뮬레이팅 수퍼 컴퓨터.
그는 EBOTT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을 쏟아 부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업적으로 엄청난 부를 손에 넣었지만 EBOTT의 개발은 그 모든 것을 앗아갈 정도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완성했다. 뒷산에서의 추락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프리스크가 깨어날 때까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EBOTT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실수였다.
프리스크는 EBOTT의 응용 프로그램 UNDER TALE의 안을 탐험했고, 수많은 경험을 했고, 수많은 역할을 맡았다. 그 안에서 프리스크는 행복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프로그램인 이상 한계가 있었고 가스터는 그것을 보완해야만 했다. 상정하지 않았던 경우의 수와 문제점이 너무나도 많아서 감당할 수가 없었고, 다른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던가, 추가적인 패치를 해야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만드는 것을 EBOTT이 허락하지 않았다. 정밀하고 민감한 컴퓨터였기에 유지보수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들었고, 이것을 충당하기 위해 매일 같이 밤을 지새며 일했다. 또한 틈틈히 프리스크의 병실에도 찾아 와야했다. 한 번은 EBOTT과의 연결을 끊은 적도 있었지만 프리스크가 격렬한 발작을 일으켰기에 더 이상 시도한 적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패치나 프로그램의 개발은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솔직한 심정으로 정말 이제는 프리스크가 깨어나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크크…… 너는 항상 그 말 뿐이지. 어쩔 수 없다.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럴거면 이런 세계를 만들지 말았어야지."
"……미안하게는 생각하고 있다."
"웃기는 이야기야. 컴퓨터 안의 자기 자신에게 사과해야 하는 처지라니. 안 그래?"
어쨌든, 하고 화면 속의 캐릭터는 가스터가 입을 열기도 전에 홱 돌아섰다.
"네가 계속 그렇게 나온다면 나에게도 생각이 있어. 크크…… 어떠한 의미에서는 이것도 패치의 일종이 될 수도 있겠지."
"갑자기 무슨 소리지? 어쩔 셈이냐?"
"걱정하지마. 우리의 귀여운 딸아이에게는 손대지 않아. 다만, 조금 어레인지를 해보자는 거지. 바쁜 너를 대신해서 이쪽에서 일을 대신 하겠다는 거라고."
가스터는 불길한 예감 밖에 들지 않았지만 어찌할 방도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화면 속의 분신에게 매달려 제발 해결해 달라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관리자의 허가를 받아 EBOTT의 관리권 일부를 양도받겠어. 괜찮겠지?"
화면에 경고 질의창이 나타났다. 가스터는 조금 망설이다가 YES를 클릭했다. 원래부터 관리권의 양도는 오랜 시간 떠나야 하거나, 콘솔로 일일이 버그를 확인할 수 없을 때마다 간혹 있는 일이었다. 분신이기는 하지만 결국 응용 프로그램인 그가 이런 점에서는 편리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가스터는 어쩔 수 없이 악마와 계약을 하게 된다면 이런 기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크크. 좋아. 잘 받았어, 관리자. 이번 루프는 정말 재미있을 거야. 이걸로 우리들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말이야."
스르륵, 캐릭터가 움직였다. 빨려 들어가는 것 처럼 캐릭터는 문의 안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문이 닫힌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지."
이내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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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똥글 1화임.
가스터가 사실은 프리스크의 아버지고, 언더 테일은 산에서 추락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프리스크를 위해 가스터가 만든 가상 현실임. 도트로 된 게임은 가상 현실을 모니터에서 가시적으로 표현해 주는 GUI의 개념임.
게임 내의 가스터는 현실 가스터의 인격과 기억을 그대로 복사해서 만든 캐릭터이지만 리셋을 포함해서 게임 시간으로 90년 정도 흘렀고, 그러면서도 현실 가스터의 대리, 관리자 역할이라 직접 언더 테일에 등장하거나 간섭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많이 멘붕&흑화된 상태임. 얼굴이 쪼개진 것도 그 반영. 서술이 개떡같아서 잘 모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리셋이 되는 구간은 프리스크의 무의식에 따르기 때문에 항상 같은 구간을 리셋하지는 않음.
오미???
잼난다 알피랑 샌즈 이후에 어케 나올지 궁금
ㅊㅊ
띠요옹
개신박한 플룻에 개추를 박는다
참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