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펠/샌즈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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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프로젝트의 이름은 이렇게 지었다."


팔랑거리며 인간의 손에서 가스터의 글이 넘어갔다. 샌즈는 인간이 글을 보며 머릿속으로 단어를 조합하고, 번역하는 것을 유심히 바라봤다. 인간의 어깨에 매달린 꽃도 지금만큼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음, 근데 이거 봄이라고 해석을 해야 하는거 맞나? 모르겠으니까 그냥 봄이라고 말할게. 이 프로젝트가 정말로 우리에게 봄을 가져와 주길 바란다."


인간은 혼자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샌즈에게 양해를 구했다. 샌즈는 인간이 말하는 '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인간이 어느 쪽으로(그 어느 쪽이라는 것도 의미를 잘 모르겠지만) 해석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인간은 천천히 문장을 입 속으로 읽어내렸다. 그리곤 잠시 생각하다 띄엄띄엄 문장을 말했다.


"너무 외롭다. …바깥의 상황이 궁금하지만 나갈 수 없다. 제발 동생만은 무사하길."


가스터에게 동생이 있었나? 샌즈는 전혀 처음 들어보는 사실에 인간의 번역이 맞는지 의심했다. 하지만 어차피 의심해도 자신은 그 진실여부를 알 수 없다. 샌즈는 잠자코 인간이 문서를 읽는 것을 들었다.


"…가장 먼저 팔이 떨어졌다."


인간은 잠시 입 속으로 중얼거리던 것을 멈췄다. 인간은 샌즈를 힐긋 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샌즈는 인간이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은 조금 시간이 지나고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친구들에 비하면 난 좋은 편이다. 다행이 지하엔 인간의 뼈가 많다. …손을 섬세하게 움직이기 힘들다. 조수가 필요하다."
"……."
"…고민 끝에 가장 쓸모없는 것을 버리기로 했다. 이것의 이름은 동생의 이름을 따서 '샌즈'라고 붙이기로 했다."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샌즈는 자신이 태어났던 시점을 기억해보려 잠시 고민했다. 어렴풋이 가스터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들어낸 손을 염력으로 움직이며 자신에게 이것 저것 지시했었다. 그렇지만 그가 그 손을 움직이는걸 힘들어했던 것은 기억에 없다. 오히려 그는 말조차 하기 싫을때(그러니까 거의 매번) 손으로 지시하곤 했다. 샌즈는 더이상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의 말에 더 집중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샌즈는 약하다. 어쩔 수 없다. 줄 수 있는…ànima, 의 최대… 음, 이건 내가 해석을 못하겠다. …가짜, 인형에 너무 힘줄 필요는 없지."


샌즈는 인간이 문서를 넘기는 것을 바라봤다. 가짜 인형이라. 샌즈는 잠시 눈구멍을 닫았다. 그래, 난 실패작이지.


"미안, 너무 더러워져있고… 말이 좀 어렵네. 읽을 수 있는 부분부터 읽을게."


인간의 말에 샌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리엘…이 죽였다, 아이를. 언제 떨어졌던거지. 아스리엘이…ànima를 가졌다. 장벽, 결계를 나갔다. 괴물들은 인간을 찾는다. 과연 내가 하는 일이 옳은 걸까."
"……."
"아스리엘이 돌아왔다. 먼지를 신경쓰는 괴물은 없다. 결국 내가 먼지를 모았다. 샌즈에게 먼지를 보여줬다."


이 구절은 샌즈가 기억하고 있었다. 가스터가 자신에게 아스리엘의 먼지를 보여줬고, 뭐라고 물었다. 아마도 질문은 '이걸 보고 어떻게 생각하냐.'였다. 자신은 그때 뭐라고 말했더라.


-영혼을 흡수하고도 왕자가 인간에게 죽다니. 결계가 깨져도 전 무서워서 못나가겠는데요.
"역시 인형일 뿐이다."


회상과 인간의 말이 동시에 들려왔다. 샌즈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인간을 바라보니 인간은 있는 힘껏 인상을 구기며 종이를 보고 있었다. 꽃은, 잎이 시든 것 처럼 축 늘어져있었다.


"애스골……?"
"아스고어?"
"아, 아스고어. …가, …ànima, 추출, 만들다, 명령. 음… 아스고어가 뭐를 추출하는 걸 만들도록 명령했다? 이 단어는 뭔데 자꾸 반복되지?"
"……."


인간은 모른다 말했지만 샌즈는 이제 그 단어가 뭔지를 깨달았다. 아스고어가 가스터에게 지시했던 영혼추출기는 자신도 개발에 참여했다. 물론 그것 뿐만 아니라 가스터가 만든 모든 것에는 자신이 관여했다. 가스터가 적은대로 자신은 가스터의 조수이자 인형이었으니 당연하지.


"결국은 실패한다. 할 것이다?"


인간은 띄엄띄엄 번역을 하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하단 한숨이었다. 인간은 뒷 내용을 눈으로 훑어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종이를 넘겼다. 그러고도 몇 줄을 더 넘기고서야 인간은 간신히 다음 말을 내뱉었다.


"결국은 만들었다."


샌즈는 영혼추출기를 생각했다. 그곳에서 6명의 인간들이 영혼을 추출당했다. 그 자리엔 가스터가 있었고, 자신도 있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다. 인간들이 자꾸 떨어진다. 어째서? 문제가 생겼는가?"
"……."
"아스고어는 …또 그거, 바로 가지진 않는다. 다행이다. 아들에게서 교훈을 얻었나보지."


인간은 이제 슬슬 반복되는 영혼이란 단어에 짜증을 내는 것 같다.


"…씨발."
"인간?"
"아니, 내가 하는 말은 아니고 여기에 적혀있던거야."


인간은 종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샌즈는 인간이 당황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휴-하고 한숨을 쉬곤 다시 글자를 읽었다.


"예전에 만들었던… 뭐야 이건. fotóne? 신호? 폭로……."
"…광자신호검출기?"
"아, 그래 맞는 것 같아."


샌즈의 말에 인간은 긍정했다. 다시 종이를 보며 인간이 입을 열었다. 샌즈는 그 말을 듣지 않아도 뭐가 적혀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이상 신호, 발견."


샌즈는 그 때를 기억했다. 광자신호검출기는 가스터가 가장 초창기에 발명했던 물건들 중 하나였다. 샌즈는 그 물건이 무척 신기했다. 뭐, 가스터가 만드는 모든 것이 신기했지만 그건 특히나 더 그랬다. 매번 똑같은 신호가 나와, 가스터는 만들고 난 뒤로는 딱히 흥미를 가지지 않았지만 그 일정한 신호의 규칙성이 샌즈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규칙성과 법칙. 식을 도출해내고, 그 식을 증명해내고, 법칙을 완성하는 과정. 그 모든 것이 샌즈는 좋았다. 정확히는 좋았'었'다.
샌즈는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렀다. 어떻게 그 때를 잊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의 원흉을.


"시점은 첫번째 아이."


가스터는 광자신호검출기에서 관심을 잃고 있었다. 다만 샌즈는 그 것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매번 식을 도출해냈고, 새로운 식을 또 만들어내고, 결과값과 대조하고, 변수를 조정하고, 다시 비교하고.
샌즈가 어느 정도 식을 완성해 냈을 무렵에 아스리엘이 지상으로 올라갔고, 지하가 어수선해졌다. 덩달아 바빠진 가스터때문에 샌즈는 더는 광자신호검출기의 결과를 확인할 수 없었다.
아스리엘이 죽어서 돌아온 뒤로는 아스고어가 가스터를 닦달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영혼추출기를 만들어 내는데 걸렸던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샌즈는 아스고어를 씹어삼킬 수도 있었다. 그건 비단 샌즈만의 의견이 아니라 가스터는 물론 가스터를 도왔던 연구실의 다른 괴물들의 의견이기도 했다.
영혼추출기를 만들어내기 무섭게 지상에 그 소식이라고 전해졌는지, 지하에 인간이 떨어졌다. 괴물들이 잡은 인간을 연구실의 괴물이 데려왔고, 영혼추출기를 시험했다. 결과는 성공했다.
그렇지만 그 성공으로 인해 또다시 연구가 진행되었다. 인간의 영혼을 복제시켜보기라든가, 인간의 영혼으로 또다른 마법을 만들어낸다든가… 몇몇 개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얻어낸 것이 많았다.
하지만 끊임없는 실험 끝에 가스터가 탈진했다. 글쎄, 그저 실험때문이라고 할 수 없었다.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가스터는 파피루스를 만들어냈었다. 모두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스터의 탈진은 파피루스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몇몇 괴물들은 그 상황에서 파피루스를 만들어낸 가스터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가스터는 자신이 만들어낸 파피루스를 돌보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조수로라도 써먹었던 샌즈와는 달리 가스터는 파피루스를 방치했다. 당연스럽게도 파피루스를 돌보는 것은 샌즈의 몫이었다. 많은 괴물들은 돌보지도 않을 괴물을 굳이 만들어내고 방치하는 가스터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샌즈는 가스터가 파피루스를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실험조수로만 써먹던 자신과는 달리 가스터는 파피루스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샌즈는 그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샌즈는 가스터가 파피루스를 보고, 지었던 웃음만은 기억했다.
가스터가 탈진한 뒤로 연구실은 잠정 휴무에 들어갔고, 그 뒤에서야 샌즈는 수많은 시간동안 방치되었던 광자신호검출기를 발견했다. 광자신호검출기는 그 많은 시간동안 꾸준히 돌아가고 있었고, 마음의 위안이 필요했던 샌즈는 검출기의 결과를 확인했다. 그런데, 언제나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할 검출기의 결과가 이상했다. 나와야 할 신호가 없고, 뜬금없는 신호가 검출되고 있었다. 그건 오랫동안, 그러니까 샌즈가 검출기에서 눈을 떼고 있던 시간과 거의 동일한 시간동안 유지되고 있었다.
샌즈는 변화한 시점을 찾느라 무척 애를 썼다. 다행스럽게도 파피루스는 별로 보살핌을 받아야 할 괴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능력치로만 비교하자면 파피루스에게 보호받아야 할 괴물은 샌즈였다. 덕분에 샌즈는 검출기에 온 신경을 쏟을 수 있었다.
오랜 기간동안 쌓여있던 검출기의 결과를 헤집어 발견한, 결과가 바뀐 시점은 아스리엘이 인간의 영혼을 흡수한 시점과 거의 동일했다. 그 시점에서 수많은 변칙이 발견되었고, 그 변칙이 법칙이 되어 이제까지 이어져 온 것이었다.
가스터가 일어나고, 샌즈는 그 사실을 가스터에게 알렸다. 그래서는 안되었던 것인데. 바보같은 자신은 그 사실을 몰랐다. 가스터는, 가스터는…….


"실패."


연구 밖에 모르던 천재가 그 모든 연구가 부질없는 실패였단 것을 경험하고 무슨 짓을 벌였는지, 샌즈는 그걸 너무나도 잘 알았다. 샌즈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꽉 잡았다. 그 잠겨죽을 침묵, 공포, …암흑.


"…아!"
"흐핫-!"


샌즈는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그는 눈구멍을 닫았다가, 떴다. 눈 앞엔 인간이 있었다. 인간은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괜찮아?"
"아-어, 으…응."


아니, 사실은 안괜찮아. 습관대로 대답한 샌즈는 다시금 눈구멍을 꽉 닫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있잖아. 이거 적은 사람 누구야?"


샌즈는 눈을 깜박이고는 인간을 바라봤다. 인간은 다 읽은 문서를 고심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샌즈는 겨우, 가늘게 숨을 내쉬었다. 대답해야해.


"가스터. …전 왕실, 과학자야."
"…가스터."


인간이 그의 이름을 작게 되뇌었다. 샌즈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아직 떨리는 손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빨이 딱딱 부딪히는 소리에 골이 울렸다.


"인간… 그, 실패…란 단어 전에 뭐라 적힌 건, 어-없어?"


샌즈는 머릿속에서 가스터의 존재를 줄였다. 전부는 아니고, 그래도 자신이 사고는 할 수 있을 정도로. 딱 그정도로. 평소대로. 그리고 가장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인간은 제법 심각한 얼굴로 문서를 바라보다, 그의 질문에 다시 맨 뒷장을 펼쳤다. 그리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샌즈는 깊게 탄식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이 이전처럼 숨으려고 하는 것을 느꼈다.


"…이상해."


찰나의 침묵을 깨고 꽃이 말했다.


"뭐가?"
"난… 내 기억엔 없어. 왕실과학자는 알피스뿐이야."


시들한 이파리를 흔들며 꽃이 말했다. 샌즈는 누렇게 변색된 꽃잎을 바라봤다. 꽃은 인간에게서 시선을 떼고 샌즈를 바라봤다.


"내 기억은 정확해. 알피스 이전엔 과학자가 없었어."
"……."
"아…스고어가 그 가스터란 괴물에게 지시를 내렸다고 했잖아. 그리고 그 괴물이 ㄴ-먼지를 가졌다고 했잖아. 내가 그 정도의 괴물을 모를리는 없다고 생각해."
"……."
"해골, 대체 이 가스터란 녀석은 누구야?"


샌즈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꽃의 반응은 자신에겐 너무 익숙했다. 샌즈는 잠시 숨을 멈췄다. 다시 머릿속이 가스터로 채워졌다.


"…가, 스터는……."
"……."
"코…어를 만들고, 알, 피스가 만든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발명한, 과학자야. 그, 그리고……."
"……."
"…함께 연구한, 연구원들… 나를 제외하고 모두와 함께, 시공간으로 흝어졌어. …발명품은 남았지만, 더는… 아무도… 가스터를 기억 못 해."


심지어 파피루스도. 오로지 그를 기억하는 것은 샌즈, 자신 뿐이었다. 샌즈는 가스터가 몰락하는 과정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검출기에서 얻어낸 결과를 들고가자, 가스터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그 이후로 가스터는 점차 마법의 힘을 유지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광자신호의 미검출, 그러니까 시공간의 변동은 그에겐 믿을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가 행했던 모든 연구를 전부 뒤집어 엎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의 관심은 처음부터 지하와 지상을 단절한 결계에 있었고, 그의 모든 연구 역시도 결계를 파괴하기위해 행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연구의 기본 전제 조건은 결계가 일방통행만이 가능한 닫힌 공간이란 것이었다. 하지만 검출기의 결과는 결계 안의 닫힌 공간이 사실은 닫힌 것이 아니라 변동 가능한 닫힌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제와서야 말하자면 그건 처음 전제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완전한 닫힌 공간이라면 모든 변인이 통제 가능하고 검출기에서 얻어낸 것 처럼 일정한 수식으로 연산이 가능한, 같은 결과를 반복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외부에서 들어오는 변인을 수용하는 공간을, 닫힌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가스터는 지하세계의 시공간을 닫혀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에게 지상에서 떨어지는 물건이나 인간은 변인이 아니었다. 물건이나 인간이 떨어진들 지하의 시공간이 변하진 않는다. 그건 맞다. 하지만 틀렸다. 첫번째 인간은 시공간의 불규칙을 만들었다. 그 이후에는 다른 불규칙이 없었지만, 변동이 존재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한 인간의 존재로 인해 지하의 모든 시공간이 뒤틀어졌고, 그 뒤틀림으로 인해 결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가스터는 더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의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갔다는 것을 안 시점에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가스터는 더는 연구를 하지 않았고, 거의 완전히 삶을 포기한 것 같았다. 샌즈는 그런 가스터를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 때 자신은 가스터를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보같은 자신은 가스터에게 더 실망만 안겨줬다.
샌즈는 가스터가 만들어낸 동생을 본 순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능력치를 확인한 순간 샌즈는 질투를 느꼈다. 그리고 가스터가 동생을 향해 지었던 미소를 본 순간 샌즈는 분노를 느꼈다. 어째서, 이런 괴물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면서 자신은 어느 괴물에게나 비웃음당하고 살해위협을 느끼게 이렇게 볼품없게 만들었나. 가스터가 자신을 그저 조수로만 사용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 일손이 부족한 시점에 동생을 만든다면 자신처럼 조수로 쓸 수 있는 괴물을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동생의 능력치가 높은 것은 힘이 약한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시키기 위해서 일 것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하지만 가스터는 동생을 조수로 쓰지 않았다.
하루하루 불만은 쌓여갔다. 가스터를 향해서, 파피루스를 향해서, 모든 괴물을 향해서. 불만을 가져본 적도 없었던 샌즈는 자신의 감정의 임계점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는 분노하고 분노하고 또 분노했다. 그리고, 그러다 아주 사소한 도발에 감정은 임계점을 벗어났다.
실의에 빠진 가스터와 함께 핫랜드를 걷던 와중에, 평소에도 자주 마주치던 금으로 만들어진 괴물이 있었다. 그 괴물은 부모가 없이 스스로 마법을 가지고 태어난 괴물이었다. 부모 없는 괴물은 언제나 다른 괴물들의 표적이 되지만 그 괴물은 적당히 강했던 터라, 적당히 목숨을 유지하고 있던 괴물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괴물에겐 같은 시기에 태어난 쌍둥이 동생이 있는데, 그 동생과 연계해서 매번 싸움을 했다. 다른 괴물들은 2대 1의 싸움에 그 괴물을 찌질하다고 욕했지만, 그래도 그 연계로 인해 그 괴물들은 지하에서 적당히 살아갈 수 있었다. 그 괴물들은 언제나 샌즈를 볼 때면 가스터 없이는 단 1초만에 먼지가 될 녀석이라며 비웃기 일쑤였다. 그 도발은 가스터와 함께든 아니든 마주치면 언제나 받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또다른 도발을 받았다.
-어이 땅딸보 해골새끼야. 넌 네 동생한테도 빌붙어서 산다며? 이야, 나같으면 자살한다. 병신새끼.
그 때 어떤 공격으로 그 괴물을 먼지로 만들었는지, 샌즈는 절대 잊을 수 없었다. 한 놈의 영혼을 파란색으로 만들어, 공중으로 들었다가 바닥으로 후려쳤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이 가진 모든 공격수단으로 놈을 공격했다. 이전에 가스터가 만들다가 말았던 공격무기인 가스터 블래스터를 가스터 몰래 제작하고, 처음으로 선보인 때였다. 그리고 아무리 약한 자신일지라도 무수히 많은 공격을 퍼부으면 괴물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때기도 했다. 처음부터 이어진 수많은 공격에 그 괴물은 단 첫번째 턴에 샌즈에게 먼지가 되었다. 샌즈는 차오르는 자신의 능력치에 감탄했다. 괴물 한 마리에 이정도로 능력치가 오르다니. 샌즈는 이제 가스터에게 자신이 파피루스보다 더 나은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다.
샌즈는 가스터를 바라봤다. 하지만 샌즈가 얻은 것은 가스터의 경멸 뿐이었다.
가스터는 그 일이 있던 이후로는 모든 것에 화를 내기 시작했다. 다른 괴물들은 물론 샌즈조차도 가스터에게 더는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샌즈도 더는 가스터의 곁에 가지 않았다. 가스터는 모든 것에 화를 내고, 슬퍼하고, 그리고 마지막엔 미쳐버렸다.
가스터는 그가 발명한 물질변환장치를 그를 따랐던 연구원들과 자신에게 쏘았다. 그리고 그건 그들의 존재자체를 변환시켜버렸다. 뒤늦게 연구실로 들어온 샌즈는 그들을 찾을 수 없었고 오로지 그들이 남겼던 기록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변환장치는 과부하로 망가져 버렸기에 샌즈는 그들이 어떤 물질로 변환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시공간으로 흝어져버렸고, 그때문에 그들의 존재가 말살되었다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자신 뿐이라는 것도.
가스터의 존재가 없어지는 바람에 샌즈의 존재도, 파피루스의 존재도 당위성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괴물들에게 샌즈와 파피루스는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갑자기 뚝 떨어진 괴물이 되어있었다.


"…시공간으로 흝어져버렸다고?"


그 뒤에 펼쳐진 지옥을 인간의 질문 덕분에 회피한 샌즈는 인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질문했다.


"그럼, 그 가스터란 사람하고 그 연구원이라는 괴물?-들하고는 시공간의 어디에나 존재한단건가?"
"…이론적으론."


샌즈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여서 말했다. 심지어 이론적으론 결계를 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그건 그들의 존재가 얼마나 잘게, 그리고 커졌는지에 달려있었다.
인간은 샌즈의 말에 다시 고심하는 표정으로 음-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 때, 샌즈는 방의 벽이 무너질듯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야-!!! 쓰레기!! 언제까지 데리고 있을거냐!!!!"


파피루스였다. 샌즈는 지금 인간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파피루스의 말은 지금의 그에겐 절대적인 명령이었다. 그리고 인간이 내일 워터폴로 가기위해선 이젠 정말 자야 할 시간이었다. 샌즈는 아직 고심하고 있는 인간에게 문 앞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인간은 꽤나 골머리 앓는 얼굴로 승낙했다.




냉랭했던 방보다 매서운 눈바람이 샌즈와 인간, 꽃에게 불어닥쳤다. 인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샌즈는 그냥 공간이동으로 방에 데려다 놓을 것을 그랬나 하고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괜히 집에 들어갔다가 파피루스한테 걸리기라도 하면 그대로 먼지가 될게 뻔했다.


"…있잖아."


짧은 눈길을 걷는 와중에 인간이 먼저 말했다. 샌즈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걸어가며 인간을 눈발로부터 보호하고 있던 중이었다. 샌즈가 고개를 돌리자 인간이 이어 말했다.


"이거 내가 좀 더 가지고 있어도 될까?"


인간은 여태 가지고 있던 가스터의 문서를 샌즈에게 슬쩍 보여주며 말했다.


"너한텐 소중한 것 같은데, …좀 더 자세하게 보고 싶어서."


인간은 미안하단 기색이 역력한 표정과 말투로 샌즈에게 말했다.


"물론, 이야."
"정말?"
"워, 원한다면 저기 있는 거, 다 가져가서 봐도 돼."


오히려 이쪽에서 부탁했던 것이다. 샌즈는 기뻐하는 인간의 표정을 보며 제발 인간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다. 남겨진 문서로 가스터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조금 더 알 수 있다면 그에겐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짧은 대화는 그보다 더 짧은 길때문에 끝이 났다. 샌즈는 인간이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멀찍이서 바라봤다. 문 안에서 파피루스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샌즈는 인간이 문을 닫는 것과 동시에 빠르게 뒷문으로 걸어갔다.




아까 들어왔을 때보다 더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방 안을 휘둘러보고 샌즈는 한숨지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이제 한계였다. 샌즈는 문에 등을 기대어, 주르륵 밑으로 흘러내리듯이 앉았다.


"후-"


두 번째 한숨.
샌즈는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눈구멍을 막아버렸다. 아까부터 울컥울컥 쏟아져나오던 눈물을 샌즈는 더이상 참아낼 수 없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흔적이 가득한 방에서 주인을 잃은 인형이 또다시 홀로 실체없는 곳을 향해 그리움을 쏟아냈다.












이번편은 좀 읽기 불편할 것 같긴한데 내 역량으론 이게 한계다. 진짜.


전편 개념글 고마워

개추 고마워. 댓글 고마워.

오타지적은 언제나 환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