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더니,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오직 [Continue] 와, [Reset] 이라는 버튼만이 보였다.
“…뭐야? 내가 어째서 이런 곳에….”
버튼을 보면서, 조용히 생각에 잠기려고 했었지만, 뒤에서 나와 비슷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저기 봐, 꼬맹이.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내가 서있는데?”
왼쪽 눈을 감싸고 있는, 하얀 안개.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있으며, 눈과 같이 하얀 옷에는, 붉은 케찹이 잔뜩 묻어있었다. 아니, 저건 케찹이라기 보단…. ‘피’ 라는 표현이 적절하겠군.
나와 비슷하게 생긴 녀석 위에는 인간이 보였다. 인간은, 불투명한 모습이, 마치 곧 사라질 것만 같았다.
“…누구야?”
나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상태. 나는 일단, 녀석과의 거리를 벌리면서, 경계하는 태세로 물어보았다.
“너는…. 내가 알고 있는 나랑은 전혀 다른 것 같아. 두개골에 금이 갔는데…. 뼛속이 엄청 시리겠군.”
경계하지 말라는 뜻에서의 장난인가? 악의도 없어 보이고…. 그렇다면, 의외로 나쁜 녀석은 아닐지도 모르겠군.
“미안해. 네 말대로, 나는 뼛속이 엄청 시려서 말이야.”
나는 경계태세를 풀고서, 그 녀석이 얘기하는 말장난을 받아주었다.
“역시, 너는 샌즈로군. 만나서 반가워.”
그 녀석은 양 팔을 쫙 벌리면서, 환영한다는 분위기를 나타내주었다.
알 수 없는 장소에서, 나를 환영해준다니. 이건 이것대로 괜찮군.
그렇다면, 이제 물어볼 수 있겠지?
“만나서 반가워. 그런데, 그 꼬맹이는 뭐야? 사라질 것 같은데?”
꼬맹이.
컨티뉴와 리셋버튼을 보면, 여기는 꼬맹이의 ‘의지의 방’ 정도로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녀석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라도, 나는 질문을 해야겠어.
“꼬맹이 말이야? 흠….”
녀석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마법을 사용해, 안고 있던 꼬맹이를 바닥으로 내려놓고, 가스터 블래스트를 소환하여, 꼬맹이와 놀게 하였다.
꼬맹이는 즐겁다는 듯이 웃으면서, 어딘가로 사라졌다.
잠깐만. 가스터 블래스트?
“꼬맹이가 그것과 놀 수 있었던 건가?”
“뭐, 처음에는 내가 적의를 가지고 소환한 건데, 어쩌다보니 친구가 되어버렸어. 웃기지 않아?”
“헤, 확실히 재밌는 이야기로군.”
나는 녀석의 말을 적당히 받아치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면, 나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실까?”
“…좋아. 이유를 얘기해줄게. …그냥. 너는 재밌어보여서 그랬어.”
“뭐야?”
“우선, 이 스카프는 무엇으로 보여?”
녀석은 스카프를 만지작거리며 물어보았다.
“…단순한 스카프 아니야? 아니, 어쩌면….”
스카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짜증나는 얼굴이 눈앞을 지나갔다. 설마….
“그 설마가 맞아. 이건, 파피루스의 스카프야.”
역시. 스카프하면 그 새끼 밖에 없지.
“헤, 내가 알고 있던 스카프는 분명히, 민트 색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너는 재밌어 보인다는 거야. 너의 세계는, 네거티브처럼 반전되어 있는 것 같았거든.”
“흠, 그런가?”
“그리고, 파피루스를 죽인 건, 차라가 아닌 너잖아?”
차라? 이 녀석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뭐, 그건 신경 쓰지 않는 게 좋겠지. 복잡해질 수 있을 얘기인 것 같으니까.
그런데, 파피루스를 죽인 게 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니, 어디까지 본거야? 녀석은.
“맞아, 그 썩을 놈을, 내가 죽였어. 생긴 것 자체가 혐오스럽고, 기분 나쁘고, 더러웠으니까.”
“파피루스에 대해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녀석은, 너뿐 일거야. 역시 재밌는 녀석이라니까?”
“뭐, 그런가?”
뭐야, 모든 파피루스가 그런 새끼가 아니었단 말이야? 이거, 나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 것인지.
“내가 알던 세계의 파피루스는 죽었어.”
“잘됐네.”
“아니, 우리 세계의 파피루스는, 너의 파피루스처럼, 사악하고,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고, 형을 때리는 사악한 녀석이 아니야. 유쾌하고, 약한 아이에게도 자비를 베풀고, 형에게 친절했던 녀석이야.”
흠…. 파피루스의 얼굴에 그런 성격들을 붙여보니까….
“구역질밖에 안 나오는군.”
“뭐, 너에게는 그렇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가족이었어. 정말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얘기는 하지 않겠어. 그 새끼가 죽은 이유에 대해 얘기해봐. 흥미가 생겼어.”
“알겠어. ……파피루스는, 꼬맹이에게 자비를 베풀었지만, 결국, 살해당했어.”
꼬맹이가 파피루스를 죽였다고? 그 나약한 꼬맹이가 말이야? 정말이지, 그 세상은 어떻게 되어먹은 세상이야?
“헤, 꼬맹이가 새끼를 살해했다. 라. 정말 흥미롭네.”
“그렇지? 그 녀석은…. 나약한 꼬맹이가 아니라, 차라였으니까.”
차라? 아까도 그 얘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 꼬맹이와는 다른 녀석인가? 아니면, 꼬맹이의 다른 인격? 뭐,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니까. 그냥 경청이나 하는 게 좋겠군.
“헤, 차라라. 뭐, 어떻게 살해를 했는데?”
“LOVE를 올린 상태에서, 식칼로 베었어. …급소를 노렸으니, 치명적이었을 테지.”
LOVE는 괴물들을 살해하면 오르는, 폭력 수치(Level Of ViolencE)의 약자. 꼬맹이주제에 그런 걸 올리다니, 대단하군.
“헤, 꼬맹이가 그런 걸 올렸단 말이지?”
“그래. 하지만, 너는 달랐어. 파피루스를, 자신의 손으로 살해했지. 아무리 사악한 놈이라도, 결국은 너의 동생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야? 이 더러운 동생 살인마.”
나왔다. 본성이 나왔어. 그래. 이런 말을 안 할리가 있을까?
“그런 건 동생도 무엇도 아니야. 단지 걸어 다니는 쓰레기일 뿐이지. 안 그래?”
“너…. 너……!”
흥미가 있어서 불렀다고 했으면서, 나를 위협하기 위해, 공격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결국은, 동생 아낌이라, 뭐 그런 거야?
“……아니, 미안하다.”
“흐응? 공격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나는 단지, 네가 흥미로워서 불렀어. 하지만, 역시 너와 나는 어울릴 수 없는 부류인 것 같아.”
“…….”
녀석은 리셋 버튼으로 다가가더니, 리셋을 눌렀다.
내 몸이, 어딘가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미안해, 불러서.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녀석은 진심이 담긴 듯이 얘기했다. 뭐, 나도 똑같은 생각이야. 너와 나는, 어울릴 수 없는 부류야.
나는, 시원하게 중지를 날려주고, 리셋을 통해, 나의 세계로 돌아갔다.
…….
그 세계에는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녀석은 꼬맹이를 다시 불렀고, 그를 껴안고서, 어딘가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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