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루스를 통과한 인간 꼬마는 워터폴의 석상에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러자 석상 아래에 잠들어있던 오르골에서 작지만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샌즈는 아이가 가만히 석상을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을 바라봤다. 아이는 꽤 오랫동안 빗소리와 오르골 소리를 들었다. 샌즈는 '꽤 자주 저기에 서 있네' 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파피루스를 죽인 어떤 괴물과 대치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무사히 지상에 파피루스가 지상에 나갔으니 그저 개꿈이라고 치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찝찝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일어났'었'지만 사라진 기억 중 일부일 것이리라 샌즈는 짐작했다. 그러나 짐작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모두가 지상을 나가고서도 지하의 집에 처박힌 샌즈는 그저 만사가 귀찮다고 생각했다. 꿈을 꾸고 벌벌 떠는 것도 귀찮고,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지금을 기억하는 것도 귀찮고, 이러니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생각조차도 하기 귀찮다. 샌즈는 그저 하루하루 애완돌처럼 소파에 잠긴채 TV를 보며 감자칩이나 씹을 뿐이었다.
따르릉 따르릉
배 위에 올려둔 감자칩을 손도 쓰기 귀찮아서 혀로 집어 삼키던 샌즈는 휴대폰을 마법으로 들어올렸다. 발신자가 누군지 알 필요도 없다. 전화번호를 아는 것은 파피루스 뿐이다.
"엉, 동생아."
"형, 지금 뭐하고 있어?"
"언제나 하던 일을 하고 있지."
"또 TV만 보면서 감자칩이나 먹고 있는건 아니지?"
"그럼, 오늘은 '골'때리게 재밌는 TV쇼를 보면서 감자칩을 먹고 있지."
"형-"
"지금은 쉬는 시간인가봐? 이 시간에 전화를 다하고."
동생의 입에서 잔소리가 나오기 전에 재빨리 샌즈는 말을 돌렸다.
"아, 프리스크가 형이랑 만났으면 한다길래. 지금 지하에 있다던데."
"여기에?"
"응, 방금 전화로 그러더라고. 형도 집에만 있지 말고 지상에 나오라니까. 프리스크도 걱정되서 거기까지 간거잖아."
"…그래, 꼬맹이는 어디 있다고 했어?"
"지금 워터폴을 지나는 중이라던데?"
"알았어. 뭐, 별일은 없지?"
"많지! 인간들과 얼마나 많이 친해졌는데!"
"그래그래."
"들어봐, 아까 어떤 귀-여운 인간이……."
파피루스는 처음 전화한 이유도 잊어버리고 지상에서 만난 인간들이 얼마나 좋은가와 친해진 인간들과 있었던 일들을 세세하게 말했다. 오늘은 귀여운 인간을 만났다, 오늘은 상냥한 인간을 만났다, 오늘은 지쳐있는 인간을 만났다, 등등으로 비슷한 내용을 전혀 다른 일이었던 것처럼 파피루스는 늘상하던대로 말했다. 샌즈는 그런 동생의 말을 끊을 수 없어서 그대로 전화를 계속 붙들고 있었다.
파피루스가 이제 쉬는 시간이 다 되었다며 가보겠다며 전화를 끊었을 때는 1시간짜리 TV쇼가 끝난 뒤였다. 꺼져버린 전화기를 바라보고 샌즈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꼬맹이가 왔다니 나가봐야 할 것 같지만 1시간이나 지났으니 집 근처에 왔겠지, 하고 생각하자마자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프리스크."
"무슨 프리스크?"
"……."
"그래그래."
샌즈가 문을 열자 별로 표정변화가 없는 인간 꼬마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서있었다. 샌즈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일단 추우니까 들어와."
샌즈는 옆으로 살짝 움직여 꼬마에게 길을 터줬다. 하지만 꼬마는 집 내부를 보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샌즈는 감자칩봉지가 수북하게 여기저기 널려진 집을 훑어보고 다시 어깨를 으쓱였다. 청소 안한지 좀 되긴 했지.
"그럼, 예전에 그릴비로 데려갔을테지만……."
지금은 그릴비도 지상에 나가 있다. 지하에 남아있는 건 샌즈, 혼자뿐이다.
"워터폴."
꼬마가 작게 말했다.
"벤치에."
샌즈는 두개골을 살짝 긁었다. 숨겨진 장소라… 뭐, 못 갈 이유는 없지.
"그래, 그럼 지름길로 가자고."
인간의 앞에 통로를 만들고 샌즈가 먼저 지름길로 들어갔다. 인간은 익숙하게 샌즈의 지름길로 따라왔다.
몇 발자국 걷지않아 열린 공간엔 푸르스름한 메아리꽃 옆에 덩그러니 놓인 벤치가 있었다.
"키슈라도 구워올걸 그랬나?"
벤치 아래에 있던 키슈가 없어진 것을 보고 샌즈는 잠시 중얼거렸다. 꼬마는 벤치에 앉아 샌즈를 바라봤다. 샌즈는 잔말없이 꼬마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벤치 앞의 강이 흘러내리는 것을 바라봤다.
"샌즈."
먼저 꼬마가 입을 열었다.
"왜 지상에 나오지 않는거야?"
"게으른 뼉다구라, 지상에 터를 잡는 것보단 그냥 지하에 박혀있는게 좋아."
"파피루스랑 같이 살면 되잖아."
"파피루스가 지하로 내려오잖아. 요새는 '뼈'빠지게 바빠서 잘 못만나지만, 맨날 전화는 하고 있지."
"친구들도 샌즈를 기다리고 있어."
"헤, 가끔 만나고 싶으면 가서 만나고 오기도 한다고."
"…나는?"
"응?"
"나한텐 왜 안 와?"
샌즈는 자신을 바라보는 꼬마의 눈에서 스르르 눈길을 떼어냈다. 누가봐도 자연스러웠다고는 절대 말 못할 것이다.
"샌즈는 숨기는게 너무 많아."
"'뼛'속까지 다 보여주고 있잖아."
"……."
"헤, 아닌가?"
윙크를 했지만 여전히 질린 얼굴의 꼬마를 보고 샌즈는 히죽 웃었다. 꼬마는 입술을 한 번 삐쭉하고는 한 박자 쉬었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전에 나한테 내가 뭘 해도 응원한다고 했잖아."
아, 그 때. 샌즈는 거대한 꽃과 싸우던 꼬마를 금방 기억해냈다.
"…그 때, 엄청 기뻤어."
"……."
"그런데, 샌즈는… 지상에서 다같이 나오고 나선 바로 지하로 가버렸잖아."
"……."
"…여전히 날 못믿는거지?"
묵묵히 강을 바라보던 샌즈는 천천히 눈을 돌려 꼬마를 바라봤다. 감긴 눈꺼풀 사이로 빨간 홍채가 얼핏 보였다. 역시 너였구나.
"꼬맹아, 예전에도 말했지만 넌 LOVE대신 love를 얻었어."
"……."
"그 love엔 내 것도 포함이야. 그런데 내가 널 왜 안믿겠어."
안그래? 다시금 윙크를 하며 샌즈가 꼬마에게 말했다. 꼬마는 미심쩍다는 눈길로 샌즈를 바라봤지만 샌즈가 히죽 웃자 표정을 조금 풀었다.
"그냥 집에 있는게 좋아. 그리고 널 못 만난건, 내가 갈 때마다 네가 바빴거든."
"……."
"꼬맹아, 넌 외교관은 되지 않았지만 지상에서 네가 할 일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잖아?"
지상에서 할 일을 언급하자 꼬마는 금세 입술을 삐쭉하고 내밀었다. 샌즈는 실실 웃고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토리엘이 네가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최대한 막고는 있지만, 네가 괴물을 바깥으로 내보내준 인간이라는 것은 알만한 인간들을 다 알잖아."
"……."
"그래, 그동안 널 만나지 못했던건 유감스런 일이야. 그렇지만 널 일부러 피한건 아니야. …야, 내가 왜 우릴 지하에서 벗어나게 해준 기특한 꼬마를 싫어하겠냐."
샌즈는 히죽히죽 웃으며 꼬마에게 말했다. 꼬마는 그제야 완전히 표정을 풀고 그를 마주바라봤다. 샌즈는 그걸 피하지 않고 괜스레 더 크게 웃음지었다.
"응, 알았어."
"그래."
"오늘 만나서 즐거웠어."
"다행이네. …데려다줄까?"
"아니. …아 거기 석상 있는 곳에 가자."
"원하는대로."
금방 그곳을 찾은 샌즈는 올 때처럼 지름길을 만들었다.
우산을 쓴 석상에선 오르골소리가 흘러나왔다. 빗소리와 어우러진 오르골 소리는 제법 아름다웠다. 샌즈는 꼬마의 옆에서 꼬마가 가만히 서서 주변의 소리를 감상하는 것을 지켜봤다. 예전의 악몽에서 만났던 괴물. 제멋대로 시간축을 움직이는. 샌즈는 주머니 속의 왼손을 쥐었다 폈다.
"가끔 여기 와서 이 소리 듣고는 했어."
그러나 지금은 모두와 친구인 인간 꼬마가 말했다. 샌즈는 헤, 그래? 하고 대꾸하곤 꼬마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복잡해진 머리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단순해지려고 한다.
"그런데 좋은 엔딩을 보고나면, 소리가 겹쳐서 일부러 되돌리기도 했어."
샌즈는 숨을 흡 들이켰다. 꼬마를 바라보자 꼬마는 그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석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빗소리와 오르골 소리가 요란하게 인간꼬마와 해골괴물 사이를 갈라놨다.
"그렇지만, 이젠 안그럴거야."
"……."
"약속할게."
꼬마가 샌즈를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약속을 거론하는 모습이 제법 진지해 보이지만, 또 한편으론 저렇게 가벼운 모습은 보기 드물 것이다. 어차피 리셋하면 자신은 기억도 못할 약속이니까. 하지만 샌즈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샌즈도 이제 올라왔으면 좋겠어."
"……."
"할 말은 이게 다였어. 만나줘서 고마워. …먼저 갈게."
꼬마는 우두커니 서있는 샌즈를 보고 쓴웃음을 짓곤 샌즈를 지나쳐 갔다. 샌즈는 이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르골의 소리와 빗방울 소리는 멎을 기미가 없다. 그의 상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모든 괴물의 영혼을 합한 것보다 강하다. 인간의 의지가 샌즈의 상념을 이기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샌즈는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꼬마의 방으로 걸어갔다. 열어뒀던 창문엔 빗방울이 맺혀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꼬마의 침대까진 닿지 못했다. 샌즈는 안도하며 먼저 창문을 닫고 꼬마를 살폈다. 곤히 자는 모습은 여전히 행복에 젖어있다.
샌즈는 기억 속의 오르골을 켜고서 조용히 꼬마의 자는 모습을 바라봤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소리가 기억 속의 그 소리를 방해한다. 샌즈는 그제야 꼬마를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 글이랑 이어짐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undertale&no=268284
실제로 인간꼬마가 한 일은 내가 한 거랑 똑같음
석상에 오르골 소리랑 빗소리 좋아서 듣는데 불살하면 브금이 달라져서 리셋하고 리셋하고..
샌즈한텐 못할 짓이었지...
그래서 지금은 몰살로 샌즈랑 끝없이 데이트 중 이야 신난다!
찝찝
아 저 링크글 보고 무슨 말인지 내가 이해한게 맞나 아리송했는데 이런거였구나 글 마음에 들어 이번 편 진심으로 재밌다 프리스크가 과묵해서 필요한 말만 딱 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오르골 소리 바뀌는건 나도 여태 몰랐네 ㅊㅊ
결국 그 이후가 저 링크글이라는건가?
시간상으론 이글 마지막쯤 샌즈가 지상으로 올라오고 난 뒤에 이어지는 글이 되고 그리고 이글 마지막으로 시간 마무리됨. 마지막 바로 전에 이어지는거 넣으면 돼
문학은!!!!!!!!!!!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