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번만큼은 그, 그럴 수 없어 파피……."
샌즈는 금색으로 반짝이는 이빨을 드러내며 비굴하게 웃었다. 그는 스노우딘의 눈내리는 언덕 위에 서있었다. 에봇산의 구멍에서 비치는 달빛이 그의 위에 드리우고 있었다. "거, 걱정할 거 없어, 내 사랑……." 그는 자신의 그림자에 숨은 작은 인간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유언은 그걸로 끝이냐? 쓸모 없는 해골 녀석아."
언덕 아래에서 거칠게 가래 끓는 목소리가 기어올라왔다. 눈 밟는 소리가 지평선 끝까지 울리는 것만 같았다. 언덕의 그림자 뒤편에서 키 큰 백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피루스. 자신의 소중한 형제. 그는 붉게 빛나는 살의를 담은 눈으로 샌즈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샌즈, 네가 지금 하려는 짓을 알고 있어? 너는 반역자다."
파피루스의 선고가 샌즈를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샌즈는 웃는다. 헤헤. 마치 얼이 빠진 것 처럼도 보이는 웃음이었지만 그 깊은 곳에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아, 알고 있어…… 이, 이런 나라도 아, 알고있다고…… 그, 그래도 말이야……."
샌즈는 한쪽 손을 뻗었다. 바람이 울부짖는 것 같은 기이한 소리와 함께 용의 머리를 닮은 건틀렛이 나타났다. 샌즈는 그것을 꽉 움켜쥐고 그 끝을 파피루스에게 향했다. 식은땀이 샌즈의 뺨을 스쳤다.
"내, 내 사랑이…… 나, 나를 믿고 있어……! 그, 그러니까 무, 물러설 수 어, 없어!"
"원래부터 형편 없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샌즈!"
파피루스는 난폭하게 이를 갈았다. 더 이상은 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그는 문답무용, 노을빛으로 빛나는 뼈다귀들을 만들어냈다. 언덕 아래로 보이는 마을을 가릴 정도로 많은 양의 뼈다귀를.
"비, 비켜있어 내 사랑…… 너, 너를 다치게 하지는 않을 거야."
샌즈는 건틀렛을 들지 않은 손으로 소녀를 밀어냈다. 소녀는 싸우지 말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며 울었지만 샌즈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갔다올게. 샌즈는 짧게 작별을 고했다. 싸움은 그 직후에 시작되었다.
파피루스의 뼈다귀가 번개처럼 몰아쳤다. 샌즈는 그의 싸움 방식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영리하게 피할 정도로 머리가 좋지는 못했다. 그는 그의 형제를 향해서 똑바로 나아갔다. 수많은 뼈다귀들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어떤 것은 건틀렛으로 쳐냈고, 어떤것은 피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법으로 예리하게 벼려진 뼈다귀가 샌즈의 몸을 스칠 때 마다 옷 위로 붉은 얼룩이 번졌다.
그래도 샌즈는 웃었다.
뼈다귀가 샌즈의 정강이를 스쳤다. 이번에는 큰 상처였다. 나무 뒤에 숨은 소녀가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샌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붉은 궤적이 하얀 언덕 위를 가로질렀다. 뼈다귀가 그의 어깨에 박혔다. 그는 건틀렛을 쥔 손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샌즈는 계속 나아가면서 건틀렛으로 어깨에 박힌 뼈다귀를 움켜잡았다. 의식이 통째로 날아갈 정도의 격통이 그를 덮쳤다. 하지만 견뎌냈다. 뼈다귀를 뽑아내자 설원 위에 커다란 붉은색 꽃이 피었다.
그래도 샌즈는 웃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형!"
파피루스의 목소리가 분노로 이글거렸다. 바보 같은 형. 어리석은 형. 입속에서 몇 번이나 씹어삼킨 말들이 그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이제 더 이상은 싫다. 저딴 형은 꼴도 보기 싫어. 그냥 죽어 버려.
그것은 거대한 뼈다귀였다. 지하의 누구라도 올려다 보아야 할 정도로 커다란 뼈다귀. 그것이 파피루스의 손짓을 따라 하늘에 떠있었다. 그것은 가히 압도적인 풍경으로, 지하 최고의 전사 언다인조차 정면으로 받아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샌즈는 그것을 두 눈에 똑똑히 새겼다. 그는 웃었다. 그리고 나아간다. 붉은 궤적을 남기면서 나아간다.
순식간이었다. 운석처럼 날아드는 뼈다귀를 샌즈는 건틀렛으로 받아냈다. 아니, 받아내려 했다. 뼈다귀와 건틀렛이 맞닿는 그 순간 건틀렛은 산산이 부서졌다. 마법으로 만든 뼈다귀가 샌즈를 잔인하게 짓이겼다. 뼈다귀는 샌즈와 함께 바닥에 처박히고도 10 미터는 더 나아갔다. 파피루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뼈다귀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샌즈만이 남았다. 샌즈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백골인 온 몸에 금이 가고 피가 세어나왔다. 턱뼈의 왼쪽 부분이 통째로 날아갔다. 그의 안공은 텅 비어있었다. 손끝만이 조금씩 떨림으로서 그가 간신히 살아있음을 알렸다.
샌즈는 더 이상 웃지 못했다.
파피루스가 다가가자 인간 소녀가 울면서 뛰어나와 샌즈를 부둥켜 안았다. 그녀는 자신의 옷이 피범벅이 되어도 개의치 않았다. 연약하고 간사한 인간. 파피루스는 그녀를 경멸했다.
"인간. 이 쓸모없는 해골이 그렇게 소중한가? 그렇게 소중한데 다 죽어가는 이제서야 나왔나!"
그의 목소리가 소녀에게는 닿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샌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갓난아기처럼 울고있을 뿐이었다. 파피루스는 열이 머리 끝까지 뻗쳤다. 그는 소녀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모든 건 네 녀석 때문이야! 네 녀석 때문에 샌즈가 반역자가 되었고, 네 녀석 때문에 형이 죽었어! 그런데도 너는 그저 울고 있을 뿐인 거냐!"
소녀는 대답 없이 울었다. 파피루스의 외침은 공허한 울림이 되어 설원 너머로 사라졌다. 후, 한 숨을 쉰 파피루스는 이 모든 짓이 부질 없음을 깨닫고 주황색 뼈다귀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좋아하는 병신같은 해골이랑 저 세상에서 잘 살아라. 파피루스는 차갑게 말하고 뼈다귀를 움직였다.
뼈를 으깨는 소리가 설월에 울려퍼졌다. 파피루스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붉은색 기운을 머금은 뼈다귀가 바로 아래 있었다. 허. 파피루스는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붉은 뼈다귀는 자신의 등 뒤에서 가슴을 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그가 만든 뼈다귀는 소녀를 꿰뚫지 못한채 허공에서 사라졌다. 파피루스는 소녀의 멱살을 놓고 씨익 웃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건가…… 이제야 조금은…… 패기가 생겼잖아……."
헤헤. 쓰러져있던 샌즈가 힘없이 웃음을 흘렸다. 파피루스가 먼지가 되어 사라져간다. 흰색의 가루는 바람을 타고 하늘로 솟았다. 그가 매고 있던 스카프만이 바닥에 떨어졌다. 모든 일이 끝나자 소녀는 샌즈의 이름을 불렀다.
"내, 내 사랑…… 나, 나 어땠어……? 머, 멋있었어……?"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멋있긴 대체 뭐가! 그렇게 울부짖었다.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샌즈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 내 사랑…… 죽으면…… 아, 안 돼……. 바, 반드시…… 살아서…… 여기를…… 나, 나가……."
샌즈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다. 안돼, 안돼. 소녀가 아무리 울부짖어도 백골의 호흡은 약해지기만 했다. 이별은 예고하지 않는다. 샌즈의 눈동자가 흐려진다. 소녀의 울음을 자장가 삼아 그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아, 안녕히…… 내…… 사랑…… 프…… 리스크……."
스노우딘의 언덕 위에 슬픈 꽃이 피었다. 인간이 그 위에서 언제까지나 울었다.
그리고 리셋을 하게되고...
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