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름다운 날이다.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나고.

이런 아름다운 날에 자신이 묻혀있는 꽃밭 위에 둥둥 떠다니며 저 높은 구멍 위의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 보는 것은

나처럼 기억해 주는 이 몇명 안 남은 영혼에게는 그 무엇보다 좋을 수 없는 최고의 취미이다.

물론 이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취미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언제나 이 시간 쯤 되면 나를 만나러 오는 꽃이 한송이 있으니까.

불쑥.

그 멍청한 얼굴을 한 황금꽃은 오늘도 네다섯개 정도의 촉수에 물뿌리개들을 쥐고서는 땅 속에서 튀어나왔다.

*오늘도 왔냐.

그 꽃은 아무 말 없이 꽃밭을 둘러본다.

*넌 정말 달리 할 일 없는거야?

그 꽃은 말소리를 듣지 못한 듯 촉수 하나를 길게 뻗어 꽃밭 한켠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래. 자기 욕하는 말은 죽어도 듣기 싫다 이거지. 좋아. 그럼 대화 주제를 바꿔볼까.

나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보며 말을 이엇다.

*지상으로 올라간 그 꼬맹이와 멍청이들은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그 꽃은 이번에도 아무 반응이 없다. 그 대신 또 다른 촉수를 길게 뻗어 꽃밭의 또 다른 한켠에 물을 뿌려줄 뿐이다.

*넌 진심으로 네가 늙어 죽을 때까지 여기서 이러고 있을거야?

꽃은 텅 빈 물뿌리개 하나를 내려놓고서는 물뿌리개를 들고 있던 촉수로 햇볕에 닿지 않는 꽃 몇 송이를 꽃밭의 중심 쪽으로 부추겼다.

*... 뭐 꽃이 늙어 죽을 때까지 여기 있어 봤자 몇년이나 더 있을 수 있다고.

나는 최선을 다해 비아냥대는 투로 말했다.

여전히 꽃은 반응이 없다.

*... 대체 여기서 이러고 있는 이유가 뭔데? 이러다가 박음직한 암술 가진 꽃 하나 보이면 씨앗이나 몇 개 퍼트리려고?

나는 짜증이 가득 섞인 투로 말했다.

그러나 역시나 꽃은 아무 반응이 없었고, 그새 꽃밭에 물을 다 주었다.

이제 이 꽃은 또 다시 자신의 촉수들과 함께 땅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이다. 지하에 남아있는 꽃밭은 이곳만이 아니니까.

그러면 나는 또 하루종일 하늘이나 쳐다보면서 내일 이녀석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또 아까처럼 말을 걸 수 있다는 일련의 희망을 가지고선...

*... 아스리엘...

오늘도 결국 지금까지와 같다. 아스리엘은 나의 말을 듣지 못하고, 나는 다시 한번 바보같은 짓을 한 것이다. 상관 없다. 결국 아무도 이 모습을 보지도 듣지고 못할 것이니.

애초에 이 모든 일을 자초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 아스리... 

그 때 문득 꽃은 고개를 들고.그 꽃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하늘을 올려다 봤다.

저 커다란 구멍. 차라가 떨어졌던 구멍은 언제나, 그리고 그 구멍을 올려다 보는 누구에게나 탁 트인 시야를 제공했다.

오늘도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이네.

프리스크와 프리스크의 친구들은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 정말 좋은 날이야!

이제 서두르자. 지하에 남은 꽃밭은 아직도 많으니까.

언젠가 이 지하 모든 곳에 꽃밭이 생긴다면. 그 때는... 그 때는, 차라도 분명 좋아할꺼야. 언제나 마을의 꽃밭을 보고 싶다고 말했었으니까.

나는 촉수로 물뿌리개들을 챙겨 들고는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