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떠나보내고 플라위는 혼자 남았다. 자신을 죽이지 않은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사실 죽였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인간이 리셋을 하고 나면 플라위도 다시 살아날 테니까. 플라위는 얕은 한숨을 내쉬고 인간이 리셋하기를 기다렸다. 인간은 ‘해피엔딩’을 바라는 것 같으니 분명 다시 돌아올 거다.

  진작 플라위가 먹어놨던 인간의 영혼 여섯 개는 이미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잠깐이었지만 세상의 신이 된 기분이 제법 끝내줬는데 말이지. 플라위는 히히 웃으며 줄기를 뒤틀어보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팔다리가 없는 몸은 아직도 익숙해지려면 멀었다. 게다가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몸은.


  *!?


  플라위는 순간 넋을 잃었다. 자신의 뿌리 부분이 갑자기 길어져서 줄기를, 그러니까 몸을 단단히 감아 오르고 있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플라위는 땅 속으로 피하려고 했지만 촉수가 된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뭐, 뭐야!


  나뭇가지처럼 마구 갈라져 수를 늘린 촉수는 마치 뱀처럼 플라위의 목까지 감고 올라왔다. 플라위는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스고어도 없는 정원은 그저 조용하고 어두울 뿐이었다. 이리저리 몸을 뒤틀어도 의지 없는 노란 꽃들의 향기만 알싸하게 코를 찌를 뿐 플라위를 도와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 인간의 영혼? 네놈들 짓이냐!?


  아무리 눈을 굴려도 눈에 보이는 건 없었지만 플라위는 외쳤다. 그게 아니면 짚이는 데가 없었다. 플라위는 더 이상 마구 고개를 돌리는 것도 할 수 없게 됐다. 이중 삼중으로 목을 감은 촉수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이대로 촉수가 조금만 더 힘을 주면 그대로 목이 끊어져버릴 것이다. 플라위는 반사적으로 ‘죽기 싫다’는 생각을 해버렸지만 이 세계는 변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인간이 벌써 이 세계에 돌아온 게 틀림없었다. 이 상태에서 플라위가 죽으면 모르긴 몰라도 인간이 ‘다시’ 엔딩을 볼 때까지 플라위는 죽어있을...


  *지, 큭, 진정하라고, 친구. 응?


  플라위는 어설프게 웃었다. 지금의 상황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고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인간이 돌아온 이상 지금 플라위가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건 불가능했다. 죽으면 끝이라는 절박함이 플라위를 움직이게 했다. 다행히 플라위의 말이 그 촉수에게도 통한 것 같았다. 플라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떻게든 설득시키려고 입을 열었지만, 그 틈을 노리기라도 한 듯 촉수 하나가 플라위의 입 안에 쑥 들어가버렸다.


  *커... 흡...


  눈물이 찔끔 새어나왔다. 급하게 도리질을 쳐봐도 촉수는 꿈적하지 않았고, 플라위는 목에 가득 찬 이물감에 억지로 구역질까지 해봤지만 그 울렁이는 타이밍에 맞춰 촉수는 더더욱 깊숙이 파고들기만 했다.

  촉수는 플라위의 목 안에서 꿀럭거리며 끈적한 뭔가를 쏟아냈다. 질척한 액체가 뱃속부터 가득 채우는 느낌이 끔찍했다. 플라위는 어떻게든 제 몸의 일부인 촉수를 조종하려고 온 힘을 쏟았지만 곧 질식이라도 할 것처럼 꺼무룩해졌다. 그러나 다행히 촉수는 플라위의 목숨까지 빼앗을 생각은 없는 듯했다.

  막혀 있던 목구멍에 끈적한 촉수가 빠져나오며 뽕 소리가 났다. 촉수 끝에 맺힌 몽글몽글한 액체가 플라위의 입을 타고 주륵 흘러내렸다. 플라위의 기침과 헛구역질에 촉수의 투명한 액체가 섞여 나왔다. 플라위는 아직 눈물이 맺힌 눈으로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내,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그러니까...


  그러나 촉수는 플라위가 숨을 채 고를 시간도 안 주고 다시 입 안을 파고들었다. 플라위는 몸을 감싼 촉수에게서라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촉수는 플라위의 줄기는 물론이고 꽃잎까지 빡빡하게 감아 플라위를 고정시키고 있었다.

  목구멍에 들어온 촉수가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플라위가 의식하지 않아도 촉수의 움직임에 맞춰 욱욱 소리가 터져 나왔다. 플라위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목구멍에 이상한 액체가 들어차서 입 밖까지 넘쳐흘렀다. 이제 노란 꽃의 향기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차라리 이 괴로운 시간이 어서 끝나버렸으면. 누구라도, 누구라도 제발...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야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