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과 종이가 마찰하는 소리는 역겹기 그지없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을 빨아먹고 사는 괴물의 포효다. 괴물은 간사하다. 평소에는 결코 희망을 보여주지 않다가도 마지막의 마지막에, 정말로 포기하기 직전에 한 줄기 빛을 보여준다. 그 빛을 따라서 다시 나아가기 시작하면, 괴물은 나의 고통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 처럼 다시 괴롭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괴물도 작았다. 조금만 노력하면 간단히 이길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단 말이다. 하지만 내가 괴물을 물리치면 물리칠 수록 그것은 사라지기는 커녕 그 몸집을 불렸다. 이제는 지긋지긋했다. 나는 평생동안 같은 괴물과 싸워왔지만 그 끝은 보이질 않았다. 괴물을 물리칠 궁리를 할 수록 그 방법은 사라져 가는 것만 같았다.

씨발! 나는 이번에도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연필을 내던졌다. 책상 위에 놓인 원고지를 구겨 있는 힘껏 던졌다. 등받이에 난폭하게 몸을 기대지 낡아빠진 의자가 비명을 질렀다. 발버둥을치고 주변에 보이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집어던졌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내 앞을 가로막은 괴물은 코웃음도 치지 않는다. 방안이 완전히 엉망진창이 된 다음에야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책상 앞에 앉았다. 씨발. 씨발좆같네. 한 번 더 욕을 내뱉은 나는 서랍에서 새로운 원고지를 꺼낸다. 집어던저 부러진 연필을 깎았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에봇산의 자하 세계를 리셋했다. 언젠가는 모두가 행복한 엔딩을 찾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