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와 키스해볼래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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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은 절망에 울부짖었다. 


그- 그- 극.

그러나 쇠파이프가 끌리는 소리는 여전히 크게 메아리친다. 











복도가 어둡다. 빛 한줄기조차 없는 복도는 유난히 쇠파이프 끌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일정하게 쇠 끌리는 소리가 어둠을 채운다. 

넌 이리저리 부딫혀가며 방향을 바꿨다. 길은 몰랐지만, 어둠이 무서울 나이는 이미 지났다. 


부산스러운 발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벽을 타고 지척에서 들려왔다. 너는 잘린 단면이 움찔거리는 볼을 가까스로 끌어당겨 미소를 지어보였다. 

떠엉, 하고 벽에 쇠파이프를 휘둘러 둔탁한 소리를 크게 낸다. 이건 그냥 장난이었다. 곧 네가 찾아갈 것이라는 걸 알리는 장난. 

잡음이 뚝 끊겼다. 


네가 폭팔시킨 코어탓에 전력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된 지하의 공기는 어둡고, 차가웠다. 너는 한참을 걷고 나서야 복도의 저편으로 희미하게 일렁이는 불빛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간 그것은 하얀 양초였다. 절반쯤 태워진 짧다란 양초기둥으로 녹아내린 촛농이 흘러내려 무너지고 있었다. 

너는 심지를 거의 다 태워 빛을 잃어가고 있는 촛불을 보다가, 네 머리카락을 한웅큼 뽑아들었다. 뽑히고 끊긴 연갈색 머리카락이 촛불의 주황색 빛에 이지러져 제 색을 잃는다. 

넌 그걸 녹아 형체를 잃고있는 양초기둥에 심지 대신으로 꽂아넣었다. 심지를 얻은 촛불이 흐릿해져가던 빛을 다시 키운다. 어둠은 무섭지 않았지만, 불편하기는 했다. 


너는 촛농이 흘러내리는 양초를 원래 있던 접시에서 손으로 집어들었다. 뜨거운 촛농이 네 손바닥에 들러붙어서, 너는 더 이상 초를 손에서 놓을 수 없다. 물론 초와 같이 네 손바닥 가죽을 뜯어내면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만. 


넌 밝아진 촛불의 빛으로 이곳을 둘러보았다. 제각각 다른 발자국이 수두룩하게 찍혀있다. 꽤 많은 인원이 방금까지만해도 여기 모여있었다는 뜻이다. 싸늘했던 복도의 공기는 어디갔냐는 듯, 이곳은 후덥지근했다. 아마 핫랜드의 괴물들이 내뿜는 더운 열과, 워터폴의 괴물들이 흘리는 물로 인해 이렇게 된 것이리라. 

겁도 많은 과학자 주제에 워터폴까지 가서 괴물들을 모아왔다니. 너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박수라도 치고 싶었지만, 손에 들린 촛불 때문에 그건 불가능했다. 

너는 그냥 다른 손에 쥔 쇠파이프로 바닥을 내리쳤다. 


따앙!


이번엔 좀 더 선명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금이 갔다. 금에 갈라진 괴물들의 발자국이 그들의 미래를 말해주는 듯해서, 너는 한 번 더 내리치기 위해 팔을 들어올렸다. 



* 이런, 이런. 



그러나 특유의 기계음이 네 손을 가로막았다. 작게 일어난 바람에 촛불이 일렁인다. 너는 바닥을 향하고있던 시선을 앞으로 올렸다. 빨갛고 노란 빛이 반짝인다.



* 당신 집이 아니라고 해서 막 부숴도 된다는 건 아니죠. 

* 부모님이 그런 기본적인 예의도 가르쳐주지 않았나봐요? 



기계 웃음소리가 들렸다. 너는 빨간색으로 M, 이라는 모양을 만든 네모난 기계덩어리를 보다가, 아무 말 없이 들었던 팔을 내렸다. 쇠파이프는 바닥을 다시 내리치는 대신, 네 손에 꾹 잡혀 전투를 대비했다. 



* 놀라지도 않는군요! 

* 이 화려한 스타의 부활을 말이에요. 


* ...

* 그래요, 달갑지 않은 표정인 것도 무리는 아니죠. 


* 절 죽인 건 당신이니까요.


* 뭐... 아시다싶이, 로봇은 죽지 않는답니다. 

* 백업 데이터만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만들 수 있죠. 

* 저 같은 스타를 잃는 건 지하세계의 큰 손실이니까요. 



너는 얼굴을 구겼다. 



* 이런, 표정이 영 좋지 않군요. 

* 당신도 제 표정을 볼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 그럼 당신도 제 표정이 영 좋지 않다는 걸 알았겠죠. 


* 그래요. 난 정말 당신을 이해하질 못하겠어요. 

* 더 이상 아무도 당신의 눈에 띄지 않으려 하는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거죠?



너는 대꾸하지 않고 파이프를 치켜들었다. 쇠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섬뜩하다. 

빨갛고 노란 불빛이 번뜩이며 네 눈을 아프게했다. 한쪽만 남은 눈마저 반쯤 감겨 뜬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네 눈을, 로봇이 카메라로 응시한다. 



* 흐음... 

* (로봇기침)


* 뭐, 당신이 여전히 제 팬클럽에 가입할 생각이 없다는 건 알겠군요. 



팟.


팟.


팟.



주변이 익숙하게 색채를 잃어가고, 네 붉은 영혼이 앞에 나타났다. 방금 상처에서 짜낸 피를 뿌린 듯 한없이 붉은 영혼은 아름답기 짝이없다. 

너는 치켜든 쇠파이프를 휘두를 준비를 했다. 어쨌거나 너는 선공이다. 


앞에서는 이제 하얗고 까만 불빛을 번쩍이는 기계 연예인 나부랭이가 손을 바쁘게 흔들며 마이크에 대고 기계음으로 만들어진 웃음소리를 내고있었다. 

너는 저 네모나고 형편없어 보이는 몸체가 얼마나 단단한지 충분히 기억하고 있었다. 언젠가 친구였던 왕실 과학자이자 저 로봇의 개발자가 알려준 것처럼, 좀 더 공격이 강해질지언정 부수기 쉬운 EX 상태로 만드는 것이 너에게 더 유리했다. 

그러나 지금 너에겐 저 로봇의 뒤를 볼 방법이 없었고, 뒤의 스위치가 과연 있는지, 있다 해도 누르면 EX 상태로 바뀌는지는 확실치 않다. 

너는 잠시 고민했다. 쇠파이프는 충분히 단단했지만, 저 쇳덩이를 후려치기엔 세상 그 무엇도 적합해보이지 않는다. 

너는 휘두르려 들었던 파이프를 잠시 내리고, 그 기계 몸체를 자세히 살폈다. 




메타톤 10ATK 999DEF


저 로봇은 단단해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그렇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무언가 이상하다.




그랬다. 네모난 것은 저번과 다를바 없었으나 어쩐지 이음매가 느슨해보였다. 왔다갔다거리는 바퀴에서 끼익끼익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불빛도 시원찮았다. 

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턴이 넘어가는 바람에 전격에 팔을 데였다. 손가락 끝부터 어깨까지 찌릿한 통증이 팔을 온통 휘감는다. 고작 하얀 전격 몇 개를 피하지 못한 네 모습에 기계는 로봇 비웃음을 날렸다. 


빨갛게 익어버린 살에 네 HP는 닳았을지언정 영혼은 안전하다. 아무리 너의 의지라고 해도 영혼에 공격이 직격한다면 어찌할 수는 없다. 그런 공격을 견뎌낸다는 건 세계의 의지가 함께하던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넌 네 영혼을 가렸던 팔을 내리고, 다시 쇠파이프를 치켜올렸다. 꾹 잡아 힘이 들어간 손에서 피가 흐른다. 턴은 다시 네게로 돌아왔다. 

너는 이번 공격으로 확신했다. 저 로봇은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네가 살펴보기로 턴을 낭비한 절호의 기회에 고작 전격 몇 개를 날렸다. 피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은 공격을. 


네가 폭팔시킨 코어 때문에 괴물들은 전력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로봇이라니. 작동 가능할 리가 없다. 

물론 이곳은 실험실이고, 예비 동력이나 발전기는 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늘하고 불을 켜지 않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복도는, 그것으로 만들어낸 전기를 다른 어딘가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게 저 로봇이다. 너는 비웃음을 흘렸다. 

아마 네가 화장실의 벽을 부쉈을 때부터 그들은 다른 곳으로 도망치고 있었을 것이고, 그 시간을 벌기 위해 이 로봇에게 전기를 때려부은 것이다. 


이번에도 고작 시간벌기. 너는 작은 한숨으로 저 로봇의 기구한 운명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 오오오, 달링! 

* 뭐하는 거죠? 

* 그만둘 마음이라도 들었나요?



너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희망고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는 로봇에게 살 생각은 버리라고 말했다. 



* 아 하 하. 

* 그것 참. 

* 저번에도 말했나요? 참 건방지군요. 



글쎄. 너는 번뜩였다가도 희미해지는 노랗고 빨간 불빛을 보았다. 

네가 굳이 손 아프게 파이프를 휘두르지 않아도 이 로봇은 멈출 것이다. 부족한 전기를 끌어모아 쏟아부어봤자 부족하다는 건 명백하다. 네가 후려친다면 조금 더 일찍, 그리고 폭팔하는 것이 된다는 것만이 달라질 뿐. 

로봇의 바퀴에서 이젠 여과없이 끽끽대는 기분나쁜 소리가 울려퍼진다. 



* 자, 건방진 자기의 턴이라구요.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

* 흠, 뭐, 필살기 같은 거라도 준비하나요?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로봇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한다. 



* 당신... 

* 눈치챘군요. 



너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로봇이 좌우로 바쁘게 움직이던 것을 멈추었다. 



* 하긴, 그래요. 당신이 부순 육체가 남아있을 리가 없죠. 

* 코어도 부쉈으니, 세상에. 전기로 움직이는 저에겐 너무 가혹하군요! 

* 육체야 다시 만들었지만, 역시 당신 때문에 부품이 부족해서 말이에요... 


* 그렇지만 충분히 튼튼하답니다. 

* 시간은 벌 수 있을 정도로요. 



너는 시간을 번다는 로봇의 말에 느른하게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로봇의 빛이 점차 희미해진다. 

로봇이 네 비웃음을 보고 화를 낼 법도 하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단지 절망적으로 빛을 깜빡거렸을 뿐이다. 



* ...

* 제가 멈추면, 당신은 절 지나쳐 그들을 죽이러 가겠죠. 

* 저는 곧 멈출 테고요. 


* 제가 굳이 망가진 몸까지 고쳐서 당신은 막으려 한 이유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지만... 

* 오, 제발요, 달링. 


* 알피스가 내게 말해줬어요. 

* 다 소용 없는 짓이라고, 모두에게 알려줬죠. 


* 모두가 알아버렸답니다, 자기. 



로봇은 마이크를 든 팔을 내렸다. 한없이 밀려오는 절망이 침묵을 덮고 그것을 익사시킨다. 그러나 기계 목소리는 변함없이 담담하다. 



* 알피스는 비밀장소는 있어도 대피소는 없었어요.

* 게다가 그렇게나 많은 괴물들이라니! 대피소가 따로 있었더라도 다 들여보낼 수 없었겠죠. 

*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모두를 대피시킨거고요. 


* 네, 그래요. 

* 진실의 연구소. 


* 다른 시간선에서의 자기가 와본 곳인가요? 



그 과학자 나부랭이가 뭐라고 지껄인거야?



* 하 하 하. 

* 와봤겠죠...? 

* 그야 자기는 모두와 친구였었으니까요. 



기계음의 잡음이 심해진다. 



* 제발, 달링. 

* 왜 그런거예요?


* 유일하게 숨겨왔던 비밀을 들키게 된 알피스는 더 이상 숨길 게 없었어요. 

* 모두에게 말해줬죠. 


* 자기가 그동안 했던 실험부터, 당신의 의지에 대해서도. 

* 그 무수한 시간선들... 당신이 되감았던 타임라인...


* 오, 달링. 

* 연구실에 남았던 마지막 의지 추출물로 우리는 저번 시간선을 볼 수 있었어요. 


* ...

* 놀랍게도, 당신과 내가 친구였죠. 

* 당신은 모든 괴물들과 친구였어요. 


* 왜... 

* 왜 다시 되돌렸죠? 

* 왜 그걸 없애고 다시 시작했나요?

* 왜 모두를 죽이는거죠? 

* 친구였잖아요. 



로봇 눈물이 떨어지고 있다. 


잠깐, 로봇은 눈물샘이 없잖아. 



* 달링, 제발. 

* 당신이 왜 이러는지는 몰라요. 

* 아마 아무도 모르겠죠. 


* 제가 여기에서 당신을 죽인다고 해도 당신은 의지로 다시 되돌아갈 걸 알고 있어요. 

* 그리고 결국엔 저를 죽이겠죠. 


* 전 그냥 막고 싶은거예요. 

* 당신이 후회할 일을 말이죠. 


* 저들이 마지막 남은 괴물들이에요. 

* 모두 죽이고 나면, 뭐, 이제 이 지하엔 정말 달링밖에 남지 않겠죠. 


* 후회할거예요, 달링. 

* 혼자 있는 건 그리 재미있지 않거든요... 

* 경험자의 충고라구요. 



로봇의 빛은 희미해지고 있다. 



* 모두가... 

* 이젠 모두가 당신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걸 알아요... 


* 있잖아요, 달링.

* 당신이 제 충고를 귓등으로도 안 들은 걸 알아요. 

* 당신은 제가 멈추면, 결국 그들을 찾아내서 죽이겠죠. 


* 그렇지만... 

* 그렇지만 말이에요, 자기... 

* 만약 모두를 죽이고, 아무도 없는 지하에서 조금 외로워진다면... 

* 더 이상 재미 없어진다면... 


* 그땐 리셋이라도 해서, 다시 모두와 친구가 되어보는 건 어때요? 

* 뭐, 누가 아나요. 

* 다시 친구가 되는 게 재미있을지. 



로봇의 빛이 불안하게 깜빡이고 있다. 



* 오, 달링! 

* 난 지금 자기의 동정심에 빌고 있는 거예요. 

* 그렇게 해서라도 살리고 싶은 이들이거든요. 



너는 기계 덩어리를 비웃었다. 그건 이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빛은 너무 희미하게 깜빡거려서, 더 이상 똑바로 보아도 눈이 아프지 않다. 

기계음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 ...

* 그래요, 결- ㄱ... ㅜ... ㄱ...



기계는 작동을 멈췄다. 

이젠 평범한 쇳덩어리이다. 












4,361자짜리 글을 또 던진다

컴퓨터 죽어서 폰으로 하는데 죽을맛이네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