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빛이 방을 가득 채웠다. 아스고어의 등 뒤로 황혼이 비쳐 내려왔다. 아스고어가 인간을 내려다보았다. 줄무늬 옷을 입은, 남자인지도 여자인지도 모를 작은 인간 아이. 의지로 가득 찬 붉은 영혼을 지긋이 바라보던 아스고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인간이여.



 아스고어는 두려웠다. 다른 몬스터들의 기대를 받는 것이 두려웠다. 무고한 인간을 죽이고 그 영혼을 취하는 것이 두려웠다. 일곱 인간의 영혼을 모으는 것이 두려웠다. 장벽을 깨부수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밖으로 나와 인간과 전쟁하는 것이 두려웠다. 복수심과 분노는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하게 변한 지 오래다. 아스고어는,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스고어는 보스 몬스터였다. 지하세계를 구원할 유일한 희망이었다. 끝끝내 일곱 인간의 영혼을 모아 모든 몬스터들의 숙원을 이루어줄 위대한 군주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포기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수가 있을까.



 * 만나서 반가웠네.



 아스고어가 눈을 감았다. 희미하게 파이 냄새가 났다. 버터스카치 파이. 아스고어의 마음 속에 누군가가 떠올랐다.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의 머리에 꽃 왕관을 씌워주던 여자였다. 아이를 잃고 서럽게 울부짖던 여자였다.



 토리엘.



 아스고어가 토리엘을 떠올렸다. 자신을 보며 웃어주던 그녀를 떠올렸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기뻐하던 그녀를 떠올렸다. 아들의 가루를 꽃밭에 뿌리며 서럽게 울어제끼던 그녀를 떠올렸다. 첫번째 인간을 죽였을 때 자신을 향해 분노하던 그녀를 떠올렸다. 두번째 인간을 죽였을 때 경멸의 눈초리로 자신을 쳐다보던 그녀를 떠올렸다. 자신의 행동을 끔찍하게 여기며 떠나던 그녀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토리엘은 이제 그의 곁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스고어가 고개를 숙였다.



 * 잘 가게.




노말엔딩 보고 함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