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머샌이 술을 마시기만 하는 글

(http://gall.dcinside.com/undertale/321373)

더 써오래서 더 써옴




  작지만 정갈하던 주점에 먼지가 날린다. 손은 혼자다.


  자, 모두의 안녕을 위하여 건배!


  술잔을 위로 들어올려도 화답은 이어지지 않는다. 받아줄 이들은 모두 안녕하지 못하니 별 수 없다. 내 탓이지. 잠깐 낮게 웃다 잔에 든 술을 천천히 넘긴다. 복잡한 향으로 먼저 끼쳐 오다가 앞니에서 구강을 지나 경추 안쪽까지 알싸하게 훑어 내린다. 다 넘기고도 홧홧한 열기가 속에 머문다.


  이 집 주인 성미를 닮았다. 취기 오른 손이 제아무리 객쩍은 소릴 주절거리든 흘리지도 내치지도 않고 묵묵히 살라내어 앞사람을 덥혀 주고는 했다. 꺼뜨리기 아쉬운 불이었다. 장례를 치러 볼까나. 본래는 고인의 유해를 생전 아끼던 물건에 뿌려줘야겠지만 둘이 하나가 되기만 한다면야 순서는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잔에 남은 몇 방울을 미동 없는 옷가지에 떨어뜨리자, 단정하던 흰 바탕에 주홍 얼룩 스미다가 잿가루와 엉겨붙는다. 비어 버린 잔에 다시 술을 따른다. 


  한 잔은 멋지게 타오르던 너를 위하여.


  아쉬운 길 조금 더 성의 있게 배웅하지 못할 것도 없으나, 오늘 하루 보낸 벗이 한둘이 아니다. 시시한 말장난에 가게가 떠나가라 웃어주던 친구들, 근사한 직함을 갖고도 만날 농땡이나 부리던 한량들, 간혹 아무 것도 열심히 할 수 없게 된 생을 그저 술잔에 흘려 보내려던 바보 천치 놈들, 하나같이 눈익은 면면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온 살림을 짊어지고 핫랜드로 떠나간들 미친놈 손에 가루 될 운명은 다름이 없다. 기왕 떠날 길 조금은 더 빨리, 더 편히 갔기를.


  한 잔은 나를 믿던 다른 모든 친구들을 위하여.


  기왕 떠날 길, 조금은 더 빨리, 더 편히 갔기를…… 팝……. 너도 한 잔 할래? 허? 맛있기만 한데? 인생의 쓴맛 말이야! 알아. 그래서 너한테는 달고 부드러운 것들만 주고 싶었어. 아니야. 맛이 다가 아냐. 좀더 복잡해. 냄새도 맡아 보고 피부로 느껴 봐. 우린 피부가 없지만. 조금 혼란스러워도 좋더라. 삼키든 뱉든 몇 모금이라도 나눠줄 걸 그랬어. ……그게 인간이래도? 헤, 술 이야기가 아니야. 넌 이제 몸도 없잖아. 인간한테 죽는 것보단 덜 아팠을걸. 나는 인간을 잘 알아. 어떤 사람들은 그런 노력을 안 해. 그리고 형도 마찬가지야. 아. 그 생각은 못 했네. 고마워, 팝. 노력할게. 이거만 마시고.


  한 잔은 하나뿐인 형에게 죽은 멋진 동생을 위하여.


  가야 하는데 엉치뼈가 무겁다. 쓴 술이, 쓴 소리가 기껍다. EXP 얻어야 하는데. LOVE 올려야 하는데. 인간 죽여야 하는데. 죽이면 살아나니까 또 죽여야 하는데. 너를 죽인 것처럼. 그러다 시간선이 또 뒤집히면 처음부터 또 죽여야지. 걔가 죽이잖아. 그러네. 걔가 먼저 죽였잖아. 나는 세상을 멸망시키진 않잖아. 죽이고 죽이다 보면 인간이 시간선 돌리기를 포기하고 돌아갈 날이 오긴 올 거다. 정말? 나는 포기 못해. 태생부터 불공평했지만 피땀에 먼지를 쌓아 올리면서 지금 여기 이른 것을. 눈물? 소용 없더라. 헤, 뼈는…… 아니야! 달라. 걔가 죽이잖아. 그러네. 걔가 먼저…… 팝? 어디 갔어?


  한 잔은 이 짓을 반복해야 하는 나를 위하여.


  그저 운동상태를 그치기에 부족함이 아닌가. 취하고도 잔을 놓지 못하는 심사와 같다. 더 이상 향기로운 줄을 모르는데, 머리가 돌아 버린 게 분명한데, 쓰고 떫고 비린 것을 기어이 더 삼킬 뿐이다. 병이 비지 않으면 제 속이 빌 때까지.


  마지막 한 잔은 이제 죽음 아닌 죽음을 맞이할 인간을 위하여.


  작지만 정갈하던 주점에 먼지가 날린다. 손은 늘 혼자였다.











손02

「명사」

「1」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

「2」여관이나 음식점 따위의 영업하는 장소에 찾아온 사람.

「3」지나가다가 잠시 들른 사람.

「4」=손님마마(‘천연두’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손03

「명사」『민속』

날짜에 따라 방향을 달리하여 따라다니면서 사람의 일을 방해한다는 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