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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의 아이는 초소에 혼자 남아 있었다. 그녀의 보호자인 키 작은 백골이 그를 찾아온 동생과 함께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영리한 아이는 그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도는 불안감을 잠재우기란 쉽지 않았다. 드넓은 설원의 초소에서 5살 어린애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프리스크는 바람이 들지 않는 구석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모닥불이 얕은 바람에 당장이라도 꺼질듯이 흔들렸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모닥불이 꺼지고, 완전히 식을 때 까지도 샌즈는 돌아오지 않았다. 점점 더 살을 애는 듯한 한기가 프리스크를 좀 먹고 있었다. 프리스크는 이곳이 어딘지 몰랐다. 춥고 무서웠다. 그녀의 눈가에 자그마한 물방울이 맺히더니 곧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도, 괴물도 없는 초소에서 아이는 앙앙 울었다.


 "어…… 괜찮니?" 우느라 정신이 없는 프리스크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았지만 눈물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지르고 나서야 비로소 상대를 볼 수 있었다. 우느라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상대는 어느새 초소 안쪽까지 들어와 있었다.


 아이는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첫인상과는 많이 달랐지만 그녀가 분명했다. 자신이 영혼을 나누어준 인간. 바로 그 여자였다. 그녀는 두꺼운 옷을 잔뜩 껴입고, 목도리는 코끝까지 둘둘 감은 채 가지고 온 지팡이 하나에 몸을 기댔다. 어딘가 불편한 것인지 그녀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처럼 휘청거렸고 두 눈은 반 쯤 감겨서 꿈나라와 현실을 오락가락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애당초 그녀는 지금 일어나서 돌아다닐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제 겨우 영혼을 받았을 뿐이었다.


 "어…… 그러니까, 나는 토리엘 아주머니한테 부탁을 받고 왔는데…."


 토리엘이라면 분명 그 염소 아줌마라고 프리스크는 생각했다. 여자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어깨에 맨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외투를 꺼냈다. 프리스크에게 딱 맞아 보이는 작은 사이즈의 귀여운 외투였다. 그녀는 그것을 프리스크에게 내밀었다.


 "이거… 토리엘 아주머니가 갖다 주라고 해서… 그런데 분명 키 작은 해골도 같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해골빠가지…." 샌즈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프리스크의 눈가에 다시 물기가 서렸다. "어… 왜, 왜 우는거야?" 당황한 여자의 몸이 더 크게 흔들렸다. "해골빠가지가 안 와!" 프리스크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울고 있었구나, 여자는 나름대로 납득하고선 프리스크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더 이상 서있을 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초소벽에 등을 기대고 힘없이 몸을 늘어뜨렸다.


 "어…… 그 해골은 어디 갔는데?"


 대답은 없었다. 하긴, 알고 있었으면 이렇게 울고 있지도 않았겠지. 그녀는 아이의 어깨에 내밀었던 외투를 얹어주고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런 일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투였다. 그녀는 아이를 달래는 방법을 몰랐다. 애당초 그녀 자신도 이게 어찌된 영문이지 몰라서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온몸은 나른했고, 머리는 지끈지끈 아픈데다 눈꺼풀은 참을 수 없이 무거웠다.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그럼에도 그녀가 여기까지 온 것은 그녀만이 할 수 있다는 토리엘의 다급한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는 기억이 없었다. 자신이 어째서 잠들게 되었는지, 잠들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 잠든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자신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 하는 것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부탁을 받았으니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토리엘은 옷만 가져다 주면 된다고 했지만, 이렇게 울고있는 어린애를 두고 돌아간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생각했다. 단 하나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이것만큼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차라. 자신의 이름. 뇌리에 새겨진 자기자신의 증명. 그녀가 가진 것이라고는 이 이름 밖에 없었다. 이름을 생각할 때면 언제나 가슴 한 편이 답답하게 조여왔다. 어째서 그런 것인지,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조차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아이의 오열도 서서히 그치고, 나른한 몸을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쉰 것을 느낀 차라는 지팡이에 의지해서 천천히 일어섰다. 몸을 완전히 일으키자 심한 현기증이 그녀를 덮쳤다. 몸이 크게 흔들려 지팡이가 없었으면 넘어질 뻔 했다. 이젠 정말 한계다. 빨리 폐허로 돌아가 자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나는 갈테니까…… 몸 조심해?" 차라는 짧게 작별인사를 하고 초소를 나섰다.


 하지만 무언가가 그녀를 붙잡았다. 프리스크가 그녀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가지마." 아이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곤란한 부탁이었다. 정말이지, 다들 왜 이렇게 자기 멋대로인 걸까. 자신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주변 사람들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차라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이를 동정한 것 보다는 이런 몸 상태로 아이를 떼어놓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프리스크는 드디어 처음으로 헤헤, 하고 차라에게 웃어보였다. 차라는 다시 초소벽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가방에서 전화가 울린 것은 그 직후였다. 토리엘이 혹시 모르니 가지고 가라고 한 물건이었다. "잠깐도 쉬질 못 하게 하네…" 짧게 불만을 토한 차라는 가방을 뒤져 구형 휴대전화를 꺼냈다.


 "여… 여보세요?"

 [거기 꼬맹이 있지?]

 "꼬… 맹이요?"

 [인간 꼬맹이 말이야.]


 상대는 그렇게 말하고는 "하, 이러고 있을 시간 없는데." 하고 중얼거리더니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이봐 인간. 지금, 당장, 거기서 꼬맹이를 데리고 도망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