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편 : http://gall.dcinside.com/undertale/302457

스노우딘편 #1 : http://gall.dcinside.com/undertale/317459



#2


 스노우딘의 설원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설원은 눈이 내리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새하얀 입김이 함박눈 사이로 녹아들었다. 여자는 입고 있던 옷을 더욱 꽁꽁 동여매었다. 그녀는 몇 겹이나 두꺼운 옷과 외투를 껴입고, 어깨에는 자신에게 맞지않게 커다란 크로스 백을, 한 손에는 단촐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설원 위를 나아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겨웠다. 눈꺼풀은 당장에라도 감길 것 처럼 무거워 보였고, 몸은 나아갈 때마다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조금 전에 폐허에서 막 나온 참이었다. 이렇게나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이끌고 길을 가고 있었지만 그녀 자신도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긴 잠에서 깨어난 그녀에게는 과거의 기억이 없었다. 자신이 잠들기 전에는 무엇을 했으며, 어째서 잠들었고, 또 잠든 동안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단 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바로 자신의 이름이었다. 차라. 뇌리에 새겨진 자기자신의 증명.


 하지만 자신의 이름 같은 건 지금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커다란 염소 괴물이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한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괴물은 막무가네였다. 그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막 정신을 차린 환자가 설원을 횡단하는 일이 정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일까. 아니면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이었을까. 그녀로서는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폐허를 나온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염소 괴물이 말했던 엉성한 나무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중간에 몇 번이나 다리가 아파서 포기하고 싶었는지 몰랐다. 염소 괴물이 걸어준 몸이 따뜻해지는 마법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염소 괴물의 말이 맞다면 조금 더 가서 초소가 보일 것이다. 그곳은 그녀의 목적지이기도 했다. 거기까지 가면 일단은 쉴 수 있겠지. 차라는 거기에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을 움직였다.


 나무문을 지나자 마침내 초소가 보였다. 작은 노점상을 비워놓은 것 같이 생긴 초소에서 옅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누가 모닥불이라도 피워 놓은 것일까? 하지만 초소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염소 괴물의 말에 따르면 분명 이 초소에 자신과 같은 인간의 어린 아이와 키 작은 백골이 있었어야 했다.


 "어…… 누구 없어요?"


 차라는 혹시나 싶어서 불러 보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하긴, 아무리 키가 작다고 해도 인기척까지 없앨 수는 없는 법이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더니 이게 뭐람, 그녀는 작게 불평하고 초소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확실히 뭔가를 태운 흔적이 남아서 잔불과 연기를 남기고 잇었다. 모닥불만큼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불평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는 녹초가 된 몸을 초소 벽에 기댔다.


 그렇게 앉고 나서야 그녀는 초소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초소 안의 탁상 아래쪽에 있어서 바로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차라는 이 아이가 바로 염소 괴물이 말했던 인간의 아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이는 자고있는 것 같았다. 울다가 지쳐 잠든 것인지 얼굴이 엉망진창인 채로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어? 염소 아줌마네 언니다." 그렇게 깊게 잠든 것은 아니었는지 아이는 금방 깨어나서는 차라의 얼굴을 보더니 배시시 웃었다. 차라가 자신을 아냐고 묻자 아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염소 아줌마가 언니 도와달라고 했어. 그래서 도와줬어."

 "네가… 나를 도와줘?"


 아이는 서툴지만 성실하게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설명했다. 자신이 자고 있었던 일, 그것을 일어날 수 있도록 염소 괴물이 도와달라고 부탁한 일, 그래서 자신의 영혼을 나누어 준 일까지. 머릿속에 완벽하게 상황이 정리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대강의 과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일단 고맙다고 말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실망스럽기도 했다.


 "아, 맞다. 어… 이거, 갖다 주라고 했거든."


 차라는 가방에서 아이의 몸에 딱 맞아 보이는 외투를 꺼냈다. 염소 괴물의 부탁은 이것이 전부였다. 아이에게 외투를 가져다 주는 것. 이것으로 그녀만이 할 수 있다던 부탁은 끝이 났다. 아이는 외투를 입어보더니 "따뜻해!" 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차라는 형식적인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도저히 진심으로 웃어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지금부터 폐허까지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질듯 했다. 일단은 쉬자. 다리와 머리가 뜨거워서 당장에라도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언니 이름은 뭐야?"

 "어… 내 이름?"


 말해도 되는 걸까. 기억을 잃은 그녀는 자신의 이름마저 잃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물론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 뺏기는 일은 없겠지만, 기억이 없는 그녀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그녀의 소심한 성격도 결국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후, 한숨을 내쉰 차라는 더듬더듬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예쁘다!"

 "예, 예뻐? 이름 말이야?"

 "응!"


 이름이 예쁘다니, 빈말이라도 기분이 나쁜 말은 아니었다. 차라는 아이의 작은 머리를 머뭇머뭇 쓰다듬어 주었다. 그것을 기분좋게 즐기는 모습을 보니 마치 갸르릉 거리는 고양이 같았다. 하지만 아이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기대에 찬 눈으로 차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금방 눈치챘다.


 "어… 네 이름은 뭐야?"

 "프리스크!"


 아이는 꽃이 피어나는 것 같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정말로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차라가 마찬가지로 예쁜 이름이라고 답하자 프리스크는 답례로 그녀를 꼬옥 안아주었다. 아이의 몸은 포근했다. 새삼 이 설원을 혼자 걸어온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이었는지를 느꼈다. 겨우 외투 하나를 주기 위해서…….


 잠깐. 차라는 자신의 사고에 제동을 걸었다. 뭔가를 잊고 있지 않나? 분명 그 친절한 염소 괴물이 부탁한 것은 외투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외투는 분명히 전달했다. 전달했는데…… 그래. 키 작은 백골이었다. 염소 괴물의 말로는 분명 키 작은 백골이 있어야 했는데 지금 아이의 곁에는 백골이 없었다.


 "저기…… 혹시 키 작은 해골은……? 부, 분명 같이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까지 말하고 차라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말에 조금 전까지 밝았던 프리스크의 얼굴이 굳은 것이다. 어린아이의 얼굴은 정말 솔직했다. 세상을 잃어도 그것보다 처참한 표정일 수는 없을 것이다. 당황한 차라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이를 달래는 방법을 몰랐다. 무엇보다도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그나마 울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 울거야." 프리스크가 그녀의 생각을 들은 것 처럼 말했다. "울면 해골빠가지가 싫어할테니까 안 울거야." 아이는 입을 앙 다물고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차라는 골이 찌잉찌잉 아파왔다. 대체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괜히 말을 건 것 같아서 후회되기도 했다. 그녀는 다리에 힘을 주어 보았다. 아프기는 했지만 슬슬 걸을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된 것 같았다. 아이를 두고 가는 것이 조금 찝찝하기는 했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자신이 누구를 챙길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했다. 그녀는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지." 차라가 초소를 나서려는 순간 프리스크가 그녀의 옷자락을 잡았다. 아이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 저기, 미안한데 나는 이제 그만…." 그녀는 최대한 단호하게 말하려 했지만 아이의 얼굴을 보니 말끝이 흐려졌다. 하지만 여기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아이를 떼어낼 수 있을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삐리리리, 하고 기운 빠지는 수신음이 들린 것은 그 직후였다. 처음에는 두 사람 다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하지만 곧 차라가 가방에 휴대전화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염소 괴물이 만약을 위해서라며 챙겨준 것이었다. 마침 적당한 핑계라고 생각한 그녀는 전화 좀 하고 오겠다며 억지로 아이의 손을 떼어냈다.


 가방에서 꺼낸 휴대전화의 액정에는 상대의 이름 대신에 발신자 표시 제한이라는 메세지만 표시되어 있었다. 초소에서 나온 차라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자 전화기의 너머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났다. 뛰면서 전화를 받고 있는 것 같은 소리였다.


 [아, 여보세요? 미안한데, 너 인간 맞지?] 전화 너머의 상대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예, 예… 그런데요?"

 [근처에 꼬맹이 없어?]

 "꼬, 꼬맹이요?"

 [인간 꼬맹이 말이야. 초소에 없었어?]

 "아, 혹시 프리스크를"

 [당장 데리고 도망쳐.]

 "도, 도망치라니…."


 차라는 무언가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 전에 전화는 끊어져 버렸다. 그녀는 멍하니 전화기 액정을 들여다 보았다. 깊게 내쉰 한숨이 설원의 하늘에 작은 궤적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