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Fragment-->

 -들으면서 읽어줘. 브금 이름은 Undyne's End 야.



워터폴의 비 오는 길은 언다인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이유? 글쎄, 물고기가 물 만나기를 좋아하는 거야 당연한 일 아닐까. 언다인은 개중에도 물을 특별히 더 좋아하는 물고기일 뿐이었다.


언젠가, 언다인은 알피스를 데리고 이곳에 온 적이 있다. 가끔은 쓰레기장이 아닌 곳도 돌아다니고 싶었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아하는 보여주고 싶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알피스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지하세계에 비가 내린다는 것 자체에는 흥미를 가진 듯 했지만.


‘이건 아마 스노우딘의 눈과 땅의 지열 때문일 거야. 워터폴은 스노우딘보다 위치가 낮으니까 지열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눈 녹은 물이 증발해서 차가운 천장에 닿아 응결되어 아래로 떨어지는 거지. 그걸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거야!’


하나도 못 알아들을 말을 하는 알피스의 지적인 모습도 언다인은 마냥 좋아했지만, 이후로 그녀를 이곳에 데려오는 일은 다시 없었다. 언다인은 이곳에서만은 어려운 생각을 다 버리고 싶었다. 다만 몸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발을 디딜 때마다 참방참방 튀어 오르는 물웅덩이를 느끼며, 그렇게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있다 보면, 주변의 물방울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물론 애니에서 나오는 것처럼 무생물의 생각을 읽는 능력이 없는 이상 그런 일은 불가능하지만, 언다인은 분명 그리 넓지 않은 길을 울리는 맑은 목소리를 듣는다. 상상이리라고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언다인, 언다인. 오늘도 왔구나.]


대답은 하지 않는다. 하기 싫은 게 아니라,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입 밖에 내지 않아도 물방울들은 언다인의 생각을 모두 알고 있다. 생각으로만 대화하다 보면 물방울과 자신이 일체된 것 같은 감각까지 느낄 지경이다. 언다인은 슬풋 미소짓곤 벽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기대선다. 무겁기 그지없는 갑옷이 철컹 소리를 낸다. 빗방울들이 눈앞을 스쳐 떨어지고, 부서져, 웅덩이의 일부가 되어, 언다인의 주변에 녹아든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좋다. 이 이상 움직이기 싫을 정도로.


[언다인, 언다인. 어디론가 가야 하는 거지?]


이대로 주저앉아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언다인은 정신이 번쩍 든다. 아아, 그렇지. 난 ‘어딘가를’ 가야 한다. 이 무거운 갑옷을 차려입고 나온 게 그것 때문인데.


[아주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구나. 그렇지?]


고개를 끄덕인다. 목소리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움직여야 한다, 이곳에서 지체할 시간은 없다, 라고. 언다인은 몸을 바로 세운다. 물 머금은 갑옷이 무겁다. ...아니, 철제 갑옷은 물을 머금지 않는다. 무거워진 건 언다인의 마음이다. 어째서? 언다인은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마음을 바로잡아야 했다. 지금 마주하러 가는 건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언다인, 언다인.]


목소리는 계속해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다른 말 없이 자신의 이름만을 반복하는 게 섬뜩하면서도 묘하게 위로가 된다. 메아리 같은 소리는 계속된다. 언다인은 다시 걷기 시작한다.


내가 뭘 하려는지 알고 있어?


[물론, 물론이지, 언다인.]


언다인은 피식 웃는다. 당연히 알고 있다. 물은 어디에든 존재하니, 무엇이든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물은 알고 있다. 그녀가 무엇을 하러 가는지, 그녀가 막으러 가는 것이 어떤 괴물 같은 존재인지.


괴물, 그녀가 말하려니 우습기도 하지만 이만큼 잘 맞는 호칭도 따로 없을 것이다. 어느 날 폐허의 문을 열고 나왔다던 인간은 문자 그대로의 학살을 시작했다.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다가, 짜증스러운 얼굴을 하곤 성급하게 뛰다가, 강박증에라도 걸린 양 스노우딘 숲의 나무 하나하나, 벽 하나하나를 전부 쥐어뜯을 듯 뒤졌다. 그러다 호기심에 다가온 괴물을 만나면 망설이지도 않고 공격을 날린다. 싸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


이가 갈린다. 이미 살해당한 괴물의 수는 반백을 넘어간다. 폐허 안에 괴물들이 남아 있었다면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의 학살은 계속될 것이다. 지하세계에 있는 괴물들 전부가 그 손에 먼지로 화할 것이다. 아스고어마저 죽는다면 여섯 영혼도 인간에게로 넘어간다. 그 영혼의 힘으로든, 아스고어의 영혼을 취한 힘으로든, 인간은 결계를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 학살이 결계를 넘어가는 순간 그칠 것인가? 그럴 리 없다. 인간은 분명 바깥의 생명체들까지 모조리 찾아내 죽일 것이다. 그저 자신이 죽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래, 인간은 그 정도로 강하다. 언다인이 진심을 다해 던진 창과 마법을 가볍게 피하는 몸놀림은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다. 어쩌면 그녀보다도, 강할 것이다. 온몸을 던져 막는대도 결국 뚫고 지나가겠지.


[그게 두려웠던 거구나. 그렇지?]


두려워? 아니, 아니, 아니다. 그럴 리 없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젓는다. 그럴 리 없다. 두려움 따위는 이미 극복한 지 오래다. 왕실근위대장으로서 마땅히 그래야 했다. 두려움 따위는 모두 버리고 괴물들을 지키는 게 내 역할인데.


하지만.


[언다인, 너는 이미 인간에게서 몇 번이고 도망치지 않았니?]


손에서 힘이 빠진다. 물방울이, 지금까지 부정해 왔던 것을 귓가에 조용히 속삭인다.


지금껏 인간을 공격해 저지할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던가? 아니, 그건 이미 횟수로 셀 수 없다. 언다인은 인간이 파피루스를 죽이고 스노우딘을 벗어난 거의 직후부터 그를 따라다녔다. 인간이 방심한 것처럼 보일 때쯤 숨어 창과 마법을 날리고, 직접 대면했을 때는 바닥을 부수거나 아이를 변명거리 삼아 자리를 벗어났다. 직접 대결하기는 싫었다. ...무서웠다. 인간이 너무나도 쉽게 자신을 죽여 버릴까 봐. 이미 죽어버린 괴물들처럼, 인간을 믿다 죽고 만 그녀의 친구처럼.


[언다인, 언다인.]


목소리는 그녀를 가엾게 여기듯, 책망하듯, 격려하듯 등을 두드린다. 언다인은 땅만 쳐다보며 우뚝 서 있다. 평소의 기세는 어디 가고, 그저 작은 모습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 젖어 늘어진 머리카락은 뺨에 달라붙어 한층 더 처량해 보인다.


[언다인, 언다인....]


내게 더 무얼 요구하고 싶어서.


[언다인.]


그렇게....




[난, 우린, 네가 쓰러지게 두지 않아.]


언다인은 번뜩 고개를 쳐든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눈가에 떨어져 잠깐 찡그리지만, 곧 다시 머릿속에 울리는 소리에 눈을 크게 뜬다.


[결코 널 쓰러지게 두지 않아. 만약 네가 주저앉는다고 해도....]


[나, 우리가, 네가, 쓰러지는 걸 거부하겠어. 계속 서 있을 수 있도록 잡아 두겠어.]


[그러니-.]


언다인은 얼빠진 표정을 짓고 만다. 분명 이미 죽은 파피루스가, 다른 곳에서 아직 남은 괴물들을 대피시키고 있을 알피스가, 마음에 전혀 들지 않는 그 친구가, 대화도 제대로 해 보지 못한 이웃이, 다른 괴물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느껴진다.


눈가에 고였던 물이 흘러내린다. 차갑다. 동시에 뜨겁다. 평소 같았으면 창피함에 얼른 눈 주위를 훔쳐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은 그러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모든 추억이 한 줄기 흘러내린다.


요리 수업의 기억이 한 줄기 흘러내린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았던 애니메이션의 내용들이 한 줄기 흘러내린다.


이 어두운 지하에서도 힘겹게 미소 지으며 살아가던 괴물들의 마음이 마저 흘러내린다. 빗물에 섞여 땅에 떨어지고, 언다인의 몸을 단단히 받친다. 언다인은 천장의 반짝이는 돌들을 본다. 모두의 소원이 담긴 돌이 쏘아보듯 빛나는 언다인의 눈에 가득 들어찬다.


언다인은 걸음을 내디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빠르지 않으나 멈추지도 않는다.


나는 나아가리라. 그 앞에 서리라. 입 바깥으로 뇐다. 쇳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뒤섞인다.


[-의지를 가져!]



이 모든 것이, 언다인의 의지를 가득 채운다.





----------------------------




 부끄럽지만 나름 감성글이라고 써봤어. 언다인의 이름은 Undying+Undine(물의 요정) 합성이라는 소리가 있더라고. 실제로 언다인은 물고기기도 하고, 자연을 좋아한다고 본편에서 밝혀 주기도 했고. 그래서 '물'과 언다인을 동일시해봤어. 물의 목소리들이 사실 언다인의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아. 자기가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는 거지. 의지를 가지라고.

 오늘 완성할 생각으로 집 오면서 웃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더라. 날이 날이기도 하고 감성이 차서 조금 더 감정 담아 쓰게 됐어. 언다인도 결국 사람(인간이 아니라)인데, 키드 구하고 할 때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 아닐까. 죽음을 앞둔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친구들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의지를 가지고 나아가는 영웅 언다인이 보고 싶었어.

 봐줘서 고마워. 다음엔 귀농 새준이가 숙구랑 별 보는 문학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