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 흘렀는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이 연구실에는 그 흔한 창문 하나 없어 낮과 밤이 어떻게 오고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배고프면 그자가 밥을 주고, 졸리면 그자가 잠을 재울 뿐이었다. 매일 매일이 그저 그의 명령대로 이루어졌으며, 또한 그것들이 모두 비슷했다.


 “자, 너는 이 용액을 여기, 여기 그리고 저기에 있는 시험관에 부으렴.”


 “이 파란 용액을요?”


 “그래, 그거.”


 뭐 일말의 변화가 있었다면, 그자가 나에게 시키는 것이 단순히 청소에서 다른 분야로 조금 늘었다는 것 정도. 어제-물론 낮밤의 구분은 없지만 침대에 누웠다가 일어났으므로-는 실험 기구를 다루는 방법을 조금 배웠다. 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유리 기구는 플라스크, 원통형 유리 기구는 실린더라고 하던가. 매우 기초적인 것이지만 그자는 나를 조금씩 작업에 참여시키기 시작했다. 여전히 목적이라든지, 이곳에 온 이유라든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뭐, 굳이 나가지 않더라도 일단은 여기에서 ‘나름’ 흥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일단은 만족해야 할까.
 
 “쨍그랑!”


 “아차차!”


 잠시 정신을 다른 곳에 팔고 있는 사이에 손에 들고 있는 플라스크를 놓쳐 버렸다. 푸른 용액이 산산조각난 플라스크에서 빠져나와 사방으로 매섭게 튀었다.


 “위험해!”


 어떻게 된 것인지, 순간 나는 그자와 함께 실험대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멀찍이 떨어져 용액을 쏟아 버린 실험대를 보자 용액은 이미 검푸른색으로 변한 채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튀고 흐른 자국들이 실험대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저거 닦으려면 고생 좀 해야겠네. 안 그런가, 자네?”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전부 내가 딴생각을 하느라 실험 돕는 일에는 집중하지 않아서가 아닌가.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물론 단단한 턱뼈로 고정된 입 모양의 변화는 전혀 없지만-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살짝 옆을 보며 절망에 빠진 나를 보고 세상 꺼지듯 한숨을 쉬더니, 곧이어 측은한 얼굴을 하며 한쪽 손으로 나의 등을 몇 차례 두드렸다.


 “실험에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것들이 태반이네. 조금만 늦었으면 뼈로 만들어진 네 새 몸이 다시 녹아 버렸을지도 모르지.”


 그는 다시금 한숨을 쉰다. 용액을 쏟은 실험대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검푸른 색 고체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지만, 멀리서도 볼 수 있듯 실험대의 표면은 방금 전과는 다르게 굉장히 울퉁불퉁해졌다. 옆에서 그자가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난생 처음 듣는 언어로 말하고 있어 당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덤디덤’, ‘연구비’ 와 같은 혼잣말이 들려왔다.


 “손해를 메꾸려면 너는 일을 더 해야겠지.”


 그는 날카로운 말로 나의 뼈밖에 남지 않은 가슴을 찔렀다. 차가운 바람이 나의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지금까지 이름도 무엇인지 모른 채로 부리지 않았나.”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기억을 잃고 얼마 전에 정신을 차린 내가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지 않은가.


 “아, 그렇지. 이제 막 다시 태어나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군. 그래, 그러면 내가 적절하고 멋진 이름 하나를 정해주도록 하겠네.”


 그는 순간 빠르게 움직여 연구실 한쪽에 있는 낡은 책장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깜빡깜빡하는 두 개의 전구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얼핏 보았을 때 몇 개의 칸과 그림들이 보였다. 여전히 부유하고 있는 두 손으로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가 다시 책장에 넣고를 반복했다. 내심 고뇌하는 듯 몇 번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기도 했다. 그러고는 무언가 떠오른 듯 많은 책들을 한 번에 들어서 책장에 꽂아 넣은 후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정 기억나지 않는다면 이 이름을 쓰는 것이 어떻겠나, Sans.”
 
 “.......”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샌즈, 짧으면서 마음에 드는 이름이었다. 별로 고뇌할 필요 따위는 없었다.


 “그래, 샌즈. 정식으로 나의 조수가 된 것을 축하한다. 이미 덤디덤 녀석한테는 말해 두었으니, 걱정하진 마라.”


 물론 덤디덤을 덤디덤이라고 직접 부르진 말라고, 덧붙였다. 그러고는 그는 음흉한 웃음을 터뜨렸다. 알 수 없이 기괴한 웃음소리에 따라 나도 하, 하 웃어 보였다. 기분이 꿀꿀했지만 그래도 기뻤다.



 -------------------------


 분량조절 실패다

 4~5회는 물건너 갔고 10회쯤 가야 끝날 듯하다


 1화 http://gallog.dcinside.com/renkansounen/11360331610400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