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즈는 당신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다.

프리스크의 입에 살벌한 미소가 번졌다. 이미 여러 번 겪어본 상황이었다. 여기서 자신이 자비를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지는 눈앞에 훤했다. 또한 앞에 있는 작은 뼈다귀를 먼지로 만들어버린 것도 한두 번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비”를 무시한 후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프리스크는 샌즈의 자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갑자기 죄책감이 밀려와서도, 있지도 않은 양심 탓도 아니었다. 그저 새롭고 재미있는 놀이가 생각났기에. 프리스크는 의지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상처가 회복되었고, 말라붙은 피딱지가 없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들린 칼을 내려놓았다.

"...heh."

샌즈는 조금 당황한 듯 했다. 애초에 본인이 몇 번을 죽었는지 어렴풋이 기억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프리스크의 행동이 의심스러운 것이 당연했다. 허나 다른 선택지가 없는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었고, 프리스크는 한 걸음씩 천천히 샌즈를 향해 걸어갔다. 미소를 유지하는 것을 잊지 않은 채, 최대한 후회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론, 프리스크는 그런 감정 따위 잊은지 오래였다.

푸욱. 터어어어어어얼렸구나!! 하는 샌즈의 힘겨운 외침과 함께 수십 개의 뼈다귀가 프리스크의 몸을 관통했다. 온몸이 찢겨나가는 기분도 나쁘지는 않아, 하고 프리스크는 생각했다. 그들의 영혼과 같은 색의 뜨거운 액체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곧, 프리스크의 숨이 멎었다.

샌즈는 가만히 서서 로드를 기다렸다. 어쩌면 인간이 리셋을 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놓아버린지는 오래였다. 그저 인간이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도록 심판의 복도에 서서 영원히 인간과 싸울 뿐이었다. 비록 자신이 여러번 죽어나갔더라도. 어떤 이유에선지 인간은 자신과 싸우는 것을 즐기는 듯 했다. 샌즈는 프리스크가 정말 제대로 미쳤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뭐, 이제 와서 달라질 것도 없어, 하고 샌즈는 중얼거렸다. 긴장을 한 탓인지 뻣뻣하게 굳어버린 손가락뼈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한껏 의지로 가득 찬 인간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보통 인간이 로드를 하면 죽은 육체는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시체는 여전히 복도 한가운데에 있었다. 붉게 물든 뼈에 꽂힌 채, 찢어진 푸른 스웨터와 부서진 로켓도 함께. 마치 꼭두각시 인형을 실에 아무렇게나 매달아 놓은 것처럼 기괴하게 꺾인 몸은 그대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다만, 영혼은 어디에도 없었다. 의지도 없었다. 그저 기분 나쁜, 마치 모든 것이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빈 껍데기만 남겨두고 인간은 떠났다.

더 이상의 로드도, 리셋도 없다.

모든 것이 끝났다.

바라고 또 바라던 그 순간이지만 샌즈는 석연치가 않았다. 뭔가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오랜 싸움 끝에 지친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잊어버렸는지 조차 잊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상관하지 않는다. 그의 입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위협은 사라졌고, 괴물들은 다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시간선이 꼬여버릴 염려도 없다. 그저 언다인과 알피스와 함께, 메타톤의 방송을 보며 파피루스가 만든 스파게티를 ―

아. 샌즈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검은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행복한 상상으로 인해 떠오른 미소는 얼어붙어버렸다.

"아.. 아아.."

샌즈의 몸이 얕게 떨려온다. 얼어붙은 미소는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가 깨달은 무언가는 하나의 작은 진실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 하나. 오랜 싸움에 지친 그가 잊었던 한 가지.

"아아...아하하.."

그의 차가운 무릎뼈가 대리석 바닥에 닿았다. 바닥이 가득 머금고 있던 찬 기운은 샌즈의 무릎을 타고 기어올랐다. 샌즈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하하하하, 하하, 하.. 으… 흐.."

지극히 당연한 것 하나.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사실.

그들은 죽었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기계적이지만 다정한 로봇 소리도, 더듬거리는 말투도, 느아아아 하는 고함소리도, 녜헤헤 하는 웃음도.

샌즈에겐 남은 것이 없다.

그는 차가운 바닥을 엉금엉금 기었다. 무릎뼈가 조금씩 바스라졌지만 무시했다. 그대로, 이미 딱딱하게 굳어버린 인간의 시체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앞에서 무너져내렸다. 토기가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샌즈는 미소 짓는 인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마치 넌 내 손안에 있어, 코미디언  이라고 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눈에서는 주체할 수 없이 뜨거운 뭔가가 흘렀다. 목에서는 꺽꺽대는 소리가 울렸다. 샌즈는 주저앉은 채 실소했다.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통곡했다. 잡아 뜯을 머리카락에 없기에 그의 두개골에선 빠드득하는 시린 소리만이 흘러나왔다.


싸움은 끝났고, 해골은 패배했다.


넓고 싸늘한 복도에는 해골의 물 맺힌 웃음만이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