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광속으로 묻히길래 재업 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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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내 쪽으로 뒤돌지 않기 때문에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저 사람이 날 향해 뒤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고있다. 나아가는 걸음걸이를 멈추게 하려 소리를 지르지만 멈추질 않는다. 어떻게든 멈추려 하려 발악하며 외쳤다.


"이젠, 진짜 말 잘들을테니 나만 버리고 가지마. 제발..."


걸어가던 사람은 잠시 걸음걸이를 멈추고 나를 향해 뒤돌아 본다. 나를 향해 잠시 미소 짓더니 다시 제 갈길을 찾아 걸어간다. 이젠 아무리 내가 소리쳐도 듣질 않을 것 같다.



"엄마..."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베개와 얼굴을 적시고 있던 눈물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는 보고싶어 하지 않는다고 다짐했는데.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둘러본다. 침대 머리맡에는 토리엘이 놓고 간 것으로 보이는 파이가 한 조각 보인다. 아직 따뜻한 걸로 봐선 파이를 놓고 간지 얼마 되질 않은 것 같다. 


기분 전환겸 파이를 포크로 잘라 한 입 먹어 본다. 달콤한 향이 내 입안을 휘젓는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제대로 된 식사였다. 식사를 마친 후, 방에 있던 램프를 키고 밝아진 방을 제대로 둘러봤다. 방 한 쪽 구석엔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 한 낡은 장난감들과 크기가 제멋대로인 신발들이 상자에 담겨있었다. 그녀의 가족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일까.


방 문을 열고 나와 봤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 머릿속은 혼란스러웠지만, 아까 먹은 파이의 달콤한 향기가 집안에 퍼져 있어 안정이 됐다. 토리엘을 찾아 거실로 나와 보았다. 그녀는 난로 근처에 있는 쇼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선 말을 걸었다.



"벌써 일어났구나, 응? 음, 이곳에서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지. 너와 나누고 싶은 오래된 책들이 많이 있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벌레사냥 장소도 보여주고 싶구나. 널 위한 교육 계획도 짜 놓았단다."



그러다가, 갑자기 머뭇 거리다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네겐 갑작스럽게 놀랄 일일 수도 있겠지만, 난 항상 선생님이 되고 싶었단다."



어울리는 직업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놀랄만한 얘기는 아니겠네."



나는 그녀에게 미소 지으며 잘 어울릴 것 같다라며 말 했다. 토리엘은 웃으며 내 머릴 쓰다듬어줬다.



"어쨋건, 네가 이곳에서 산다는 게 아주 기쁘구나."



당황 스러웠다. 토리엘은 벌써 나와 같이 살 생각까지 했다니. 하지만, 달리 갈 곳도 없었기에 그저 말을 듣고 있었다.



"오, 하고싶은 말이 있었지? 원하는게 뭐니?"



"아무것도 없어요."



그녀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



일주일 정도를 토리엘의 집에서 함께 생활했다. 처음엔 그녀는 항상 내게 친절했고 난 계속 이렇게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폐허는 나에겐 너무나 좁았던 탓일까. 이 곳에서 사는것이 실증이 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집안에 있던 책들은 모조리 읽었기 때문에 할 일이 없어 집을 돌아다니 던 중, 밑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발견했다. 호기심이 생겨, 그 계단으로 내려가 보니 길게 늘어선 복도가 있었다. 몇 발자국을 걸었을 때, 내 어깨에 갑자기 얹어진 손 때문에 놀라 넘어질 뻔 했다. 뒤를 돌아보니 토리엘이 불안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이곳은 있으면 위험하단다. 얼른 윗 층으로 올라가렴."



떠밀리는 손길에 난 어쩔 수 없이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아래에는 무엇이 있길래 토리엘이 날 막는걸까. 궁금해 참을 수가 없어서 결국 또 다시 방에서 나와 토리엘이 있을 거실로 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니?"



내게  상냥하게 말을 하는 그녀를 보며 망설여진다. 그러나 망설임은 나의 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



"이 곳에서 나가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결국, 말해 버리고 말았다. 불안하여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 하고 시선을 피했다. 그 때 였다.



"잠깐, 할 일이 있으니 잠시 여기에 있어줄래?"



그녀가 그 말을 남기고 내가 아까 갔던 밑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평소라면 그녀의 말 대로 가만히 있었겠지만, 그녀의 말 한 마디가 불안한 느낌이 들어 그녀를 따라갔다. 지하엔 그녀가 앞을 보고 있었고 난 그런 토리엘을 보고 똑같이 멈춰섰다.



"집에 돌아가는 법을 알고 싶은 거지, 그렇지 않니?"



그녀의 목소리엔 슬픔이 묻어 나왔다.



"우리의 앞에는 폐허의 끝자락이 있단다. 지하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지. 그 문을 부숴버릴 거야. 다시는 아무도 나갈 수 없게. 이제 착하게 위층으로 올라가렴."



그 말을 남기고 토리엘이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뒤를 쫓아갔으며  그녀가 다시 멈춰서자, 나도 똑같이 몇 발자국 뒤에서 멈춰섰다.



"이 곳으로 떨어지는 인간들은 모두 같은 운명을 맞지. 보고 또 보아왔어."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토리엘에게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 한 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들어와서 나가려다 죽어. 순진한 아가야. 네가 폐허를 떠나면.."



그녀가 망설이고 있는게 보였다.



"그 자.. 아스고어가 널 죽일거야. 널 지키려는 것 뿐이란다. 알겠니? 네 방으로 돌아가렴"



아스고어? 그녀의 집에서 보았던 책에 있던 이름이었다. 아스고어 드리무어, 괴물들의 왕. 그런데 도대체 날 왜 죽인다는 걸까. 알 수 없는 말만 계속해서 내뱉는 토리엘에게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다시 발걸음을 움직이자 다시 한 번 쫓아간다. 그리고 아까 전 처럼 멈춰섰다.



"막으려고 하지마. 마지막 경고야."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었던 그녀의 차가운 말소리.



"도대체 왜 막으시는 거에요?"



내가 말을 걸어도 그녀는 다시 움직일 뿐 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멈춰선 장소. 폐허의 끝자락을 막고 있다던 그 문이었다. 그녀가 돌아선다. 아까보다 더 엄한 목소리가 뻥 뚫린 복도를 타고 메아리로 울린다.



"그렇게 떠나고 싶니? 흠, 다른 이들과 똑같구나. 한 가지 방법이 있지. 증명해 보렴, 네가 살아남을 정도로 강하다는 걸.."



그녀의 그런 말들에 놀라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던 내 가슴팍에서 지금까지의 전투들과 마찬가지로 영혼이 솟아나왔다. 토리엘이 길을 막고 있다.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 했으나 들려오는 말은 싸우거나 도망치라는 말 뿐 이었다. 절규하며 고개를 저었으나, 그녀는 날 봐줄 생각이 없었는지 진심으로 불꽃을 내게 던지고 있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오는 불꽃들을 피하려 했으나, 결국 한 번은 내 팔 쪽을 스쳤고 난 고통으로 인해 비명을 질렀다.



죽음의 공포가 날 엄습했다. 벌겋게 부어오른 왼 팔을 붙잡고 이대로는 죽고 말거란 불길한 생각들이 한 순간에 스쳐지나 간다. 



'죽긴 싫어, 싫다고..'



불안정 하게 숨을 쉬며 조용히 말들을 내뱉는다. 한번더 불꽃이 나를 향해 엄습했을 때 였을거다. 난  폐허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웠던 장난감 칼로 저항하기 위해 그녀를 내쳤다.



"어? 어어...?"



장난감 칼에 베인 그녀의 가슴팍에서 피가 새어나오며 그녀의 흰 털이 붉게 물들어 간다. 그 와 동시에  머리속 그녀가 지르는 비명이 머리서 맴돈다. 장난감 답지 않게 날카롭게 갈아졌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너무 예상 밖 일이었다. 생각치도 못 한 상황에 당황하며 우는 나에게 그녀는 힘겨운 숨을 내쉬며 말한다.



"내 생각 보다 강하구나.. 잘 들으렴 프리스크.."



듣고 싶지 않아 울면서 귀를 막고 아까 전 보다 더 빠르게 머리를 절레절레 돌린다. 하지만, 귀를 막아도 그녀의 말은 들린다.



"최대한 멀리 걸어나가렴.. 그럼 출구를 찾을 수 있을거야."



"말 하지 마세요, 장난 이시죠? 네? 장난감 정도로 이럴리가 없잖아요.."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그런 일은 일어날리가 없다는건 내 자신이 제일 잘 아는 일인데도.



"아스고어.. 그 에게 영혼을 빼앗기지 말렴... 그 자의 계획이 성공해선 안 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생각 조차 않은 채 그녀의 몸을 붙잡아 어떻게든 쓰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알겠지? 프리스크.."



그렇게 그녀의 몸은 먼지가 되가며 몸에서 나온 번쩍이는 영혼은 산산 조각이 나 사라져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절규소리로 복도가 채워져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