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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짤은 써야 제맛


   폐허편 : http://gall.dcinside.com/undertale/302457

스노우딘편 #1 : http://gall.dcinside.com/undertale/317459

스노우딘편 #2 : http://gall.dcinside.com/undertale/326596



#3


 키 작은 백골이 초소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눈이 그쳐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단히 추운 날씨다. 샌즈는 자연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막간을 이용해 구한 담배를 뼛속 깊이까지 빨았다. 초소 안쪽에 피워뒀던 모닥불은 이제 가느다란 연기조차 내뱉지 않았다.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으니 어쩔 수 없으리라. 그는 뼈 밖에 없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이것 참 난감한 상황이다. 자신은 분명 전화를 통해 초소에서 도망치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해골빠가지! 어디 갔었어!"


 조그마한 인간의 아이가 샌즈의 품에 뛰어들었다. 얼굴은 눈물 자국으로 엉망이지만 지금만큼은 활짝 웃고 있다. 나참, 이런 뼈 밖에 없는 몸둥이가 뭐가 좋다고 자꾸 안기는지. 샌즈는 이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고 그저 가만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의 뒤에서 지팡이를 짚은 비틀거리는 여성이 따라왔다. 샌즈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토리엘에게 프리스크를 챙겨달라고 하기는 했지만 설마 인간을 보냈을 줄이야. 그녀는 샌즈와 눈을 마주치더니 그대로 시선을 피하며 꾸벅,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heh,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는데 벌써 움직여도 괜찮은 거야?"


 그녀의 상태는 한 눈에 보기에도 심각햇다. 눈은 반 쯤 감긴 상태고 고개가 자꾸 기울었다. 몇 겹이나 두껍게 입고 있어 따뜻해 보였지만 오히려 그게 짐이 되는지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샌즈는 그녀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충고한 뒤 초소벽에 앉혀 주었다. 이런 몸으로는 도망치고 싶었어도 도망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는 샌즈에게 눈을 감은 그녀의 이름이 차라라고 알려주었다.


 일단 프리스크와 다시 만나기는 했지만 상황은 썩 좋지는 않았다. 자신이 이쪽을 찾아본다고 했으니 파피루스가 당장 이쪽으로 오지는 않겠지만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우선 당장 급한 것은 쉴만한 장소를 찾는 것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파피루스를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데 시간을 허비했다. 하지만 고아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인간이 들어온 것을 알았다면, 다시 돌아간 것도 알 수 있으리라.


 "걸을 수 있겠어?"


 필터까지 타들어간 꽁초를 버린 샌즈가 차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앉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더 이상 여유를 부리는 것은 위험했다. 차라는 우물거리며 "응…." 대답하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폐허로 갈 수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길은 스노우딘 밖에는 없었다. 중간에는 개들이 지키는 초소가 몇 개나 있었지만 샌즈는 그들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가는 길을 알았다. 힘든 일인 것을 알았지만 무사히 워터폴에 닿는다면 이 여정이 조금은 더 쉬워지리라.


 "프리스크, 우리는 이제 조금 더 조용히 해야해."

 "왜?"

 "숨바꼭질 알지? 그거랑 같은 거야."

 "숨바꼭질! 프리스크 숨바꼭질 잘해!"

 "훌륭한 걸."


 다행히 프리스크도 얌전히 있어 줄 것 같았다. 샌즈는 가끔 이 어린 인간이 아주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녀는 결코 상황을 악화시키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샌즈는 이번에도 그렇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백골의 발자국 뒤로 두 인간의 발자국이 이어진다. 샌즈는 어쩌다가 자신이 인간을 둘이나 돌보게 되었는지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거기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초소를 나선 그들의 걸음은 더뎠다. 차라의 몸이 불편한 것도 있었지만, 보통은 괴물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울퉁불퉁한 지형이 많았기 때문에 샌즈는 계속해서 차라를 부축해 줘야 했다. 거리도 마을로 곧장 향하는 길보다다 배는 넘었다. 프리스크가 평소처럼 이곳저곳을 들쑤시지 않고 따라오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아이는 한동안 샌즈와 떨어졌던 것이 무서웠는지 그의 옷자락을 꼭 잡고 얌전히 따라왔다.


 "어…뭘 하는 거야?"


 10분 정도 걸었을까. 돌연 차라가 발걸음을 멈추고 그렇게 물어보았다. 당황한 샌즈가 "뭘 하다니?" 하고 되물었지만 곧 그녀의 눈이 자신이 아닌 프리스크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프리스크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응?" 하는 귀여운 소리와 함께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녀는 샌즈의 옷자락을 잡지 않은 손으로 땅바닥의 눈을 잡아 자신의 외투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양 주머니는 눈으로 가득 차있었고, 바닥은 녹은 눈 때문에 젖어있었다. 손끝이 붉게 얼었지만 아이는 개의치 않았다.


 "눈은 어디 쓰게?" 샌즈가 묻자 아이는 자랑하듯이 주머니에서 눈을 꺼내보였다. 체온 때문에 조금 녹은 눈이었다. 아이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내 보물이야!" 프리스크는 질척질척한 그것을 소중한 것을 다루듯이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냉장고에 넣을거야! 눈싸움 할 때 쓸거야!" 그 말에 샌즈는 쓴웃음을 지었다.


 "heh. 좋은 생각인걸? …그런데 꼬맹아, 냉장고는 있고?"

 "어?"


 대화가 멈췄다. 프리스크가 생각이 멈춘 얼굴로 그 자리에 섰다. 아무래도 냉장고에 넣을 생각은 했어도, 냉장고가 있는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작은 손 위에서 녹아가는 눈을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은 세계적인 난제를 생각하는 과학자 만큼이나 어려워 보였다. 어린아이들은 그만큼 순수한 것이다. 오랜 생각 끝에 아이는 결국 스스로 주머니에서 질척질척한 눈을 꺼내어 바닥에 버렸다.


 "여름에도 눈싸움 하고 싶었는데……."

 "heh… 나중에 다시 이곳에 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구 꼬맹아."

 "여기는 여름에도 눈 와? 눈은 겨울에만 오는 거 아니야?"

 "이 스노우딘에는 항상 눈이 쌓여있다고. 그래서 이름도 '스노우'딘인 거야. 멋지지?"

 "응! 멋있어! 또 올래!"

 "그래. 꼭 다시 오자 꼬맹아."


 물론 거짓말이었다. 어떠한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그녀는 아마 평생동안 이곳에 다시 올 일이 없을 것이다. 말로는 쉽사리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심경이었다. 샌즈는 담배를 하나 빼물었다. 연기는 좀 나겠지만 이미 충분히 깊은 숲 속이니 들킬 일은 없었다. 이곳은 자신만이 아는 길로 파피루스를 피해 농땡이를 피울때 쓰던 장소였다. 멀리 돌아가기는 하지만 초소에서 스노우딘 마을로 이어져있다. 그는 이곳에서 다른 괴물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걸었다. 어둠이 짙어지자 더욱 추워지고 있었다. 슬슬 파피루스의 동태도 신경 쓰였다. 분명 자신이 맡은 구역에서는 인간을 찾지 못했으니 샌즈를 찾기 위해 초소 쪽으로 왔을 것이다. 샌즈는 그 사이에 인간들을 자신의 집 뒤편의 숨겨둔 방에 숨겨놓을 계획이었다. 벽난로도 없는 그저 지하실이지만 초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파피루스를 적당히 구슬리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 계획이 달성되는 일은 없었다.


 "오, 샌즈. 나는 부디 이런 전개만은 아니기를 기도했는데."


 신이시여. 샌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가장 많이 들어왔고, 가장 많이 답해주었던,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동생의 목소리. "파피루스." 샌즈가 나지막히 그 이름을 불렀다.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을 부르지 마!"


 분노에 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것은 사나운 바람에 실려 샌즈의 마음을 찢어발기는 듯 했다. 눈 덮인 숲의 그림자가 처량하게 흔들렸다. 그 무엇이 지금 샌즈의 심정을 대변할 수 있을까. 동생과 싸우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어떻게 그러겠는가? 오랜 옛날부터 두 괴물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두 괴물은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를 사이에 두고 서있었다.


 숲의 그림자 아래서 파피루스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샌즈가 본 그의 얼굴은 한 평생 봐온 유쾌한 동생의 얼굴이 아니었다. 키 큰 해골의 한쪽 눈구멍에서 금빛의 기운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처럼 격렬하게 치솟았다. 그늘이 드리운 얼굴이 증오와 혐오로 구겨져있다. 평소와 같을 터인 움직이기 편해 보이는 가벼운 갑옷이 오늘은 더 없이 무거운 소리로 마찰했다. 그가 손에 쥔 골봉이 흉흉한 살기를 띄었다. 아아, 파피루스. 샌즈는 작게 신음했다.


 "샌즈. 지금이라도 그 인간들을 내놔."

 "……heh. 정말 '골'치 아픈 상황이야. 안 그래?"

 "우스워? 지금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와? 난 지금 장난치는 게 아니야, 샌즈!"


 파피루스의 골봉이 난폭하게 땅을 찍었다. 샌즈는 알고 있었다. 봉은 그의 정의로운 심성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악을 처단하되 살생까지는 원하지 않는 그의 신념이 담겨있는 무기다. 그것이 지금 금빛 화염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모양을 바꿨다.


 사신의 얼굴을 닮은 흉악한 삼지창이 샌즈에게 향했다. 그의 살의는 진심이었다.


 "자, 어떻게 할 거야? 이대로 이 왕국의 반역자로 죽을거야? 아니면 지금이라도 만회하고 영웅이 될 거야?"


 샌즈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두 인간을 보았다. 천진난만하게 "해골빠가지가 하나 더 있어!"라며 웃고 있는 아이와, 위험한 상황인 건 아는 것 같지만 자신이 없으면 움직이기도 쉽지 않은 여자. 샌즈는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는 쓰지만, 오늘은 유난히도 지독했다. 하지만 그 지독함이 없으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참아낼 자신이 없었다. 담배는 빠르게 타들어갔다. 샌즈의 손이 프리스크의 머리를 훑었다. 겨우 이틀동안 몇 번이나 쓰다듬었을까. 수 만 번은 해왔던 일만 같았다.


 샌즈는 꽁초를 파피루스를 향해 던졌다. 지금이라도 당장 인간들을 넘기고, 편하게 일을 끝내고 싶은 충동이 밀려들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거기에 있는 것은 천정 밖에 없지만, 지금은 웬지 그 너머에 있는 별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딱 하나만 물어볼게 팝."


 샌즈는 인간의 아이와 여자를 자신의 뒤편으로 물러세웠다. 그는 설원 위를 한 걸음 내딪는다. 형제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본다.


 "너라면 친구를 버렸을까?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친구를 희생했을까?"


 그 말을 들은 파피루스는 말이 없다. 다만 자세를 가다듬고 싸움을 준비한다. 그는 전투의 프로였다. 한 번도 싸워본 적은 없었지만, 그의 위용은 매일 같이 그릴비에서 회자 될 정도였다. 샌즈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이길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다. 그렇기에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나는 아니야. 내 친구를 세계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배신할 수 없어. 그러니까, 파피루스. 내 말 잘 들어."


 샌즈의 안공에 잔잔한 녹색의 빛이 스몄다. 그것은 파피루스와는 달리 격렬하지는 않다. 폐허에서처럼 강렬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 안에 깃든 의지는 뚜렷했다. 허공에 양손을 뻗어 자신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용의 머리뼈를 연상케하는 모양의 컴벳나이프가 두 자루. 나이프를 입에 문 용의 눈에도 샌즈와 같은 녹색이 깃들었다. heh, 샌즈가 웃었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리라. 그럼에도 샌즈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파피루스! 나는 지금부터 너를 설득할거야.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걸, 이 형님이 '뼈'에 사무치게 알려줄게."


 바람이 울부짖는 숲에서 두 백골의 싸움이 시작되었다.